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버린 네이버 주제판
네이버가 일부 언론사들과 손을 잡고 야심 차게 시작했던 '조인트벤처(JV)'는 네이버 메인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전면에 배치되어 (각 성격에 맞는) 주제판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해왔다. 사용자 설정에 따라 다르기야 하겠지만 어쨌든 네이버 메인을 장식할 수 있는 공격적이고 전략적이며 효과적인 (하나의 매체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로 자리해왔다. 그 시작은 조선일보의 '잡앤(JobN)'이었다. 조선일보를 포함해 중앙일보, 한겨레, 매일경제, 경향신문, 한국일보 등 다양한 언론사들이 조인트벤처를 설립해 관계자들을 대거 이동시키거나 신규로 채용하기도 했다. 당연하지만 네이버라는 공간을 활용하게 되므로 네이버로부터 일정한 가이드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채찍'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일정 금액의 콘텐츠 대가도 지급받아왔다. 언론사는 네이버로부터 받은 금전적 지원과 더불어 먹고살기 위한 프로모션을 진행하기도 했다. 취업정보, 여행, 영화, 중국, 비즈니스, 공연/전시, 디자인 심지어 애완동물에 이르기까지 10개 이상의 주제판 즉 조인트벤처가 생겨났고 5년이라는 세월을 거쳐왔다. 네이버는 이러한 주제판 자체를 '백화점'이라고 표현했다. 그렇지 않아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백화점인데 그것도 1층에 자리를 내어준 것과 다름이 없음에도 매출이 나지 않을 뿐 아니라 미래를 장담하기조차 어렵게 되니 서서히 종료 수순으로 이어졌다. 조인트벤처 측에는 사전에 예고했을 것이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용자들에게도 주제판의 끝을 2021년 12월 30일이라며 공지하기도 했다. 당시 네이버는 '사용자 니즈에 따른 메인 개선'이라고 표현했다. 일부 조인트벤처는 문을 닫은 이후 네이버로부터 받았던 지원금조차 반토막 수준이 되었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즐겨보던 주제판은 전자신문의 테크플러스, 디자인하우스의 디자인프레스, 매일경제의 여행플러스, 경향신문의 올댓아트 등이었다. 비즈니스 차원에서 연락을 주고받았던 조인트벤처도 있었지만 그나마 콘텐츠를 꾸준하게 받고 있는 곳은 테크플러스와 디자인프레스다.
테크플러스는 텔레그램의 푸시 알림(메시지)을 통해 테크플러스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게시글을 아웃링크로 볼 수 있도록 했다. 메시지로 링크를 던지는 셈이다. 그리고 하루도 쉬지 않고 여러 개의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한다. 디자인프레스는 뉴스레터 '헤이 팝'을 론칭하여 서비스하고 있다. 디자인을 다루는 미디어이지만 디자인을 포함하여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콘텐츠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간 조인트벤처는 영업할 수 있는 매장 자체를 잃었지만 콘텐츠를 꾸준하게 생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역시 계약에 따른 것으로 네이버는 콘텐츠 제공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었다. 물론 주제판이 있을 그 당시보다 훨씬 더 적은 금액이기도 하고 지원금 자체가 삭감되었으니 인력 자체도 꽤 줄어들었을 것이다. 비용도 반토막 수준이지만 인력도 규모도 크게 줄어든 셈이다.
당시 백화점 1층에서 자신의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웠던 조인트벤처는 브랜드마저 잊혀질 위기에 처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저 네이버라는 거대한 간판 뒤에서 보이지 않을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는 셈이 아니던가. 일부 미디어에서는 네이버의 갑질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네이버 입장에서 언론사와 함께 윈윈 하기 위한 방안으로 생각했던 일종의 묘책이었는데 언론사는 네이버에 기댈 뿐 뾰족하게 성과를 이뤄내지 못한 것일테니 누구를 탓할 수 있으랴.
