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는 단 하나로 정의할 수 있는 단순한 기술이라기보다 기술과 하드웨어, 콘텐츠가 결합된 융합 산업에 가깝다. 따라서 현재 각 분야에서 메타버스를 정의하는 방식은 흡사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타버스 분야를 나눠 본다면 크게 기술과 플랫폼 그리고 콘텐츠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 분야를 중심으로 글로벌 업계에서는 메타버스를 이미 ‘미래를 바꿀 새로운 산업이자 시장’으로 지목하고 있다. 페이스북이 메타버스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했고, 애플 역시 내년 혹은 그 이듬해에 AR(증강현실) 글래스 출시를 예고하는 운을 떼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는 올해 3월 새로운 AR/VR 메타버스 플래폼이 메시(Mesh)를 선보이며 메타버스 세계의 현실화된 기능을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기술적 관점, 플랫폼 관점에서의 메타버스 전략이다.
그래픽, VFX, AI, 데이터 기술, 컴퓨팅(반도체), 클라우드, 블록체인 등 이상적인 메타버스가 구현되기 위해 필수적인 기술들이 크리티컬 매스(critical mass, 유효한 변화를 얻기 위해 필요한 충분한 수준)에 도달했을 때라면 어떨까?
다시 말하자면 모든 기술적 제반 여건들이 확보된 이후에는 무엇이 더 중요해 질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비로소 메타버스에서 콘텐츠 분야가 가지는 파급력을 이해할 수 있다. 웹툰과 웹소설, 드라마, 영화, 공연 등 다양한 콘텐츠가 메타버스 속에서 구현되는 세상은 사람들에게 지금과 전혀 다른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콘텐츠 산업 측면에서 본격적인 메타버스가 열리는 시점에 K 콘텐츠로 일컬어지는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하다. 특히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엔터)는 앞에서 열거된 메타버스 상에서 구현 가능한 대부분의 콘텐츠 IP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그렇다면 카카오엔터는 매타버스 시장을 어떻게 보고 있고 무슨 준비를 하고 있을까?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6일부터 28일까지 총 3일간 온라인으로 개최하는 ‘2021 콘텐츠 인사이트’에 ‘메타버스에 K콘텐츠 산업의 미래가 있다’라는 주제로 참여한 류정혜 카카오엔터 부사장은 “저희는 엔터테인먼트의 전체 밸류체인을 가진 회사로 카카오가 가지고 있는 테크와 IT역량을 결합해 다가오는 미래에 이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를 만들어보자는 비전과 사명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며 말을 시작했다.
가상의 세상과 현실이 융합되며 게임을 넘어 다양한 시도가 가능한 수준으로 기술적 여건이 충족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1992년 발표된 닐 스티븐슨(Neal Stephenson)의 소설 ‘스노 크래시(Snow Crash)’에서 처음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 류 부사장은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사례로 들며 “영화 속의 세상이 현재 진행중인 메타버스 기술이 궁극적으로 구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처음 세상에 등장한 이후 현재까지 실제로 이뤄진 기술적 성취는 어떨까? 류 부사장은 최근의 메타버스 수준이 홀로그램 기술로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은 상황까지 와 있음을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메시(Mesh) 플랫폼을 통해 상징적으로 제시하며 각 글로벌 기업의 리더들이 언급하는 메타버스의 의미를 언급했다.
“에픽게임즈의 CEO인 팀 스위니라는 분이 있어요. 최근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통과된 구글 인앱결제 강제 방지법 통과 당시 ‘나는 한국인(I am a Korean)’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죠. 이 분은 메타버스를 인터넷의 다음 버전, 즉 넥스트 인터넷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메타버스에서 일을 하거나 게임, 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거죠. 애플의 팀 쿡 CEO 역시 다양한 경로로 향후 출시될 AR글래스를 암시하고 있죠. 최근 메타버스 관련해 가장 공격적인 회사인 페이스북의 주커버그는 10억명의 사람들이 버추얼 리얼리티에서 살아갈 것이라며, 모바일 인터넷의 진정한 후계자로 메타버스를 지목하고 있어요.”
류 부사장은 이어 최근 검토한 리포트 내용을 언급, “메타버스의 시장 규모가 2025년 470조원, 2030년까지 1700조원으로 전망되고 있다”며 “메타버스는 하나의 산업이나 기술이라기보다 인류의 생활양식을 바꾸는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각 기업이 경쟁하고 있는 가운데 이상적인 메타버스 서비스가 본격화되는 것은 언제부터 일까? 류 부사장은 모바일 인터넷 시대에 독자적인 앱 생태계를 구축한 애플을 언급했다.
“그래서 메타버스가 언제오냐는 말을 많이 묻는데, 결국 게임 체인저는 애플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모든 사람들의 기대가 애플에 모이고 있어요. 입력 장치는 AR글래스나 보이스(목소리)가 유력하다는 설이 있어요. 2022년이 될지 2023년이 될지 모르지만 애플은 어느 정도 수준 이상 뽑아내기 위해 최적화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연구 중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드라마, 웹툰, 웹소설, 아이돌까지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콘텐츠·엔터 분야의 벨류체인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류 부사장에 따르면 카카오엔터 내부적으로는 메타버스를 ‘넥스트 빅씽(NEXT Big Thing)’으로 보고 있다.
