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인들이 모여 제조업체들이 필요한 반도체를 구하기 어렵게 만드는 ‘퍼펙트 스톰’을 일으켰다. 반도체 재고는 2년 전 40일분에서 지난해엔 5일분으로 줄었다. 핵심산업 분야는 더 짧다. 이는 혼란으로 인해 해외 반도체 공장이 2~3주만 문을 닫으면 3~5일치 반도체 재고분만 갖고 있는 미국내 공장시설이 중단되고 근로자들이 해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같은 반도체 부족은 최소 6개월간 이어진다.”
미국 정부가 25일(현지시각) 이같이 요약되는 전세계 반도체 부족 실태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 상무부는 지난 9월 전세계 반도체 공급망 내 164개 기업들에 정보요청서(RFI)를 보내 칩 부족과 공급 부족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이 기업들의 응답서를 바탕으로 정보를 파악했다.
지나 라이몬도 미 상무장관은 이날 발표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공급문제와 관련해 위기 탈출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미 의회가 미국 반도체 제조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520억 달러(약 62조5300억 원)의 보조금과 장려금을 승인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정부가 분석한 세계 반도체 부족 사태의 원인, 현 상황, 그리고 이런 사태가 향후 얼마나 더 지속될지와 향후 전망을 짚어봤다.
2년간 반도체 평균 수요 17% 증가에도 공급이 못따라가...반도체 재고 급감···2019년 40일분→2021년 5일분
상무부 분석 결과 지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반도체 평균 수요는 17% 증가했다. 조사 대상 기업 중 상당수는 반도체 수요가 내부 전망치를 초과했다고 답했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이런 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구매자들이 그에 걸맞은 공급 증가를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주요 수요와 공급 간 불일치를 보인다는 점이다.
반도체 수급 불균형은 반도체 사용자용 특정 반도체 제품 평균 재고분이 지난 2019년 40일에서 지난해에 5일분으로 급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수탁생산업체(파운드리)인 TSMC와 매우 긴밀한 관계인 애플같은 회사조차도 때때로 칩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반도체 부족으로 60억달러(약 7조2100억 원)의 매출을 잃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애플과 같은 큰 회사들조차 지난해 특정 반도체를 구하지 못하면서 매출 일부를 잃게 만들었을까.
반도체 부족사태는 예상밖 사태 때문···“모든 요인 복합된 ‘퍼펙트 스톰’”
미 상무부 보고서는 민간 부문은 칩 부족에 가장 잘 대처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보고서는 “2020년 이전으로 돌아가도 구형 칩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일부 반도체 제조 장비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며 이에 주목했다. 이는 다이오드, 커패시터, 기판을 포함한 칩 제작에 사용되는 특정 부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5G폰과 5G기지국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전기차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들이 많아지면서 더 많은 칩이 필요하게 됐다.
이처럼 수요는 증가했지만 반도체 공장 화재, 에너지 부족,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셧다운, 겨울 폭풍 등 파운드리들의 계획에 없었던 사건들로 인해 공급은 감소했다.
상무부는 “민간 부문은 공급 물량이 계속 유통되도록 칩 생산을 늘리고 공급망을 관리하며 반도체 사용을 최적화하기 위해 제품 설계를 개선함으로써 칩 부족에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밝혔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도 미 상무부가 말하는 “미국의 경제 안보에 반도체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이 문제에 관여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미 행정부는 반도체 공급망의 투명성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고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생산 중단까지 가져온 차량용 칩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장기적인 협력관계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럼에도 반도체 업체가 어떤 시도를 해도 반도체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고 있다.
병목 현상 해소 위해 추가 웨이퍼 생산 능력 필요
미 상무부는 164개 업체로부터 받은 RFI 답변서가 “병목현상에 따른 반도체 수급 불일치로 이어진 지역을 찾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언급했다.
미 상무부는 이러한 불일치가 매우 심각한 지역에서 병목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자원을 투입하게 된다.