기자협회보(본문 하단 링크 참조)에도 잘 나와있지만 네이버의 지원금이 삭감된 것보다 네이버 주제판을 바탕으로 브랜드를 내세울 수 있었던 '네이버 효과' 자체가 사라진 것이 더욱 힘들다고도 했다. 여기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네이버에 대한 의존도다. 결국 미디어는 뉴스 유통 자체를 국내외 포털과 SNS 등에 의존하고 있다. 포털은 뉴스 편집 권한 자체로 언론사를 뒤흔든다고 말한다. 사람 대신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쓴다고 해도 이를 믿지 않는 형국이다. 알고리즘 자체도 사람이 손을 대는 것이고 그 안에 화이트리스트와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추측'인 것이다.
하지만 알고리즘을 피하기 위한(혹은 이를 관통하기 위한) 속보나 단독의 경쟁 역시 어뷰징으로 이어지는 추세라 투명한 저널리즘은 온데간데 없이 저급한 낚시성 기사만 난무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만일 포털의 뉴스 편집 권한 자체를 독점이라 보고 이를 중단하려는 움직임이 거세지면 그때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정부 차원에서도 포털에 대한 규제의 목소리를 내세우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포털을 막기 위한 포털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더구나 포털이든 언론사 홈페이지든 뉴스를 소비하는 창구도 다양해졌고 심지어 구독 저널리즘을 통한 깊이 있는 콘텐츠를 돈을 주고서라도 보는 시대가 되지 않았던가. 이제 더 이상 뉴스라는 콘텐츠는 메리트가 없을 정도다. 그나마 네이버와 함께 주제판을 구축하고 기존의 뉴스가 아닌 재미도 깊이도 전략적으로 노렸던 콘텐츠 자체를 생산해왔던 조인트벤처인데 그것조차 사라진 것이 아닌가.
언론사가 한순간에 망할 수는 없다. 아주 작은 소규모의 매체라면 분명히 위태로울 수 있다. 5년이라는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이러한 조인트벤처 사례를 발판 삼아야 하겠다. 무조건 네이버 갑질이니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조인트벤처로서 콘텐츠를 생산하고 주제판을 운영하고 또 다른 이벤트를 진행했던 경험들을 되살려 자신의 경쟁력으로 삼기 위한 '시행착오'라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더불어 네이버에 대한 의존도 자체를 줄일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겠다. 네이버나 카카오 모두 천년만년 언론사를 위해 남아있지도 않을뿐더러 탈포털을 위한 언론사의 자생력을 지금이라도 키워야 하지 않을까.
다음의 뉴스 개편, 또?
다음이 또다시 뉴스 서비스를 개편했다. 카카오는 다음(Daum) 뉴스라는 브랜드명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그 이름 아래에서 수차례 리모델링을 해왔다. 기본적으로 어뷰징을 양산하는 실검(실시간 검색어) 자체를 없앴고 연예인 등 셀럽들의 2차 피해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연예뉴스의 댓글도 폐지했다. 물론 이는 네이버도 마찬가지다. 댓글 폐지의 경우 스포츠 뉴스 역시 마찬가지로 적용되어 연예, 스포츠 모두 댓글을 달 수 없도록 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특정 뉴스 섹션에서는 여전히 댓글이 유지되고 있고 일부 언론사는 연예, 스포츠 뉴스를 일반 뉴스 섹션에 슬쩍 넣기도 한다.
카카오는 몇 개월 전 '카카오 뷰'라는 나름의 구독 모델을 론칭해 서비스했다. 언론사는 물론이고 개인이 카카오 뷰를 만들어 일종의 '크리에이터'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했다. 콘텐츠를 따로 제작해 카카오 뷰에 큐레이션 할 수도 있었지만 대다수 링크를 끌어와 카카오 뷰의 '보드'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어떠한 의도였을까? 그저 구독 개념의 출발점이었을까? 의도가 무엇이든 카카오 뷰에는 연예, 유머 등 가십거리만 난무했다. 아주 깔끔하게 정제되어 읽을거리가 있는 고퀄리티의 콘텐츠는 거의 없고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것들만 '난립'하기도 했다. 이에 언론사들도 그러한 콘텐츠를 이어가기도 했다. 더구나 카카오 뷰를 소비하는 유저도 많지 않았던 터라 결국 이를 뒤집었다. 또 한차례 뉴스 서비스가 개편된 것이다. 카카오는 다음 메인에서 카카오 뷰를 전면적으로 제외하고 카카오톡에서만 볼 수 있도록 했다.
