꽂히면 무조건 산다! MZ세대의 디깅 소비

이른 아침부터 신발 매장이 오픈도 하기 전에 줄을 길게 선 사람들, 매장이 열림과 동시에 뛰어 들어가는 모습이 뉴스의 한 장면으로 보도되었다. 샤넬 등 명품 매장도 마찬가지의 일들이 벌어진다. 한정 판매로 나왔다는 상품들은 오픈과 동시에 날개 돋친 듯 팔려 동난다. 아이돌 팬들은 수십 수백 장의 앨범을 구입하고 굿즈 또한 활발하게 거래한다. 앨범을 많이 샀을 경우, 아이돌을 직접 만나는 팬 미팅, 영통팬싸(영상 통화를 통한 팬 사인회) 등에 참여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최근 MZ 세대의 소비 트렌드인 '디깅(Digging)소비'가 시장에 활력을 더하고 있다. 디깅 소비란, 앞선 예처럼 취미나 덕질 등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을 깊게 파고들며 관련된 제품을 구매하는 새로운 소비문화를 일컫는다. 디깅은 원래 채굴하다는 뜻이 있는데, 처음에는 좋은 음원을 찾아 아티스트와 관련된 음악들을 들어보며 깊이 파고드는 행동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제는 소비의 전 영역으로 확대되어 여러 방면에서 ‘디깅 소비’라는 표현이 쓰이고 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신발 시장은 2020년 코로나 19로 인한 재택근무 증가로 수요가 감소하여 전체 실적이 6조 1873억 원으로 0.9% 감소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나, 2021년에는 돌연 성장세로 돌아섰다. 연합회는 신발 시장이 2022년에도 2021년에 이어 7.5% 성장한 7조 1천 305억 원의 규모를 예상한다.

2021년 국내 패션 시장의 규모가 2.0% 하락한 것을 염두에 둔다면, 신발시장의 성장은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소위 '잘 팔리는' 신발들이 존재하는데, 사회적 거리 두기와 함께 해외여행도 힘들어진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타인과 거리를 두고 하는 야외 스포츠, 취미에 몰두하게 되면서 등산화가 잘 팔리는 신발 리스트에 등극하였다. 또한 SNS 셀럽들과 연예인들의 착용으로 유명세를 얻은 테니스화들, 한정판 스니커즈, 콜라보 운동화 등 제품이 표현하는 이미지들도 중요한 가치로 꼽힌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상황은 캠핑, 차박 등 장비를 갖춰야만 시작할 수 있는 취미 용품에도 디깅소비 열풍을 불러왔다. 이 분야에서는 중고거래 시장에서 장비를 구입하여 취미에 입문한 후, 새로운 용품들을 더 사들이는 방식으로 소비가 이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중고거래 앱인 ‘번개장터’에서 확인된 소비 동향을 살펴보면, 취미, 덕질 카테고리의 거래량이 9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캠핑, 낚시 레저용품 등 아웃도어 제품들이 그 목록을 채우고 있다. 캠핑의 경우 129% 증가한 거래량을 나타낼 정도로 성장했다.
 
이제는 디깅 소비 덕분에 산업 자체가 코로나 19 상황에서 버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깅 소비는 2022년 유통과 소비 트렌드 MADE UP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M은 올해도 계속될 비대면 상황에서 이루어질 메타버스(Metaverse) 등의 가상세계에서의 소비 활동, A는 외부활동의 제한으로 인한 혼자(Alone)만의 시공간을 위한 소비활동, D는 디깅 소비를, 시대적 요구에 따른 친환경(Eco-friendly) 소비, 억눌렸던 욕구를 표출할 개성(Personality) 있는 패션 소비 수요를 말한다. 

디깅 소비가 MZ세대에게 대세로 자리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디깅 소비에 너무 몰두해 자기 전시를 통한 '관종'이 되기도 하고 디깅 문화의 틈새에서 리셀러로서 등장해 시장 상황을 교란시키기도 하지만, 이들은 디깅을 통해 적극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먼저 눈에 많이 띈다고 사거나 세일이라 사지 않고 자신만의 취향, 매력, 느낌에 잘 부합하는 제품을 선호하고 이를 위해서는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력'을 총동원한다. 제품 정보를 찾는 과정에서 자신의 취향을 큐레이팅하고 완성해나가는데, 원하는 자료를 찾아내는 것을 일종의 놀이처럼 즐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댓글로 소통을 하기도 하는 등 온라인상에서 새로운 관계를 적극적으로 맺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비자는 진화한다. 주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덕투'가 그 진화된 모습 중 한 가지이다. '덕투일치'는 덕질과 투자가 일치한다는 뜻으로,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소비에서 그치지 않고 투자를 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보상은 금전적 수익뿐만이 아니라 제품에 대한 만족감, 서비스 등 무형적 경험이 함께 한다. 덕분에 해당 브랜드는 소비자와 함께 커나갈 수 있다.
 
또 다른 진화형인 참여형 소비자, '프로슈머(Prosumer)'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합성어로, 취향에 맞는 물건을 스스로 창조해내는 능동적 소비자를 뜻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생산자처럼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고, 제품의 개발과 기획단계에서부터 참여하기를 원한다. 일례로 소니에서는 프로슈머와의 기획을 통해 저가형 제품보다는 높은 품질과 고급 기능을 제공하지만, 전문적인 장치의 모든 기능은 갖고 있지 않은 Sony A6600형을 출시하기도 했다.

디깅 소비자들은 환경을 생각하는 준 활동가로 진화하기도 한다. 국내외 케이팝 팬들이 모여 기후 행동 플랫폼인 '케이팝포플래닛(지구를 위한 케이팝)'을 만들었다. 이들은 '덕질'을 하며 쌓여있는 앨범과 굿즈를 보며 기후 위기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며, 지속가능한 덕질을 위해 행동을 하고 있다. 직접 엔터테인먼트사에 앨범과 굿즈 플라스틱 포장을 최소화하고 실물 앨범 대신 디지털 앨범을 발매하는 등 친환경 선택지를 제공하라고 요구한다. 또한 앨범을 많이 사야만 하는 기형적 소비 구조의 변화 또한 종용한다. 소비자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에 기업이 나서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사들은 이러한 적극적인 소비자의 요구를 묵살할 수 없고, 조만간 환경문제 개선을 위해 응답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전과는 다른 입체적 소비자의 등장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나가길 바라는 욕구와도 연관되어 있다. 기업은 이 트렌드를 제대로 읽고 MZ세대 소비자들과 함께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할 역할을 맡았다. 그저 단순한 합리적인 소비를 넘어서 취향을 쌓고 좋은 경험을 하면서 시대의 가치에 부합하는 문화로서의 소비사회 진화를 위해, 기업도 소비자들만큼 적극적으로 호응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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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오베이션 대표

insu@weinteract.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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