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컬리는 왜 쿠팡의 길을 가지 않았을까?

미국 상장이 예상됐던 마켓컬리가 국내 증시 상장으로 선회할 것이라 알려진 가운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015년 5월에 서비스를 시작한 마켓컬리는 '밤에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에 배송한다'는 샛별 배송으로 빠르게 업계 점유율을 차지했다. 특히 신선 식품의 직매입 시스템을 도입해 네이버, 11번가 등 상품 거래 중개 커머스를 이용하던 고객층을 단숨에 흡수했다.

신선 식품의 주문부터 최종 배송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관리할 수 있다는 역량을 보여주며 급성장한 마켓컬리는 2017년에 주관사를 선정하며 국내 상장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쿠팡이 지난 3월 상장에 성공하며 첫날 시총 100조원을 찍는 모습을 보여주자, 이내 외국계 증권사와 손잡고 미국 상장으로 가닥을 잡았다.

마켓컬리의 실적 역시 미국 상장 조건에 충족한 상태였다.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을 원하는 외국계 기업은 7억5000만달러(약 8600억원)의 시가총액과 7500만달러(약 861억원)의 매출액을 충족해야 한다. 마켓컬리는 이미 연결 기준 매출액은 9530억원을 달성한 상태였다. 성장세 측면에서도 쿠팡이 창업 3년 만에 매출액 1조원을 달성했다면, 마켓컬리는 2017년 466억원이었던 매출 규모를 2년 만에 20배 이상 끌어올렸다.

마켓컬리는 쿠팡과 무엇이 달랐기에 갑자기 방향을 선회한 것일까?

재고 소진, 투자 유지, 경쟁자 등 점점 늘어나는 리스크

쿠팡과 마켓컬리는 직매입부터 최종 배송까지 수행하는 1P(One Party) 플랫폼이지만 속사정을 보면 좀 다르다.

쿠팡은 관리 품목의 80% 이상이 공산품으로 자체 물류센터에서 관리하는 상품 종류는 약 500만개에 달한다. 이 때문에 쿠팡은 상품들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피킹과 배송, 비용이 달라진다. 쿠팡이 아마존 방식으로 대형 물류센터를 연달아 세우면서 물류에 힘쓰는 것도 이런 이유다.

반면, 마켓컬리는 관리 품목의 80% 이상이 식품으로, 하루 SKU(Stock Keeping Unit)는 2만개다. 이 때문에 마켓컬리 입장에서는 어떻게 재고 소진율을 높이는 게 관건이다. 직매입 시스템을 통해 성장했지만, 덩달아 리스크로 작용하는 셈이다. 오프라인을 통한 소진도 할 수 없다.

게다가 쿠팡과 마켓컬리는 빠른 성장을 통해 거액의 펀딩을 유치하면서 매출액을 상회하는 변동비를 막아왔다. 팔면 팔수록 밑지는 장사이지만, 확장을 통해 흑자 전략을 낼 수 있었던 것. 하지만 쿠팡과 달리 마켓컬리의 상황은 좋지 않다.

손정희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비전펀드는 이미 숙박 플랫폼인 야놀자와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투자를 결정했으며, 마켓컬리 투자자였던 한국투자파트너스 역시 최근 마켓컬리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오아시스마켓'에 투자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켓컬리가 빠르게 성장한 스타트업이라면 오아시스마겟은 같은 신선식품을 다루지만 수익 기반으로 점진적으로 성장한 중견기업의 모습에 가깝다.

물론 성장세는 지난해 68%로 일반 수준보다 높다. 무엇보다 오아시스마켓은 약 30여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켓컬리가 지닌 상품 재고 및 폐기에 따른 리스크도 없다. 매출 비중 또한 50%를 상회해 경쟁력도 가졌다. 또 500억원대 투자 유치를 통해 기업가치를 7500억원대로 올리며 마켓컬리를 위협하고 있다. 결국 마켓컬리는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 수도권에 국한된 시장을 확장하고자 물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CJ 대한통운과 협력 MOU를 맺기도 했다.

달라진 국내 시장, 빼앗은 고객을 다시 뺏길 위협 놓여

이런 내외부적인 상황이 마켓컬리를 국내로 다시 유턴하게 만든 셈.

또 쿠팡은 아마존이 OTT 사업을 했듯 쿠팡플레이 서비스를 론칭하는 등 착실하게 '팔로우 아마존' 전략을 구사하며 미국 시장에서 각인한 반면, 마켓컬리는 해외 진출을 하려고 해도 진출 가능한 현지의 식문화 시장부터 찾아야 한다.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는 "아직 구체적인 해외 진출 목표는 없다"고 했지만, 성장이 둔화된 국내 시장에 언제까지 머무를 순 없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의 새벽 배송과 신선 식품 시장은 쿠팡, 이마트의 SSG닷컴, 롯데 등 각축전이다. 게다가 이마트는 이베이코리아까지 인수해 이커머스 2위에 올라 고객군을 키웠고, 최근 네이버 역시 신선식품 분야를 강화하고 있다. 초기 마켓컬리가 이커머스 플랫폼의 고객을 끌어왔듯, 빼앗길 위기에 놓인 셈이다.

만약 마켓컬리가 2021년 안에서 국내 상장할 수 있다면 유니콘의 상징성까지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대외적인 악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쿠팡을 볼 때, 국내 증시에서 다시 경쟁력을 강화한 후에도 미국 상장이 늦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석대건 기자

daegeon@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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