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가 지난 8월 29일 자체 개발한 7나노미터 스마트폰 칩(기린 9000S)을 탑재한 최신 ‘메이트 60 프로’ 스마트폰을 발표하자 미국 등 서방세계는 경악했다. 미국 정부의 첨단 반도체 기술 및 제조장비 제재 속에서 이를 극복하고 최첨단 7나노칩을 양산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화웨이와 SMIC 모두 개발 과정 등에 대해 함구했지만 내막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말 파이낸셜타임스(FT)는 두 회사가 중국 국가의 엄청난 자금지원 아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에 방대한 자금을 투입했고, 그 결과 생산제품 중 우량품이 30%(수율 30%) 수준의 7나노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첨단 반도체 제조용 EUV(극자외선) 장비보다 한단계 뒤처지는 DUV(심자외선)장비로 이뤄낸 성과로 알려졌다. 세계 최고 반도체 주문 생산업체인 TSMC와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공장(팹)에서 7나노~3나노급 반도체 생산에 EUV장비를 사용한다.
보도는 수십 명의 관련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과의 인터뷰 결과 이같은 내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화웨이와 SMIC의 30% 수율 7나노칩은 양산단계인 90% 수율로 가는 첫단추를 꿴 것과 함께 최첨단 AI 칩 생산으로 나가기 위한 문을 연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화웨이와 SMIC의 7나노미터 스마트폰칩 상용화의 미스터리를 그 시작에서 상용화까지의 전개 과정과 이어지는 AI칩 개발 움직임을 포함한 중국의 반도체 세계 제패 야심을 살펴봤다.
화웨이와 SMIC가 손잡다
화웨이와 SMIC가 7나노미터 칩 생산을 위해 제휴키로 한 것은 2020년 말이었다. 당시 미국정부는 자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미국 기술과 장비로 만든 반도체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중국기업에 대한 제재를 시작했다. 이에 화웨이는 670억 달러(약 88조 원) 규모인 반도체와 휴대폰 사업에서 세계적 칩 제조업체들을 따라잡겠다는 야심을 세웠다. 그리고 중국 국영 파운드리인 SMIC와 손잡기로 했다. SMIC는 오래된 장비를 사용해 더 발전된 칩을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이는 화웨이의 이전 반도체 생산업체인 TSMC보다 더 오래 걸리고, 더 돈이 많이 들고,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화웨이는 ‘샬롯’이라는 암호명의 새로운 스마트폰용 칩(AP칩)을 만들기 위해 SMIC와 손잡았다. 이 시기에 미국정부는 SMIC도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즉, SMIC에 기술을 판매하려는 모든 회사는 미국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그러나 결국 SMIC는 오래된 장비를 사용해 더 발전된 칩을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화웨이는 보란 듯이 지난 9월초 이 7나노 AP칩을 탑재한 메이트60 프로 스마트폰을 출시했다.
화웨이, DUV로 수율 30% 칩 제조 및 상용화
업계 전문가들과 분석가들을 통해 확인된 것은 두 중국 회사의 7나노칩 개발 및 상용화에는 네덜란드 ASML의 심자외선(DUV) 기계가 사용됐다는 것이다.
비교하자면 삼성전자는 일찍이 지난 2016년에 EUV 장비를 도입했다. 그리고 삼성전자와 TSMC는 2018~2019년 사이에 7나노 반도체를 개발했다. 따라서 화웨이와 SMIC가 EUV없이 DUV로 7나노급 반도체를 만든다는 것은 사실상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7나노공정 AP칩을 SMIC에 의뢰해 생산한 후 이를 자사 스마트폰에 탑재해 상용화하는 쾌거(?)를 이뤘다.
