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됐지만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라고 불리는 시기는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도 여전히 많은 스타트업이 새로운 유니콘을 꿈꾸며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에 테크42는 미래 창업가와 사회혁신가를 육성하는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아산나눔재단의 플랫폼, 마루(180/360)에 입주한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는 릴레이 인터뷰를 기획했다. 이를 통해 어려움 속에서도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스타트업의 오늘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사회 각 분야의 디지털 전환 속도를 획기적으로 빠르게 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미 그 이전부터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네트워킹은 일상화된 소통방식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으로 자신의 생활을 공유하고 친목을 다졌다면 링크드인, 리멤버 등으로는 커리어 관리와 함께 업계 인맥을 관리해 오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른바 ‘IT 프러덕트 메이커’ 즉, 비즈니스 문제를 자신만의 기술로 풀어내는 IT 업계 종사자들의 경우 종합적인 성격의 소셜네크워크서비스나 모든 분야의 커리어 관리에 초점이 맞춰진 범용(汎用)의 서비스는 늘 아쉬움이 느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커리어 관련 소셜네트워킹에 특화된 링크드인의 장점과 전세계 개발자들이 자신의 프로덕트를 홍보하고 관심사를 교류하는 프로덕트헌트의 장점을 한데 모은 서비스가 나온다면?’
박현솔 디스콰이엇 대표의 창업 구상은 이와 같은 물음에서 시작됐다.
디지털 이코노미에 최적화된 네크워킹을 지향한다
“디스콰이엇은 IT 메이커들을 위한 소셜네트워킹사이트에요. 지금은 IT 메이커라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디지털 종사자들을 위한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로 만들어 가는 중이죠. 창업을 하고 디스콰이엇 서비스를 개발한 이유는 이제까지 커리어 네트워킹 서비스들이 ‘화이트칼라 이코노미에 맞춰져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디지털 프로덕트를 만드는 IT 메이커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았어요. 그래서 IT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의 인사이트나 스토리를 공유하며 네트워킹할 수 있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디스콰이엇을 선보였죠.”
마루360에서 만난 박현솔 디스콰이엇 대표의 말을 듣고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미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많은 서비스들은 디지털화돼 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디지털 전환이 빨라지면서 요즘에는 기성세대들이 따라가기 힘겨울 정도로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술들이 등장하는 시대다. 사실상 모든 분야에서 IT 메이커, 나아가 디지털 전문가가 필요한 시대기도 하다.
시장의 니즈가 적지 않았던 만큼 디스콰이엇은 출시 이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달 기준 누적 사용자는 33만명을 넘어섰고, 페이지뷰는 420만회를 돌파했다. 지난달 기준 포스트는 1100개가 달렸다. MAU(월간활성사용자)는 3만4000명이다. 고무적인 것은 이 수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중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제까지 다른 서비스들과 디스콰이엇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선은 디지털 종사자를 위한 버티컬 서비스라는 것이 경쟁력이다. IT 분야에 종사하는 창업가, 개발자, 디자이너, 프로덕트 매니저(PM), 마케터 등이 대표적이다. 이력서를 바탕으로 돼 있는 보통의 사이트와 달리 디스콰이엇은 각 대상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 중심으로 소통을 한다. 또 각 메이커들은 자신에 특화된 온라인 프로필을 만들어 공유할 수 있다. 또 공통의 관심 분야에 따라 클럽을 개설하고 인사이트 교류와 네트워킹이 가능하다.
박 대표의 설명을 듣는 와중에 문득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자신의 프로덕트 스토리나 개발 중인 MVP(최소기능제품)까지 공유하게 되면 자칫 도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박 대표 역시 “처음 서비스를 만들 때 저희 유저들 역시 그러한 우려가 적지 않았다”며 미국 실리콘밸리의 사례를 언급했다.
“사실 미국에서는 ‘빌드 인 퍼블릭(Build-in-public)’이라고 해서 메이커들이 사업을 시작한 이유, 상품을 고르는 과정, 사업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민을 공유하며 소프트웨어 등의 프로덕트를 만드는 것이 일반화 돼 있어요. 이 과정 속에서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프로덕트와 관련된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실패 가능성을 줄이는 거죠. 이러한 프로세스는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성장시키는 플레이북(playbook, 계획·전술을 의미)과 같이 여겨지고 있어요. 한국 역시 실리콘밸리 문화를 많이 참고하면서 점차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세죠.”
