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간 전성시대…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

[AI요약] 최근 몇 년 사이 각 기업에서 경쟁적으로 시도하는 것이 바로 가상인간을 만드는 사업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가상인간을 제작하는 사례는 이어지고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의 경우는 ‘과열되고 있다’고 할 만큼 그 양상이 남다르다. 우리나라 가상인간 출현의 특징을 집어보자면 게임을 비롯해 커머스 분야 기업들이 가상인간 제작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각 기업에서 경쟁적으로 실제 사람과 차이가 없는 수준의 가상인간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각 기업)

최근 몇 년 사이 각 기업에서 경쟁적으로 시도하는 것이 바로 가상인간을 만드는 사업이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가상인간을 제작하는 사례는 이어지고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의 경우는 ‘과열되고 있다’고 할 만큼 그 양상이 남다르다.

얼마 전에는 해외 매체에서도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이러한 현상에 주목하며 산업화되고 있는 가상인간 활용을 조명한 바 있다.

우리나라 가상인간 출현의 특징을 집어보자면 게임을 비롯해 커머스 분야 기업들이 가상인간 제작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초기 홍보 마스코트 개념으로 시도된 가상인간은 소셜미디어를 통한 팬덤 형성을 시작으로 인플루언서화 되며 신제품 발표, CF 모델, 심지어 드라마 출연까지 하는 수준이 됐다. 마치 실제 존재하는 일종의 셀럽, 연예인과 같은 지위에 올라서며 그에 버금가는 수준의 수입까지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가상인간의 활동은 기존 인간의 영역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전개되고 있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 사람과 다르지 않은 가상인간, 우려점은?

최근 와이낫미디어의 웹드라마 '배드걸프렌드'에 배우로 출연한 버추얼 휴먼 민지오(오른쪽).

최근 진행되고 있는 가상인간 산업화의 또 다른 특징은 비록 어느 한 기업의 주도로 만들어 졌다고 해서 단지 그 기업의 마스코트로 종속화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상인간을 보유한 기업은 일종의 에이전시와 같은 역할을 하며 가상인간에게 나이, 성격, 취미, 재능 등의 인격 적인 요소를 추가하고 점차 개선된 이미지를 선보이려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소요되는 노동력이나 시간은 기존 연예인과 같은 인간 모델을 기용할 때와 비교했을 때 엄청나게 절감된다는 것도 기업들로서는 장점이다.

이전에는 기술적 한계로 사람과는 다른 불편한 지점이 감지됐던 시절도 있지만, 이제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이 가상인간이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든 수준이 됐다. 대중의 니즈에 최적화된 외모와 스타일을 갖춘 가상인간은 빠르게 영역을 만들어 갔고, 기업들은 기술적 진보라는 결실과 더불어 진짜가 아닌 인간에 대한 대중들의 거부감이 크지 않다는 사실까지 확인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업의 특정 의도를 가지고 가상인간을 활용하는 경우다. 때로는 그 의도가 선하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우리나라의 가상인간 산업화를 조명한 해외 매체에서도 지적한 ‘문화유용’의 위험성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문화유용은 특정 집단의 문화를 선입견에 따라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을 뜻하는 인종, 젠더, 민족 간 차별행위를 의미한다.

기술 고도화에 따른 활동 범위 확대, 가상인간 글로벌 스타 탄생할 수도

미국 스타트업 브러드에서 만든 가상인간 릴 미켈라는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19세 셀럽으로 800만명이 넘는 소셜미디어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그녀가 광고와 협찬, 콘텐츠 수입으로 거둬들인 돈은 13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릴 미켈라 인스타그램)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털레전스에 따르면 가상인간 마케팅 시장은 2019년 9조원에서 올해 17조원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디지털 혁신 속도가 빨라지고 비대면, 메타버스 등 가상공간과 관련된 신기술이 대거 개발되는 것과 발맞춰 가상인간의 개발과 활용도 늘어난 셈이다.

