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멋진 개발자, 디자이너, 제품 관리자가 속한 가상의 일기 앱 팀이 있습니다.
이들은 현대인이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일기 앱을 론칭했습니다. 사진은 하나만 올릴 수 있고, 동영상은 업로드할 수 없지만 글쓰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는 것이 제품의 강점입니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하자’가 그들의 성장 전략입니다.
“업로드 버튼이 잘 안 보여요. ”
출시 후 시간이 지나자 제품을 불편해하는 고객이 나타났습니다. 업로드 버튼을 콕 집어 고쳐달라고 합니다. 좀 더 이해하기 쉽고 직관적으로 말이죠. 고객은 왕입니다. 그래서 재빨리 제품팀은 하던 일을 멈추고 밤을 새워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물론 백엔드 개발자 한 명이 현재 로그가 제대로 남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느라 바쁘다고 했지만 그 일은 제쳐두었습니다. 고객이 분명하게 원하지 않는 일이니까 나중에 하면 되거든요.
“사진을 더 올리고 싶어요. ”
“사진 편집 기능 없나요? 스노우 같은 필터가 있으며 더 조쿠요.”
“친구와 일기를 공유하고 싶어요. 좋아요도 누르고 댓글도 달면 더 재밌을 것 같은데요?”
제품팀은 같은 방식으로 고객의 불편을 해소해나갑니다. 더 많은 사진을 업로드하고 싶다고 하기에 업로드 허용 사진의 개수를 5장으로 늘립니다. 친구와 일기를 공유하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나자 피드 기능을 만들고 친구들과 일상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합니다. 어떤 사용자는 업로드하는 사진을 꾸미고 싶다고 말합니다. 다시 몇 달 스프린트를 돌려 사진 꾸미기 기능까지 출시합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합니다. 기능도 많아지고 요구사항도 열심히 들어주고 있는데 앱스토어에 불만은 줄지 않고 늘어나기만 합니다. 이제 그들은 사진 업로드에 AR 기능을 추가해달라고 합니다. 또한 음란 사진이 불편하니 알고리즘과 콘텐츠 감시 팀을 만들어 줄여달라고 요구합니다. 어떤 고객은 너무 많은 사진이 피드에 등장하는 게 피로하다고 말합니다.
“피드 기능이 저에겐 필요 없어요. 자꾸 올라오는 사진들이 저를 피로하게 만들어요. 그만.. 탈퇴할게요.”
제품팀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합니다. 더 이상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리소스가 부족한 것도 문제지만 도저히 고객이 늘지 않습니다. 다양한 사진을 올릴 수 있고, 지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고객이 쓰는 앱은 일기 앱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이었습니다. 예전에 그들의 앱을 좋아했던 고객은 모두 떠나갔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제품팀은 분명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에 총력을 다했는데 말이죠.
누군가는 고객의 니즈(Needs)가 아니라 원츠(Wants)에 집중해서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도 맞는 말이지만 근본적으로 문제 정의를 하는 과정에서 현상(As is)과 해결책(Idea)에만 몰두하고 목표를 정하는 것에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불편한 느낌이나 현상을 설명하는 수단이 아닙니다. 문제란 현재 상태가 목표(기대 상태)에 이르지 못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즉,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현재 상황을 누군가가 불편해서가 아니라 현재 상태와 기대 상태가 다르다는 뜻입니다.
다른 상황을 예로 들어봅시다.
집에 가는 길, 전철 입구입니다. 온 주머니를 뒤졌는데 현금이 천 원밖에 없습니다. 지하철 기본요금도 되지 않는 금액이죠. 이 상황은 문제일까요? 당연히 목표에 따라 다릅니다.
