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 인공지능(AI)이 우리 사업에 리스크가 되고 있다.”
넷플릭스가 본격적인 AI시대를 맞아 공식 문서에서 AI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의 대표적 엔터테인먼트 매체 버라이어티는 지난 28일 “넷플릭스가 다른 일이 없었다면 평소 같았을 26일자 연례 SEC 제출 보고서에서 ‘경쟁자들이 생성 AI를 사용해 경쟁력을 얻는다면 불리하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썼다”고 보도했다. 경쟁자는 디즈니, 유니버설 등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 “저작권법과 AI에 대한 공개된 질문을 고려할 때 AI가 생성한 자료를 사용하면 우리는 지재권 소송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감추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난해 세계적 영화 본산 할리우드에서 제작사와 작가·배우들이 커져가는 생성 AI의 영향력과 잠재적 파괴력으로 인한 변화속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가운데 넷플릭스가 새삼 ‘생성 AI’를 회사의 ‘위험’(리스크) 목록에 추가한 것이다.
넷플릭스가 무서워하는 AI리스크는 뭘까. 그리고 생성 AI, 특히 생성 비디오 AI의 성능은 어느 정도까지 온 걸까. 과연 생성 AI는 넷플릭스가 경쟁사들의 활용을 걱정할 정도로 뛰어나게 발전해 있는 걸까. 생성 비디오 AI까지 가세한 가운데 AI시대 미디어 시대의 중요한 축인 넷플릭스의 우려와 원인이 되고 있는 생성 AI를 둘러싼 기류를 버라이어티, 더버지, 아스테크니카를 참고해 살펴봤다. 지난해 여름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AI 활용에 반대하며 벌어졌던 작가, 배우들의 파업사태와 배경 및 이후 전개도 함께 소개한다.
넷플릭스 SEC 연례 보고서 속 우려의 실체는
넷플릭스는 지난 26일 미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10-K 보고서에서 비디오 경쟁의 한 섹션의 위험 요소(SEC 규칙에 따라 필요함)에 대한 긴 섹션 리스트에 새로이 ‘생성 AI’부분을 추가했다.
여기에는 “생성 AI의 개발과 활용을 포함한 새로운 기술 발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만약 우리의 경쟁자들이 그런 기술을 활용해 우위를 점한다면 우리의 효과적 경쟁력과 운영 결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쓰여있다.
이어 넷플릭스는 “또한 새로이 등장하는 기술의 사용이나 도입은 우리의 지적재산권 청구에 대한 노출을 증가시킬 수 있으며, AI 생성 자료에 대한 저작권 및 기타 지적재산권 방어에 대해 가용성은 불확실하다”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결국 넷플릭스 보고서는 경쟁사가 월등한 생성 AI 활용 기술로 앞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본 셈이다. 방송사, 영화사, OTT같은 콘텐츠 제작자 입장에선 기존 작품을 학습한 생성형 AI로 기본 구조나 초안을 만든 후 작가들을 참여시켜 완성도를 높이면 제작 경비를 줄일 수 있게 된다.
이와 함께 자칫 생성 AI를 사용했다가 저작권분쟁에 휘말려 비용증가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확실히 생성 AI에 대해 삽입된 변화는 큰 계획에서 볼 때 매우 작지만 이들이 넷플릭스와 같은 회사가 투자자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잠재적’ 위험 요소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생성 AI활용은 인간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점에서 잠재적 위험을 넘어 현실적인 해결 과제를 요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생성AI를 본격 활용할 시점이 올 수 밖에 없고, 이는 상당수 인간의 일을 대체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버라이어티는 회사가 AI를 사용하는 데 대한 넷플릭스 직원들의 반감은 점점더 고조되는 분위기라고 전한다.