세계 각국의 디지털화가 가속화된 지금 가상인간의 활동 범위는 분야는 물론 국가를 넘어설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그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가상인간이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릴 미켈라’다. 2016년 미국 스타트업 브러드(Brud)에서 만든 그녀는 19세의 여성으로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인스타그램은 물론 유튜브, 틱톡 등을 통해 자신의 음악과 관심사, 고민 등을 공유하는 셀럽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녀가 활동하는 소셜미디어의 총 팔로워 수는 800만명이 넘는다. 이른바 인플루언서인 셈이다. 여느 스타급 인플루언서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광고와 협찬, 콘텐츠 수입을 얻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녀가 지난해 거둔 수입은 130억원에 달한다.

릴 미켈라의 사례에서 살펴볼 수 있는 점은 가상인간을 만들며 단지 기술적으로 인간과 차이가 없는 수준의 외모를 구현하는 것을 넘어 구체적이고 뚜렷한 정체성과 성격, 인격을 부여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그녀는 2018년 자신이 실제 인간이 아니라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녀는 곧 많은 팬들의 위로와 응원으로 극복하고 가상인간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친다. 이후 실제 사람 남성과 연애와 이별을 경험 하기도 하며 자신만의 삶, 즉 스토리를 쌓아가고 있다. 이러한 릴 미켈라의 사례는 우리나라 가상인간 산업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봇물 터진 가상인간의 등장, 각각의 특징은?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의 로지_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 간 다양한 가상인간이 출현하며 경쟁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지난해 7월 신한라이프 TV 광고를 통해 등장한 ‘로지’였다.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에서 만든 로지는 광고가 방영된 이후 가상인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더 주목받았다. 사람과 다름없는 춤 동작과 표정으로 인해 사람들은 ‘대체 어떤 신인 배우일까?’라는 호기심을 품던 차였다. 그녀가 가상인간이라는 사실은 그러한 대중들의 호기심에 불을 붙였다.

1년여 만인 현재 로지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14만명을 넘어섰고 팔로잉도 4500건을 넘고 있다. 즉 팬들과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숨에 화제의 인플루언서가 되면서 로지는 지난해 단 몇 개 월만에 10억원이 넘는 수익을 거뒀다. 전기자동차, 식품, 뷰티, 의류 등 다양한 브랜드와 전속 모델 계약을 맺었고, 올해부터는 AI 음성합성 기술로 목소리까지 장착하며 지난 5월에는 SBS 라디오 ‘컬투쇼’에 출연해 30분 간 여느 게스트와 마찬가지로 청취자 사연을 소개하며 방송을 했다.

특히 ‘영원히 늙지 않는 22살’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로지는 MZ세대에게 어필하는 모델로서의 홍보 성과가 확인되며 그 가치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협찬을 받는 브랜드도 샤넬, 에르메스와 같은 명품 브랜드로 확대되며 올해 수익은 20억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왼쪽부터) 로지, 한유아, 와이티. (이미지= 각 기업)

스마일게이트의 한유아_스마일게이트는 모바일 게임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세아’에 이어 지난 4월 가상인간 ‘한유아’를 데뷔시켰다. 로지보다 한 살이 어린 21세로, 기획사를 통해 데뷔하는 여느 가수와 마찬가지로 YG케이플러스와 계약을 맺고 소속가수로서 CJ ENM과 협업해 데뷔 앨범을 제작했다. 최근에는 차 음료인 ‘광동 옥수수수염차’ 모델로도 활약 중이며 별도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등 여느 가수, 모델과 다르지 않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와이티_’영원한 스무살(Young Twenty, YT)’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와이티는 신세계그룹과 그래픽 전문기업 펄스나인의 협업으로 탄생한 가상인간이다. 지난 3월 신세계그룹 소속임을 알리지 않은 채 인스타그램 활동을 시작해 4개월만에 2만명의 팔로워를 모았다. 인스타그램에서는 ‘가상신세대’로 스스로를 칭하고 있다.

