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많은 스타트업들이 저마다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수많은 검증의 과정을 거친 서비스 혹은 솔루션을 시장에 선보인다.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투자를 유치하고 가능성을 인정 받았다고 해도, 수익을 창출하기까지 적잖은 기간을 인고해야 하는 ‘데스 밸리(Death Valley)’를 넘지 못해 사라지는 스타트업 역시 적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의 피와 땀이 의미있는 것은 지난 과정에서 발견한 인사이트가 다시 새로운 창업의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이 인터뷰는 성공한 스타트업의 사례를 담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보다는 시행착오와 실패를 딛고 결국에는 성공할 이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는 스타트업에게 성공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정원모 피카디 대표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8월 글로벌 VC 앤틀러코리아의 배치 프로그램 2기 데모데이 현장이었다. 한의학을 전공했지만 개발자로 변신한 대표는 물론 대학 시절 이미 창업을 시도하거나, 영화학도에서 컴퓨터공학도로 변신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경력을 쌓은 독특한 이력의 코파운더들이 뭉친 팀이라 더욱 관심이 갔다.
당시 피카디 팀이 선보인 비즈니스 모델은 상세페이지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환율을 높이는 마케팅 솔루션이었다. 앤트러코리아 배치 프로그램을 거친 모든 팀이 그렇듯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그들은 한 차례 피보팅 끝에 PoC(개념검증)을 통해 유의미한 성과를 선보였다.
하지만 문제는 데이터였다. 몇몇 거대 기업들이 독점하고 있는 온라인 스토어를 제외하면 브랜드사들이 보유한 자사몰 상세페이지 행동 데이터 기반의 서비스만으로는 사업을 키우기 쉽지 않다는 한계를 절감했다고. 이미 프리시드에 시드까지 두 번의 투자유치까지 받은 상황이었지만,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지 않은 비즈니스 모델을 끌고 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피카디는 또 한 번의 피보팅을 감행했다.
그렇게 이들이 6개월만에 선보인 서비스가 바로 생성 AI 기술 기반의 숏폼 영상 메이커 서비스 ‘피카클립’이다. 피보팅 결정 이후 다시 제로베이스에서 수백건의 아이템을 검토하고 개발과 클로즈드 베타, 오픈베타 단계를 거치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빠른 실행과 검증은 이들이 앤틀러코리아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은 듯했다. 다시 만난 정 대표는 1년 전에 비해 다소 핼쑥해진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눈빛 만큼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크리에이터와 엔터테인먼트 기업, 마케터의 페인포인트를 해결하는 서비스
피카디가 오픈 베타로 선보이고 있는 생성 AI 기술 기반의 숏폼 영상 메이커 서비스 ‘피카클립’은 크게 세 분야의 고객군을 타겟으로 삼고 있다.
우선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는 1인 크리에이터들이다. 대부분의 크리에이터들은 유튜브를 비롯해 인스타그램의 릴스, 틱톡 등 멀티 채널을 운영하며 기존 영상을 숏폼화해 선보이는 추세다. 이때 기존 영상을 숏폼으로 만들어 선보이는 과정은 다시금 적잖은 편집 공수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생성 AI 기술이 적용된 ‘피카클립’은 원본 유튜브 영상의 URL만 입력하면 단숨에 15개 버전의 숏폼 영상을 얻을 수 있다.
다음으로는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방송사와 엔터프라이즈급의 콘텐츠 제작사들이다. 이들은 경우에 따라 한번에 90개 이상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도 하는데, 여기에 업로드 된 롱폼 영상을 여러개의 숏폼 영상으로 재생산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시간과 인력 투입이 불가피하다.
세번째로는 각 기업의 마케터들이다. 크리에이터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유튜브에 올린 롱폼 영상을 다양한 버전의 숏폼으로 재가공해 여러 마케팅 채널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마케팅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전문 영상 편집자를 고용하지 않고 마케터가 직접 재가공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안 그래도 해야 할 일이 많은 마케터로서는 숏폼 영상 하나 만드는 것조차 만만한 일이 아니다.
정원모 피카디 대표는 “각 분야에서 숏폼의 효과에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제작해야 하는 담당자들이 직면한 가장 단순한 페인포인트에 주목했다”며 ‘피카클립’의 특장점을 설명했다.
“지금 유튜브는 전국민이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사용 시간 역시 카카오톡의 2~3배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튜브 안에서도 숏폼 조회수는 88%를 차지하고 있죠. 많은 사람들이 숏폼을 보는 상황에서 크리에이터를 비롯한 마케터들이 숏폼 제작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분 미만의 숏폼 하나를 만드는 것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죠. ‘피카클립’은 유튜브에 올린 긴 원본 영상의 URL만 올리면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은 물론 각 상세페이지에 삽입하는 쇼폼 영상 등을 다양한 버전으로 생성하는 AI 숏폼 메이커 입니다.”
