잔뜩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여성 CEO들이 데모데이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어색함도 잠시, 이내 눈빛이 바뀌며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자사의 비즈니스 모델과 사업성을 이야기한다. 이제 막 엑셀레이팅 프로그램을 거친 뒤라 서툰 부분도 조금씩 엿보였지만, 그 가능성 만큼은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지난 29일 서울 테헤란로에 위치한 ‘드리움’에서 개최된 ‘2023 Sheventures 데모데이’의 한 장면이다. 이날 행사는 중소벤처기업부와 한국여성벤처협회가 주관하고 더인벤션랩이 운영하는 ‘2023 민간협력 여성벤처·스타트업 육성 사업’의 일환으로 초기 유망 여성 스타트업 8개팀의 IR 피칭이 진행됐다.
‘2023 민간협력 여성벤처·스타트업 육성 사업’은 앞서 딥테크 및 SaaS형 서비스 플랫폼 기반의 여성 창업팀을 선발·지원한다는 목표로 시작됐다. 이번 데모데이에 나선 8개 팀은 그 첫 결실이라는 점에서 여러모로 주목도가 높았다.
오파크, 인테리어 업체를 위한 B2B 디자인 자재 솔루션 ‘obd’ 눈길
오파크는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를 졸업하고 스마트 스터디 개발, 전시 공유 플랫폼 개발에 참여했고, '하얀에이아이'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해 AI 기반 학습데이터 관리 및 가공 솔루션을 개발한 바 있는 김혜린 대표가 새롭게 창업한 스타트업이다. 오파크가 개발 중인 B2B 디자인 자재 솔루션 ‘obd(오비디)’는 대형 인테리어 업체에 비해 인력 리소스와 마진 방어 등에서 한계를 경험하고 있는 중소형 인테리어 업체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김 대표는 “개인이 운영하는 영세한 인테리어 업체들은 역량에 따른 매출 한계가 발생하고 그 결과 N차 공급까지 가능한 시장이 돼 버렸다”며 중소형 인테리어 업체들이 겪고 있는 페인포인트를 언급했다.
오파크가 우선 주목한 것은 중소형 인테리어 업체들이 고객과 소통하는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인테리어 업체들은 고객과 소통 후 인테리어 디자인이 선정되면 그에 맞는 자재를 찾고 판매자에게 견적을 받은 뒤 다시 고객에게 연락해 예산에 맞는 자재를 구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고객의 니즈와 한정된 자재 구성·가격을 일치시키는데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오비디를 통해 콘텐츠로 고객과 소통하며 디자인을 찾고, 디자인이 정해지면 예산에 맞는 자재를 탐색할 수 있게 했다”며 발표를 이어갔다.
“오비디를 이용할 시 업체들은 고객이 원하는 목적에 따라 바로 필터링을 통해 자재를 탐색할 수 있습니다. 이때 고객에게 제시하는 페이지 화면과 업체가 자재를 찾는 페이지 화면을 각각 따로 구성해 업체들이 마진을 고려해 견적을 뽑을 수 있도록 설정해 놨습니다. 고객들의 위시리스트 및 주문 내역까지 한번에 관리할 수 있는 기능도 있죠.”
김 대표가 내세운 ‘오비디’ 솔루션의 또 다른 장점은 디자인 자재 탐색 뿐 아니라 ‘오비디’에서 선보이는 자재의 브랜딩과 마케팅을 지원한다는 점이다. 즉 ‘오비디’는 가격 경쟁을 통해 저가 자재를 제시하는 것이 아닌 품질로 승부해 신뢰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김 대표는 이러한 인테리어 업체들의 니즈와 시장 반응을 초기 PoC(개념검증)을 통해 확인했다. 현재 오파크는 MVP(최소기능제품)의 테스트를 마치고 건축사·인테리어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한 고객사, 대형 자재 공급사, 개발·콘텐츠·가구 소싱 등의 파트너사 등을 확보하며 프로세스를 확립해 나가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김 대표는 “중소형 인테리어 업체를 시작으로 안정적인 고객 확보가 이뤄진 후에는 대형 인테리어 업체로 영업 대상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며 “매출을 실현 시킨 이후에는 좀 더 추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디자인, 물류 시스템, 가구 라인업 등을 구축하며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할 것”이라고 향후 로드맵을 설명했다.
데이터에 주목, AI 기반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솔루션 제시한 ‘스냅셀’
미국 조지아 산업공대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하고 인도네시아 대표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근무한 이력을 가진 윤소연 대표와 빅데이터 알고리즘 개발 전문가인 류창현 CTO가 함께 창업한 ‘스냅셀’은 스타트업, 소상공인을 위한 데이터 솔루션을 선보였다. 스냅셀은 이미 올 3월 프리시드 투자 유치에 성공하고 지난달 베타 버전 런칭했다.
데이터 전문 인력이 없는 초기 스타트업의 경우 자사 서비스에서 데이터를 추출하고 분석해 마케팅과 판매 전략에 적용하는 것은 ‘그림의 떡’과 같은 이야기다. 스냅셀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과정에서 첫 번째 허들인 ‘데이터 분석’ 문제다. 윤 대표는 “이제 모든 기업들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실제 업무 환경에서는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며 발표를 시작했다.