집이 그렇게 멀지 않고, 평소에 산책하는 걸 좋아합니다. 마침 날씨도 좋습니다. ‘집까지 산들바람을 맞아가며 걸어가기’가 목표라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 피곤해서 다리가 아파서 지하철로 집에 가야 한다면(목표가 다름) 혹은 걸어가고 싶지만 바깥에 비바람이 몰아친다면(기대하던 상태 - 날씨 - 와 현재 상태가 다름) 문제가 됩니다.
문제 정의의 시작은 ‘목표’ 설정, 그리고..
제대로 된 문제 정의의 시작은 기대 상태 설정, 즉 ‘목표 설정’부터 해야 합니다. 목표에 따라 모든 것이 문제가 될 수도, 반대로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은 ‘현재 상태 파악’입니다. 목표로 가는 길에 깔린 장애물 녀석들을 파악해야 합니다. 집에 가야 하는데 필요한 요소(건강, 날씨, 자금..)와 현재 나의 상태(건강, 날씨, 자금..)를 비교해보는 것이죠.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한다’의 뜻은 무엇일까요? ‘현재 상태’가 ‘목표’가 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을 찾고, 수행하는 것입니다. 날씨가 좋지만 어제 근육 운동을 해서 다리에 알이 배겼다면 (현재 상태), 목표(산들바람을 즐기며 집에 가기)를 수행하기 위해 ‘따릉이 대여’를 통해 집에 가는 결정을 내리고, 그대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물론 디테일한 상황 파악(따릉이 앱이 설치되어있는지, 자전거를 탈 줄 아는 능력이 있는지)까지 제대로 수행되어야 하죠.
일기 앱 팀이 갈 길은..
다시 일기 팀의 슬픈 이야기로 돌아옵시다. 그들의 정의한 고객의 기대 상태와 현재 상태는 무엇인가요? 업로드를 하고 싶다(기대) 그런데 못한다(현재) 일까요? 아닙니다.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없다’가 현재 상태, 그리고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 기대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일기팀은 단순히 고객의 사용성을 개선하거나 원하는 기능을 무작정 추가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없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들이 이 문제를 해결했을 때 어떤 임팩트가 있는지 더 깊게 파고들었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구체적인 현재 상태를 파악할 수 있고, 뚜렷한 목표를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죠. 지레짐작해보면 사진 업로드와 소셜 기능이 아닌 본문 꾸미기 기능이 없는 단순한 글쓰기 기능과 명상 같은 기능이 그들의 고객의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고객의 목소리를 (아무거나) 들었을 때 유레카! 와 같은 기쁨을 느낍니다. 진짜 문제를 찾았다고 느끼기 때문이죠. 슬프지만 진짜 좋은 문제는 그렇게 쉽게 정의되지 않습니다. ‘고객의 어떤 생각, 느낌, 태도, 행동’을 현재 상태로 정의할 것인지, 우리가 기대하는 고객의 변화는 무엇인지, 그로 인해 어떤 비즈니스적 임팩트를 낼 것인지 함께 고려해야 제대로 된 목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자기 삶에 집중”이라는 애매한 목표로는 ‘매일 일기 쓰기’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만들 수 없습니다. ‘문제 정의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할애하자’는 말이 단순한 구호처럼 쓰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지구를 아끼고 사랑하자’ 처럼요. 자리에 앉아서 머리를 싸매고 있다고 더 좋은 문제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구를 아끼려는 마음에 무작정 쓰레기를 줍는 것은 물론 좋은 실천 방안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왜 지구가 아픈지 명확하게 이해해야 하고, 우리가 추구할 것은 무엇인지(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것인지,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인지), 현재 상황은 어떤지(산업 구조와 지구인의 심리적 상태, 정치적 상황)을 이해하고 나서야 제대로 된 실천적 방안을 마련할 수 있죠.
고객 중심 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객의 현재 상태와 기대 상태, 현재 팀의 상태(리소스, 인적 상황 등)를 냉철하게 파악해야 한 뚜렷한 목표를 설정할 수 있고, 뚜렷한 문제정의를 통해서만 진짜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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