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퉁불퉁한 산으로 둘러싸인 화강암 석조 평원에 거대한 철제 상자가 놓여 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1968)’에 나오는 것 같은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 검은 모노리스(monolith·기둥)를 연상케 하는 이 이국적 존재는 그것이 의도적으로 놓여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이 구조물을 발견한 사람들이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다면, 그들은 이전에 있었던 문명의 멸망의 원인이 무엇인지 엿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정체는 ‘지구 블랙박스(Earth’s BlackBox)’다. 우리가 기후 온난화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후세 사람들에게 알려줄 이 실시간 기록 타임머신 구조물이다.
기후 혼란에 빠진 인류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한 이른바 ‘지구 블랙박스’가 호주 남부에 설치될 예정이라고 호주방송공사(ABC·Australian Broadcasting Corporation)가 최근 보도했다.
영화 속 모노리스 구조물을 떠올리게 하는 지구 블랙박스가 궁금해진다.
뉴스를 외면한다 해도 전지구적인 기후변화와 온난화 추세는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번에 발표돼 진행중인 ‘지구 블랙박스’의 원대한 포부는 인류가 기후 대재앙을 향해 비틀거리면서 저지르고 있는 실수들을 부각시켜 기후위기 의식에 반전을 불러 일으키려는 것이다.
인류가 우리 인류의 안녕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기후 현실과 충돌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지금과 그 시점 사이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 불확실하다.
호주 남부 태즈메이니아의 외딴 화강암 평원에 세워질 예정인 지구 블랙박스는 우리 문명이 기후 대혼란으로 인해 추락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구온난화에 대비한 긴급 조치를 취하도록 감정을 불러 일으키게 해 줄 것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이 ‘지구 블랙박스’는 말 그대로 마치 항공기 블랙박스가 비행 데이터를 수집하고 사고에 이르는 순간들에 대한 중요한 통찰력을 얻게 해주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파리 기후변화 협약의 목표는 기후 변화의 최악의 영향을 피하기 위해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 수준에 비해 1.5˚C를 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유엔 배출량 격차(UN Emission Gap) 보고서에 요약됐듯이 2000년 대 말까지 2.7˚C까지 상승할 것으로 예상돼 이를 이를 웃도는 위험한 궤도를 달리고 있다. 최근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정말 끔찍하게도 2000년 대 말까지 4˚C 더 상승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하루 800mm이상 비가 내리는 극한 기후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예측이 포함됐다.
단기적 전망도 심상치 않다. 지난 8월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는 오는 2050년이 아닌 ‘20년 안(~2041년)’에 1.5˚C 기온 상승을 기록할 것이며 그 결과는 끔찍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북극의 기온은 전 세계적으로 상승하겠지만 북극에서는 지구 평균의 2배 이상 상승해 영구 동토층의 해빙과 바다얼음이 녹는 것을 크게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가 더 많이 오면서 강수량 증가로 고위도 지역에서는 홍수나 산사태 등 자연재해 발생 빈도가 높아지지만 다른 지역은 가뭄을 겪으며, 해안 저지대에서는 더 파괴적인 폭풍해일로 인한 침수·침식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높아진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치는 바다를 더 산성화시키고 해양 종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농업과 식량 안보에 미치는 영향, 즉 기후 난민들이 빈곤과 기아를 피해 도망갈 것이라는 전망 같은 것은 무서울 정도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 미래가 정확히 어떤 모습일지 많은 추측이 있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한 가지에 동의하는데 그것은 더 많은 것을, 그리고 더 빨리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많은 과거의 문명과 제국들은 오늘날 우리가 맞고 있는 기후 대재앙보다 더 작은 것 앞에서 도 무너졌다.
이 프로젝트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회사인 클레멘저 BBDO와 호주 태즈메이니아대 연구원들이 공동 추진하는 완전히 비상업적인 성격을 갖는다. 설계 원칙은 기능성이다.
지구 블랙박스는 가로 10m, 세로 4m, 높이 3m의 강철 모노리스다. 7.5cm 두께의 강철 벽과 동력을 공급하기 위한 태양광 지붕 및 예비 배터리가 장착돼 인류보다 오래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제작되고 있다. 장소는 말타, 노르웨이, 카타르 같은 후보군 들과 경합해 지정학적, 지리적 안정성이 높다는 판단에 따라 선정됐다.
이 구조물에는 기후 과학 및 지구의 건강과 관련된 발전상황을 연대기로 남기기 위한 대규모 스토리지 드라이브가 수용된다. 태양이 빛날 때, 블랙박스는 과학적인 데이터를 다운로드 할 것이고 특별 제작된 알고리즘은 인터넷에서 기후 변화와 관련된 자료들을 수집하게 된다.