“IT분야에서 인터넷의 등장이 첫 번째 넥스트 빅씽이라면 모바일의 등장이 두 번째, 메타버스가 세 번째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카카오도 그렇고, 웹에서 모바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기업들에게 멋진 기회가 온 것처럼 이번에도 메타버스는 굉장히 큰 기회의자 위협이 될 거라는 거죠. 실제 모바일 인터넷이 시작되며 한 손안에 인터넷, 카메라, 지갑이 들어왔어요. 메타버스를 통해 공간이 디지털로 인입된다는 것은 다시 말해 내가 있는 장소로 모든 공간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의미도 되죠.”
류 부사장의 말을 빌리자면, 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메시를 통해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있는 공간으로 BTS의 콘서트장, 대자연의 풍경, 영화관을 불러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프라인에서 이뤄지는 쇼핑 역시도 현재 모바일 웹에서 이뤄지는 이미지, 가격 정보, 후기 등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눈 앞에 각각의 제품에 대한 평점이 나오고 다양한 종류를 살펴볼 수 있으며 적당한 제품을 내 공간에 배치해 볼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공간에 웹이 생기는 기술적 수준, 그리고 그를 뒷받침하는 처리 능력 등이 현실화됐을 때가 카카오엔터가 자사의 인프라와 자산으로 메타버스를 이용한 사업을 본격화 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기술적 환경이 가장 밑을 받치고, 모바일 인터넷을 촉발한 스마트폰과 같은 디바이스 베이스의 플랫폼이 등장하며 그 위에 메타버스 월드가 펼쳐지게 되면 비로소 게임, 영화, 쇼핑, 은행 서비스가 이뤄지는 메타버스 이코노미를 형성하게 될 거예요. 그 기반이 되는 기술과 플랫폼은 앞서 언급한 MS의 메시가 있겠죠. MS는 이 플랫폼을 띄울 수 잇는 에저라는 클라우드까지 토털 서비스 하는 것을 전략으로 삼고 있어요. 모바일 인터넷 시대에 SNS로 세계를 장악한 페이스북은 최근 애플 등의 견제로 인해 메인 비즈니스인 광고 수익에 영향을 받고 있죠. 그래서 페이스북이 공들이 전략은 디바이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것인 듯해요. 아이폰에 당한 수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것 같아요. 현재까지 나온 오큘러스2는 VR 분야 점유율이 60% 정도 된다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기술 영역은 카카오엔터가 전문성을 가진 분야는 아니다. 류 부사장은 카카오엔터가 주목하고 있는 현재 수준에서 이뤄지는 ‘메타버스를 활용한 콘텐츠 확장 사례’를 힙합가수 트레비스 스캇(Travis Scott)의 포트나이트 공연, BTS의 포트나이트 공연 등을 통해 설명하며 향후 방향성을 예측했다.
“트레비스 스캇의 공연은 메티버스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받고 있어요. 메타버스에서 콘서트는 아바타를 이용해 이렇게도 보여줄 수 있구나를 알 수 있죠. BTS의 공연 같은 경우는 관람객들에게 ‘댄스 이모트’를 판매하기도 했어요. 이 아이템을 클릭하면 춤을 추지 못해도 아바타가 춤을 출 수 있게 되죠. 이처럼 게임은 물론 음악은 이미 메타버스를 통해 다른 형태로 즐기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류 부사장은 콘텐츠에 있어서 이머시브(IMMERSIVE)라는 키워드를 언급했다. “사용자에게 몰입의 경험을 어떻게 만들어 줄 것이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어 신한은행 광고에서 선보인 버츄얼 휴먼 로지 등의 사례를 연이어 제시하며 카카오엔터가 추진하는 글로벌 버츄얼 아이돌 사업, 그리고 이를 통한 수익화 방법에 대해서도 살짝 언급했다.
“메타버스 시대에 드라마는 어떻게 어떻게 다가올 수 있을까요? 많은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빈센조’의 첫 장면에 나오는 멋진 이탈리아 와이너리의 풍경이 모두 CG(컴퓨터 그래픽)처리된 장면이라는 것 아세요? 이는 모든 장면이 디지털화 돼 있다는 의미기도 해요. 이를 메타버스에 이용했다면 드라마 속 공간에서 송중기 씨의 디지털 휴먼이 등장해 와이너리의 역사를 설명하고 드라마 방영 기간 동안 그의 사인이 들어간 한정판 와인도 연계해 판매할 수 있었겠죠.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국적을 불문하고 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해 볼 수 있는 경험도 제공할 수 있고요.”
카카오엔터는 최근 넷마블에프엔씨의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의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 글로벌 버츄얼 아이돌 사업 등 공동으로 메타버스 콘텐츠 개발에 나선다는 것을 밝혔다. 이는 종합 엔터 기업이 메타버스 영역에 진출하는 첫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에는 장기적인 시너지를 위해 카카오엔터의 전문 인력들까지 합류한다. 향후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는 K팝 아이돌 그룹을 시작으로 웹툰, 웹소설 등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폭넓은 스토리 IP 자산들과 넷마블에프앤씨가 보유한 게임 캐릭터들이 중심이 되는 다양한 캐릭터 메타버스 사업 역시 진행해 나간다는 목표다.
류 부사장은 이날 행사 말미에 “메타버스 세계관은 기존과 다른 상상력을 펼칠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유리한 공간이 될 것”이라며 “예전에는 영화화 되기 전까지 (실감나는 공간을) 접하기 어려웠지만, 향후 그런 세계관을 가진 작품(웹툰 등)은 멋진 공간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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