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에서 만난 사람] 정재헌 브라이튼코퍼레이션 대표 “영상 콘텐츠의 대중화, ‘윕샷’으로 만들어 보려고요”

새해가 됐지만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라고 불리는 시기는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도 여전히 많은 스타트업이 새로운 유니콘을 꿈꾸며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에 테크42는 미래 창업가와 사회혁신가를 육성하는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아산나눔재단의 플랫폼, 마루(180/360)에 입주한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는 릴레이 인터뷰를 기획했다. 이를 통해 어려움 속에서도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스타트업의 오늘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영화, 드라마 등 한국 콘텐츠는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 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에 소개되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유튜브를 비롯해 페이스북, 인스타트램, 틱톡에서는 숏폼 영상이 새로운 시장을 열고 있다. 그야말로 영상 콘텐츠의 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콘텐츠를 노출 시키는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생겨난 현상은 그간 전문 영역으로 속했던 영상이 점차 비전문가들에 의해 기획되고 만들어지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엄청난 자본과 인력이 투입된 웰메이드 영상 콘텐츠가 아닌, 짧으면서도 조금은 서툴고 마이너한 느낌의 영성이라도 채널에 따라서는 동등한 경쟁을 하기도 한다.

각종 채널에서 텍스트와 이미지를 넘어선 영상이 발휘한 파급력은 광고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를테면 과거에는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자본이 없는 개인이나 스타트업에서도 쉽게 영상을 제작해 소위 대박을 터트리는 것이 가능해 진 것이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방식의 영상 콘텐츠 리뷰·협업 서비스 ‘윕샷’은 변화하는 사용자들의 니즈를 담은 기능으로 도전장을 내고 있다. (이미지=윕샷)

이러한 변화와 함께 급성장한 것이 영상 관련 소프트웨어 시장이다. 앱마켓에서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영상 제작 툴을 비롯해 협업 솔루션이 경쟁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가 추정한 바로는 이러한 콘텐츠 관리 소프트웨어 시장 규모는 약 75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러한 시장에서 브라이튼코퍼레이션에서 선보인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방식의 영상 콘텐츠 리뷰·협업 서비스 ‘윕샷’은 변화하는 사용자들의 니즈를 담은 기능으로 도전장을 내고 있다.

윕샷을 개발한 브라이튼코퍼레이션의 창업자 정재헌 대표는 지난해 네이버에 인수된 종합 문화 콘텐츠 기업 ‘로커스’에서 오랜 기간 다양한 영상 프로젝트의 컴퓨터 그래픽(CG) 작업과 프로듀싱 경험을 쌓아 왔다. 한 분야에서 오랜 경험과 경력을 쌓아온 그가 돌연 스타트업이라는 모험을 감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고질적인 제작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빛’이 되고자

정재헌 대표는 15년간 CG 영상 제작 현장에서 근무한 전문가다. 그는 현업에서 고민했던 문제들을 윕샷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사진=테크42)

“영상 콘텐츠 제작이라는 것은 예쁘고 멋진 것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죠. 하지만 그런 콘텐츠 하나나가 만들어 지기까지 제작 현장에서 스텝 등 종사자들이 겪는 어려움은 적지 않아요. 제작 기술은 다양한 발전을 이뤘지만, 정작 일하는 방식, 불합리한 문제들은 여전한 경우가 많죠. 회사명을 ‘브라이튼코러페이션’이라고 정한 것은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한테 밝은 미래를 열어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마루360에서 만난 정재헌 브라이튼코퍼레이션 대표는 영상 제작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다. 대학에서 멀티미디어 디자인을 전공한 뒤 15년여를 광고를 비롯해 다양한 컴퓨터 그래픽(CG) 영상을 제작하는 프로듀서로 살았다. 적잖은 시간 동안 성과도 맛보며 나름 대로 탄탄한 커리어를 쌓아왔다. 하지만 일을 하면 할수록 직면하게 되는 제작 현장의 문제는 종종 그의 심신을 지치게 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따지고 들자면 한도 끝도 없었다. 제작에 관여하는 각 주체마다 다른 일하는 방식, 그에 따른 소통의 어려움, 변화보다는 기존 방식을 고수하며 나타나는 갈등들… 이러한 문제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 소통 채널이 다양화되며 발생하는 복잡성으로 인해 심화되고 이었다.

