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에서 만난 사람] 이명진 아루 대표 “신뢰할 수 있는 콘텐츠로 여성의 삶을 개선하고 자유롭게 할 거예요”

새해가 됐지만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라고 불리는 시기는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도 여전히 많은 스타트업이 새로운 유니콘을 꿈꾸며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에 테크42는 미래 창업가와 사회혁신가를 육성하는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아산나눔재단의 플랫폼, 마루(180/360)에 입주한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는 릴레이 인터뷰를 기획했다. 이를 통해 어려움 속에서도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스타트업의 오늘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이명진 아루 대표는 사내벤처로 시작해 여성을 위한 지식 플랫폼, ‘자기만의방’을 선보였고, 이제 더 큰 목표를 위해 나아가고 있다. (사진=아루)

대개 스타트업의 경우 당찬 포부와 나름의 야망(?)을 품고 창업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성을 위한 지식 플랫폼’을 표방하는 ‘자기만의방’ 운영사 아루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이명진 대표를 비롯한 구성원들은 ‘이 시대의 여성들이 처한 모든 문제’에 관해 천착한다. 물론 지향점은 뚜렷하다. ‘여성을 자유롭게’다. 더 나아가 이들의 관심사는 여성을 비롯해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지가 형성되기까지, 이 대표 역시 여느 사람과 다름없는 20대를 보냈다. 시사교양 PD를 꿈꿨던 시절에는 중앙일간지 인턴기자를 거쳐 KBS 명견만리 등에서 에디터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한 취업의 문턱은 높았다. 방향 수정이 필요했고, NHN에 서비스 기획자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문제는 큰 조직의 일원, 그것도 신입사원이 주도적으로 신규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란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이디어는 넘쳐나는데 풀어내질 못하는 상황에서 이 대표는 2년만에 NHN를 나와 에스모바일의 신규 프로젝트 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동안은 기존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다시 삶이 흔들리려던 찰나, 이 대표에게는 삶을 바꿀 특별한 미션이 부여됐다. 다름 아닌 ‘신사업 발굴’이다.

신사업 아이템을 기획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평소 하고 싶었던 것들을 정리해뒀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언제 상황이 바뀔지 몰라 10개의 아이템을 단숨에 정리해서 제출했다”고 당시를 돌이켰다. 각양각색의 아이템이었지만 공통점은 모두 이 대표의 ‘관심사’ 범위에 속해 있던 것들이었다. 이를테면, 와인 정보를 커머스와 연결하는 것,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는 캠페인)와 관련된 환경보호와 커머스를 연결하는 것 등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가 마음으로 밀고 있던 진짜는 다름 아닌 여성을 타깃으로 한 지식정보 콘텐츠, 그 중에서도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성 지식을 바탕으로 커머스와 연결하는 아이템이었다. 운명이었다고 할까, 가장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던 이 아이템은 선택됐고, 그렇게 아루의 스토리는 시작됐다.

여성을 위한 성지식 콘텐츠, 고정관념을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마루360에서 만난 이명진 대표는 담담하게 지난 이야기와 현재의 상황, 앞으로의 계획 등을 털어 놓았다. (사진=아루)

마루360에서 만난 이명진 대표의 첫 느낌은 진솔하게 다가왔다. 더하고 보탬이 없이 담담하게 지난 이야기와 현재의 상황, 앞으로의 계획 등을 털어 놓는 모습에서 진정성이 배어 나왔다.

다시 지난 이야기를 이어보자면, 선택 가능성이 적었던 여성을 위한 지식 플랫폼, ‘자기만의방’ 프로젝트는 사내 벤처 형태로 추진됐다. 이 대표가 우선 한 일은 함께할 파트너를 물색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과거 함께 일했고 당시에도 모 일간지 기자로 일하고 있던 이아란 기자를 아루의 편집장으로 영입했다. 그렇게 2020년 9월 시작한 서비스 기획은 단 3개월 만에 ‘자기만의방’으로 탄생했다.   

아루의 CCO이기도 한 이아란 편집장. 이 편집장은 언론사 기자 출신의 경험을 반영해 '자기만의방' 콘텐츠 품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진=아루)

이 대표는 “’자기만의방’에서 다루고자 하는 정보는 단순히 성 지식이 아닌 ‘여성의 삶을 개선시키는 정보’”라며 “성 지식을 메인 콘텐츠로 정한 것은 그 중에서 가장 필요하면서도 많지 않은 정보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진정성과 별개로 세상에 깃든 고정관념, 성과 관련된 왜곡되고 터부 시 되는 사회적 인식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아루가 선택한 것은 기존 콘텐츠 문법을 바꾸는 시도를 통해 그러한 고정관념을 하나씩 허물어가는 것이었다. 이 대표는 “책임과 윤리를 벗어나지 않은 선에서 정확한 성 지식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며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이아란 편집장을 통해 기존 언론사에도 적용되는 각종 준칙을 준수하면서도 ‘여성을 자유롭게 하고 삶을 개선하는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목적은 중심에 뒀어요. 자유롭게 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로 불안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해요. 요즘처럼 정보가 넘치는 시기에 뷰수를 목적으로 불안을 자극하는 콘텐츠가 적지 않지만, 저희 콘텐츠는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어요.”