“스타트업, 중소기업 대표님이나 PM 분들을 만나 데이터를 활용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을 물으니 첫째가 개발자 의존도 였습니다. 보통 의사결정을 하려면 데이터를 봐야 하는데, 이 데이터를 보시는 분들은 비개발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데이터를 보려 할 때마다 개발자에게 요청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1~3일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거였죠. 두번째는 데이터 베이스 구축이었습니다. 데이터가 분산돼 있고 분석 목적으로 정제 돼 있지 않아 작업은 물론 관리가 어렵다는 것도 문제라는 거죠. 데이터를 정확하게 뽑기 위해서는 전처리 과정이 필수인데 이게 사실 엔지니어의 리소스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분산된 데이터를 통합 관리하면서 추출이 쉬운 솔루션을 만들고 있습니다.”
스냅셀 솔루션의 주목할 또 한 가지 특징은 생성형 AI를 적용해 데이터 관련 쿼리나 SQL(시퀄) 지식이 없는 유저라도 자연어로 질문 시 답변을 얻을 수 있게 했다는 점이다. 이를 윤 대표는 “우리 팀의 데이터를 뽑아주는 챗GPT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스냅셀의 기능 설명을 이어갔다.
“이를 테면 매출액과 판매량을 상품 카테고리별로 나눠서 매출이 높은 순서대로 보여줘라고 유저가 질문을 하면 스냅셀은 고객사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보를 추출해 시각화 후 결과를 전달합니다. 이때 이 데이터가 맞는지 여부에 대해 추출과정 설명이 더해지죠. 유저는 후속 질문을 하거나 CSV 다운로드를 통해 데이터를 2차 가공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최대 1분 정도 걸리는데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엔지니어에게 요청 시 최대 3일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획기적으로 시간을 단축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냅셀은 이와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내 스타트업을 고객사로 확보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내 데이터 시장에 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향후 목표는 글로벌 데이터 시장 진출이다. 물론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고객사 확보 노력과 함께 대시보드와 시각화 기능 구축, SaaS 형태의 가격 정책을 갖춘 구독 모델을 구축 등이 그것이다. 스냅셀은 더 나아가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통합해 고급 분석(인사이트)까지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외국인 대상 자동차 구독 서비스 선보인 ‘위카코퍼레이션’
이날 행사에서 주목 받은 또 다른 팀으로는 조미영 대표의 ‘위카코퍼레이션’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이 제시한 것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위한 통합 모빌리티 서비스다.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국내에서 시도되고 있는 자동차 구독 서비스 시장에서 위카코퍼레이션은 좀 더 디테일한 비즈니스 모델을 바탕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조 대표는 “개인고객과 법인고객을 구분해 멤버십화하는 구독서비스를 설계하고 있다”며 발표를 시작했다.
“자동차 구독 서비스는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개인 맞춤형 큐레이션을 제공하고 각각의 고객 유형에 맞게 서비스를 설계 해야 합니다. 차를 바꿔 탄다고 해서 비쌀 필요도 없죠. 저희 위카는 다양한 차종을 언제든지 바꿔 탈 수 있도록 유연한 계약을 제공하려 합니다.”
조 대표의 말에 따르면 위카코퍼레이션은 플랫폼 사로서 현존하고 있는 자동차 제조사와 밴더사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집중하는 중이다. 그 첫 시도가 차종과 스팩에 상관없이 언제든 자동차를 바꿔 탈 수 있는 구독 서비스다. 거기에 외국인을 타깃으로 한 ‘위브링(Webring)’, 중저신용자를 타깃으로 한 ‘카인더(CARINDER)’ 고소득 자유직·전문직을 대상으로 한 초개인화 자동차 구독 서비스 등으로 세 가지 브랜드를 내세우고 있다. 조 대표는 “우선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위브링을 론칭했다”며 발표를 이어갔다.
“신용카드 발급이 어려운 외국인들은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만 자동차를 렌트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저희 위카는 다국어 지원과 비대면 앱 서류 심사를 제공하는 구독 서비스로 만들어 선보였습니다. 앱을 통해 모든 서류 심사가 이뤄지는 구독 서비스인 만큼 등록카드를 통해 정기적인 결제가 이뤄지도록 했죠. 현재 한국은 매년 4%씩 거주 외국인이 증가하고 있고, 정부의 이민 정책 등으로 그 비율은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이에 저희는 위브링을 자동차로 시작해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을 위한 통합 서비스 플랫폼으로 고도화 할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 이날 데모데이에서는 3D 실시간 웹 렌더링 기술을 적용해 주얼리 마켓플레이스를 선보인 ‘로고몬도’, 포켓형 하이볼 액상 RTD ‘이블(EBLE)’을 선보인 레비테이트, 인도네시아를 타겟한 인플루언서 영상 데이터 활용 AI 화장품 추천 앱을 선보인 케이스타일허브, 베트남을 타겟한 모바일 AI 피부진단 및 케어서비스 플랫폼을 선보인 코스앤코랩 등이 저마다의 비즈니스 모델을 발표하며 열띤 IR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