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디지털 교과서’의 내년 도입을 앞두고 최근 기업들을 대상으로 심사 참여 접수가 진행됐다. 1차 심사는 다음달 24일이니 꼭 한 달을 앞둔 셈이다. 이에 참여 기업들은 한꺼번에 많은 인원이 AI 디지털 교과서를 사용할 시 문제가 될 수 있는 인터넷 연결, 프로그램 오류 등을 점검하며 막바지 기술검증과 보완 작업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정부는 1차 심사 이후 보완작업을 거쳐 오는 11월 말 최종 결과를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은 기존 일방향 위주로 진행되던 학교의 수업 방식을 학생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 학습 콘텐츠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골자로 한다. 이 외에도 특수교육대상 학생과 장애교원을 위한 화면해설과 자막 기능, 다문화 학생을 위한 다국어 번역 기능 지원도 포함돼 있다. 학생들은 지난 2022년부터 각 교육청에서 배포한 테블릿 PC ‘디벗(디지털 벗의 줄임말)'을 통해 AI 디지털 교과서를 접하게 된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교과서 개발 경험을 보유한 발행사와 신기술을 보유한 에듀테크 기업이 협업해 사업에 참여하도록 했다.
AI 디지털 교과서 개발 참여사들에게 교육부가 우선 주문한 사항은 유해 콘텐츠 차단 등 윤리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선 학교 역시 2022년 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디지털 소양 교육을 포함해 정보 평가, 정보통신윤리, 과몰입 예방 등 디지털 문해력 향상을 위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우선 정부에서 언급하는 장점만 꼽자면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으로 인해 학생들은 학습 수준과 속도에 맞는 배움으로 학습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학부모 역시 학습정보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녀의 학습 능력과 수준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교사의 입장에서는 학생 개개인의 학업 성취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고, 학생의 인간적 성장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게 된다.
현장 도입 7개월 앞두고 시제품 접한 교사들 ‘어리둥절’… 학부모 우려도
AI 디지털 교과서를 교육 시스템에 전면 도입하는 것은 세계 최초라는 상징성이 있다. 시행 초기에는 교사의 재량으로 디지털 교과서와 종이책을 병행해 사용할 수 있다. 핵심은 학생 개인 별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이 가능해 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디지털 교과서에 탑재된 AI가 실시간으로 수업 참여율과 정답률을 분석해 각 학생들이 진도를 따라가는 속도에 맞춘 문제를 제공하게 된다. 또한 교사는 학급 수준에 맞춰 동영상이나 만화와 같은 학습 자료 링크를 삽입하는 등 교육 자료를 재구성해 수업을 진행할 수도 있다.
이러한 방향성을 바탕으로 개발된 AI 디지털 교과서의 시제품이 첫 공개된 것은 지난 7일 교육부 주최로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교실혁명 컨퍼런스’ 행사였다. 문제는 아직까지 탑재된 기능이 학생 수준 진단과 진도 측정 등 기본 기능에 국한돼 있다는 점이다. 시제품을 접한 교사들은 적잖은 수가 ‘이미 학교에서 쓰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라 무엇이 새 기능인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직 시제품 단계이고 검정 과정을 거쳐 오는 11월 정식 제품이 선보인다고 하지만, 당장 내년 3월부터 수업에 적용해야 하는 교사들로서는 충분한 연수 기간을 확보하지 못해 난감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교육부는 수업 혁신에 맞춰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데 초첨을 맞췄다는 입장이다. 또 아직 검정 심사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완성본을 공개하는 것은 공정성 문제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학부모의 우려도 적지 않다. 앞서 지난달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전국 학부모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찬성하는 학부모는 30.7%에 그쳤다. 학부모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디지털 기기 의존 우려’가 39.2%로 가장 많았다. 실제 앞서 학생들에게 제공된 ‘디벗’ 역시 같은 문제가 있었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받은 ‘디벗’의 제어 프로그램을 우회해 웹툰이나 게임, 유튜브 시청을 하는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해 10월 서울시교육청은 디벗의 유해사이트 차단 프로그램 강화, 초등학생의 경우 학교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등의 개선안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학부모들이 근본적으로 AI 디지털 교과서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학교에서 선생님과 아이들이 같은 공간에 있는데 왜 굳이 기계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맞춤형 교육은 최초 시도, 시행착오 불가피해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과 함께 교육 당국이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맞춤형 교육’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기자 역시 과거 학급 당 인원이 50명이 넘었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맞춤형 교육’이라는 단어가 꽤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교사 한 명이 그 많은 학생을 모두 챙기는 것은 불가능했던 시절…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다시 고등학교로 수업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수업 따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멍하니 앉아 있거나 자는 학생들의 비율이 많아졌던 장면도 떠오른다. 