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3일,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Beeple)이 만든 '매일: 첫 5,000일(Everydays : The First 5000 Days)'이라는 작품이 올라왔다. 비플이 2007년부터 13년 넘게 만들어낸 5,000개 이미지의 모자이크다. 이 작품은 6,934만 달러, 한국 돈으로 약 785억 원에 판매되어 현재 살아있는 예술가 중에서 제프 쿤스와 데이비드 호크니에 이어 세 번째로 비싼 가격을 기록하게 됐다. 심지어 작가 본인이 작품을 직접 위탁했기에 비플은 돈을 전부 받게 됐다.
비플은 "예술가들은 지난 20년이 넘는 시간, 디지털 기기와 기술로 예술 작품을 만들어 인터넷에 배포했지만, 그것을 진정으로 소유하고 수집하는 방법은 없었다"며 "대체 불가 토큰(NFT)과 함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나는 우리가 미술사의 다음장인 디지털 예술의 시작을 목격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미래 예술의 혁신으로 주목받는 NFT란 무엇일까?
대체불가능토큰(Non-fungible token, 이하 NFT)는 암호화폐의 일종으로, jpg 파일 등 디지털로 된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나타낸다. 디지털 파일이기에 누구나 복제할 온라인에서 볼 수 있지만, 소유자는 단 한 사람이라는 것을 NFT가 증명하는 것이다. 결국 NFT는 블록체인 기술로 인해 유일해진다.
각각의 NFT는 자신만의 고유 정보를 갖고 있어 구분과 검증이 쉽고, 언제든지 최초 발행자를 확인할 수 있어 가짜 수집품을 만들어 유통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거래한 기록은 자동 저장되고, 위조/변조도 불가능하기에 각각의 NFT는 파괴되거나 제거, 복제될 수 없다. 소유권 침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암호화폐와 달리 NFT는 서로 일대일 교환도 할 수 없다. 똑같은 두 개의 NFT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7년, 캐나다의 스타트업 디퍼랩스는 크립토키티(CryptoKitties)라는 블록체인 기반의 게임을 출시했다. 플레이어는 블록체인 원장(장부)에 있는 고양이를 구매하고 거래할 수 있으며, 서로 다른 고양이를 통해 새로운 고양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 고양이들 각각은 고양이 이미지를 입힌 일종의 NFT이며, 고유한 식별번호를 갖기에 각각의 고양이들은 희소성을 갖고 거래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일부 희귀 고양이들은 10만 달러(약 1억 1,400만 원) 이상에 팔렸다. 가장 높은 가격의 고양이 크립토키티 드래곤은 600이더로 한화 18억 원(4월 20일 현재 기준)에 이른다. 이처럼 가상 고양이 독점 소유권을 판매하던 크립토키티는 NFT게임의 성공사례로 남게 되었다.
이후 디퍼랩스는 NBA 농구 카드를 NFT로 발행하는 등 게임과 수집품 영역에서 NFT의 인기가 높아졌고, 2017년부터 올해 3월까지 NFT의 누적 판매액은 1억 6,770만 달러가 넘는다. 이처럼 NFT는 본질적으로 희소성이 있는 자산이기에 게임 애호가, 수집가, 투자자 등의 수요가 높아 가격이 높이 책정되는 편이다.
예술계는 이러한 NFT의 속성에 주목하기 시작하며 작품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개념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전 미술시장에서는 갤러리 등의 환경에서 관람객이 직접 작품과 소통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등 현장감을 중요시했었다. 하지만 점차 예술품을 접하는 형태가 온라인으로 확장되는 흐름을 맞이하게 되었고, 컴퓨터 모니터 속 제한된 환경에서 작품을 관람하게 되는 NFT 아트의 경우 JPEG, MP4, GIF 등의 형태로 관람객이 원할 때면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작품을 체험하는 방식으로 작품감상의 경험이 바뀌어 가고 있다.
NFT이기에 작품을 웹사이트에서 클릭 한 번으로 살 수 있고, 경매는 'Opensea', 'Super Rare' 등에서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실시간 진행된다. 갤러리에 직접 가 사야 했던 이전보다 작품 구매가 훨씬 활성화되었고 예술가들에게도 새로운 창작의 촉매가 되고 있다. 기존 아티스트는 물론 신진 디지털 아티스트들도 등장해 세계적으로 평가받고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작품을 소유한 사람들은 디지털 소유권을 가진 것에 만족을 느끼며, 디지털 가상 갤러리 플랫폼 등에서 전시를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을 함께 즐긴다.
하지만 NFT가 혁신적인 장점들만 가진 것은 아니다. NFT에 대한 부푼 기대로 거액이 유입되고 있지만, 작품에 대한 큐레이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팔리지 않는 작품들도 적지 않기에 아무런 전략 없이 NFT로 작품 활동에 쉽게 뛰어들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지적 재산권의 문제도 중요하게 제시된다. 이미 온라인에 개방된 NFT 미술품의 이미지 등 타인의 디지털 자산에 대해 임의로 NFT를 생성해 판매할 수 있고, NFT에 표시된 소유권 세부내용이 구매자의 생각과 다를 수 있는 등 구체적인 저작권 문제는 모호한 실정이다.
또한 NFT 자체는 퍼블릭 블록체인에 영구히 보존되나, 실제 원본 디지털 파일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해킹을 통해 언제든 삭제될 수 있고, 디지털이라는 특성상 무단 복제가 쉽고 복제본과 원본의 차이 또한 없기에 고유 디지털 값을 지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거액에 거래되는 상황이 위험신호일 수 있다.
김인수 님은 젊은 연구자들의 지식커뮤니티 ‘오베이션’을 운영하고 있는 스타트업 ‘위인터랙트’의 대표입니다. 보다 자유로운 과학기술 지식정보의 공유와 활용을 위한 오픈사이언스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