‘피카클립’에 적용된 AI 기술은 동영상에서 시청자가 가장 흥미로워 할 부분을 자동으로 편집점까지 설정해 제작한다. 또 AI 영상 가이던스를 제공해 가장 바이럴 효과가 높은 숏폼을 만들 수 있도록 가이드도 제공한다. 맥락에 맞는 핵심 포인트를 추출해 시청자들이 이탈하지 않은 흥미로운 제목 카피라이팅은 물론 캡션까지 자동으로 생성하는 것도 흥미롭다. 정 대표는 “PoC를 통해 ‘피카클립’ 이용시 제작 소요시간은 100분의 1로, 제작비용은 40분의 1로 조회수와 시청 시간은 각각 2.2배, 1.4배 증가하는 효과를 얻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저희는 한국 콘텐츠에 핵심을 맞추고 있어요. 유튜브에서도 간단한 편집이 가능한 기능이 있고, 해외에도 숏폼을 만들어주는 서비스가 존재하지만 사실 이런 툴들은 한국 콘텐츠를 적용할 시 편집점이 어색하게 잡히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거든요. 또 한가지 저희가 발견한 인사이트는 숏폼은 크리에이터, 방송사, 기업에게 광고의 수단이라는 점이예요. 자신의 채널이나 자사 사이트에 유입되는 것, 원본 콘텐츠를 시청하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죠. 많이 만들면 만들수록 유입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숏폼이지만, 사실 기존 방식으로는 지속적으로 숏폼을 만들어 내는데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어요. 그 부분을 ‘피카클립’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저희 목표입니다.”
지난 시행착오를 교훈삼아 피카디는 ‘URL을 입력하면 숏폼 영상을 생성해준다’는 단순한 프로세스에 집중했다. 생성 AI 기술을 이용해 영상 자체를 생성해주는 기술도 등장하고 있지만, 당장 이용자들이 필요로하고 페인포인트를 느끼고 있는 지점에 집중한 것이다. 지난 경험을 통해 깨달은 점들을을 이야기하는 정 대표의 목소리에 고민의 흔적이 느껴졌다.
“과거에 저희가 시도했던 상세페이지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은 아이템 자체도 국내외에서 시도된 적이 없는 신선한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가설이 너무 많았죠. 더구나 기술과 트렌드가 너무나 빨리 변하고 발전하고 있었어요. 그런 흐름에 맞서기 보다는 기술의 파도에 저희 서비스를 태우는 방향으로 비즈니스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우리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고객의 니즈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저희가 지난 과정에서 얻은 레슨런이예요. 결국 ‘우리 안에 정답은 없다’는 걸 깨달은 거죠.”
정답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객’에게 있다
수 없는 자잘한 변화와 한 번의 큰 피보팅을 경험한 피카디 팀은 ‘피카클립’ 개발과 베타 테스트 과정에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를 내고 있다. 숏폼 영상 제작의 페인포인트를 해결한다는 간단한 문제를 풀기 위한 쉬운 서비스를 우선 선보이는데 집중했고, 이제는 이를 통해 얻는 데이터와 이용자들의 목소리에 집중하며 고도화하는데 모든 공력을 쏟아 붓고 있다.
“일단 ‘편리함’을 제일 우선적인 가치로 잡고 진행했어요 ‘유튜브 링크를 넣고 변환을 누르면 수분 내에 15개의 숏폼 영상을 리스트업해 준다’ ‘타이틀과 자막 등도 자동으로 만들어지게 한다’ 였죠. 이용자들은 그중 마음에 드는 숏폼을 골라 다운 받아 올리기만 하면 됐어요. 덕분에 ‘굉장히 편하다’는 초기 반응을 얻고 있죠. 무엇이 핵심적인 기능인지를 파악하고 거기에 집중하는 것이 속도를 빠르게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범위를 더 좁혀 ‘한국 콘텐츠의 편집점을 잘 추출하는 것’에 집중했죠. 지금도 고객의 요청 사항을 반영해 제품의 퀄리티를 계속 업그레이드 해가면서 진행하고 있어요. 요즘은 그게 저희 팀에 잘 맞는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죠.”
그렇게 몇 개월의 베타 서비스 기간 동안 380여명의 이용자들이 ‘피카클립’을 통해 생성한 숏폼의 수는 대략 2만개 정도다. 편리함을 무기로 적정 이용자를 확보하고 락인(Lock-in)에 성공한다면 서비스의 확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정 대표가 생각하는 ‘피카클립’의 스케일업 전략이 궁금했다.
“현재 ‘피카클립’은 하나의 굉장히 특정한 분야를 공략하는 유틸리티 툴이고, 저희는 이것이 잘 작동되도록 하는데 집중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것이 잘 작동하려면 콘텐츠를 잘 이해야 하거든요. 이를 테면 사람들이 많이 보는 콘텐츠의 특징이나 코미디의 웃음 유발점을 이해해야 하는 거죠. 그러려면 네이티브 수준의 이해도가 있어야 해요. 저희가 한국 영상에 우선 집중하는 이유예요. 또 한국 콘텐츠는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도 주목하고 있어요. 다른 어떤 것보다 한국 콘텐츠 영상을 가장 잘 이해하는 기술을 만들어 낸다면 오픈AI의 소라(Sora)는 물론 그보다 더 혁신적인 기술이 등장한다고 해도 접목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런 방향성을 가지고 한국적인 콘텐츠만 집중해도 글로벌 한 기회가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돌고 돌아 ‘고객의 가치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는 피카디의 현재 목표는 ‘피카클립’을 와우 포인트가 있는 서비스로 고도화해 연내 정식 버전을 출시하는 것이다. 또 아산나눔재단에서 개최하는 정주영창업경진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준비도 진행 중이다. 그 과정에서도 피카디 팀은 무수한 도전과 시행착오에 직면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시련 끝에 더 큰 성공을 이루는 피카디 팀의 또 다른 소식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