다음 메인에서 카카오 뷰가 사라진 뒤 새롭게 생겨난 것은 '언론사 홈'이었다. 이는 네이버의 언론사 편집판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사용자가 직접 언론사를 구독할 수 있도록 했다. 실시간 뉴스도 최신, 개인화, 탐독 순으로 나누어 제공한다. 이렇게 되면 보다 다양한 뉴스가 랜덤으로 노출될 것이다. 언론사 편집권 강화를 위해 네이버와 유사한 언론사 편집판 즉 언론사 홈을 신설하여 언론사가 직접 기사 배열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네이버와 절대적으로 다른 것은 인링크와 아웃링크의 선택지다. 이는 언론사의 취사선택에 맡긴다. 또 한 가지 다른 것은 1분 내외의 짧은 동영상 뉴스 서비스다. 나름 카카오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하지만 숏폼을 뒤늦게나마 따라가는 '오늘의 숏' 서비스다.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릴스 여기에 네이버 모먼트까지 다양하게 서비스하고 있는 숏폼 시대에 카카오도 이를 쫓게 된 것이다. 또한 뉴스 알고리즘 검토를 위한 협의체도 구성했는데 이 역시 네이버와 결코 다르지 않다.
자, 이러한 개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위에서도 언급했듯, 포털의 편집 인력의 뉴스 배열 권한을 네이버 에어스(AiRS)나 카카오 루빅스 등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전환했음에도 결국 언론사에 편집 권한을 부여하는 형태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인공지능 테크놀로지 발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편향성 시비와 논란, 규제들로 인해 또다시 변화를 선택해야 하는 꼴이라 포털로서는 딱히 뾰족한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 이른 결과다.
그러나 포털의 '알고리즘'이라는 것은 포털의 입맛에 맞게 이리저리 바꿀 수 있어 언론사와의 상생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했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있다.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검증하고 검토하는 위원회가 생겼다고도 했지만 결국엔 언론사가 직접 기사를 선택해 배열할 수 있도록 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언론사는 얼마나 고퀄리티의 콘텐츠를 다루게 될까. 결국 클릭을 위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을까? 포털이 우려하는 것도 결국 이러한 것이다. 혹자는 '고양이에 생선을 맡기는 꼴'이라고도 했다. 언론사의 자정적 능력을 시험할 때다.
언론사와 함께 했던 네이버 주제판은 사라지고 언론사와 함께 하던 다음 뉴스는 이렇게 개편되면서 또다시 변화를 맞이했지만 뭔가 반복되는 느낌이다. 어디선가 많이 봤던 서비스가 '신규'로 나오기도 하고 개편되었다고 말하지만 과거에 묻혔던 것을 꺼내온 것 같은 느낌이랄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크다는 '양대포털'이 포털에 종속된 언론사를 좌지우지하기도 했지만 정부의 거센 입김과 눈에 보이지 않는 (언론사와의) 충돌로 인해 별다른 카드 없이 없는 포털은 깊은 고민과 우려 끝에 비슷한 길을 가게 되었다. 그 길 끝에는 또 어떠한 갈림길이 있을까? 포털과 언론사는 '상생'이라는 키워드를 제대로 키워낼 수 있을까? 탈포털을 꿈꾸는 언론사는 자신들이 맞이한 숙제를 잘 인지하고 있을까? 상생까지는 아니어도 저널리즘을 죽이는 행위가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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