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에서 만난 사람] 송정진 테이퍼랩스 대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는 협업, ‘비동기 영상 커뮤니케이션’으로"

새해가 됐지만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라고 불리는 시기는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도 여전히 많은 스타트업이 새로운 유니콘을 꿈꾸며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에 테크42는 미래 창업가와 사회혁신가를 육성하는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아산나눔재단의 플랫폼, 마루(180/360)에 입주한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는 릴레이 인터뷰를 기획했다. 이를 통해 어려움 속에서도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스타트업의 오늘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송정진 테이퍼랩스 대표. 송 대표는 삼성R&D센터 개발자를 거쳐, 삼성벤처투자 심사역으로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를 경험한 바 있다. (사진=테크42)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비대면 문화가 아닐까. 그 이전까지 특정 분야 혹은 세계 각지에 분산된 형태의 글로벌 기업에서 한정적으로 적용했던 비대면 회의 등의 업무 방식이 일반화 된 것이다. 초기에는 혼란이 있었지만,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일반 기업은 물론 교육,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됐고 한동안 불가피한 이유로 활용돼 왔다.

각 기업의 업무 영역에서 이러한 비대면 방식의 소통이 확산·지속되며 생겨난 변화는 사람들은 차츰 ‘출근하지 않고도 업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코로나19가 약화된 이후에도 일하는 방식의 다양화로 이어지고 있다. 분야에 따라 이전처럼 사무실에 출근해 같은 시간과 공간에서 업무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돌아가는 기업도 있지만, 매일 출퇴근에 2~3시간을 소비하는 대신 효율성을 택하며 비대면 업무를 유지하는 기업들도 생겨난 것이다. 개중에는 같은 회사에서도 업무 영역이나 고용 방식에 따라 선택적 비대면을 허용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이른바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이어지며 또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반드시 같은 시간에 일할 필요가 있을까?’

따지고 보면 집중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리고 굳이 같은 시간에 일을 하지 않아도 회사가 돌아간다는 사실은 앞서 언급한 글로벌 기업 등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입증 된 사실이다. 물론 일부 제약은 있다. 전화 혹은 화상으로 진행되는 정기적인 회의의 경우 실시간으로 이뤄진다는 특성 탓이다. 글로벌 기업이라고 할지라도 참석자 전원의 일정을 조율하고 특정 시간에 맞춰 모두가 대기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자, 그럼 ‘시간의 제약’은 어떻게 벗어 날 수 있을까? 테이퍼랩스의 비즈니스 모델은 이러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실시간 화상회의의 한계, ‘비동기 영상 커뮤니케이션 서비스’로 넘는다

‘테이퍼랩스’는 영상을 기반으로 한 비동기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인 ‘Tape(테이프)’ 서비스를 개발하는 사람들이 모인 그룹을 의미한다. 테이퍼랩스는 삼성R&D센터 개발자로 자연어처리 AI를 활용한 빅스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송정진 대표가 지난 2021년 7월 창업했다. 창업 이전 삼성벤처투자 심사역으로도 활약했던 송 대표가 테이퍼랩스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했던 이유는 뭘까?   

“줌(Zoom)은 코로나19 이후 사용량이 크게 올라갔지만, 사실 그 이전에도 ‘일을 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고 있었어요. 당시에도 시간과 장소를 제약해 놓고 일할 필요는 없다고 하는 분들이 생겨났는데, 사실 기술적으로는 상당히 실현 가능한 상황에 와 있죠. 어쨌든 코로나19로 인해 줌과 같은 툴 사용이 일반화되며 장소의 제약은 없어졌어요. 거기에 효용감을 느낀 사람들은 이제 시간의 제약도 불편하게 느끼기 시작하고 있어요. 테이프는 바로 이러한 니즈를 반영해 시간의 제약을 없앤 서비스죠.”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비대면 실시간 화상회의용 툴로서 줌이 가지는 효용성은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회의를 위해서는 정해진 시간에 맞춰 대기를 해야 한다. 실시간이라는 장점은 때론 단점이 되기도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줌을 통해 진행되는 두어 차례의 화상 회의가 이어지면서 업무 흐름이 깨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줌에서도 녹화 기능이 있긴 하지만 설정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녹화를 하지 않았을 경우 회의 때 오간 이야기는 휘발되거나 서로 다르게 이해되는 탓에 별도의 회의록을 작성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정작 중요한 업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이메일이나 즉각적인 피드백과 인터렉션이 이뤄지는 슬랙(Slack)을 활용하게 된다. 이 경우 실시간 화상회의 서비스가 가지는 효용성은 단지 장소의 제약을 없앴다는 그 하나로 좁혀지게 된다. 그렇다면 업무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영상 메시지가 가지는 장점을 극대화하는 서비스, 일정 조율이 필요 없고 원하는 시간에 자세히 검토하며 소통할 수 있는 서비스로서 테이프가 가진 특징은 뭘까? 송 대표는 “실시간 화상회의가 가능해졌다고 해도 실질적인 업무 협업은 여전히 텍스트 문서로 이뤄지고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영상을 기반으로 한 비동기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테이프 시연 장면.