SMIC는 샬롯을 만들기 위해 익숙하지 않은 고도의 공정과 복잡한 장비의 구입 및 관리에 대한 새로운 제한에 직면했다. SMIC와 가까운 한 칩 회사 임원은 샬롯을 “어둠 속의 코끼리 측정”에 비유했다. 그럼에도 거의 3년 후인 올해 8월 29일 기린 9000S로 명명된 샬롯을 탑재한 스마트폰(메이트 60프로)이 조용히 대중에 공개됐다. 여러 테스트 팀에 따르면 장애에도 불구하고 기린 9000S는 퀄컴칩 성능에 1~2년 뒤진 정도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메이트 60은 중국 상점에서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고 수년 간의 제재 끝에 화웨이 칩 스마트폰이 돌아오자 중국 애국소비자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의아한 점이 있다. 화웨이와 SMIC의 반도체칩 생산시 우량품 비율인 수율은 30%에 그치고 있다는 내부관계자의 전언이다. 통상 반도체 수율이 90%는 돼야 상용화가 되기에 이는 외부에서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FT는 두회사가 겨우 30%의 수율로 칩을 스마트폰에 적용해 상용화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정부의 엄청난 자금지원에 힘입은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익명을 요구한 수십 명의 업계 관계자, 내부 관계자 및 전문가들의 말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어쩌면 미국을 의식해 그 이상의 수율을 낮춰 말했을 수도 있다.
7나노는 첨단기술의 기준
칩 제조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벤치마크(기준) 중 하나는 7나노미터다. ‘7나노’는 공정 노드의 크기를 언급하는 수에 불과해 보이지만 숨은 의미는 엄청나다. 즉, 스마트폰과 데이터 센터를 구동하는 고성능 칩을 생산하는 첨단 기술로의 진입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실제로 TSMC는 7나노미터 공정을 사용해 애플 아이폰10S용 A12칩과 테슬라의 반자율주행을 구동하는 도조 D1 슈퍼컴용 칩을 함께 생산했다.
SMIC는 N+1과 업그레이드된 N+2 두 가지 버전의 7나노미터 공정 팹을 제공하고 있다. 이 상황을 잘아는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기린 9000S 칩은 N+2에서 생산된다.
그런데 중국의 업계 전문가들과 분석가들은 TSMC와 삼성 같은 회사들이 이러한 칩을 만들기 위해 극자외선(EUV) 리소그래피 장비를 사용한 반면, SMIC는 덜 효율적인 심자외선(DUV) 기계를 사용했다고 말한다. 실리콘 웨이퍼에 전기 회로를 조각하는 리소그래피는 칩 제조의 기본이다. 더 발전된 리소그래피 기계는 더 미세한 회로선폭을 그리는 더 높은 해상도를 제공하한다. 더작은 칩을 만들 수 있도록 칩설계도를 웨이퍼에 그려준다. 두 장비 모두 7나노미터 공정을 달성할 수는 있지만 EUV는 더 효율적이고 정밀해 낭비가 적다.
SMIC 기술 개발 경로에 정통한 한 중국 반도체 전문가는 “처음에는 예산 한계 때문이었다”며 “EUV는 가격이 매우 비싸고, SMIC의 첨단 공정은 TSMC보다 여러 세대 뒤처져 있어 고객과 매출이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SMIC는 트랜지스터 밀도를 높이기 위해 DUV 기계를 사용해 다른 사람들이 EUV 장치로 했던 칩 제조 단계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것이 결국 수율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네덜란드 리소그래피 장비 제조업체인 ASML에 따르면 DUV 장비에서 7나노미터 반도체를 제조하는데 필요한 리소그래피 단계는 34단계다. EUV장비를 사용할 경우, 이는 9단계로 크게 줄어든다.
중국정부 막대한 지원금 쏟아붓다
결국 화웨이와 SMIC가 이처럼 추가 생산 단계를 거칠수록 더 높은 생산 비용과 더 낮은 수율을 초래하게 된다.
