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사람들이 수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한 느낌이 지속돼 생각과 표현을 분명하게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는 것을. 이는 집중력 감소, 기억력 저하, 피로감, 우울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방치할 경우 치매 발병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고 한다. 이른바 ‘뇌안개(brain fog)’다.
하지만 수면이 실제로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수면의 이점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해 아직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정확한 과정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다행히 지난 2012년 미국 과학자들이 깊은 잠을 자면 뇌 안의 글리어림프계(Glymphatic system)가 뇌척수액을 뇌로 펌프질해 잘못 접힌 단백질과 (신진대사에 따라 자연스레 발생하는) 뇌내 독성 노폐물을 씻어낸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이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룩했다.
당시 미국 로체스터대 메디컬센터 연구팀은 이 뇌 안의 림프계가 중추신경계 조직을 지지하는 글리어세포(Glial Cell·신경 아교 세포)로 형성됐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발견을 계기로 글리어 림프계와 수면 장애·알츠하이머 같은 신경 질환을 점점 더 연관시켜 생각하게 됐다. 과학자들은 이 시스템을 ‘신경 아교 림프계(글리어림프계·Glymphatic System)’로 명명했다. 글리어세포(Glial Cell)와 림프계(Lymphatic Syetem)를 합쳐 만든 용어였다.
그동안 이 발견을 이용한 연구가 없었던 가운데 미국 라이스대가 특수 모자 개발에 들어갔다고 지난달 28일(현지시각) 라이스대 뉴스를 통해 발표했다. 뇌내 노폐물 배출 과정을 분석해 수면의 효율을 높이고 뇌 척수액을 자극해 뇌노폐물을 제거해 줄 모자라고 한다.
모자를 쓰고 뇌를 모니터링해 뇌 노폐물이 잘 씻겨 나가도록 자극할 수 있다면 ‘뇌안개’ 현상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학습이나 업무 및 작업 효율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라이스대 연구진이 미국 육군작전 의학 연구계획국(MOMRP)의 지원을 받아 연구한다는 점이다.
미육군은 과학자들의 발견에 기반해 전투병사들이 잘 때 뇌를 통과하는 유체(뇌척수액) 흐름을 감시하고 조절해 (전투시)능률이 오르도록 유도하는 장치를 만들고 싶어한다. 이에 라이스대, 휴스턴 감리교대, 베일러 의대 연구원들에게 머리에 착용할 수 있는 장치 개발을 맡겼다.
엔지니어들은 수면 중 일반적인 뇌속 신진대사로 발생하는 폐기물을 배출하는 뇌척수액의 세정 흐름을 측정 및 분석하는 것은 물론 조절까지 할 수 있는 ‘수면 모자(sleeping cap)’를 개발하게 된다.
폴 체루쿠리 라이스대 생명과학 및 생명공학 연구소(IBB) 운영소장은 “미국방부가 전투병사들의 수면 중 뇌 건강을 측정하고 조절해 그들의 전투력을 향상시켜 줄 작고 휴대 가능한 모자를 설계할 수 있는지 물었다”고 말했다.
그는 “흥미롭게도 이전까지 아무도 이 같은 것을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았다”며 “이 시제품 개발은 기존 상업용 장치를 통해 배우되 라이스대에서 자체 개발한 센서 기술 및 알고리즘 개발과 병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흐남 아장 라이스대 신경공학 구상의 책임자이자 전기및 컴퓨터 공학 교수는“수면 부족이 군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는 군의 큰 관심사”라고 말했다. 그는 “육군은 잠이 부족할 때 병사들의 글리어림프계와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기를 원한다. 측정시 뇌척수액이 충분치 않다고 나온다면 그것은 위험 신호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는 사용하기 쉽고 군인들과 환자들이 항상 이용할 수 있는 실용적이고 휴대용 장치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라이스대 주도로 개발되는 뇌 자극 및 조절장치는 다양한 방법으로 뇌에서 신호를 얻는 웨어러블 하드웨어(HW)로 구성된다. 뇌 신호는 머리에 쓰는 수면 모자에 붙인 여러개의 센서로 수집된다. 이 신호들은 새로이 설계된 알고리즘으로 처리된다. 이어 신경 조절 장치가 뇌 속의 뇌척수액 흐름을 자극할 수 있다. 이는 뇌속 노폐물 배출을 활성화하게 될 것이다. 뇌의 능률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이때 수면모자에 붙은 여러개의 센서들도 다양한 역할을 하게 된다.
뇌파검사(Electroencephalography·EEG)센서는 뇌의 전기 활동을 측정하는 반면, 뇌파사진 검사(rheoencephalography·REG)센서는 혈액 흐름을 측정한다. 다른 센서들은 초음파 펄스를 사용해 유체 흐름을 측정한다. 즉, 궤도 초음파 홀로그래피 검사(OSG)센서는 이러한 펄스를 눈 소켓을 통해 보내는 반면, 경두개 초음파 도플러(TCD)초음파 센서는 이를 두개골을 통해 내보낸다. 그런 다음 경두개 전기 자극(TES) 및 저강도 초점 초음파 펄스(LIFUP)센서를 사용해 뇌속 유체 흐름을 제어할 수 있다.
라이스대 연구원들은 이 연구를 통해 수면 중에 일어나는 일을 더 잘 이해하고 수면과 신경 질환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연구를 통해 뇌의 체액 흐름을 측정하고 조절하는 휴대용 모자 기술을 개발하면 전투병사들은 물론 수면의 질이 낮은 일반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수면 평가 연구 테스트를 감독할 피다 샤이브 베일러대 교수는 “인간이 인생의 거의 3분의 1을 잠으로 보내지만, 수면의 역할과 그것이 인간의 생존과 기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통일된 이론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뇌속 노폐물을 치우고 뇌에 노폐물이 쌓이는 것을 막는 기술은 수면장애 환자들, 특히 알츠하이머와 같은 신경 퇴행성 질환 위험에 처한 환자들과 관련이 있다”고 설명한다.
라이스대 엔지니어들은 건강한 자원 봉사자들 및 수면 장애 환자들과 작업해 개발한 기술을 휴스턴 감리교대와 베일러의대를 통해 평가받게 된다.
미육군은 다년간의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는 이 연구를 위해 첫 해에만 280만 달러(약 33억원)을 지원한다. 이 지원금은 의료기술기업컨소시엄(Medical Technology Enterprise Consortium)을 통해 연구팀에 전달됐다. 라이스대 합동 연구 팀은 1년 안에 첫 번째 예비 결과를 발표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브리츠 박사는 “이 전례 없는 협력은 우리에게 우리 군인들을 돕기 위한 더 많은 아이디어를 줄 뿐만 아니라 모든 뇌 질환을 빠르게 실시간으로 조사하고 치료하기 위한 불씨를 제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미 충분히 그림이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이 연구가 성공해 군사용으로보다 오히려 수면장애 환자나 치매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기대해 본다.
소셜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