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오래 흐르기도 했고, 시장에 적용된 지 오래되어 풀어보는 지난 프로젝트 이야기
3년 전, NH투자증권 '나무'의 UX 개선 프로젝트를 맡았습니다.
당시의 모바일 증권 서비스의 생태계를 한마디로 말하자면, 'PC버전의 축소판'이었습니다. NH투자증권을 비롯한 여타 증권사들은 주식 거래 및 증권 계좌의 운용을 PC의 HTS(홈트레이딩 시스템)를 모바일로 옮겨왔습니다. 그러나, 증권 창구에서 느끼는 번거로움마저 옮겨오고야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더 나은 금융 경험을 모바일에서 제공하자'는 목표와 함께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나무 앱 개선은 그동안 맡아본 UX 개선 작업 중 가장 어려웠습니다. 그때는 '동학개미운동' 이전이라 주식이 지금처럼 전 국민이 관심을 가지는 핫한 키워드가 아니었고, 팀 전체가 '금융 문맹' 이라 (금융이라는 말도 그때 처음 써본 것 같습니다) 우당탕탕 좌충우돌이 많았습니다. 금융, 주식 관련 유튜브를 너무 많이 봐서 추천 피드에 온통 주식 관련 콘텐츠로 가득 찰 정도였으니까요.
분야도 분야였지만, 서비스 자체가 너무 복잡한 것도 큰 문제였습니다. 프로덕트(앱) 하나에 국내주식, 해외주식, 포트폴리오, 연금 펀드, 자산관리, 전문가 상담 등 너무 많은 서비스가 붙어 있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 지 감이 오지 않았죠.
복잡하고 어려운 금융 서비스의 첫경험을 어떻게 가볍게 만들까?
실무진과 몇 번의 논의를 거친 후 '계좌개설' 프로세스를 개선하기로 했습니다. '계좌개설'은 금융 서비스와 사용자의 첫 만남입니다. 처음으로 접한 정보가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는 초두효과(첫인상효과)에 따라, '나무'앱의 전반적인 경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계좌개설에서 좋은 경험을 했다면, 그 뒤가 조금 어려워도 좋은 경험을 기대하면서 앱 사용을 이어나갈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주식 1주도 사기 전에 서비스를 이탈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금융 서비스의 경우, 금융 피해 방지를 위해 한 번 계좌개설을 하면 다음 개설을 위해 한 달 정도(20 영업일)를 기다려야 합니다. 첫인상이 잘못되면 바로 사용자에게 '원-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108단계나 되는 계좌개설, 체크카드까지 발급해야한다고?
모든 일의 시작은 '나 자신을 알라' 입니다. 그래야 나 자신을 뛰어넘을 수 있으니까요. 스플래시 화면을 띄우는 순간부터, 계좌 개설이 완료될 때까지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각각의 과정에 사용자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고, 예상되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기록을 했습니다.
결과는, 맙소사였습니다. 사용자가 계좌 개설을 마치려면 108단계의 행동을 거쳐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중에는 개설에 꼭 필요하지 않은 체크카드 발급 신청도 포함되어있었습니다. 거기에 온갖 어려운 금융 용어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더해져 개설 도중 사용자의 불능감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사용자가 불능감 느낀다는 것은, (동물원이 아니라) 호랑이 앞에 마주 선 것처럼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상태가 됨을 의미합니다.
그 후, 비디오 에스노그래피를 통해 사용자들의 계좌개설 과정을 직접 관찰했는데 가장 많이 나온 말 3가지는 이러했습니다.
"아이고…"
"모르겠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해?"
즉, 어렵고 복잡해서, 나를 위한 서비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경쟁사 분석, 기존 서비스 휴리스틱 분석, 사용자 반응 분석 등을 통해 개선의 방향을 몇 가닥 정했습니다.
“이게 로그인 비밀번호랑 다른건가.. 내가 왜 모르고 있지?”
나무 앱은 계좌 비밀번호, 거래 비밀번호, 간편 인증번호 세 가지의 보안 수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 비밀번호 모두 용도가 달랐으며, 사용자는 이를 각각 기억하기 어려워했습니다. '간편 인증번호'의 경우에는 특히 복잡했는데, 신규 유입된 사용자는 여섯 자리 숫자로 등록을 하지만, 기존 사용자는 문자를 포함해 등록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증번호를 등록할 때 문자 키패드를 띄웠고, 신규 사용자는 "어라? 난 숫자로 등록했는데?" 라는 혼란을 겪었습니다.
신규 서비스였다면 비밀번호를 하나로 합쳐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오프라인 창구를 이용하는 고객과 다른 암호체계를 사용하던 기존 사용자는 큰 불편을 겪을 수 있었죠. (비밀번호를 몇 번 틀렸다가 아이디가 잠기기라도 하면 아주 큰 불편을 초래하니까요.) 그렇다고 기존 체제를 유지하자니, 터치 한 번으로 가입이 되는 세상에서 사용자가 가입 과정에서 세 가지나 되는 비밀번호를 메모장에 적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따라서 가입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계좌비밀번호를 거래비밀번호로 사용하기" 을 제공함으로써 사용자가 하나의 비밀번호만 기억하더라도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고, 키패드로 숫자만 사용해서 비밀번호를 설정할 수 있도록 더 짧고, 더 쉽게 개편했습니다. 또한 "계좌 비밀번호와 거래 비밀번호는 무엇인가요?" 로 연결되는 설명 페이지를 하단에 추가해 개설 단계에서 사용자가 '무언가 속고 넘어가는 느낌'을 최대한 배제하고자 했습니다.
중간에 나가도 괜찮아.. 이탈 부담감을 줄이기
테슬러의 법칙에 따르면, 시스템의 복잡성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증권계좌의 개설 과정은, 아무리 간소화해도 '페이스북으로 가입하기'보다 쉬워질 수는 없죠. 그렇기에 다른 모바일 앱보다 온보딩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탈 부담감'을 줄이는 방향의 개선을 진행했습니다.
대화하듯이 편하게, 그러나 빠른 계좌개설
이러한 작업은 개설 진입부터 개인정보 입력, 약관 동의, 신분층 촬영 등 10가지 시나리오에 대해 이루어졌습니다. 각 페이지의 목적을 뚜렷하게 설정하여 사용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UX Writing을 제공하였으며, 전체적으로 대화하듯이 이어지면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톤을 유지하였습니다. 개선안은 대부분 나무 앱에 적용되었는데 (현재는 꽤 바뀌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번 가입할 수가 없어서 확인해보진 못했네요) 결과적으로, 사용자 이탈률이 많이 감소했습니다.
프로젝트 tmi)
기존 사용자층이 두터운 금융 서비스 개선은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토스처럼 "짜잔"하고 간편한 유저플로우를 제공할 수 도 있었겠지만, 나무는 주 사용자는 40-50대가 많았고, 동시에 공략할 타깃 유저는 20-30세대이기 때문에 둘 모두를 만족시키는 방안을 쉽게 내기 힘듭니다.
신규 유저가 헷갈리지 않도록 기능 하나를 지웠다가 수백억대 자산가에게 클레임이 들어올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다 밀어버리고, 짠"한 것보다는 기존의 강점을 잘 정리하면서 기존 유저와 신규 유저를 모두 만족시킬 '줄타기'를 잘하려고 했습니다. 이후에도 2년간 이런저런 개선을 함께했는데 해외 주식 다크모드 등 적용된 부분도 있고, 개발 중인 부분도 많네요. 애정이 많았던 프로젝트인 만큼 나무가 승승장구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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