초기 기린 9000S 생산내용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기린 9000S가 양산 전 단계인 위험한 양산 단계에서 30% 이상의 수율을 달성했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어려운 상황에서 긍정적 수치”라고 설명하면서도 “모바일 칩 제조의 이상적 기준인 90%의 수율을 가진 생산 라인과 비교할 때 최소 2배 이상으로 비용이 상승한다”고 지적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중국정부로부터 엄청난 자금지원이 이같은 과도한 칩 생산 비용을 보완해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사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화웨이는 2022년 중국 정부로부터 65억 5000만 위안(9억 4800만 달러, 약 1조200억 원)을 지원받았는데, 이는 전년 대비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액수다. SMIC는 지난 3년간 중국집적회로산업 투자기금(国家集成电路产业投资基金)의 대주주로서 추가 지원을 받으면서 68억 8000만 위안(약 1조 2600억원)의 국가지원금을 받았다.
중국 반도체 산업 전문가인 더글라스 풀러는 “중국 정부는 분명히 이러한 노력을 위한 거대한 자금기반을 마련해 줄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결론내렸다. .
미정부제재 뚫렸을 가능성...
SMIC의 공급업체와 가까운 두 소식통에 따르면 SMIC는 7나노미터 반도체 생산라인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공장과 미국정부의 제재 이전에 받은 장비를 긁어 모았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ASML이 통상 매우 복잡한 장비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추가 지원없이 남겨졌다. SMIC와 가까운 한 칩 회사 임원은 “이 조건은 가혹하다. 기본적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없고 유지 보수 서비스를 수행할 장비 공장 엔지니어도 없다”고 말했다.
반면 미국 관리들은 SMIC가 수출 통제 이후에도 7나노미터 칩 생산 시설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여분의 부품과 기술 서비스를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SMIC와 가까운 업계 관계자들은 SMIC가 미국의 수출 통제를 위반해 일부 장비를 입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로이터통신은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가 이미 수출 규제 위반 가능성에 대해 조사받고 있다고 전했다.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는 발표문에서 “미국 정부와 협력하고 있으며 수출 통제 및 무역 규제를 포함한 규제준수 및 글로벌 법률에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논평 요청에는 답하지 않았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한·일·대만·독일 전문가도 고용했다
이처럼 첨단 장비 수출 규제가 뚫렸을 가능성 외에 최고 반도체 인력이 유출돼 두 회사를 도와준 정황도 확인되고 있다.
FT 보도에 따르면 SMIC는 7나노미터 반도체 생산공정을 확립하기 위해 해외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다.
수출 통제 때문에 미국인들은 중국의 고급 칩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SMIC에 정통한 두 칩 엔지니어에 따르면 이 회사는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대만, 일본, 한국 및 독일의 전문가를 고용했다. 이중 한 엔지니어는 “이러한 해외 전문가들은 다른 반도체 팹에서 얻은 고급 프로세스에 대한 기술적 노하우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화웨이 칩 설계팀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SMIC는 기린 9000S 수주 당시 칩 설계 엔지니어들이 각기 다른 팹의 공정 사양에 맞게 설계를 조정하도록 도울 수 있는 팀이 없었다. 이 때문에 화웨이는 자체적으로 적응해야 했다.
7나노에서 5나노로...다음 목표는 AI칩?
화웨이의 기린 9000S는 중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화웨이가 잃어버린 중국 휴대폰 시장 점유율을 되찾게 해 주었다.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은 기린 칩으로 작동하는 스마트폰의 생산을 증가시킬 것으로 예측한다. 제프 푸 해동국제 증권 분석가는 화웨이가 내년말까지 기린칩 기반 스마트폰을 최대 7000만 대까지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더 지켜봐야 할 것 같긴 하다.
여기에 더해 SMIC와 화웨이는 미국의 대중국 고성능 칩 판매 규제 강화에 대응해 인공지능 (AI)시스템용 칩 생산을 늘리는 방안까지 구상하며 야심을 키우고 있다.