“딥 워크(Deep work)라고도 하죠? 방해받지 않고 업무에 몰입하는 시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생산성이 달라진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도 나오고 있어요. 결국 딥 워크를 하려면 인터럽션(Interruption) 없이 일하는 시간이 확보 돼야 하죠. 즉 테이프는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쓰는 서비스가 아니라 불필요한 인터럽션을 최소화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적용하는 서비스라고 할 수 있어요.”

이어 송 대표는 “사무실에 9시에 출근해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업무 방식은 시간과 장소를 제약해 놓고 일하는 방식”이라며 “익숙하다는 이유로 편하다고 인식되고 남용되고 있다”며 이를 통해 발생하는 비효율을 지적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의 믿음과 달리 실시간 기반 소통은 새로운 것들, 궁금했던 것들에 대한 질문과 답변 등을 제외하고는 사실 큰 효용성이 없어요. 보통 실시간 소통은 상대가 어색함을 느끼기 전에 질문과 답이 오가야 하는 특성 때문에 깊은 생각에 기반한 질문과 답이 나오기 어려워요. 때문에 상사의 질문하면 뭐라도 답해야 하니 ‘알아보겠다’ ‘검토해 보라’ 등 의미 없는 문답이 오가게 되죠. 모두가 새로운 것에 대해 펼쳐 놓고 브레인 스토밍(brainstorming, 3인 이상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놓는 회의 방식)이 아닌, 한 사람이 모든 걸 다 알고 있고 이를 설명한 후 의견을 들어야 하는 경우가 특히 그렇죠.”

송 대표의 말처럼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무실에서도 막상 회의를 하면 참석자 중에는 준비가 안된 경우가 종종 있다. 자료 공유가 미처 안돼 있거나 사전에 숙지가 안된 경우다. 또 회의 주제와 관련된 의견들은 ‘즉흥적’으로 논의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 역시 실현가능여부에 대한 검토와 자료 조사가 필요하고 결국 이는 후속 회의로 이어진다. 이러한 비효율은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실시간 화상 회의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송 대표가 언급하는 테이프의 효용성은 바로 이런 부분에서 빛을 발한다.

송정진 대표가 설명하는 테이프 소개 영상.

“메일의 경우 텍스트 중심으로 이뤄진 소통에 답답해 하는 이들이 적지 않죠. 글로 설명하기 보다는 사진 한 장을 찍어서 보여주는 것이 더 빠른 것처럼 영상 메시지는 직관적이라는 장점이 있어요. 하지만 실시간 화상 회의는 심도 깊은 논의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죠. 반면 테이프는 업무와 관련된 보고서나 기획안을 두고 각 팀원들이 편한 시간에 깊이 검토한 후 영상으로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어요. 또 각 팀원들의 영상에는 또 저마다의 의견을 달고 공유할 수 있어요. 집중이 필요한 업무에 시간을 방해 받지 않으면서, 업무 관련 협업 역시 심도 깊게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이어 송 대표는 “비동기 협업 방식으로 최근 텍스트 분야는 노션을 통한 방식이 확산되고 있는 반면 리치 콘텐츠(rich content, 다양한 기술을 이용해 역동적인 시각 효과와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콘텐츠) 영역에서 비디오와 오디오로 비동기 협업을 하는 방식은 최근까지 존재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1000명이 좋아하는 서비스보다 10명이 사랑하는 서비스 만들 것

송 대표가 창업을 꿈꾼 것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던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R&D센터 개발자로 5년여, VC업계의 투자 심사역으로서 2년 이상 커리어를 쌓는 와중에도 창업의 꿈은 놓지 않았다.