라이몬도 장관은 “전반적으로 주요 병목현상은 웨이퍼 생산 능력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웨이퍼는 무처럼 된 원통형 잉곳을 무우처럼 수평으로 얇게 썬 것이다. 이는 개발 칩 크기로 절단할 때까지 일련의 처리 공정을 거친다.)
상무부의 보고서에서 인용한 흥미로운 통계 중 하나는 지난 2020년 칩 부족이 시작된 이후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통상 80%였던 가동률을 90% 이상으로 운영해 왔다는 점이다. 이 수치는 정기적 유지보수와 많은 양의 에너지가 필요한 생산 시설치고는 “놀라우리만치 높다”는 점이다.
반도체 기업들이 전력을 다해 생산량 늘리기에 나서고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팹 활용도를 높인 것은 일부 증가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럼에도 반도체 공급이 지속되는 것은 칩 공급이 한계점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말한다.
최소 향후 6개월간 반도체 부족사태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계적 반도체 부족사태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반도체는 뭘까.
미 상무부는 일부 반도체 칩이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게 책정돼 있어 그 원인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말했지만 해당 품목을 구체적으로 지목하지는 않았다.
미 상무부는 다만 특히 세 부류의 칩 부족이 심각하다며 ▲마이크로컨트롤러(주로 의료기기 자동차 및 기타용)=40, 90, 150, 180 및 250나노미터 노드를 포함해 주로 레거시 논리 칩 등 ▲아날로그칩(전력관리, 이미지센서, 무선 및 기타용도)=40, 130, 160, 180 및 800나노미터 노드에서 생산된 아날로그 칩 등 ▲광전자칩(센서,스위치용)= 65, 110 및 180나노미터 노드를 포함하는 광전자 칩 등을 꼽았다.
나쁜 소식은 RFI에 응답한 반도체 업계 종사자들은 향후 6개월 동안 칩 부족이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파운드리의 공장 가동률이 90%에 달하는 상황에서도 추가 팹 용량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왜 반도체 기업들은 코로나19 초기에 공장을 세우지 않았나
그럼에도 나머지 부족분을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반도체 회사들은 새로운 공장을 짓는데 수십억 달러(수조 원)를 투자하기를 주저했다. 아무도 혼란이 몰려올지, 또는 시장이 새로운 패턴의 수요에 적용하면 스스로 정리될지를 몰랐다.
예컨대 자동차 업체들이 일찌감치 주문을 취소했을 때 전자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IT업체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예상보다 빨리 대리점으로 돌아와 무방비상태인 자동차 제조 업체들을 붙잡았다.
결국 그 혼란은 시스템 더 정상적 패턴으로 복귀하기 전에 있던 여분의 팹 용량을 사용해 작동해야 했다. 하지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새로운 수요는 더욱더 견고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 결과 반도체 제조업체들도 새로운 팹과 장비에 많은 돈을 쓰겠다고 약속하며 결국 그들의 이전 입장에서 돌아서게 만들었다.
미상무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전체 반도체 업계의 장비투자비는 예년을 크게 앞지른 1500억달러(약 180조 4000억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TSMC, 삼성, 인텔을 포함한 글로벌 대형 파운드리들이 최근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최소 수백억달러 규모의 천문학적 돈을 미국에 쏟아붓기로 한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팹을 설계하고, 짓고, 가동하는 데엔 수년이 걸린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인 대만 TSMC는 미국 정부의 지원을 약속받고 애리조나에 120억 달러 규모의 칩 공장을 건설 중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170억 달러(약 20조 원)를 투자해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새로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인텔은 지난해 9월 애리조나에 최신 팹을 착공했지만 이 팹은 2024년에나 가동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나 라이몬도 미 상무부 장관의 말은 그래서 세계적 반도체 부족사태가 6개월 이상 갈 수밖에 없다는 불안하고 불편한 상황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만든다.
그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공급망은 매우 취약하며, 이는 우리가 미국에서 칩 생산을 늘릴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셜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