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게 있어 오픈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 개방형 혁신)은 대기업의 노하우와 기술혁신을 받아들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대기업의 입장에서도 신생 기업과 상생의 가치를 실현하면서도 대규모의 자본 투입이나 리스크 없이 혁신적인 사업 아이디어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창구가 되고 있다.
이에 다양한 기관 및 기업들은 각 분야에 특화된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스타트업 생태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특히 농·식품 푸드테크 분야에서도 이러한 오픈이노베이션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최근 진행된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의 스타트업 오픈안테나 두 번째 행사에서는 프리미엄 반찬 편집 숍을 표방하며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도시곳간’과 딥에이징 육류 전문 푸드테크 기업 ‘딥플랜트’의 오픈이노베이션 사례를 조명했다. 또한 이날 행사에는 농·식품, 푸드테크 분야의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CJ제일제당을 비롯해 신세계푸드, 풀무원 등에서 오픈이노베이션 책임자가 함께해 스타트업이 관심을 가지면 좋을 팁과 자사 프로그램의 특성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며 주목도를 높였다.
민요한 도시곳간 대표, “반찬가게 운영하는 부모님의 경험에 혁신을 더했죠”
프리미엄 반찬 편집숍을 표방한 ‘도시곳간’은 지난 2019년 6월 서울 광진구 자양동에 1호점을 시작으로 최근 전국 57개 지점의 문을 열며 ‘반찬가게’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그 사이 연매출도 2020년 9억원에서 지난해 기준 250억원로 늘리며 주목 받는 스타트업으로 부상했다.
1997년생, 이제 스물 여덟의 민요한 대표는 10여년간 시장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부모님의 경험을 살려 ‘도시곳간’ 창업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 스스로도 세계 3대 요리학교로 꼽히는 미국 뉴욕의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 다니며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에서 인턴으로 근무한 전문가이기도 하다. 2018년 군 입대를 위해 한국으로 귀국한 그는 군 복무 기간 중 지역 소농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로컬푸드를 알게 됐고, 신선한 농작물을 연계한 ‘도시곳간’ 창업 아이디어를 시행에 옮겼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과 겹친 ‘도시곳간’의 창업은 당시 영업시간 단축과 사회적 거리두기의 영향으로 집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며 빠른 확장으로 이어졌다. 민 대표는 “단기간에 외형이 커지다 보니 인력 세팅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체계가 없었다”며 오픈이노베이션 시작 당시를 떠올렸다.
“창업 직후부터 다양한 기업들과 오픈이노베이션을 진행했지만, 체계가 안 잡힌 상태에서 하다 보니 제대로 진행이 안됐죠. 그러다 2022년에 CJ제일제당의 오픈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인 ‘프론티어랩스’에 참여하게 됐어요. 당시 CJ제일제당의 니즈는 진짜 한식을 알릴 수 있는 아이템인 ‘나물’을 베이스로 한 신제품 개발이었죠.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인의 입맛에 맞는 나물 반찬의 가공법을 연구하며 제품을 준비하고 패키징까지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결과적으로 CJ제일제당에서 정한 QSC(Quality(품질), Service(서비스), Cleanliness(청결)을 뜻하며 프렌차이즈 외식 업계 운영의 기준)에 맞는 제조 공장을 찾지 못해 중단됐지만 좋은 경험이 됐죠.”
민 대표는 그 과정에서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오픈이노베이션을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며 “단순히 수혜적 관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오픈이노베이션은 단순히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도와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죠. 결과적으로 대기업에게도 이득이 되고 스타트업에게도 이득이 되는, 함께 성장하는 기회를 만드는 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이러한 관점으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오픈이노베이션을 진행했고, 양쪽 모두 이득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죠.”
시행착오와 성공 사례를 번갈아 경험하며 민 대표는 “스타트업이 대기업에 더 적극적으로 사업 제안을 하는 것이 좋은 오픈이노베이션 사례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 대표의 표현에 따르면 대기업의 간지러운 부분을 공략하는 방식이다.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스타트업이 대기업과 협력하는 것은 회사 규모나 프로세스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어려운 점이 생겨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해야 할 것은 대기업이 스타트업과 협력하는 이유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스타트업의 스피드와 유동성이예요. 저의 경우는 대기업의 입장에서 복잡한 내부 프로세스로 인해 시도하지 못했던 부분, 즉 간지러운 부분을 긁어주는 제안을 통해 오픈이노베이션 과정에서 직면하는 문제들을 많이 풀어냈던 것 같아요.”
