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OTT(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강자 넷플릭스는 2016년 국내 첫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거치며 엄청난 성장을 거듭했다. 지난해 말 기준 글로벌 유료가입자 수는 2억 명을 돌파했고, 최근 ‘가입자 증가율’이 주춤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독보적인 글로벌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후발 주자로 나선 디즈니의 ‘디즈니플러스’ 역시 가입자 1억 명을 넘기며 무서운 속도로 뒤를 쫓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유료 가입자 확보 속도보다 빠른 추세다.
현재 우리나라의 유료 구독형 OTT 시장 규모는 7000억원이 조금 넘는다. 점유율로 보면 넷플릭스가 1000만명이 넘는 사용자를 확보하며 1위를 기록하고 있고 그 뒤를 웨이브, 티빙, U+모바일TV, 시즌(Seezn), 왓챠가 따르고 있다. 그러나 빠르면 올해 9월 늦어도 11월에는 디즈니플러스의 국내 시장 진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안타까운(?) 관전 포인트는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가 얼마나 시장을 양분할 것인가’이다.
물론 우리나라 토종 OTT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나름 콘텐츠 차별화를 통해 승부를 볼 생각이다. 여러가지 돌발 변수가 존재하는 가운데, 글로벌 OTT와 토종 OTT가 한 판 각축전을 벌릴 우리나라 OTT 시장의 판세는 어떻게 흘러갈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OTT 시장의 뜨거운 감자 ‘망 사용료 논쟁’
글로벌 OTT와 토종 OTT 간의 치열한 각축전이 예고된 가운데,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슈가 하나 있다. 지난해 말 시행된 전기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일명 넷플릭스법)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는 ‘망 사용료 논쟁’이다. ‘망 사업자’로도 불리는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와 콘텐츠제공사업자(CP) 간에 망 사용료를 둘러싼 해석의 차이는 최근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의 ‘망 사용료’ 소송으로까지 번졌다. 일단 1심에서는 SK브로드밴드가 승기를 잡은 상황이다.
의견 차를 보이는 주요 쟁점은 두 가지다. 소를 제기한 넷플릭스 측의 입장은 ‘협상 의무가 존재하지 않으며’ ‘망 사용료 제공 의무가 없음’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재판부는 첫 번째 쟁점에 대해서는 "협상 의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 얻을 이익이 인정되지 않는 경우로 보인다"며 각하 판결했다. 다음 ‘망 사용료 제공 의무 없음’에 대해서는 "계약 자유의 원칙상 계약을 체결할지, 어떤 대가를 지불할 것인지는 당사자들의 협상에 따라 정해질 문제"라며 "법원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넷플릭스법에 따르면 대형 CP는 인터넷망 서비스 안정을 위해 전기통신 설비 사전 점검, 서버 용량 증가 등 '서비스 안정 수단'을 확보해야 하며, '이용자 요구사항 처리'에 대해서도 의무를 지닌다. 우리나라는 일평균 이용자 수 100만명, 국내 트래픽 양 중 1% 이상을 차지하는 CP인 구글, 넷플릭스,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웨이브 등 총 6개사를 대상으로 이 법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법 적용 대상이라고 해서 이를 무 자르듯 간단하게 구분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바로 논란이 되는 ‘망 중립성’ 때문이다. 이는 모든 ISP와 정부는 인터넷에 존재하는 모든 데이터(콘텐츠)를 동등하고 차별없이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즉, 망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CP 등도 비차별, 상호접속, 접근성 등 3가지 원칙 하에 망을 이용할 수 있다. 이제까지 이 원칙에 따라 세계 각국에서 ISP는 네트워크 접속이 가능하도록 물리적인 망을 개설하고 연결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CP는 네트워크를 통해 접속한 인터넷 상에서 소비자가 소비하는 콘텐츠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등이 개발되며 각국에서는 이와 같은 ‘망 중립성’ 원칙을 완화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17년 연방통신위원회(FCC)가 통신 회사들의 입장을 받아들여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공공 서비스’가 아닌 ‘정보 서비스’로 변경해 CP의 트래픽을 제한할 수 있게 했다.
우리나라와 유럽은 망 중립성의 원칙은 준수하는 상황에서도 이용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ISP가 합리적 관리를 할 수 있는 예외를 두고 있다. 이 예외를 반영한 것이 바로 넷플릭스법으로 대형 CP의 경우 국내 인터넷망의 안정적 서비스를 유지할 책임을 부과한 것이다. 즉 ‘망 중립성’과 ‘넷플릭스법’ 사이에서 해석의 차에 따라 의견이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실제 SK브로드밴드와 같은 ISP는 “넷플릭스의 데이터 전송량 급증으로 인한 장애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망 추가 투자비가 소요된다”며 “신규 망 개설 및 유지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의 일부라도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가 요구하는 방식의 망 사용료는 세계 어느 ISP에도 내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넷플릭스 콘텐츠 수요에 따른 트래픽 증가로 ISP의 수익과 가입자 역시 증가하고 있다”며 ‘망 사용료’ 지급을 거부하는 상황이다.