10여년의 미국 생활을 통해 얻은 경험들
박 대표는 2006년 중학교 3학년 무렵 교환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킴스(한국재료연구원) 연구원인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고, 본인 스스로도 원한 길이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거처 애리조나주립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븐 잡스와 전 애플 디자인 팀을 이끈 조너선 아이브가 선보인 혁신이 한참 회자되던 시기였고, 박 대표 역시도 그 영향을 받았다. 박 대표가 창업에 대한 꿈을 키우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사실 대학 시절에 몇 차례 창업에 도전한 적이 있어요. 따지고 보면 그때 고민했던 것이 현재 디스콰이엇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웃음). 초기 아이디어에 살을 붙이고 고도화하면서 디스콰이엇이 된 셈이죠.”
대학 재학 중에는 한국에 돌아와 군 복무도 완료했다. 졸업 후 그가 향한 곳은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였다. 기술 디자인 컨설팅 회사인 뉴딜디자인에서 근무하기도 했지만, 유학생이 졸업 후 현지 기업에 취업 비자를 받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막 취임할 무렵이기도 했다. 결국 귀국을 선택한 그는 다시 IoT(사물인터넷) 기반 욕실용품 제조 스타트업 ‘Livin life’의 한국 지사에 잠시 근무하며 스타트업이 운영되는 방식을 경험했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근무한 모든 순간들은 차곡차곡 그에게 경험으로 쌓였다. 당시를 떠올린 박 대표는 “모든 것이 창업을 위한 준비였다”고 돌이켰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기업과 글로벌 스타트업을 경험한 뒤로는 ‘언더독스’에서 운영하는 창업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그 다음 2019년 무렵에 ‘DTC 브랜드’로 시험삼아 창업 시도해 봤어요. 한국판 ‘알리바바’를 만들어 보겠다는 구상으로 테스트 겸 침구류 품목을 골라서 브랜드를 만들어 판매를 해 본 거죠. 펀딩도 되고, 각종 지원사업에도 선정되면서 나쁘진 않았어요. 하지만 제가 D2C(Direct to Consumer, 소비자 직접 판매)에 진정성이 없다는 걸 느꼈어요. 테스트로 시작한 것이고, 진심으로 이걸 사업화 해 보겠다는 계획이 없이 어쩌다 보니 진행이 된거라, 결국은 중단했어요.”
그래프 뉴럴 네트워크 구축, 미국 진출도 염두
DTC 브랜드를 접은 이후 박 대표는 오래전 대학시절부터 구상했던 ‘IT 프로덕트 메이커를 위한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사업화에 돌입했다. 2021년 법인 설립 이전부터 직접 개발을 공부하며 한국 IT 업계의 커리어 네트워킹을 필요로 하는 사용자들의 페인포인트(pain point)를 체크했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업으로 하는 기업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어요. 그에 따라 창업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있죠. 시장은 확실하다고 봤어요.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코딩을 배우는 시대니까요. 하지만 IT 종사자들이 향후에도 늘어날 것이 뻔한데 그들이 인사이트를 교류하고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에 주목했죠. 그래서 디스콰이엇이 처음 나왔을 때 이 업계에서 ‘한국에도 이런 서비스가 나왔네’라고 하면서 초반부터 관심을 얻을 수 있었죠.”
이전의 회사들에서 얻은 인사이트, 그리고 첫 창업 시도에서 얻은 교훈은 그 과정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특히 박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 배운 ‘인재, 자본, 아이디어’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박 대표는 “이 세 가지가 장 뭉쳐지고 네트워크 효과가 더해질 때 높은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나라는 VC를 비롯해 정부 등에서 자본을 지원해 주고 있고, 인재들도 많이 양성돼 있어요. 또 새로운 혁신 서비스에 돈이 몰리니 디지털 분야에서 일하길 원하죠. 저희를 비롯해 스타트업들은 기본적으로 사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니 세 가지 조건이 갖춰진 셈이죠. 다만 여기에 이 세 가지를 묶어주는 커뮤니티 혹은 그들만의 네트워크 효과를 낼 수 있는 공간은 아직 부족해요. 그게 제가 주목한 페인포인트 중에 하나죠. 미국에서도 메이커들이 프로덕트 런칭은 전문 사이트를 활용해요. 하지만 인사이트 교류와 네트워킹은 링크드인이나 트위터를 활용하죠. 그래서 저희는 프로덕트 인사이트를 공유하며 링크드인과 레딧, 트위터 등의 장점을 결합해 디스콰이엇을 만든 거예요.”