진정성 어린 콘텐츠 아이템은 이 대표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도 적지 않았다. 20대 초반 문제를 느꼈지만 부끄러워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끙끙거렸던 여성질환과 관련된 정보를 비롯해 월경 다이어리, 피임 등과 관련된 정확하고 필요한 정보들이 ‘자기만의방’을 채웠다. 80% 이상의 콘텐츠를 자체 제작해 정확성과 퀄리티를 유지하는 한편 외부 전문가들을 필진으로 영입해 여성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몸’ ‘성생활’ ‘범죄’ 등으로 세분화했다. 특히 왜곡되고 부정확하게 인식됐던 성지식을 직접적이고 정확하게 전달하며 고정관념을 타파해 나갔다.

“저희가 이루고자 하는 핵심 목표는 여성, 더 나아가 모든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선한 방식으로 개선하는가에요. 그렇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면 확장도 필요하지만, 우선은 깊게 침투할 필요도 있죠. 예컨대 질염이 생기면 산부인과를 가서 치료를 받으면 금방 낫거든요. 여성들에게는 ‘감기’와 같이 흔하게 발생하는 질환이지만, 저희 설문결과를 보면 50%가까운 답변이 ‘병원에 가본 적이 없다’였어요. 바꿔 말하면 감기에 걸렸는데, 병원에 가본적이 없다’는 말과 같은 거예요. 그것 외에도 최근 콘텐츠 중에 반응이 좋은 것은 ‘월경용품 없이 월경하는 여자들’이라는 콘텐츠에요. 여자는 모두가 월경을 하는데, 하지 않는 것처럼 감쪽같이 숨기며 살고 있죠. 그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사내 벤처에서 독립, 홀로서기 2년차

아루는 스타트업 유튜브 채널 EO에서 진행한 스타트업 오디션 ‘유니콘 하우스’에서 400여 팀 중 3위, 플랫폼 서비스 1등을 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성과는 아루를 알리는 계기가 됐고, 시드 투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루는 2021년 9월 개별 기업으로 독립을 선택했다. 사내 벤처의 한계를 넘어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감행한 것이다. 독립 3개월 만에 퓨처플레이 리드로 소풍벤처스, 실리콘밸리 기반 엑셀러레이터 이그나이트 XL(Ignite XL) 등의 투자사로부터 6억원의 시드투자를 유치했다. 스타트업 유튜브 채널 EO에서 진행한 스타트업 오디션 ‘유니콘 하우스’에서 400여 팀 중 3위, 플랫폼 서비스 1등을 한 성과가 영향을 미쳤다. 이어 지난해 6월에는 중소벤처기업부의 기술창업 지원 프로그램 팁스(TIPS)에 선정돼 안정적인 운영 동력을 확보했다.

그 사이 ‘자기만의방’ 가입자는 2만5000명으로 늘었고, 아루는 국내 펨테크(femtech·female technology, 여성이 경험하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상품·서비스) 시장에 유망 스타트업으로 주목받게 됐다.

이러한 ‘자기만의방’은 통신사 인증을 통해 웹과 앱으로 한국 나이 20세 이상 여성만 가입할 수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 대표는 “성지식 등을 다루는 탓에 앱마켓의 정책 등을 준수하기 위한 것일 뿐 차별하려는 의도는 없다”며 “남성을 비롯해 여성 청소년 등은 둘러보기를 통해 공개된 콘텐츠 등을 둘러보며 ‘자기만의방’의 취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간 꾸준히 기능과 콘텐츠를 보강한 ‘자기만의방’은 현재 ‘도서관’ ‘써클’ ‘자기방’ 등의 코너로 구성돼 있다. 도서관은 여성과 관련된 모든 성지식, 범죄 예방, 질병 관리에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써클의 경우는 여성들이 익명으로 각자의 고민을 털어 놓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를 통해 아루는 콘텐츠에 기반한 독자들의 반응, 정보를 데이터로 정리하고 좀 더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써클에서는 유저들이 같이 모여서 만드는 의미있는 정보들이 있어요. 특히 투표를 통해 나온 정보는 유용한 데이터가 되기도 하죠. 이를테면 ‘첫 자위 시기’를 묻는 투표에는 4000명이 넘게 참여해 주셨는데, 이 결과를 통해 유저들은 ‘다른 사람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요. 이렇게 ‘자기만의방’에서는 세상의 평균을 알려주면서 삶을 개선시키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지식들이 다뤄지는 거죠. 또 ‘자기방’의 경우는 유저의 마이데이터가 모이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주 기능은 월경 다이어리죠. 추후에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자신의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을 하려 해요.”