“대학시절 창업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지만, 저는 기업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우선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3년 정도를 생각했는데 꽤 길어져 버렸죠. 대외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삼성은 굉장히 좋은 회사였어요. 동료 선후배 분들도 정말 좋은 분들이 많았죠. 그러다 보니 일면 안주했던 부분도 있었어요. 계기가 된 것은 VC 심사역으로 일을 하면서부터였어요. 사실 그때도 선배의 제안에 ‘곧 창업을 할 계획이라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했는데, ‘그러면 더욱 심사역으로 한국뿐 아니라 글로벌에서 가능성을 보이는 스타트업을 살펴보고 경험을 쌓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에 솔깃했죠. 그렇게 심사역으로 가서 10개 글로벌 기업에 250억원 정도 투자를 진행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죠.”

삼성벤처투자 심사역으로 인도 글로벌 기업 실사를 위해 현지에 방문한 송 대표. (사진=송정진 대표)

송 대표는 “창업을 하고 테이프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귀인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처음 심사역을 제안해 준 선배가 있었고, ‘친구의 동생’이자 지금은 소프트웨어 리드를 맡고 있는 공동창업자를 만난 것도 그렇다. 심사역 일을 통해 현재 테이퍼랩스의 투자자이자 어드바이저인 김동신 센드버드 창업자와 인연이 된 것도 돌이켜 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지난해 아산나눔재단이 운영하는 기업가정신 플랫폼 ‘마루’에 입주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창업을 결심한 트리거는 한 스타트업의 입사 제안을 받으면서부터였어요. 삼성에 있을 때보다 높은 연봉에 파격적인 조건이었죠. 그때 비로소 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어요. 이 제안을 받는 것도 좋지만, 30대 중반인 지금 도전하지 않으면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죠. 그러면서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전부터 생각했던 몇 가지 아이템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죠(웃음).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인연들을 만났어요. 돌이켜 보면 제가 직면한 인생의 각 순간마다 그 인연들이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창업 후 1년 반이 지난 지금,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그 사이 ‘팔자’ 타령을 할 정도로 힘겨운 순간도 적지 않았다는 송 대표. 하지만 단 한번도 창업을 한 것에 후회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간 선택과 집중을 통해 앞만 보며 테이프를 개발했고, 이용자 편의성에 초점을 맞추며 고도화해 왔다. 이달 안에는 유료 서비스로 출시를 앞두고 있다. 송 대표는 그 과정에서 “김동신 대표의 조언과 관심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창업을 하고 테이프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귀인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하며 김동신 센드버드 창업자와의 인연을 언급하기도 했다. (사진=테크42)

“지금도 김동신 대표님은 제가 조언을 구할 때면 언제든 진심으로 상대해 주세요. 대표님께서 하신 말씀 중 확실히 실행에 옮긴 것은 미국 법인을 낸 것이죠. 또 저와 같은 레벨로 함께 일할 수 있는 좋은 사람들 찾으라고도 말씀해 주셨고요. 최근에 해 주신 말씀 중에는 1000명이 좋아하게 만들지 말고 10명이 사랑하게 만드는데 집중하라는 것이 기억에 남아요.”

올 한해 역시 테이퍼랩스와 송정진 대표가 마주해야 할 도전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자 편의성을 강화하고 유입된 사용자를 유지·확대하는 것이다. 또 글로벌 서비스로 고도화가 진행되고 향후 앱 개발 등의 과제가 있는 만큼 함께할 좋은 멤버를 찾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송 대표는 “리치 콘텐츠 분야의 비동기 영상 커뮤니케이션 서비스 시장에서 글로벌 1등을 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라며 테이퍼랩스가 지향하는 가치를 언급했다.

송정진 대표(오른쪽)와 테이퍼랩스 팀원들. 송 대표는 "이제까지 테이퍼랩스는 작은 인원으로 테이프 설비스를 론칭하며 린(Lean) 하게 일해 왔지만, 향후에는 추가적인 인원을 더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사진=테이퍼랩스)

“저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일하는 환경을 만드는 거예요. 테이프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가치에 부합하는 다양한 프로덕트를 선보일 수 있는, 한국의 ‘어도비’가 되려 합니다.”

황정호 기자

jhh@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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