이 블랙박스는 향후 30~50년 동안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충분한 용량을 가질 것으로 기대되며, 디지털 플랫폼과 무선 연결을 통해 사이트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그것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는 글루 소사이어티(Glue Society)의 공동 설립자인 조나단 니본은 “이 구조물은 우리보다 오래 남아 있도록 지어졌다. 전력망이 다운된다는 이유만으로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이 구조물은 여전히 그곳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크게 보면 이 구조물은 대체로 두 가지 유형의 데이터를 수집하게 된다.
우선 인간의 인구, 군비, 에너지 소비뿐만 아니라 육지와 바다의 온도, 해양 산성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종의 멸종, 토지 사용 변화 등의 측정치를 수집하게 된다.
또다른 수집 대상은 신문 헤드라인, 소셜 미디어 게시물, 그리고 기후 변화 회의와 같은 주요 행사에서 나오는 뉴스와 같은 상황별 데이터다.
클레멘저 BBDO의 커티스 이사는 “만약 기후 변화의 결과로 지구가 멸망한다면 이 파괴할 수 없는 기록 장치는 거기에 있어 누구든 남게 된 사람들이 이로부터 배우게 할 것이다. 또한 리더의 행동이나 부주의가 기록되도록 책임을 묻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인류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이상으로 살아가게 된다면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
기후변화는 매년 농작물을 망치고 해양 식량 네트워크를 무너뜨리고 80억명이 넘어가는 세계 인구를 더 이상 먹여 살릴 수 없게 만든다. 수억 명의 사람들이 기후난민이 돼 바다 위로 밀려나고 경제는 위축되고, 사회는 폭포를 건너가게 될 것이다.
이때 태양전지판이 죽은 지(성능이 멎은 지) 오래돼 녹이 슨 블랙박스를 발견한 사람들에게는 이 지구블랙박스 안에서 무엇을 찾을지, 어떻게 해독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
지구 블랙박스 개발자들은 “그것이 우리가 여전히 우리 스스로 풀려고 노력하고 있는 질문이다···누구 또는 무엇이 그것을 찾을지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능을 가진 누군가, 또는 무언가에 의해 발견되지 않는 한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본적인 상징성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7.5cm 두께의 강철 케이스를 통과해 박스 내부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이미 창의력이 필요하다.
개발자들은 누구든 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존재?)은 기본 기호도 해석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은 “우리는 로제타 스톤처럼 다양한 형태의 암호화 기술을 사용할 것이다. 우리는 상자 안에 머물며 햇빛에 노출되면 활성화되고, 또한 대재앙으로 인해 장기간 휴면 상태에 들어갔을 때 상자를 재가동시킬 수 있는 전자책을 포함시키는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구 블랙박스는 태즈메이니아대 연구진과 마케팅업체 클레멘저 BBDO 등이 협업한 프로젝트로 내년 중반 착공 예정이다.
블랙박스는 향후는 물론 과거도 기록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현재 위치에 도달했는지를 기록한다. 즉, 이용 가능한 과거 기후 변화 데이터를 인터넷에서 빼낸다.
개발자들은 압축 및 아카이빙을 사용하여 향후 30~50년 동안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충분한 용량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들은 “데이터 저장 용량을 확장하는 방법과 ‘철판’에 새기는 것을 포함한 더 장기적인 저장 방법을 조사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각 스토리지 계층이 사용되는 방식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수천년은 아니더라도 수백 년 동안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구조물 자체는 내년 중순에야 착공될 예정이지만 하드 드라이브는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열린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기후 컨퍼런스(10.31~11.13)에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현재 녹음된 내용의 베타 피드가 프로젝트 웹사이트에 전시되고 있다.
이 웹사이트는 “어떻게 이야기가 끝날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여러분의 행동, 행동, 상호작용이 이제 기록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블랙박스가 가동되면 성장하는 데이터뱅크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접근할 수 있게 되며, 사람들이 블랙박스를 방문할 경우 무선으로 연결할 수도 있게 된다는 계획이다.
개발자들은 “더 긴 간격으로 요약된 통계를 우주로 전송하고, 상자가 켜져 있다는 것을 전하는 박동을 하고 적극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을 현장 방문자들과 소통하는 기능 같은 것들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 스트라한과 퀸스타운 사이에 있는 이 장소는 고의적 파괴로부터 떨어져 있을 만큼 충분히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것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접근할 수 있다.
니본씨는 “(기후에 대한 사람들의 행동을 기록중이라는 것을)모든 사람의 마음 한구석에 있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녹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이 무엇을 하고 말하는지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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