화웨이와 가까운 3명의 소식통은 인터넷 대기업 텐센트와 바이두, 메이투안이 소규모 시험용으로 화웨이 어센드 910b 칩을 구입했다고 밝혔다.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 4개월 전인 2020년 5월에는 TSMC가 만든 어센드 AI 칩을 판매했다. 화웨이와 가까운 복수의 소식통은 이 회사가 SMIC에서 생산된 데이터 센터 칩으로 제품 라인을 부활시켰다고 말한다. 업계 분석가들에 따르면 화웨이의 어센드 시리즈 AI 칩을 엔비디아 그래픽 처리 장치(GPU)의 잠재적 대체품으로 꼽고 있지만, 전반적 성능은 미국 그룹에 비해 뒤떨어져 있다.
SMIC와 가까운 2명의 소식통은 이 회사가 이미 사전 주문된 화웨이 칩의 7나노 칩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더 진보된 5나노 공정 노드를 개발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화웨이의 내년도 어센드 910b 생산 목표는 올해보다 2배 이상 증가했으며, 20만 개 이상의 칩이 생산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화웨이와 SMIC가 엔비디아의 AI칩 시장 점유율을 가져오려면 데이터 센터용 칩 제조 과정에서 몇 가지 중요한 문제부터 극복해야 한다.
AI 칩은 스마트폰 프로세서보다 크기 때문에 생산 오류로 인한 불량 가능성이 높다. 생산 측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화웨이 어센드 910b 칩의 현재 수율은 2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생산된 칩 5개 중 거의 4개가 불량임을 의미한다.
게다가 미국, 일본, 네덜란드의 규제로 SMIC의 생산 확대는 3년 전보다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SMIC가 개발한 칩과 구형 칩에 모두 사용했던 ASML의 DUV 장비 중 가장 발전된 제품이 네덜란드와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 대상에 포함됐다. 그러나 한 소식통은 “SMIC에 있는 대부분의 장비들이 여전히 SMIC가 2020년에 비축한 미국과 일본 제품”이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업계 전문가들과 분석가들은 SMIC가 첨단 칩을 제조하기도 전에 장비 유지 보수와 재료 공급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중국 최대 스마트폰,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의 야심
화웨이와 SMIC 모두 글로벌 선두업체들과 보조를 맞추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최소한 국가의 지원을 확신할 수 있다.
중국 정부의 한 반도체 산업정책 담당자는 “현재의 목표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최첨단 칩 생산 라인을 구축하는 것”이라며 말한다. 그는 “안정적 칩 공급망은 고성능 컴퓨팅 시스템의 중추”라며 “이는 특히 지속적인 무역 긴장과 미국 정부의 규제로 중국의 고성능 컴퓨팅 산업이 발전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정부는 지난 2014년 중국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국가 자금 지원으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해 왔다. 이 투자 기금은 지난 10년간 무려 470억 달러(약 61조 900억원)를 모았고, 추가로 410억 달러(약 54조원)를 조성해 중국의 기술자급 추구 노력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기관 JW인사이츠는 중국 25개 지역 조사 보고서에서 “중국 정부가 2021년과 2022년 반도체 관련 분야에 2908억 달러를 쏟아 부었고, 3분의 1은 반도체 장비와 소재에 투자했다”고 밝혔다.
외국 기술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중국정부의 야심은 화웨이와 SMIC의 어깨에 달려 있다. 기린 9000S의 성공적인 출시는 반도체 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임원들은 칩 스타트업들에 대한 자금 지원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화웨이의 장기적인 야망은 중국 시장에 국한되지 않고 결국 미국시장을 겨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희망은 기린 9000S의 암호명인 ‘샬럿’에 숨어있다. 이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도시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화웨이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개발 중인 다른 모바일 반도체들도 미국 도시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화웨이의 한 직원은 미국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언젠가 글로벌 공급망에서 우리의 자리를 되찾고 싶은 우리의 열망을 반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