일례로 지난해 7월 할리우드 작가들이 파업하는 동안 넷플릭스는 자사의 AI 기계학습 그룹에서 연봉 30만~90만 달러(약 4억~12억원)를 받고 일할 제품관리자 구인공고를 올려 파업 참여자들의 분노를 끌어 올렸다. 파업 중인 노조원들은 넷플릭스의 구인게시물에 울분을 토했다. 문제의 일자리 공고는 생성 AI 프로젝트 자체가 아니라 콘텐츠 개인화 및 결제 처리 시스템 최적화를 위한 AI 개발에 중점을 두었음에도 반발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외부의 경쟁자가 사용할 수도 있고 일반 소비자층이 사용하면서 콘텐츠를 생성하게 해 줄 수도 있는 생성 AI 기술, 특히 생성 비디오 AI 기술 발전은 가속되고 있다. 이는 어쩌면 넷플릭스, 유니버설, 디즈니 같은 회사들은 물론 틱톡으로 대표되는 숏츠 동영상 비즈니스 모델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치며 위협하게 될 수 있다.
넷플릭스 위협하는 대표 비디오 AI 세력에 런웨이, 피카, 메카 에뮤 이어 구글 가세
경쟁사들이 사용한다면 넷플릭스 경쟁력을 잃게 만들 기술로는 최근 나온 구글의 생성형 비디오 AI인 ‘뤼미에르’, 그리고 앞서 나온 런웨이와 피카랩스 AI가 대표적이다.
더버지는 구글의 최신 생성 비디오 AI ‘뤼미에르’가 아직 서투르긴 하지만 프롬프트(텍스트)만 입력하면 놀랄 만큼 생생한 동영상을 만들어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맨아래 동영상 참조)
실제로 구글의 뤼미에르는 기존의 비현실적인 AI 비디오 생성을 훨씬 더 실제에 가깝게 만들어 준다. 뤼미에르로 생성된 5초짜리 클립들은 AI 툴이 어떻게 프롬프트(텍스트)를 사실적인 동작의 비디오로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준다. (맨아래 동영상 참조)
뤼미에르는 특히 스페이스 타임 유 넷(STU넷)이라는 새로운 확산 모델을 사용해 물체가 비디오(공간)의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동시에 움직이고 변하는지를 파악해 낸다. 뤼미에르는 이 방법을 통해 더 작은 스틸 프레임을 결합해 영상을 만드는 대신 하나의 프로세스로 비디오를 만들 수 있다.
뤼미에르는 프롬프트에서 기본 프레임을 생성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STU넷 프레임워크를 사용해 해당 프레임 내 객체가 어디로 이동할지에 대한 근사값을 내기 시작해 서로에게 흘러들어갈 더 많은 프레임을 생성함으로써 원활한 동작의 영상을 만들어 낸다. 뤼미에르는 스테이블 비디오 디퓨전의 25개 프레임보다도 더 많은 80개 프레임을 생성한다.
더버지는 구글이 인쇄해 발행한 과학 논문과 함께 내놓은 짧은 동영상은 AI 영상 생성 및 편집 도구가 몇 년 만에 ‘불쾌한 골짜기’ 수준에서 거의 사실적인 것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불쾌한 골짜기’ 이론에 따르면 로봇으로부터 인간성을 발견하면 호감을 갖다가 어중간하게 인간을 닮은 부분에서 갑자기 거부감을 느끼게 되고, 그 수준을 넘어서 인간과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많이 닮게 되면 다시 호감도가 상승하게 된다.
이 매체는 뤼미에르가 생성한 동영상은 인공적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거북 동영상의 경우 물 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생성했다고 평가했다.
구글은 텍스트-투-비디오 부문에서 큰 역할을 하지는 못했지만, 천천히 더 발전된 AI 모델을 출시하고 좀더 복합적인 모드(멀티모드) AI에 초점에 기울였다. 더버지는 뤼미에르가 아직 테스트에 사용할 수 없지만, 런웨이나 피카 랩스 같은 일반적으로 사용 가능한 AI 비디오 생성기와 비교될 정도의 AI 비디오 플랫폼 개발 능력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뤼미에르는 이미지를 비디오로 생성하고, 사용자가 비디오를 특정 스타일로 만들 수 있게 하는 스타일화된 생성, 비디오의 일부만 애니메이션화하는 시네마그래프, 컬러나 패턴을 변경하기 위해 비디오의 한 영역을 수정하는 인페인팅(inpainting)까지 허용할 예정이다.