“제가 영상 제작 분야에 처음 일을 시작하던 시기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양립하던 때였어요. 수백개의 버튼이 달려있는 리니어 편집실이 있었고 한 켠에서는 아비드와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한 넌리니어 편집기가 있었죠. 그때부터 시작해 기술은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 모두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죠. 하지만 일하는 방식은 달라지지 않더군요. 늘 바쁜 현장이니 대부분 말이나 메신저 등으로 소통이 이뤄지고, 그러다 보니 작업 히스토리는 남겨지지 않고, 휘발되기 일쑤였죠. 그로 인해 클라이언트와 제작사 간에는 문제가 많이 발생했어요. 생각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혹은 요청한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완성된 것을 뒤집고 다시 제작해야 하는 일이 다반사였죠.”

기술이 상향평준화 되며 싼 제작비로 경쟁하는 치킨게임(chicken game) 상황도 심화됐다. 정 대표는 2013년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 얽힌 CG 제작사 파산 사례를 예로 들었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한 장면. 라이프 오브 파이는 놀라운 특수효과 CG 기술로 아카데미 기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를 만들어 낸 회사는 자금난으로 파산하고 말았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아카데미에서 기술상까지 받았지만, 정작 그 호랑이와 바다 CG를 만든 회사는 파산했어요. 이 때문에 시상식이 열린 캘리포니아에서는 ‘그린매트’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죠. ‘우리가 없으면 초록색 매트(특수효과, CG 등의 영상을 촬영하는 초록색 배경을 의미)만 보게 될 텐데 왜 정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냐’는 것이었어요.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권에서도 기술 경쟁력이 생기면서 결국 CG 제작사들은 가격을 싸게 하는 것으로 경쟁할 수밖에는 상황에 직면한 겁니다.”

MVP가 나오기까지 1년, 특허까지 출원하며 자체 기술 확보

제작 현장의 여러가지 문제를 해결해 보기 위해 정 대표 역시 현업에 있던 당시 이런 저런 시도로 변화를 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제안은 번번히 레거시 (legacy, 과거 방식을 고수함) 앞에서 좌절되기 일쑤였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한계를 느끼는 일이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결국 정 대표의 생각은 ‘창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길은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험난했다. 당시를 떠올리던 그는 “큰 그림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결국 나이브(Naïve)했다는 걸 깨달았다”며 지난 이야기를 털어 놨다.  

“보통 제작사들은 매번 영업하는 클라이언트와 작업하곤 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제작사가 만나 공정하게 평가받고, 협업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어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쉽게 말하자면 요즘 나오는 ‘영상 제작 중개 플랫폼’이었던 거죠. 하지만 너무 사이즈가 컸고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들이 적지 않았어요. 그렇게 큰 그림만 붙잡고 6개월을 매달리다가 안되겠다 싶더군요(웃음). 그래서 접근을 달리 해보기로 했어요. 큰 그림 안에 담으려고 했던 영상 제작 협업 기능을 고도화해, 사스(SaaS)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죠. 그게 윕샷의 시작이 됐어요.”

브라이튼코퍼레이션은 윕샷 개발 과정에서 3개의 특허까지 출원하며 자체 기술을 쌓아갔다. 윕샷은 통합된 클라우드 공간에서 콘텐츠 제작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고화질 그대로 콘텐츠를 실시간 리뷰하며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이미지=브라이튼코퍼레이션)
윕샷은 수정 요청 내용이나 자막 등은 영상 위에 필기하듯 간편하게 기록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실시간 업데이트 되며 한 영상에 여러 참여자가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미지=브라이튼코퍼레이션)

단숨에 되는 일은 없었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클라이언트, 기획자, 제작자가 모두 편하게 소통하며 협업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든다는 계획은 기술 개발부터 MVP(최소 기능 제품)가 나오는데 까지 1년이 소요됐다. 클로즈드 베타와 오픈 베타를 거쳐 현재의 서비스 모델이 나오기까지는 다시 1년이 지나야 했다. 2019년 11월 브라이튼코퍼레이션을 창업했으니 창업 후 절반이 넘는 기간을 기술 개발에 매달린 셈이다.

“로커스에서 근무하던 시절 인하우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의 PM을 맡은 경험도 있고 해서 팀만 잘 구성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오랫동안 CG 작업을 하면서 기술 친화적이라는 자신감도 있었고요.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자체 개발한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쉽지 않더군요. 특히 MVP가 나온 이후에도 사용자들의 핏을 맞춰가는 과정이 오래 걸렸죠.”