특히 수학의 경우 ‘수포자’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수업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과거에 비해 학생 수가 크게 줄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AI 디지털 교과서’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을 보면, 교사 한 명 당 여전히 가르쳐야 할 것은 많고 모든 학생을 다 챙기기 힘든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과연 ‘AI 디지털 교과서’로 인해 교육 당국이 이야기하는 ‘맞춤형 교육’이 실현될 수 있을까? 그리고 적정한 기간을 둔 검증 과정 없이 교육 현장에 전면 도입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려의 목소리 중 하나는 과연 사람이 아닌 AI 디지털 교과서로 제대로 된 맞춤형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AI가 학생 개개인의 학습 태도와 이해도를 측정하고 그에 알맞은 학습 자료를 제공한다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도, 이를 접하는 학생이 과연 충실하게 집중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기존 일방향적 강의 방식보다 맞춤형 교육이 효과적일 수 있지만, 변수는 이를 접하는 학생들이 자기 절제와 확고한 목적성을 갖지 않은 미성년자라는 점이다.
실제 한 연구팀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람이 직접 가르치는 맞춤형 교육 방식, 가령 ‘멘토링 교육’에 비해 사람이 ‘기기 관리자’로 한정된 방식의 학습은 실패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보고서에서 각 상황의 성공과 실패 요인을 분석한 결과 성공 사례로 꼽힌 멘토링 강사들이 공통적인 비결로 꼽는 것은 다름 아닌 ‘학생과 상호 신뢰 관계 형성’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한편으로 AI 디지털 교과서와 관련해 학생별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는 설문 결과도 있다.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KEDI)의 설문에 따르면 교사들 중 절반 이상이 학교 수업에서 AI 기반 맞춤형 교육의 필요성에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이를 활용한 교육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실제 KEDI 설문 결과에 따르면 AI 기반 맞춤형 교육 서비스를 ‘들어봤지만 사용해보지 않았다’고 답한 교사들이 응답자의 40.6%, ‘들어본 적 없다’가 21.3%를 기록했다. 사용해 보지 않은 교사들이 디지털 교육 서비스 활용을 꺼린 사유로는 “제한된 수업 시간에 추가적인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 부담이다”, “수업 중 디지털 기기의 활용과 관리가 어렵다”는 등이 있다.
관건은 교사가 얼마나 제대로 사용하는지에 달려
이제까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AI 디지털 교과서 성공의 핵심은 현장 교사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부 역시 디지털 기반 수업 혁신을 이끄는 교수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올해 특별교부금 3818억원을 투입하고 있다.
앞서 연구 결과를 보더라도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 확정된 상황에서 교사는 관리자가 아닌 능동적인 교육자가 돼야 한다. 모든 학생이 태블릿 PC를 통해 지능형 튜터링 시스템 하에 메타버스, 대화형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이 적용된 AI 디지털 교과서로 학습을 한다고 해도, 결국 개별 학생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교육법을 정하는 것은 교사이기 때문이다. 결국 교사들의 부담이 더 늘어나는 상황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선 교사들은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과 관련된 논란을 뒤로한 채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방식을 고민하는데 팔을 걷어 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난 8일부터 3일간 서울 코엑스에서 진행된 ‘제15회 2024 에듀플러스위크 미래교육박람회’ 현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행사 기간 중 진행된 교사연수회 프로그램은 각 세션 별로 자리를 가득 채운 교사와 교육 관계자들로 성황을 이뤘다.
이중 티처빌원격교육연수원이 주관한 ‘AI 디지털 교과서를 마주하다’ 프로그램에서는 김수환 총신대 교수의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따른 교사의 역할’을 주제로 한 기조 강연에 이어 서울시교육청 장학사와 각 학교 에듀테크 선도교사들이 모여 각자 교실에서 진행했던 디지털 교육 사례를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날 강연에 나선 김수환 총신대 교수는 초등학교에서 15년, 중학교에서 2년간 교사로 몸담았고 이후 컴퓨터 교육 전공으로 12년 간 대학에서 연구를 진행한 전문가다. 김 교수는 본인이 처음 훈련 받았던 1999년 당시에도 비슷한 흐름이 있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정부에서 학교에 컴퓨터실을 지어주면서 세계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을 가장 잘 사용하는 국민을 만들겠다는 정책이 진행 된 적 있었죠. 지금 상황은 당시에서 주어만 바꾸면 됩니다. AI 디지털 교과서로 학생들을 교육시켜 ‘AI를 잘 쓰는 국민을 만들겠다’는 거죠. 그렇다면 AI를 쓴다는 것이 교육에서는 어던 의미일까요?”
