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경기 침체와 주가 하락 상황은 투자 심리를 얼어붙게 만들고 이러한 시련은 덩치 큰 대기업보다 이제 막 기지개를 펴려는 스타트업에게 가혹하게 다가온다. 유망한 것으로 알려졌던 스타트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뉴스는 낯설지 않다.
혁신 아이디어 하나로 시작해 단숨에 유니콘이 된 해외 스타트업 사례는 종종 보고되지만, 유독 우리나라의 경우 그런 사례는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이 표현되고 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창업을 하고 사업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엄청난 규제 덤불을 헤쳐 나가야 한다.
사업화에 성공했다고 해도 적잖은 스타트업들이 기존 업계의 강력한 반발 속에 각종 소송과 고발 등으로 시달린다. 드물게는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사업화가 된 상태에서도 기존 업계의 압박을 받은 정치권의 포퓰리즘으로 사업을 중단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물론 정부 역시 손을 놓은 것은 아니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스타트업의 사업 가능성을 타진하게 하고, 성과와 안정성이 입증되면 규제 관련 법령까지 정비하며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 조차 많은 스타트업들에게는 버티기 힘든 고난의 시간으로 다가온다.
그렇다면 스타트업들의 성공을 지원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사회 변화를 이끄는 혁신과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사업에 나서고 있는 아산나눔재단이 주도한 ‘2022 스타트업코리아!’ 정책 제안 발표회에서 그 해법을 살펴봤다.
스타트업 혁신 비즈니스 성공과 해외진출 ‘순조로워도 2.7년’
아산나눔재단는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아마존웹서비스(Amazon Web Services; 이하 AWS),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등과 7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국내 창업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정책 및 규제 개선 방향을 연구한 ‘2022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를 발표했다.
아산나눔재단과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AWS가 주관한 이번 정책 제안 발표회에서는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영상으로 축사를 전했고,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장석환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구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코리아스타트업, 등의 대표들이 인사말을 전했다.
스타트업에 대한 응원과 지원을 약속하는 정부, 단체장 등의 발언을 통해 공감대가 형성된 가운데 ‘2022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 발제를 맡은 박경수 삼정KPMG 상무가 단상에 올랐다.
박 상무는 “정부기관 대기업이 느끼는 시간과 스타트업의 시간은 다르다”며 “스타트업에게 시간은 거의 생존과 가깝다”고 현실을 진단하며 발제를 시작했다.
“새정부에서 규제 혁신을 통해 순조로운 시나리오로 성공하는 스타트업이 많이 나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스타트업의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는 2년 7개월이 소요되지만 (각종 규제 등으로) 어렵게 갈 대는 그 2배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물론 정부는 그간 굉장히 다양한 규제 혁신 정책들을 선제적으로 추진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도나 만족도는 오히려 2018년에 비해 낮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박 상무가 제시한 ‘2017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에 따르면 누적 투자액 기준 글로벌 100대 유니콘이 국내에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검토한 결과, 100대 유니콘 중 56개는 국내에서 온전한 사업을 영위할 수 없었다. 5년이 지난 현재도 그 수치 55개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2017년 국내 사업 영위가 불가능했던 승차공유, 원격의료, 공유숙박은 여전히 국내에서 온전한 사업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난 점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안타깝지만 지난 정부가 적극적으로 다양한 규제 혁신정책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국내 시장은 글로벌 주요 기업들이 온전한 비즈니스를 운영하기 어려운 시장으로 분석된 것이다.
이미 다양한 스타트업 지원 제도 있어… 문제는 실효성 제고
박 상무는 앞서 열거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2022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를 통해 국내 규제혁신제도에 초점을 맞추고, 국내 현황 및 해외 선도사례 분석을 통해 ▲통합적 규제해소와 전주기적 지원 ▲상생을 위한 근거 기반의 사회적 합의 ▲수요자 관점의 규제혁신제도 운영 등 세 가지 관점의 규제혁신제도 방향성을 제안했다.
“실제 글로벌 기업들이 동일한 산업 영역에서 유니콘을 넘어서 엑시트(자본회수)와 투자를 반복하는 동안 우리나라 기업들은 창업과 성장이라는 첫 번째 단계에 아직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규제 혁신의 제도의 방향성을 크게 세 가지를 잡았습니다. 통합적 규제 해소와 전주기적인 지원, 상생을 위한 근거 기반의 사회적 합의, 수요자 관점의 규제 혁신 제도 운영입니다.”
박 상무는 “규제 혁신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기업들의 비즈니스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는 지원 제도와 연계돼야 한다”며 “이미 정부의 다양한 제도들이 있고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인가가 첫 번째”라고 강조했다.
