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네이버에서 40대 개발자가 상사의 갑질로 인해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에도 카카오, 크래프톤 등 근무 환경이 좋다고 알려진 곳에서도 끊임없이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이 이어지며 IT업계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의 심각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네이버의 경우 단순한 직장 내 괴롭힘 문제로 일단락되지 않고, 노조의 극렬한 반발과 함께 사태가 일파만파 확대되는 양상이다. 사건 발생 후 네이버는 리스크관리위원회를 통해 자체 진상규명에 나서며 직원 사망 한 달 뒤인 지난 6월 25일 고인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이 실제 발생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 결과 직접 가해자로 지목된 책임리더는 해임됐지만, 가해자를 비호했다는 증언이 나온 최인혁 COO(최고운영책임자)에 대해서는 경고 조치에 그치는 징계가 내려졌다. 같은 날 최 COO는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며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노조의 반발은 더욱 커지며 급기야는 이를 두고 네이버 내부의 문제만이 아닌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을 둘러싼 구 금융의 신 금융 견제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는 상황이다.
기름에 불 끼얹은 안일한 대처, 네이버 노조 반발 극심
동료의 죽음 이후 이뤄진 네이버 사측의 조치는 한껏 성이 난 노조의 불만을 잠재우지 못했다. 최 전 COO가 비록 최고운영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네이버파이낸셜과 해피빈재단 등 계열사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노조는 최 전 COO에 대한 회사의 징계를 ‘솜방망이 처벌’이라 비판하며 지난달 28일 오전 10시 네이버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료 사망 사건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노조 측은 “최 전 COO를 네이버(본사) 뿐 아니라 전 계열사 임원과 대표직에서도 해임하라”며 “재발 방지를 위한 노사 위원 동수의 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노조 측은 “지난 6월 23일까지 고인의 전현직 동료 60여명을 인터뷰하고, 고인과 주고받은 메일과 메시지 등을 조사한 결과 고인의 죽음은 회사가 지시하고 묵인한 업무상 재해로 결론났다”며 “현재 진행 중인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수사 결과 형사상 책임이 밝혀질 시 그 또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조 측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인과 일부 직원들은 해임된 전 책임리더를 비롯한 몇몇 임원들로부터 2년 이상 야간 및 휴일 근무가 불가피할 만큼 과도한 업무 지시와 모욕적인 언행 등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의 연봉 인상 및 성과급, 스톡옵션 부여, 업무 변경 등의 인사 권한이 임원에게 있었기에 대놓고 반발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직원을 중심으로 일부 저항이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참지 못한 일부 직원들을 중심으로 지난 2019년부터 몇 차례 문제제기를 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최 전 COO는 ‘문제가 발생하면 내가 책임지겠다’는 취지의 답을 하며 무마해 왔다. 또한 같은 해 고인을 포함한 14명이 다시 의견을 모아 최 전 COO에게 해당 책임리더의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했지만 약 2주 뒤 해당 책임리더는 승진을 하고 문제를 제기한 14명 중 4명이 팀장직에서 해임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조사 결과를 내놓은 네이버 노조는 이어 29일 출근길 피켓 시위와 온라인 집회를 열고 ‘이해진 GIO와 한성숙 대표의 책임론’까지 언급하며 반발을 이어나갔다. 올해 3월 네이버 창업자인 이 GIO(글로벌투자책임자)와 한 대표가 참석한 회의에서 해당 책임리더와 관련된 문제 제기가 한 번 더 있었지만 원론적인 답변만 있었을 뿐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급기야 스튜어드십 발동 요청
극렬하게 반발하는 노조의 움직임에 결국 지난 6월 30일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GIO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직원이 발생한데 대해 “그동안의 일들은 모두 제 잘못과 부족함이 제일 크다”며 공식 사과했다. 또 이 GIO는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은 회사 문화의 문제로, 한두 사람 징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며 “더 젊고 새로운 리더들이 나타나며 전면 쇄신하는 것이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해결책”이라고 밝히며 올해 연말까지 경영체계 쇄신을 약속했다.