이렇듯 두 사업자의 입장이 팽팽한 상황에서 소관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넷플릭스법 시행 이후 트랙픽으로 인한 시스템 장애 등의 법 위반 사례에 대해서는 9월경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며 한발 물러선 상황이다. 특히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간 망 사용료 논쟁에 대해서는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계약을 통해 해결할 문제지, 정부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다.
'제2의 넷플릭스 막자'....인터넷망 무임승차 금지법 발의돼
이에 국회에서는 15일 국민의 힘 김영식 의원이 일부 대형 CP의 국내 인터넷 망 이용 관련 ‘망 사용료 지급 논란’을 ‘갑질’로 규정하고, ‘합리적인 망 이용대가 지불 의무’ 도입을 골자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하며 논란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이른바 ‘인터넷망 무임승차 방지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안은 일정 규모 이상 CP가 자사 서비스 제공을 위해 인터넷망을 이용하는 경우 망의 구성, 트래픽 발생량 등을 고려해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망의 연결을 제공 받거나 제공할 것을 요구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골자다.
김 의원은 지난해 과기정통부 발표 자료를 근거로 구글(유튜브)은 약 23.5%, 넷플릭스는 5%, 페이스북은 4% 등 일부 글로벌 CP들이 국내 전체 인터넷 트래픽의 약 32.5%를 차지한다고 밝히며 “이들 대형 CP들이 연간 수조 원의 투자비용이 소요되는 국내 인터넷 인프라를 이용해 자사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면서도 압도적인 시장 영향력을 바탕으로 망 이용에 대한 대가 지급을 거부할 경우 결국 이 비용이 다른 중소 CP와 일반 소비자에게 전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앞서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간의 법적 공방을 둘러싸고 법원과 관련 부처 모두 ISP와 CP간의 합의를 통한 문제 해결로 공을 넘기며 한발 물러선 상황에서 이와 같은 법안 발의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구글 인앱결제 강제 금지법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올해 안에 디즈니플러스를 비롯해 애플TV+, HBO맥스 등의 대형 CP사들이 줄줄이 국내 진출을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망 사용료’를 둘러싼 법안 발의로 논란이 격화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관련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디즈니플러스 진출로 요동치는 국내 OTT 시장
넷플릭스를 비롯한 국내 OTT 업체들이 최근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디즈니플러스의 국내 진출 시점과 구독료 책정이다. 디즈니플러스는 이미 2019년 11월 미국, 캐나다, 네덜란드, 호주 등 영미권 국가에서 서비스를 시작했고 뒤이어 2020년에는 독일, 아일랜드, 영국, 스위스, 이탈리아 등 유럽의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시아권 역시 지난해 4월 인도, 6월 일본을 시작으로 올해 2월에는 싱가포르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 사이 유료 가입자는 1억명을 돌파했다. 서비스 출시 1년 4개월만의 일이다. 이는 넷플릭스보다 2개월 앞선 기록으로 알려졌다.
디즈니플러스가 이렇듯 단기간에 엄청난 가입자를 확보할 수 있었던 첫번째 이유는 10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구축해온 콘텐츠 IP(지적재산권)를 꼽을 수 있다. 미키마우스, 라이언킹, 겨울왕국 등의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마블유니버스와 스타워즈 시리즈, 내셔널지오그래픽까지 모두 디즈니 왕국의 오리지널 콘텐츠들이다.
몇몇 전문가는 “시작은 넷플릭스가 빨랐지만, IP경쟁력을 살펴봤을 때 승자는 디즈니플러스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하기도 한다. 이는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는 이유기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구축해온 디즈니 IP의 저력을 넘어서기는 힘들다는 의미다.
