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의 커머스 사업이 마침내 역성장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네이버의 2023년 4분기 실적 보고에 따르면, 전체 커머스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4.9% 성장(포시마크 인수 효과 제외 시)에 그쳤는데요. 이는 통계청이 발표한 4분기 이커머스 거래액 성장률 10.6%(잠정치)의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네이버 김남선 CFO는 지난 2022년 2분기 실적 보고에서 네이버와 쿠팡을 제외한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전부 역성장할 거라고 예측했었는데요. 불과 1년 만에 네이버마저 같은 신세가 되어버린 겁니다. 이러한 거래액 역성장은 네이버가 커머스를 포함한 전체 사업 부문에서 역대급 성적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이커머스 시장 내 영향력은 오히려 축소될 것을 예고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현상은 네이버 하나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커머스 업계 전체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기도 합니다.
과거 한국 이커머스 시장은 아마존, 알리바바와 같은 독과점 사업자가 나오기 어려운 특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고객들이 쇼핑의 첫 시작을 네이버 가격 비교 검색과 함께 했고요. 셀러들은 솔루션을 통해 한 번에 여러 오픈마켓에 동시에 상품을 등록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격과 상품 구색 측면에서는 그 어떤 사업자도 차별화된 경쟁 우위를 가질 수 없었는데요. 그래서 대부분의 경쟁 양상은 네이버 상위 노출을 확보하기 위한 쿠폰을 붙이는 정도에 그치곤 했습니다.
하지만 스마트스토어가 탄생하면서, 커머스 플랫폼들은 네이버로부터의 독립을 꿈꾸기 시작합니다. 스마트스토어는 낮은 수수료를 무기로 셀러들을 끌어모았고요. 이는 기존 플랫폼들의 입지를 위협했습니다. 여기에 네이버의 플랫폼 지배력 남용 이슈도 있었고요. 그리고 쿠팡의 등장은 이러한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킵니다. 쿠팡은 가격과 구색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경쟁 요소인 편의성 측면에서 압도적인 고객 경험을 제공하며, 고객이 네이버 검색이 아닌 쿠팡 앱을 먼저 찾도록 만들었는데요. 다른 플랫폼들 역시 이를 벤치마킹하여 네이버 의존도를 줄이고, 앱 비중을 급격히 늘려 나갑니다.
이제 고객들은 온라인 쇼핑 시 네이버에서 검색하기보다는 선호하는 쇼핑몰 앱에 바로 접속하고 있습니다
특히 작년과 재작년에 불경기가 심화되자, 플랫폼들은 불필요한 마케팅 지출을 줄이고, 충성도가 높은 앱 고객에 더욱 집중하였는데요. 실제 데이터로도 쿠팡, 티몬, 위메프 등 주요 오픈마켓들과 무신사와 같은 버티컬 플레이어의 앱 비중은 크게 늘어난 반면, 네이버 쇼핑 내 클릭량은 역으로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흐름은 더욱 강화되어 갈 것이고요. 이에 따라 네이버의 시장 지배력은 지속적으로 약화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2020년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김연희 당시 대표는 이커머스 시장을 카테고리 기준으로 생필품(Commodity), 식품(Grocery), 패션 및 뷰티(Vertical)라는 3가지 형태로 구분하며, 특히 생필품에서 네이버가 강력한 검색을 기반으로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견했었습니다. 다만 검색 단계부터 고객이 이탈하자, 네이버 커머스 사업 전체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인데요. 더군다나 초저가를 무기로 한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이 등장하면서 가격 비교의 가치는 더욱 떨어지고 있습니다. 애써 키운 셀러 생태계 자체가 중국 도매에 의지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러하고요. 그런데 그렇다고 네이버가 식품을 강화할 수도 없습니다. 네이버는 장보기 커머스에 필수적인 배송 역량이 부재하고요. 따라서 쿠팡과 컬리와 직접 경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래서 네이버는 버티컬, 특히 패션 카테고리에 집중 투자하고 있습니다. 기존 공식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버티컬에서 찾고자 함인데요. C2C 패션 플랫폼 포시마크 인수부터 패션 관련 서비스를 통합한 패션타운 오픈, 크림의 신규 투자 유치 등이 모두 이러한 결에서 일어난 액션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최근에는 바로 부인하긴 했으나, 에이블리 인수를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기사화되기도 했고요.
다만 문제는 여기에도 무신사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이미 무신사는 신진 패션 브랜드와 동반 성장하는 생태계를 구축하였고요. 전통적인 패션 브랜드들은 네이버와 손잡기보다는 D2C 채널 육성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네이버의 고심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어 보이는데요. 앞으로 네이버가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찾아갈지 꾸준히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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