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를 앞두고 정부와 국회의원들의 플랫폼 기업 때려잡기가 한창이다. 정치권에서는 국감 핵심 의제를 '플랫폼 기업 군기잡기'로 잡은 듯 하다. 본연의 목적인 '국정 점검' 이슈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각에서는 정치권이 시대의 화두인 공정성을 국민들에게 어필하려는 수단으로 이를 이용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잇따라 터진 플랫폼 기업의 직장내 괴롭힘, 과도한 수수료, 골목상권 침해, 갑질 논란에 대한 응징(?)은 표심 잡기에 그야말로 '제격'이기 때문이다.
국회는 어김 없이 과거 국감에서처럼 주요 IT기업(플랫폼 기업) 수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한성숙 네이버 대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등 플랫폼 기업인들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 각 상임위 증인으로 채택됐다.
이번 국감에서 정치권의 핵심 타깃이 된 카카오는 택시업계, 대리기사, 꽃배달 등 분야에서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있다. 웹툰 분야에서는 최대 45%라는 수수료 논란 등 갑질 논란이 불거졌다. 네이버의 경우 직장내 괴롭힘, 우아한형제들의 경우 플랫폼 노동자 처우 등 부작용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부작용이 있기에 적절한 규제와 조율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플랫폼 비즈니스의 특성은 최종소비자들과 긴밀하게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구조다. 시대 전환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에 대해 순차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특정 기업이 시장을 독점해서 나타나는 지배력 남용 부작용에 대해서는 정부와 기업간 소송전이 벌어진다. 물론 법률 개정 등 반독점 이슈에 대한 규제도 있지만, 기업의 영리활동 자체를 길들이기식 규제로만 틀어막지는 않는다. (특히 미국은 미중 패권 전쟁의 키를 쥐고 있는 빅테크 기업과의 공생 관계도 존재한다.)
우리나라 역시 민주주의에 기반한 자본주의 국가로서, 정부의 규제와 시장 자본주의 논리가 공존해야 한다. 특히 정부와 국민들은 코로나19 사태 아래에서 플랫폼 기업의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았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교육, 이커머스, 배달, IT 방역 서비스 등 사회경제 전반에서 제 역할을 한 것이 이들 기업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치적을 자랑하기에 급급했다.
그런데 국감 시즌을 앞두고 정치권의 태도는 급변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플랫폼 기업은 갑질의 원흉이며, 골목상권을 멸망시키는 사회악 수준으로 취급 당하고 있다. 이 정도면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카카오를 예로 들면, 잇따른 정부의 강경한 압박에 골목상권 철수와 30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하는 등 상생안을 발표했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이 있는 일부 사업에서 철수하고, 소상공인 지원 기금을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다른 플랫폼 기업 역시 바짝 몸을 낮추는 분위기다. 정치권에 잘 못 보이면 국내에서 사업하기 힘든 지경으로 몰리게 되는 경우를 허다하게 봐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태는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의 '공동부유론'과 차이점을 찾기 힘들다. 중국 정부에 밉보인 기업은 그야말로 큰 낭패를 당한다. 잘 나가던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지난해 정부(금융당국)를 비판한 이후 말그대로 '삭제'됐다. 본보기 식으로 찍힌 대표적인 기업인의 사례다.
이후 알리바바는 반독점 행위로 27억 5000만달러(약 3조 2360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았고, 중국 정부의 공동부유 촉진 명목으로 150억달러(약 17조 8000억원)의 투자 계획을 약속해야 했다. 얼마 전 중국 정부의 게임 규제로 곤욕을 치른 텐센트도 공동부유 촉진 명목으로 9조원을 투자키로 했다.
공동부유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부가 지난달 내놓은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경제 정책이다. 지난 8월 중순 제 10차 중앙재경위원회에서 시 주석은 “공동부유는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로서 중국식 현대화의 중요한 특징이다. 인민이 중심이 되는 발전 사상을 견지해 높은 질적 발전 중 공동 부유를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의 공동부유론에 중국 빅테크 기업들은 대대적인 충성 서약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알리바바가 머리를 숙였고, 이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제일 핫한 샤오미도 바짝 엎드렸다. 레이쥔 샤오미 회장은 “기업은 사회에 속해 있고, 대기업이 앞장서서 중소기업이 빠르고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술 회사는 어떤 그룹도 뒤처지게 해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국감에 플랫폼 기업 수장이 증인으로 채택되고, 이들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 논의가 활발한 상황에서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뒤늦게 플랫폼 기업 달래기에 나섰다. 국회 내부에서도 플랫폼 기업 때리기가 너무 과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29일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은 네이버, 카카오, 우아한혈제들, 야놀자 등 플랫폼 기업을 만나는 간담회와 디지털 플랫폼 정책포럼 1차 전체회의를 개최했다. 디지털 플랫폼의 현 상황을 점검하고 종합적인 논의를 위한 자리다.
여기서 임 장관은 "디지털 플랫폼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라면서, "마스크앱, 잔여백신 예약, QR체크인 등 플랫폼이 그간 해온 사회적 기여와 초거대 인공지능(AI) 개발 등 기술혁신, 서비스혁신을 통한 국민 편익 증진, 청년들의 창업에 대한 희망 등 플랫폼의 경제·사회적 역할과 가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것에는 혁신의 불씨를 꺼버리지 않도록 하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디지털 대전환 시대, 우리 사회 핵심 인프라로 들어선 디지털 플랫폼에 대해 디지털 원팀이라는 인식 하에 규제당국 뿐만 아니라 산업당국 등 관계부처와의 공동 협력으로 새로운 발전방향을 만들어나가면서, 소비자 측면의 의견수렴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플랫폼 기업의 역할을 인정하고, 규제 일변도로는 사회나 산업의 발전이 불가능하다며 플랫폼 기업을 달래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에 대해 과기정토부 측은 "갑질, 수수료 인상 등 플랫폼 기업의 부작용에 대한 일방적인 규제 위주 논의가 지속되는 가운데, 플랫폼의 경제·사회적 가치를 재조명한다"며 "업계 대표들로부터 직접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플랫폼 생태계가 건전하게 발전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고 이날 회의의 취지를 밝혔다.
다만, 과기정통부 장관이 플랫폼 기업 달래기에 나선 진짜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짐작은 할 수 있겠지만)정부-부처-정치권의 입장이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에 의해 플랫폼 기업은 공공의 적으로 몰린 상황이고, 이들 기업을 규제하려는 법안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혁신은 커녕, 사업 영위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시점이다.
한 빅테크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여러 부작용이 발생한 것은 맞다. 골목상권 침해 등 소상공인과의 상생안이 부족했고, 급성장에 따른 미숙한 조직 문화와 지배구조 등 논란은 부인할 수 없다"라면서도, "국감을 앞두고 때려잡기식 규제에 사업 영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와 해당부처의 병주고 약주기식 대응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며 긴 한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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