이렇게 쌓인 데이터를 기반으로 아루는 유저들을 좀 더 이해하며 최적의 콘텐츠를 기획하는 동시에 원하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커머스 서비스도 구상하고 있다. 이는 ‘자기만의방’ 유료 고객 70명을 대상으로 대면 인터뷰를 했을 때 나온, ‘지식을 얻은 뒤 관련 제품을 바로 구매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2023년, 아루의 키워드는 ‘투자 유치’ ‘커머스’ ‘해외 진출’

새해로 접어들며 아루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스타트업의 본질을 경험하게 했던 공간인 마루360을 떠나야 할 시기가 임박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그 외에 탄탄하게 다져놓은 콘텐츠를 기반으로 유저들의 니즈에 부합하는 큐레이팅 커머스 서비스를 올 상반기 내에 도입하려 한다. 주 품목은 역시 여성들에게 필요한 용품들이다.

“투자사이기도 한 이그나이트 XL의 도움으로 해외에 있는 좋은 성인 용품을 수급할 수 있게 됐어요. 아이러니하지만 해외 유명 성인용품사들은 섹스토이 등을 한국에 잘 납품하지 않아요. 한국 시장이 요즘 눈에 띄는 이상한 ‘성인용품점’ 등으로 왜곡돼 있다고 보기 때문이죠.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웰니스인데, 한국 성인용품점에 제품을 제공하는 것은 웰니스의 확장이 아니라는 거죠. 저희도 초반에는 면접까지 보면서 엄청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했어요. 결국에는 아루가 추구하는 것이 자신들과 결이 맞다고 판단한 것이고요.”

이를 기반으로 아루는 해외 진출도 염두하고 있다. 앱 기반 콘텐츠 커머스 플랫폼으로서 해외 버전을 내 놓을 경우 경쟁력은 충분하다. 또 국경을 막론하고 여성들이 겪는 문제는 차이가 없다는 확신도 있다.

아루의 회의 모습, 아루에는 호주 출신의 성과학자도 합류해 해외 진출을 위한 감수와 번역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아루)

“아루가 만드는 ‘자기만의방’ 콘텐츠의 강점은 감가상각이 적다는 거예요. 여성들이 겪는 건강 문제, 성 문제 등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그래서 콘텐츠의 양을 무작정 늘리기 보다는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정확성과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고요. 글로벌 시장으로 나갈 때는 이것을 번역만 하면 활용할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이 경쟁력이죠. 저희 팀에 호주 출신의 성과학자(sexologist) 분이 계시는데, 이미 다른 나라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 지식으로 손색이 없다는 판단이 나왔죠. 번역도 완료한 상태고요.”

이렇듯 탄탄한 콘텐츠 인프라를 기반으로 아루는 올해 본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다. 목표는상반기 내 가입자 10만명, 하반기까지 50만명을 유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루의 자신감은 60%에 달하는 사용자 리텐션이라는 성과에 근거를 두고 있다. 투자 유치도 지속가능성을 위한 아루의 핵심 목표 중 하나다. 투자 혹한기라고 일컬어지는 시기지만, 계획된 목표들이 순조롭게 달성된다면 큰 어려움을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구성원은 8명이지만 곧 전문 마케터를 비롯해 추가로 합류하시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저희 서비스는 단순 배너 광고로 이해를 시키기는 쉽지 않은 측면이 있어서, 좀더 제대로 알리기 위해 유튜브 등에 킬러 콘텐츠를 소개할 계획도 있어요. ‘자기만의방’은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추후에는 여성과 관련된 커리어나 웰니스 전반으로 확장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나아가 청소년, 남성들에게도 저희 정보와 서비스를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하고 있고요. 지금은 ‘여성을 자유롭게 한다’에 방점을 두지만 언젠가는 ‘모두를 자유롭게’하는 서비스가 될 수도 있겠죠. 우선은 지금 제일 잘할 수 있는 부분을 더 잘 해보려고요.”

이명진 대표가 소개하는 아루의 '자기만의방' 서비스 영상.

아루가 나서고 있는 펨테크 분야는 최근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규모는 오는 2027년 77조원 규모로 예측되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의 국내 시장은 아루와 같은 펨테크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며 경쟁보다는 연대로 규모를 키워가는 중이다. 아루의 이와 같은 도전이 초심을 잃지 않고 지속된다면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아루의 진정성이 통하는 날도 머지 않을 듯하다.

황정호 기자

jhh@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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