박 상무가 설명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규제혁신제도에서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가 논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하게 도입되지 못한 것은 지난 규제혁신제도의 실효성 부족을 드러내는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부처 별로 나뉘고 중복된 규제 혁신 제도 비효율성 개선해야
보고서는 이에 대한 방안으로 통합적 규제 해소와 전주기적 지원 방안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전히 과도한 규제 적용이 존재하기 때문에 혁신 비즈니스 관점의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부분도 눈 여겨 볼 대목이다. 또한 보고서는 부처 간 업무 중복에 따른 규제혁신제도 추진의 비효율성 증가, 기업 부담 가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규제혁신제도 성과관리를 강화하고 소통 채널을 일원화할 필요성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보고서에서는 기존 산업 체제의 변화를 전제로 하는 산업의 혁신은 신구산업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분석돼 있다. 이에 박 상무는 “이를 해소하기 위해 협의에서 추진까지 체계 재정립이 필요하며, 갈등 해소 프로세스를 규제샌드박스 내에 통합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 기술의 안전성 검증을 진행하고, 선행된 검토 결과에 기반해 비즈니스 도입 필요성을 판단하고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 상생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업이 규제 샌드박스에 진입 시, 소요 기간 및 평가 기준이 불확실해 기업의 부담이 발생하고, 부가 조건이 지나치게 많아 실증 기간 내에 적잖은 기업 부담이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개선 방안도 이번 보고서에서 주목할 부분이다.
박 상무는 “규제샌드박스 진입 단계에서 불명확한 기한 규정과 평가 기준을 정비하고, 실증 시에는 기업의 운영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안전성 입증이 진행되었지만, 허가가 지연된 실증 사업을 추진하고, 혁신 비즈니스 도입에 대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지역 단위 비즈니스 우선 추진 절차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을 덧붙였다.
발제 말미에 박 상무는 혁신 비즈니스 도입 및 성장 관점에서 비즈니스 추진 기업에 대한 전주기적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고, 혁신 비즈니스 추진 기업에 대한 전주기적 지원이 필요함을 재차 강조했다.
우여곡절 스타트업들의 스토리…절박했던 심정 느껴져
이날 발표회에서는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의 사회로 권해원 페이콕 대표, 김광섭 피엠그로우 이사, 남성준 다자요 대표가 패널로 참여해 실제 사업을 운영하며 느낀 규제혁신 필요성에 관해 토론하는 시간도 가졌다.
여행 스타트업을 표방하는 다자요는 각 지역에 흉물처럼 방치돼 있는 빈집을 정비해 숙소로 서비스하는 공유 숙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페이콕은 핀테크 스타트업으로 앱 기반 결제솔루션을 사업화해 글로벌 시장 진출까지 나서고 있다. 피엠그로우는 전기차 서비스 플랫폼을 지향하는 스타트업으로 전기차 배터리 전주기 데이터에 기반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 대표는 "오늘 이 자리는 여기 세 분의 스타트업 대표는 물론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스타트업들까지도 규제 혁신을 통해 성장의 기회를 얻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각 대표들 사업화 과정에서 직면한 어려움을 묻기도 했다.
남성준 다자요 대표는 “각 지역에 빈집을 활용해 비대면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위해 규재 샌드박스를 신청했지만, 농어촌민박협회 등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1년이 넘도록 영업을 못하다가 기획재정부의 한걸음 모델을 통해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할 수 있었다”며 “기재부는 물론 문체부, 국토부 등이 저희 사업에 대해 ‘국가에서 해야 할 일을 기업이 대신하고 있다’고 평가했지만, 유독 농어촌 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농림부의 벽을 넘기 어려웠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권해원 페이콕 대표는 “배달 기사들의 결제 단말기가 유독 비 오는 날 먹통이 되는 것을 보고 스마트폰의 앱을 활용한 ‘소프트웨어 단말’ 결제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규제 샌드박스 적용을 받는데 5년이 걸렸다”며 “지난해 12월 법까지 개정돼 정말 감사하게도 글로벌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는 상황이 됐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김광섭 피엠그로우 이사는 “최근 배터리 구독 서비스를 진행하면서 재사용 배터리를 쓰는 안전 기준이 없다는 문제에 직면했다”며 “규제 자유ㅇ특구로 경북 블루베리산단에 들어갔지만, 실증할 수 있는 수요가 없어 경기도에서 실증을 하기 위해 다시 규제 샌드박스를 재신청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김 이사는 “그래도 다행이 올 8월 입법공청회를 열었고, 빠르면 연내 법 개정까지 가능할 듯해서 행복하다”고 덧붙였다.
각 스타트업들은 저마다 겪은 고충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향후 정부의 스타트업 정책의 개선점에 대해서도 저마다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토론회 말미,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혁신과 성장의 기회가 많을수록 스타트업 하기 좋은 나라에 다가설 수 있다”며 “스타트업들이 희망하는 규제 혁신은 규제를 없애달라는 것이 아닌 불필요하거나 불합리한 규제를 혁신과 성장에 맞게 합리화해 달라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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