데이터 넘어 아이들의 잠재력을 바라볼 수 있는 눈 필요
이날 강연에서 김 교수는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의 배경이 된 두 보고서, ‘OECD 2030 미래교육 나침반’ ‘유네스코 2050 미래교육 보고서’를 인용했다.
김 교수는 “이들 보고서는 앞으로 디지털 환경에서 아이들은 지금까지 현대 교육 과정이 갖고 있는 일률적인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방식의 다양한 경로로 공부를 하는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며 보고서에 언급된 ‘교육이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지적했다. 이른바 ‘소셜 페인(social Pain)’이다.
“1차 산업혁명 당시 기술 발전을 교육이 못 따라고 사회에서 원하는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니 사회적 고통의 시기가 찾아 옵니다. 기업으로서는 대학까지 마친 친구들을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없기 때문에 다시 교육을 시켜야 하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개인으로서는 충분히 교육 받았지만, 사회에서 자기가 원하는 직종, 직업을 제대로 수행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니 사회적으로 막대한 비용과 고통이 따르는 거죠. 하지만 이후에는 번영의 시기가 옵니다. 교육을 충분히 받고 사회에 나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시기죠. 이어 다시 디지털 혁명 시대가 도래하고 기술은 재차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발전합니다. 다시 사회적 고통이 점점 더 커지는 시기가 온 거죠.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레이커즈와일은 이 시기가 지나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지나 트랜스 휴머니즘 시대가 온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시점이 2030년 초반이예요.”
본론으로 들어간 김 교수는 “트랜스 휴머니즘 시대를 앞두고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한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디지털 교육 환경과 AI 디지털 교과서의 역할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2016년 있던 것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 AI의 발전 과정과 챗GPT 의 등장을 짚으며 말을 이어갔다.
“이제는 낭만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그걸 이세돌 9단이 2016년에 아무 준비 없이 온몸으로 맞은 거죠. 앞으로 아이들은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도덕과 윤리 체계, 법 체계에서 살아가게 될 겁니다. 유럽에서는 몇 해 전 로봇에게 인격권을 줄 것인지 여부에 대한 논의가 있기도 했죠. 이는 로봇에게 세금을 징수한다는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인간은 기본 소득을 누리겠다는 겁니다.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예요.”
이어 김 교수는 “불과 10년 뒤 아이들이 마주할 세계는 사람이 인공지능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할 것”이라며 영국왕립협회에서 발행되는 보고서 내용 등을 인용하며 ICT 교육과 디지털 리터러시의 필요성, 컴퓨터 사이언스 교육의 필요성 등을 언급했다.
문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처한 상황이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지금 교사들은 자신들 역시 접하지 못한 시대에 대한 대비를 아이들에게 시켜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교원이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이 부족하다는 문제는 다른 나라 역시 느끼는 문제”라면서도 “결국 교육을 바꾸는 것은 AI가 아닌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좋은 수업은 좋은 기술을 적재적소에 쓰는 것이지 화려한 기술을 구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 현혹되지 마세요. AI 디지털 교과서의 모든 기능을 다 쓰는 게 좋은 수업이 아닙니다. 반드시 기억하셔야 할 것은 교사를 AI, 또는 AI 관련 기술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특정 부분에서 계속 AI나 기술을 쓰다보면 결국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의 전문성은 수업과 평가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평가를 AI에게 맡기면 어떻게 될까요? 선생님들의 전문성은 점차 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잘 쓰면 전문성을 높일 수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기술을 이용할 때 아이들에게 어떤 경험을 줄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겁니다. 교육을 바꾸는 것은 결국 사람입니다. AI를 아는 교사들, AI를 아는 개발자와 정책자들이 교육을 바꿉니다. 여러분들이 가져야 할 것은 데이터 너머에 있는 아이들의 잠재력을 바라볼 수 있는 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