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에서 만난 사람] 허경석 페이얍 대표 “데스밸리는 극복했다, 7년 내 베트남 이커머스 탑3 될 것”

새해가 됐지만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라고 불리는 시기는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도 여전히 많은 스타트업이 새로운 유니콘을 꿈꾸며 도전에 나서고 있다. 이에 테크42는 미래 창업가와 사회혁신가를 육성하는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아산나눔재단의 플랫폼, 마루(180/360)에 입주한 초기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는 릴레이 인터뷰를 기획했다. 이를 통해 어려움 속에서도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스타트업의 오늘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베트남은 어른을 공경하는 문화, 가족 공동체 중심의 생활 방식 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다. (사진=픽사베이)

베트남의 강점은 젊은 인구다. 9885만명(2023년 기준)이 넘는 인구 중 50%가 30대 이하 젊은 세대다. 게다가 최근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제외하고 매년 6~7%에 달하는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해 왔다.

베트남 정보통신부 통계에 의하면 2020년 베트남의 인터넷 사용 인구는 전체의 70%인 6800만명에 달한다. 호치민, 다낭이 90%를 넘고 하노이, 카잉화, 붕따우 등이 70%를 상회한다. 이들의 인터넷 이용은 대부분 모바일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베트남 호치민의 야경. 베트남의 수도가 하노이라면 호치민은 경제 수도로 불리고 있다. 페이얍 리엔몰의 주 활동 무대이기도 하다. (사진=픽사베이)

높은 인터넷 보급률 덕분에 베트남의 이커머스 사용자는 2020년 전체인구의 약 50%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수치는 2017년에 비해 2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오는 2025년까지 베트남 이커머스 사용자는 전체 인구의 70%까지 확대돼 총 90억달러(약 10조6479억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세계 각국의 기업들 중에는 이렇듯 아시아의 신흥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베트남의 성장성에 주목해 승부수를 띄우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한국 역시도 그 중 하나다. 특히 최근에는 베트남 시장에 진출하는 스타트업 사례가 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페이얍은 시작부터 국내가 아닌 베트남 시장에 초점을 맞추고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있는 이커머스 서비스 스타트업이다.

코로나19 불확실성 속에 제대로 경험한 ‘데스밸리’

허경석 페이얍 대표는 베트남 진출 이후 겪은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설명하며, 2030년까지 베트남 이커머스 탑3가 되겠다는 목표를 이야기했다. (사진=페이얍)

2019년 5월 창업한 페이얍은 이듬해 9월 베트남 진출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무기는 스마트스토어 방식을 적용한 이커머스 플랫폼 ‘리엔몰(Lienmall)’이었다. 현지 직원 모집과 사무실 세팅 등을 마치고 1만3600명 가량의 현지 셀러(판매자)까지 모집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춘 것은 약 4개월가량이 지난 2021년 초였다. 플램폼을 론칭하고 마켓플레이스가 열리며 순식간에 20만명이 넘는 이용자가 몰렸다. 성공을 예감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글로벌로 확산된 코로나19의 여파로 확진자가 급격히 증가하며 베트남 정부가 락다운(lockdown, 전면 봉쇄 조치)을 시행한 것이다. 누구도 집 밖을 나올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락다운 속에서 베트남의 모든 서비스와 유통망은 일시 정지 상태가 됐다. 막 론칭한 리엔몰 역시 개점 휴업 상태가 되며 위기에 빠졌다.

그렇게 2021년을 보내고 지난해 페이얍은 피보팅(Pivoting, 사업 방향 전환)을 감행했다. 라이선스 허가 지연 등의 문제까지 발생해 정상적인 운영이 미뤄진 서비스 대신 ‘리엔기프트(Liengift)’라는 서비스를 개발한 것이다. ‘ 리엔기프트’는 이커머스 플랫폼의 ‘선물하기’ 서비스를 베트남 현지화한 것으로 앞서 확보한 1만3600명의 셀러 사이드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리엔몰은 베트남의 특성에 맞춰 현지화된 이커머스 플랫폼이다. (이미지=페이얍)

‘리엔기프트’는 이달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돌입했다. 2년가까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초기 스타트업으로서 혹독한 ‘데스밸리 (Death Valley)’를 경험한 페이얍은 다시금 새로운 도전을 위한 닻을 올린 셈이다.