쉽지 안은 과정이었지만, 브라이튼코퍼레이션은 그 과정에서 3개의 특허까지 출원하며 자체 기술을 쌓아갔다. 대표적인 것이 ‘비전트리’ 기술이다. 이는 영상 버전 별로 수정을 요청한 메모들과 협의 과정에서 어떤 의사 결정이 내려졌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한 것으로 정 대표의 현업 경험이 십분 녹아든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진화를 이어가는 윕샷의 미래는?  

정재헌 대표(가운데)와 브라이튼코퍼레이션의 팀원들. 2명으로 시작한 브라이튼코퍼레이션은 어느새 개발자와 디자이너, 기획자가 합류하며 더 큰 미래를 그려 나가고 있다. (사진=브라이튼코퍼레이션)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윕샷은 개발 단계에서부터 가능성을 증명했다. 창업 이듬해인 2020년 엔솔파트너스로부터 프리시드, 이듬해 후속 시드투자를 받았고, 2021년에는 ‘D.CAMP D.DAY 우승’,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스타트업콘 배틀필드 최우수상 수상’이라는 성과도 올렸다. 지난해에는 시장성과 기술력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중소벤처기업부 팁스 프로그램에도 선정됐다.

‘윕샷’은 클라우드 기반의 SaaS형 제작관리 솔루션으로 영상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의 피드백 교환 및 대용량 파일의 간편 공유 등 협업과 제작관리에 필요한 기능들을 지원한다. 통합된 클라우드 공간에서 콘텐츠 제작에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고화질 그대로 콘텐츠를 실시간 리뷰하며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수정 요청 내용이나 자막 등은 영상 위에 필기하듯 간편하게 기록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실시간 업데이트 되며 한 영상에 여러 참여자가 동시에 진행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현재 윕샷은 다양한 기업에서 사용하고 있다. 영상 콘텐츠에 대한 니즈가 각 분야에 존재하는 만큼 고객사 분야도 언론사, 스타트업 등 다양하다. 과금 모델을 적용한 현재도 특별한 홍보 없이 오가닉으로 모인 사용자들은 윕샷을 꾸준히 이용하고 있다. 현업에서 고민했던 정 대표의 경험에 절치부심 끝에 개발한 기술이 합쳐진 결과다. 더구나 윕샷은 현재도 지속적으로 진화를 이어가고 있다. 정 대표는 “전문가 영역에서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포인트를 두던 것을 최초 콘텐츠의 아이디어를 만들어가는 영역의 사람들의 편의성을 늘리는 식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윕샷의 최대 장점은 모바일을 통해서도 리뷰와 의견 교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모 언론사 콘텐츠 기획자들은 출근하면서 모바일로 수정 의견을 교환한다"고 사용 사례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미지=브라이튼코퍼레이션)

“초기에는 서비스 기능을 개선하는데 집중했다면 지난해부터는 지속적으로 고객 인터뷰를 해가면서 사용자 핏을 맞추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돈을 내고 사용하는 SaaS형 서비스로 어느 정도 제품화는 갖추게 됐죠. 유의미한 성과는 그런 과정을 거쳐 타깃 사용자를 콘텐츠 기획자, 마케터와 같이 최초의 아이디어를 만드는 사람에게 집중한 뒤부터 사용자 지표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예요. 고무적인 것은 이렇다할 마케팅 없이 오가닉만으로 사용자가 모이고 있다는 거죠.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해 볼 생각입니다.”

브라이튼코퍼레이션은 앞서 어렵게 개발한 기술로 한국 특허를 넘어 미국 특허 출원을 진행 중에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글로벌 버전도 염두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 외에도 2023년을 시작하는 브라이튼코퍼레이션의 계획은 다양하다. 인터뷰를 마치며 “영상 콘텐츠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윕샷이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정 대표의 말에 남다른 각오가 느껴졌다.

인터뷰를 마치며 “영상 콘텐츠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윕샷이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정 대표의 말에 남다른 각오가 느껴졌다. (사진=테크42)

“최근의 사용자 분포를 보면 영상 프로덕션이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등 전문가 그룹 외에도 일반 기업의 마케터, 미디어 스타트업, 언론사, 소셜마케팅팀, 홍보팀 등 각 분야의 정보를 만드는 크리에이터의 사용율이 증가하고 있어요. 이를 통해 영상 콘텐츠 영역이 대중화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죠. 그러한 변화에 맞춰 누구나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구상을 비주얼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서비스, 각 콘텐츠 영역의 다른 언어가 한데 어울릴 수 있는 서비스로 윕샷을 만들어 나갈 계획입니다.”

황정호 기자

jhh@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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