실제 디스콰이엇은 ‘메이커 클럽’을 운영하며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매거진을 통해 인플루언서, 오피니언 리더도 양성하고 있다. 사람들을 모아 놓으니 VC와 이들을 채용하길 원하는 기업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B2C(사용자 대상 비즈니스)를 넘어 B2B(기업 대상 비즈니스)의 양면 시장이 형성되는 셈이다.
창업 이후 매쉬업엔젤스 시드 투자 유치 이후 디스콰이엇은 연이어 중소벤처기업부의 팁스 프로그램에 선정되는가 하면 지난해 말에는 프리A 투자 유치에도 성공했다. 투자사들은 디스콰이엇에 대해 “신규 서비스를 론칭하는 기업들에게 유저 반응 확인을 위한 테스트 베드 역할 뿐 아니라 메이커들 간에 활발한 네트워킹과 리뷰를 통해 서비스를 고도화시켜주기도 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라며 “누구보다 서비스에 애정을 갖고 있는 프로덕트 오너, 개발자, 디자이너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진정성 있는 리뷰를 높에 평가했다”고 밝히고 있다. 박 대표는 그렇게 확보한 투자금을 “기술개발에 투입하겠다”며 계획을 설명했다.
“향후에는 디스콰이엇에 개인화된 피드를 만들 수 있는 ‘그래프 뉴럴 네트워크’ 기술을 개발해 적용하려 해요. 사용자에게 필요한 콘텐츠나 유저 리스트를 추전해 주는 기능이죠. 그에 앞서 기술적인 아키텍처를 세팅하는 것도 중요하고 많은 데이터도 필요해요. 더 많은 사용자 유입을 위해 팀을 옵스팀과 제품개발팀으로 나눠 진행 중이에요. 옵스팀은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고 고객을 응대하며 커뮤니티 빌딩에 주력하고 있고, 제품개발팀은 그런 사용자가 들어왔을 때 프로덕트 관련 더 많은 교류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하고 있죠. 아마도 내년 상반기에는 제대로 적용할 수 있을 거예요.”
박 대표는 ‘그래프 뉴럴 네트워크’ 기술이 성공적으로 적용된 이후 미국 진출 가능성도 조심스레언급했다. 2년도 안되는 기간 동안 지금의 성과를 이뤄냈으니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더구나 디스콰이엇은 대외적으로 팀빌딩이 잘된 스타트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박 대표는 “공동창업자인 홍제연 이사 덕분”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홍 이사와는 창업 이전 디스콰이엇을 개발하며 앞서 언급한 ‘빌드 인 퍼블릭’ 과정을 통해 인연이 됐어요. 프로덕트 개발 과정을 설명하며 함께할 사람을 찾는다는 말에 홍 이사가 응한 거죠.제가 큰 그림을 그리고 앞만 보며 달리는 성향이라면 홍 이사는 디테일을 챙기며 중심을 잡는 능력이 탁월해요. 대외적으로 팀 분위기가 좋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데, 모두 홍 이사 덕분이죠.”
인터뷰를 마치며 박 대표는 지난해 말 디스콰이엇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유저들과 함께한 연말파티를 언급했다. 그 과정에서 다시 한번 디스콰이엇의 경쟁력을 확인했다고 한다. 유저들이 건넨 말 중 박 대표의 가슴을 가장 크게 울렸던 것은 ‘진정성’이었다. 그러한 진정성이 변치 않는 한 디스콰이엇의 도전은 지속적으로 성공할 듯하다.
“이제까지 나름대로 브랜드와 커뮤니티, 프로덕트 자산을 쌓아 나가려 노력했어요. 그런 노력을 알아보셨는지 유저 분들이 커뮤니티의 효용성을 언급하며 ‘여기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그것이 디스콰이엇만의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해요. 디스콰이엇은 ‘불안’을 뜻해요. 제 생각해 혁신가들은 불안을 예민하게 바라보고 해소하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모두가 자기만의 이상이 있고 그것은 살아가는 현실과 간극이 존재하죠. 저는 그 혁신가들을 메이커라고 정희하고 이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서비스라는 의미에서 디스콰이엇이라고 이름을 정한 거예요. 앞으로도 많은 유저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더 노력하겠다는 의지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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