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마일리지 사태에서 배워야 할 점

과연 항공사 만의 문제일까요?

지난 2월 22일, 결국 대한항공은 백기를 들었습니다. 4월 1일부터 시행하려 했던 마일리지 제도 변경을 전면 재검토한다는 소식을 전한 건데요. 소비자 반발은 물론, 정부와 국회마저 비판의 날을 세우자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던 걸로 보입니다. 이처럼 무리해서라도 대한항공이 마일리지 제도에 손을 대려 했던 건, 궁극적으론 부채 비율을 낮추기 위해서였습니다. 고객이 사용하지 않은 마일리지는 기업 입장에선 부채로 인식되기 때문이었는데요. 이를 '더 쓰고, 덜 쌓이는' 형태로 바꿔서 근본적으로 마일리지 총액을 줄이고 싶었던 겁니다.

아마 대한항공 내부적으로는, 이번 개편으로 손해를 보는 고객은 전체 중 10% 미만이라는 계산이 있었기에, 이 정도나 저항이 거셀 줄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 같은데요. 문제는 직접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 소수의 고객들이, 알고 보면 대한항공 입장에서 가장 핵심적인 고객 집단이었다는 겁니다. 본인들의 충성고객, 그것도 사회적 여론 형성을 주도하는 20~40대 고객을 외면했을 때의 역효과를 너무 과소평가했던 거죠.

그런데 이러한 함정은 사실 대한항공뿐 아니라 어떤 기업이든 빠질 수 있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나 작년부터 경기가 악화되면서, 리테일 기업이나 브랜드들도 앞다투어 고객 혜택을 축소하고 있는데요. 각종 혜택이나 프로모션을 없애는 것은 물론, 항공사의 마일리지처럼 부채로 인식되는 포인트 적립률을 줄이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결국 어떻게 하면 고객의 반발 없이 이러한 변화들을 받아들이게 하느냐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고요.

연착륙을 위한 노하우 혹은 꼼수

최대한 잡음 없이, 고객의 혜택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나 유예 기간을 충분히 주는 겁니다. 이번에 대한항공이 간과한 점이기도 한데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사실상 마일리지를 쓸 수 있는 기회가 막힌 상황에서 제도가 바뀐다고 하니 더욱 반발이 커졌던 겁니다. 반면에 충분히 마일리지를 소진할 기회가 주어졌다면 상황은 조금은 나았을 겁니다.

그리고 단계적 혹은 부분적인 개편을 통해 슬쩍 바꾸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무래도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것보단 집단적인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작아지니까요. 최근 백화점들이 VIP 회원들이 누리는 혜택을 조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등급 별로 허들을 상향하고, 혜택 축소는 지점 별로 상이하게 하는 등 조심스럽게 접근하였습니다. 물론 기사화될 정도로 비판을 받기도 하였지만, 대대적으로 이슈화되는 건 피할 수 있었고요.

또한 역으로 고객이 체감하는 혜택을 늘려, 이를 정당화시키는 방법이 쓰일 때도 있습니다. 주로 혜택 축소보다는 가격 인상 시 사용되는 방법인데요. 국내에선 쿠팡이 유료 멤버십 로켓와우의 가격을 인상할 때 이를 잘 활용한 바 있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쿠팡 플레이가 아주 큰 역할을 하였는데요. 무료 OTT 서비스 등이 추가되었으니 더 많은 돈을 지불할 만하지 않냐는 논리를 사용한 겁니다. 물론 쿠팡 입장에서도 이미 로켓와우 회원이 수백만 명을 넘어섰기에, 콘텐츠 확보를 위한 투자 금액은 추가적으로 얻는 매출로 충분히 커버 가능한 시점이라서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앞서서 말한 방법들을 잘 적용했다 하더라도, 경쟁사와의 상대적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적립률이 너무 박하거나, 혹은 새롭게 제시한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면, 아무리 조심스럽게 접근했더라도 냉정한 반응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하면, 고객의 반발 없이 혜택을 줄이거나 가격을 올릴 수 있나 나름의 방법론들을 쭉 정리해 보았는데요. 솔직히 아무리 소프트 랜딩한다고 하더라도, 고객이 누리는 편익을 줄이는 것은 장기적으로 현명한 선택지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물론 기업의 상황이 안 좋다면 어쩔 수 없이 이를 행해야 할 때도 있을 겁니다. 당장의 생존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또한 최근 대금 미지급 상황에 처한 일부 기업들처럼 너무 퍼주기 식으로 마케팅 비용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히 지양해야 합니다. 아니 애초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고객 혜택을 설계하는 것이 맞고요.

하지만 이렇게 면밀히 검토 후 정한 정책이나 가격이라면, 비용보다는 투자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고객은 아닌 것 같아도, 기업이 하는 행동들을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정한 약속을 지키며 신뢰 관계를 쌓는다면, 충성 고객의 증가로 이어질 거고요. 이에 따라 마진율은 하락할지 몰라도, 총마진은 역으로 늘어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무분별한 비용 감축보다는, 이를 잘 선별하여 정말 중요한 투자만큼은 지키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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