이처럼 한층 다양한 기능의 발전된 생성 비디오 AI 기술의 활용능력은 콘텐츠 제작사들의 경쟁력을 높일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글의 뤼미에르 관련 논문은 “우리의 기술로 가짜 또는 해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오용의 위험이 있으며, 우리는 안전하고 공정한 사용을 보장하기 위해 편향과 악의적인 사용 사례를 감지하는 도구를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며 이점 못지 않게 AI를 잘못 사용할 때의 부작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구글의 이 논문의 저자들은 이 문제 해결도구 개발 및 적용이 어떻게 달성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지난해 할리우드를 멈춘 작가,배우들의 파업 사태
지난해 콘텐츠 본산인 할리우드를 떠들썩하게 만들며 멈춰 세웠던 것은 AI 활용 이슈였다. 영화제작사(스튜디오)들의 AI 기술도입으로 자신들의 생계를 위협당할 것을 우려한 할리우드 양대 노조인 미국작가조합(WGA)과 배우·방송인노조(SAG-AFTRA)가 파업을 이어가 결국 그들의 주장을 관철시킨 것이다.
당시 막 뜨거워지기 시작한 챗GPT같은 생성 AI의 자동 글 생성 능력이 인간을 뺨칠 수준에 이르면서 인간 작가들과 AI(사용자) 간에 갈등과 충돌이 벌어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챗GPT를 사용하면 작가 여러 명이 머리를 싸매고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씩 들여 써오던 TV드라마·영화 대본을 순식간에 그럴 듯 하게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할리우드 제작자들은 AI의 디에이징(di-aging) 기술로 유명 배우의 젊은 시절 합성 얼굴모습과 목소리를 얼마든지 만들어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는 AI에 의한 디지털 초상권 침해문제로 불거졌다.
챗GPT 같은 생성 AI의 놀라운 기술 사용에 반발한 WGA와 SAG-AFTRA는 파업 끝에 디즈니, 유니버설, 넷플릭스 등을 대표하는 영화·TV제작자 연맹과 고용계약 협상을 벌여 합의에 이르렀다. 그 결과 영화제작사와 WGA 간에는 창작 과정에서의 생성 AI 사용에 관한 가드레일을 포함시키는 내용의 계약이 체결됐다. 여기에는 AI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훈련시키기 위해 작가의 기존 작업물(대본)을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노조에 부여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영화제작사와 SAG-AFTRA 간 계약 내용은 AI에 대한 노조의 요구를 전부 다는 아니지만 일부 포함시켰다. 예를 들어 이 계약에서는 AI가 합성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배우의 연기에 기반해 훈련할 수 있도록 허용하며, 배우는 최종 AI 출력물에 인식 가능한 배우의 얼굴 특징이 포함된 경우에만 이를 막도록 했다.
지난해 할리우드의 야단법석은 AI가 쓰는 대본, 그리고 배우들의 과거 모습으로 돌아간 영상을 생성하는 디지털 초상권 문제에 국한됐었다. 하지만 이제 AI 기술 활용 영역은 기존의 글쓰기와 텍스트의 이미지화라는 걸음마 단계에서 크게 발전했다. 더 현실감 높아진 이미지의 동영상화, 비디오 일부 영역에 대한 애니메이션화, 비디오의 한 영역만 수정하는 등의 기술로까지 범위가 확대되면서 그 파괴력은 글쓰는 작가와 배우를 넘어서서 영상촬영이나 애니메이션 그래픽 제작 등 콘텐츠 제작 종사자 전반으로까지 뻗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