두 번째 이유로는 디즈니플러스가 후발주자로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 넷플릭스에 비해 저렴한 구독료를 책정한다는 것이다. 현재 넷플릭스는 월 9500원의 베이직, 1만 2000원의 스탠다드, 1만 4500원의 프리미엄 요금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미국의 사례를 비춰 봤을 때 디즈니플러스의 국내 진출 첫 구독료는 그 이하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더구나 넷플릭스 가입 시 계정 생성 가능 인원이 프리미엄의 경우 최대 4명인데 비해 디즈니플러스는 최대 7명까지 계정을 생성하고 4명까지 동시 접속이 가능하다. 가격과 계정 수 면에서 월등한 경쟁력까지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디즈니플러스만이 아니다. 뒤를 이어 HBO맥스, 애플TV플러스가 줄줄이 올해 안에 한국 진출을 예고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한국 진출 여부를 밝히지 않고 있는 아마존프라임비디오의 경우는 당분간 국내 업체와의 협업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아마존프라임비디오 역시 국경이 무의미한 글로벌 무한 경쟁의 시대에서 무시 못할 복병이다. 전자상거래 기반의 가입자를 ‘아마존패키지’ 형식으로 무료 배송, 홀푸드 할인 등과 연계해 이미 전 세계 구독자 2억명 이상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시장을 무대로 치열한 한판 승부가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각 OTT 플랫폼들은 승기를 잡기 위해 앞다퉈 콘텐츠 투자 및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넷플릭스의 경우 올해는 평소의 두배가 넘는 5500억원을 한국 콘텐츠에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올해 서비스 영역을 OTT로 확대한 카카오TV와 아마존프라임비디오의 방식과 유사하게 시장에 진출한 쿠팡플레이는 연간 1000억원 수준의 콘텐츠 투자를 하고 있다. 특히 카카오TV는 이번 투자를 통해 오는 2023년까지 오리지널 콘텐츠를 200개 이상 제작한다는 계획이다.
디즈니플러스의 경우는 기존 국내 중소 OTT사와 제휴를 통해 서비스되던 자사의 콘텐츠 100여편의 서비스 계약을 종료하는 한편, 스튜디오앤뉴와 콘텐츠 공급 계약을 맺고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나서고 있다. 디즈니플러스의 첫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는 웹툰 원작의 ‘무빙’과 ‘너와 나의 경찰수업’이다. 풍부한 콘텐츠를 확보하고 있는 디즈니플러스가 이렇듯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한국 독자들의 남다른 취향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스타워즈 시리즈’는 유독 한국에서는 맥을 못 춘다. ‘마블유니버스 시리즈’가 가장 인기가 있지만, 최근 대장정의 막을 내린 페이즈3를 끝으로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블랙위도우 등 핵심 캐리터가 대거 사라지며 이후 흥행을 보장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어린이용 콘텐츠를 다수 보유한 디즈니플러스가 타깃층을 자녀가 있는 가정으로 잡게 되면 시장 쪼개기가 아닌 OTT 시장 규모의 확장이 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삼성전자, 'TV플러스'로 OTT 시장 진출
한편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삼성전자가 ‘TV플러스’라는 이름으로 OTT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삼성TV, 갤럭시폰 등 자사 기기 전용 서비스였던 것을 타사 제품 사용자에게 개방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최근 뜨거워지고 있는 글로벌 OTT 시장 진출을 하려는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
다만 삼성이 선택한 것은 유료 구독 방식의 OTT 서비스가 아닌 광고를 시청하고 무료로 이용하는 방식(AVOD, Advertising VOD) OTT 플랫폼이다. 2016년 삼성TV 전용 서비스로 출시 후 지난해 9월 미국을 시작으로 올해 4월부터 국내에서 갤럭시 전용 모바일 앱으로 서비스를 확장했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익히 알려진 OTT 플랫폼은 유료 구독형(SVOD, Subscription VOD)인데 반해 글로벌 AVOD OTT로는 로쿠채널, 플루토TV, 쥬모(Xumo) 등이 있다. 삼성의 TV플러스는 올해 3월 기준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영국, 독일, 캐나다, 호주, 브라질 등 14개국에서 1500만명의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올해 AVOD 시장 규모는 국내에서만 2조 2000억원에 달한다. 시장 규모로 봤을 때는 SVOD의 3배를 넘는 셈이다.
글로벌 AVOD 플랫폼의 국내 진출 소식은 아직 없으니 삼성으로서는 이미 거대 글로벌 기업들이 선점하고 있는 SVOD에 비해 AVOD에서 성공 가능성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 OTT 시장 진출을 발표하진 않은 상태다. 이를 주목하고 있는 외신 등은 “아직 시장 분석 단계로, 이용자층을 확대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관측하는 한편 삼성의 노림수가 무엇인지를 궁금해 하고 있다.
규모와 예산 면에서 토종 OTT 플랫폼은 열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구독 경제의 시대에서는 소비자의 취향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개인화된 공략을 통해 차별화가 가능하다. 특히 좋은 콘텐츠가 반드시 엄청난 자본이 투자된 블록버스터일 필요는 없다. 어찌됐든 코로나19로 연일 긴장된 일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들로서는 다양한 OTT 플랫폼들이 쏟아 낼 콘텐츠로 어느 정도 위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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