마루180에서 만난 허경석 페이얍 대표는 지난 시간들을 “눈물이 날 정도로 힘겨운 시간이었다”고 돌이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을 비롯해 셀러(판매자) 사이드도 구축돼 있고, 운영적으로 현지화를 완벽하게 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빌게이츠를 동경한 공학도, 30세 시도한 첫 창업

허경석 페이얍 대표는 고교시절부터 창업을 꿈꿨다. 1990년대 말 마이크로소프트의 컴퓨터 운영체제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격하며 빌게이츠를 동경했다. 서울대 산업공학과에 입학한 것도 창업을 염두한 선택이었다.

“제가 고등학생 때 2002년 월드컵이 개최될 무렵이었어요. 당시만해도 전형적으로 문과와 이과를 나누던 시절이었죠. 그때부터 창업을 생각했고, 하게 된다면 IT 관련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당시만 해도 IT·소프트웨어 비즈니스를 하는 인물은 빌 게이츠를 비롯해 몇 분 없을 때였어요. 많이 받는 질문이 ‘그러면 컴퓨터공학과를 갔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건데, 고등학교 2학년때 깨달은 것이 ‘난 순수한 엔지니어 타입은 아니다’라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창업을 비롯해 여러가지 공학적인 소양을 배우기 위해 산업공학과를 가게 됐죠.”

그렇게 산업공학과 학사와 석사를 마치며 그는 창업동아리 활동을 활발히 했다. 당시 함께한 선배 중에는 송병준 게임빌 창업자를 비롯해 안상일 하이퍼커넥트 대표 등이 있다. 이후 그는 2010년부터 3년여간 통신사의 개발 협력사에서 전문연구요원(병역대체복무)으로 근무를 하며 스마트폰으로 인한 격변을 과정을 목격했다.

“아이폰3G가 막 한국 시장에 소개되는 시점이었죠. 삼성에서는 옴니아 대신 갤럭시를 내세웠고요. 그 과정에서 과거 피처폰을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죠. 당시 이동통신사의 과금 관련 서비스를 비롯해 여러 부가 서비스를 개발해주는 협력사들이 많았는데, 제가 다녔던 회사를 비롯해 대부분의 법인들이 청산됐어요.”

2014년 한 창업경진대회에서 수상했을 당시. 허경석 대표는 서른살 무렵 전화번호를 바탕으로 지인 간 개인정보를 공유하는 서비스로 첫 창업을 시도했다. (사진=허경석 대표)

그렇게 한 시대가 다음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을 경험하며 그는 전화번호를 바탕으로 지인 간의 개인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로 첫 창업을 시도했다. 막 서른살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당시를 떠올리던 그는 “학교 친구들이 공동으로 개발하던 프로젝트에 합류에 부대표를 맡고 개발을 했지만 사실 수익모델을 발굴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며 “결국은 피보팅을 해 GPS기반 중고거래 서비스를 개발했다”고 돌이켰다. 이 서비스는 당시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던 카카오의 관심을 끌었고, 이로 인해 그는 카카오모빌리티 초기 멤버로 일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 첫 창업 1년만의 일이었다.

“M&A(인수합병)이라기보다 ‘탤런트 애퀴지션(talent acquisition, 인재 확보)으로 간 거였어요. 입사일이 2015년 12월 1일이었으니 아직 카카오모빌리티가 카카오에서 분리되기 전이죠. 처음에는 카카오 택시, 나중에는 대리운전 분야의 서비스 정책 수립, 업체 협업 등을 담당하며 경험을 쌓게 됐어요. 또 계열사가 분리되는 과정에서 어떤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지를 비롯해 여러가지 재미있는 경험을 했죠.”

인구 1억을 바라보는 시장, “2030년까지 베트남 이커머스 탑3 들 것”

창업을 꿈꾸며 베트남 현지 답사를 다니던 시절의 허경석 대표. (사진=허경석 대표)
공동창업자이자 베트남 현지 팀을 총괄하고 있는 박성수 COO(좌)와 허경석 대표. (사진=허경석 대표)

카카오모빌리티에서 3년여의 시간을 보낸 후 그는 다시금 오랜 꿈인 창업을 위해 퇴사를 선택했다. 그가 주목한 시장은 베트남이었다. 이미 카카오모빌리티 재직 시절부터 1년에 2차례씩 베트남을 오가며 시장을 살폈고, 그 과정에서 역시 베트남에 여행온 공동창업자 박성수 COO(최고운영책임자)를 만났다. 현재 박 COO는 호치민에 거주하며 현지 팀을 총괄하고 있다.