이 GIO가 전면에 나서 공식 사과까지 했지만, 노조의 반발은 무마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 9일 네이버 노조는 온라인 집회 ‘네이버 리부트 문화제’를 통해 올해 1분기 말 기준 10.3%에 달하는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가 투자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는 의결권 행사 지침) 발동을 요구한 것이다. 또한 여전히 네이버파이낸셜 및 해피빈재단 대표를 맡고 있으며 이해진 GIO의 측근으로 알려져 있는 최인혁 전 COO의 해임안을 주주총회에 상정해달라는 요구도 덧붙였다.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아직 네이버 노조가 공식적으로 국민연금 측에 스튜어드십 코드 발동을 요청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또 네이버 노조의 요청이 받아들여 진다고 해도 실제 스튜어드십 코드가 발동되기 위해 정해진 절차가 진행되려면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또다른 이야기, 구 금융권과 신 금융의 갈등?
이러한 상황에서 네이버 노조를 둘러싼 또 다른 이야기가 일부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도 했다. 카카오, 넥슨, 크래프톤 등 주요 IT기업에서 이어지는 직장 내 괴롭힘 문제 해결을 위해 네이버 노조가 주축이 된 ‘IT산별 노조’ 출범 가능성이다.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사측의 각성을 이끌어 내고 실질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관련 업계 종사자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네이버 노조가 사측과 임단협(임금 및 단체협상) 등 주요 협상을 벌일 때마다 ‘원리원칙’만 고수하는 최 전 COO에 대한 불만이 컸고 향후 한성숙 대표의 유력한 후임으로 거론되기도 한 최 전 COO를 견제하기 위한 의도도 포함돼 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하지만 이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며, 이러한 소문의 근원지는 금융까지 영역을 넓히는 네이버를 견제하는 세력 쪽이라는 이야기도 돌고 있다.
실제 네이버 파이낸셜의 등장을 달가워 할 기존 금융권의 기업이나 노조는 없는 상황이라 이와 같은 이야기는 일견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기존 금융 기업들은 이미 카카오뱅크를 비롯해 토스 등 IT기업들의 금융 진출로 인해 시장이 나뉘는 경험을 하고 있다. 거기에 네이버 파이낸셜이 등장하며 1금융권이 외면했던 신용등급 낮은 소상공인, 서민 대상 무담보대출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 이뤄지자 경계감은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각 금융기업의 노조 역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IT기술로 무장된 빅테크 기업들의 금융 진출로 기존 금융권의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등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네이버, 카카오 등 빅테크 기업들의 금융업 진출 길을 터주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논란도 이러한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실제 기존 금융권에서는 “전금법 개정안이 지나치게 빅테크 기업에 유리하다”며 ‘빅테크특혜법’이라는 별칭으로 부르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급한 것은 ‘직장 내 괴롭힘 문제’ 해결
네이버의 직장 내 괴롭힘 문제로 인한 직원의 극단적인 선택과 이를 둘러싼 노조와 사측의 갈등.
심지어 이러한 문제가 외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는 설까지… 이야기는 무성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명확한 것은 네이버에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고 그로 인해 40대 직원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이다.
여러가지 언급되는 소문을 차치하고 우선 해결되야 할 것은 이제까지 일해왔고 앞으로도 일해야 하는 네이버의 직원들, 그리고 더 나아가 ‘직장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내, 아버지이자 어머니, 아들이자 딸들이 목숨까지 끊을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는 것을 막는 일이다.
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 대응 매뉴얼’을 내 놓으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을 알린 지 이제 2년이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법안 시행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다양한 기업에서 불거지며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법 시행 이후 지난해 말까지 고용부에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건수는 7953건인 데에 반해 실제 검찰 송치로 이어진 건은 94건으로 1.18%에 그쳤다. 그 중에서도 검찰이 기소 의견을 낸 건은 29건에 불과하다. 이것이 대한민국 직장 문화의 현 주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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