와이티가 신세계그룹 소속임을 알리는 첫 무대는 지난 10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리는 SSG랜더스와 KT wiz 경기 시구자로 나서는 것이었다. 앞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도 화제가 됐다. 와이티의 활동은 올 하반기부터 본격화된다. 신세계그룹의 패션 브랜드 W컨셉의 프로젝트 모델로서 지역별 핫플레이스 소개와 그에 어울리는 패션 스타일링을 제안하는 VR, AR 콘텐츠를 통해서다.

앞서 와이티는 3월 이후 최근까지 삼성전자, 매일유업, 파리바게뜨, 티빙, 뉴트리원 등 여러 브랜드와 협업한 바 있다. 지난 7월에는 가상인간 최초로 서울시 청년 홍보대사에 위촉돼 지난 6일 재개장한 광화문 광장 실감체험존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왼쪽부터) 루시, 리나, 민지오. (이미지=각 기업)

롯데홈쇼핑의 루시_루시는 29세의 모델이자 디자인 연구원이다. 롯데홈쇼핑에서 자체 개발한 가상인간으로 최근 홈쇼핑 쇼호스트부터 광고모델, 드라마 출연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2월 선보인 이후 1년간의 개발 과정을 거쳐 고도화된 루시는 지난달 쌍용자동차의 ‘토레스’ 신차발표회의 메타버스 프리젠터로 발탁되는가 하면 하반기 TV 드라마 출연까지 앞두고 있다.

넷마블의 리나_넷마블은 손자회사인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에서 진행하는 버추얼휴먼 사업을 통해 가상인간 리나를 선보였다. 지난 3월에는 가수 비, 배우 송강호 등이 소속된 서브라임과 전속계약을 맺기도 했다. 넷마블의 게임 캐릭터를 넘어 다양한 메타버스 콘텐츠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패션잡지 나일론(NYLON) 코리아의디지털 화보 모델로 발탁되는가 하면 카카오엔터테인먼트에서 선보이는 다양한 메타버스 콘텐츠로도 등장할 예정이다.

덱스터스튜디오의 민지오_덱스터스튜디오는 디오비스튜디오와 합작법인으로 설립한 네스트이엔티를 통해 버추얼 휴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민지오를 만들었다. 민지오는 AI로 생성한 가상얼굴로 실제 사람과 구별되지 않은 하이퍼리얼리즘 버추얼 휴먼을 표방하고 있다. 이른바 무쌍(쌍꺼풀이 없는 눈)의 부드러운 이미지로 의류 브랜드 피팅 모델 알바를 하며 배우를 꿈꾸는 지방생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는 와이낫미디어의 웹드라마 ‘배드걸프렌드’에 출연하기도 했다. 향후 민지오는 성장형 인물로서 단역, 조연 등 배역을 가리지 않고 출연하며 연기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왼쪽부터) 여리지, 리아, 애나. (이미지=각 기업)
펄스나인의 가상인간 K팝 걸그룹 '이터니티'의 뮤직비디오.

그 외에도 우리나라에는 한국관광공사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디오비 스튜디오의 ‘여리지’, 컴투스홀딩스의 NFT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리아’, 크래프톤이 자체 기술력으로 구현한 첫 가상인간 ‘애나’를 비롯해 앞서 신세계그룹 와이티 제작에도 관여한 펄스나인의 가상인간 K팝 걸그룹 ‘이터니티’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해 파악되지 않은 가상인간은 그 외에도 더 있다.

이러한 가상인간 출연 러시(Rush)를 두고 자동화를 통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는 로봇과 마찬가지로, 가상인간이 유명 셀럽과 연예인들을 대체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실제 앞서 언급된 여리지, 와이티 등은 기존 유명인, 연예인이 줄 곳 맡아 온 공공기관의 홍보대사를 맡고 있다. 향후에는 가상인간 기술 기업과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영역 구분이 모호해지며 새로운 개념의 가상인간 엔터테인먼트사 출현할 가능성도 있다. 즉 ‘가상인간의 전성시대’는 미래가 아닌 곧 들이닥칠 현실이 될 수도 있다.

황정호 기자

jhh@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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