초기 페이스북 기반으로 형성된 베트남 이커머스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개발한 ‘슬립온’은 허 대표와 페이얍 팀원들이 공들인 커머스용 챗봇 서비스였다. 페이얍은 이 서비스로 아산나눔재단에서 주최하는 ‘제9회 정주영 창업경진대회’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슬립온은 페이스북에서 제공하는 오픈 API를 활용해 메신저 안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 특징이었다. 이는 현재 페이얍의 서비스인 ‘리엔몰’의 모태가 됐다.

베트남 현지 사업을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허 대표는 2021년 3월 슬립온을 스마트 스토어 방식의 리엔몰 서비스로 개편하고 베타 버전을 선보였다. 셀러가 스토어를 쉽게 개설할 수 있고, 소비자에게는 URL 형식으로 판매 창구를 공유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MAU(월간활성사용자) 20만까지 달성하며 승승장구했던 리엔몰은 이후 코로나19로 인한 서비스 중단 등의 우여곡절을 거치며 최근 선물하기 기능에 포커싱된 서비스를 다시금 재개했다. 이를테면 리부트(Reboot)인 셈이다. 허 대표는 “지난해 11월 선물하기 서비스 ‘리엔기프트’ 개발을 시작해 이달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며 남다른 각오를 드러냈다.

“ 리엔기프트와 함께 다음달부터는 기존 스마트 스토어 방식의 리엔몰 플랫폼도 정상화됩니다.  우선은 기존에 확보한 셀러들을 통한 리엔기프트를 집중적으로 키울 계획이예요. 선물하기로 사용자를 마켓플레이스로 유도하고 키우는 전략이죠.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시작에 나선 허 대표에게 베트남 시장 진출 과정에서 깨달은 교훈을 물었다. 직접 부딪히고 깨지는 경험 속에 깨달은 사실들을 털어 놓는 그의 표정에 만감이 교차하는 듯했다.

베트남 현지 마케팅 멤버의 결혼식에 참석한 허경석 대표(왼쪽에서 두번째)와 현지 팀원들. (사진=허경석 대표)
베트남 현지 팀원들과 함께한 회식 자리. (사진=허경석 대표)

“첫 번째는 마켓과 고객에 대해 제 방식을 고집하고 밀어붙이면 안된다는 거예요. 이것은 현지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이야기죠. 현지 문화와 제도를 파악해 가며 저 스스로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외연을 넓힐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저희는 엄밀히 말하자면 ‘디스트리뷰티드 컴퍼니(distributed Company, 광역으로 분산된 회사)’에요. 제품개발팀이 한국에 있고 운영 및 마케팅 세일즈 조직은 베트남에 있죠. 그래서 각자에게 업무를 위임하는 방식이 필요했어요. 이 방식이 원활하게 작동하게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고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 두 번째 교훈이죠. 제 경우는 베트남 현지 업무는 COO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있어요. 직원들에게도 외국인인 제가 너무 베트남에 대해 아는 척하지 않으려고 해요. 대신 어느 나라 사람들이라도 공감할 내용으로 이익관계를 제시하죠. 마지막으로는 지난 2년 동안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과 라이선스 문제 등을 겪으며 리스크 매니징을 보수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인터뷰 말미, 허 대표는 “2030년까지 베트남 이커머스 업계 탑3 목표는 변치 않았다”며 “2023년은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발로 뛰는 한 해가 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스타트업의 옥석이 가려지는 것은 ‘위기의 순간에 직면할 때’라는 말이 있다. 남다른 의지가 서린 허 대표의 표정을 보며 페이얍의 지난 시간들은 그 진가를 드러내기 위한 과정처럼 여겨졌다. 그 과정에서 허 대표와 페이얍이 발견한 교훈은 성공의 길을 비추는 등불 될 듯하다.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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