위생과 관련된 CJ제일제당의 노하우를 전수 받은 것은 가장 큰 소득 중 하나라고. 민 대표는 “구청이나 삭약처가 정한 규칙만 따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보통의 식품 점포는 정부에서 지정한 위생 규칙만 준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대기업이 적용하는 QSC는 그 이상이었어요. 처음 들었을 때는 정말 말도 안되는 수준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웃음). CJ제일제당도 그랬고, 롯데는 지금도 컨설팅을 해 주실 정도죠. 저희 회사 담당자들이 롯데 교육장에서 교육을 받기도 하고, CJ에서도 수시로 저희 쪽에 점검을 오셔서 개선점을 말씀해 주세요. 그러다보니 정부의 규칙을 지키지 못해 문제가 되는 리스크는 아예 없다고 할 수 있죠.”
그러면서 민 대표는 대기업과 오픈이노베이션을 준비하는 스타트업을 위한 조언으로 “신뢰를 쌓아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이런 저런 제안을 다양하게 하지만, 속도가 느려 답답한 경우가 생깁니다. ‘왜 아직도 연락이 안 오지’ ‘우리랑 협력 하지 않으려 하나’ ‘우리걸 그냥 가져가려 하나’와 같은 의심이 생기기도 하죠. 하지만 대기업은 보고에 보고에 보고 체계를 거쳐야 해서 시간이 걸리더군요(웃음). 오히려 스타트업 입장에서 각 보고 단계마다 성과나 성장성을 보완할 수 있는 자료를 보충하려 노력하면 그렇게 신뢰가 쌓이고, 그 과정이 반복되면 초기 보고 과정이 스킵되고 ‘오케이, 바로 합시다’는 말을 들으며 빠르게 진행되는 순간을 경험 할 수 있을 겁니다. 저희도 오픈이노베이션 2년만에 알게 된 사실이예요(웃음).”
김철범 딥플랜트 대표 “AI 활용한 딥에이징 기술로 육류 분야를 혁신하고 있죠”
딥플랜트는 육류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분류하는 기술과 자체 개발한 딥에이징 시스템을 통해 육류의 단백질 분해효소를 활성화시켜 연도와 맛을 숙성육 대비 2배 이상 개선하는 기술 기반 푸드테크 스타트업이다. 딥플랜트의 기술은 기존 저등급, 비선호 부위의 맛과 식감을 개선해 부가가치 높은 육류 제품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2019년 딥플랜트를 창업한 김철범 대표는 강사 활동까지 하는 스킨스쿠버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발굴했다고 한다. 스킨스쿠버를 하며 수압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을 가지고 논문을 찾다가 초음파가 육류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는 다시 수압과 초음파를 조합한 육류 단백질 분해효소 활성화 기술 개발과 창업으로 이어졌다고. 딥플랜트는 초기 자체 기술로 가공한 육류를 ‘딜리시미트’라는 브랜드로 선보였지만 기존 브랜드의 아성을 깨기 쉽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터닝포인트가 된 것이 바로 오픈이노베이션이었다. 김 대표는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B2B로 사업 방향을 전환한 뒤 급격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롯데중앙연구소와 농협 식품R&D연구소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어요. 사실 스타트업 입장에서 제일 두려운 부분이 기술 유출입니다. 그런데 막상 오픈이노베이션을 해 보니 참 감사하게도 롯데와 농협 모두 굉장히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더군요. 기술적으로도 그렇고 여러가지 면에서 두려움이 많이 없어졌던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픈이노베이션에서 중요한 것은 ‘신뢰’라는 것을 깨달았죠. 사업을 진행하며 신뢰가 쌓이다 보니 저희가 얻은 것이 많더군요. 대기업이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오픈해 주셨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러면서 김 대표는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예상보다 대기업에 근무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은 도전과 노력을 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딥플랜트가 직면하는 고민과 시행착오의 상당 부분은 이미 대기업에서 다 거쳐왔던 과정이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협력이 지속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민 대표님의 말처럼 서로 이득이 되야 하는 모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 제 경우는 거기에 더해 ‘진정성’이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양 팀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내고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이 누적되야 성과가 나오는데, 이것이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진정성이거든요. 성공적인 오픈이노베이션을 위해서는 진정성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대화하고 제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한편으로 아쉬운 점에 대해 털어 놓기도 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은 변화와 기회를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공식적인 계약과 협약 과정도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의 경우 지원 사업으로 오픈이노베이션을 하는 케이스가 많은데, 지원 사업의 제일 마지막은 보고서거든요. 우수 판정을 못 받으면 난감한 상황이 발어지는데, 그때 기관에서 요구하는 것이 계약서나 MOU 체결, 하다못해 보도자료라도 제출하라는 겁니다. 그런 스타트업의 상황을 헤아려 정말 힘든 부분이지만, 이런 부분을 고려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 외에 일회성 프로그램을 넘어 1차, 2차와 같이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반드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정부 기관 관계자 분들에게 바라는 것은 오픈이노베이션 성과가 6개월~8개월만에 나오긴 쉽지 않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거예요. 성과가 나오기 기까지 기간을 늘려 주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