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CP - 국내 ISP 갈등의 근본 원인은 글로벌 1계위 망 사업자가 없기 때문”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망 사용료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머리를 모았다. 23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글로벌 디지털 강국 도약을 위한 네트워크 정책’ 컨퍼런스에서 의미 있는 분석과 해결책이 도출됐다. 이 행사는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한국경영과학회 등이 공동 개최했다.
기조연설자인 경인교대의 김이재 교수는 ‘국가 경쟁력으로서의 연결성’이라는 주제로, 연결(Connect)과 지리(Geography)를 합성한 신조어, 커넥토그래피 개념을 제시했다. 지정학적 환경이 흥망을 결정하는 과거와 달리, 앞으로는 얼마나 많은 연결성을 확보하느냐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 예상했다. 한국은 좋은 인력과 컨텐츠, 데이터를 갖고 있으나 제대로 빛을 발하려면 에너지와 물품, 인재의 수송 뿐 아니라 정보·지식과 금융·기술이 광속도로 전달될 인터넷, 통신망 등 기능적 사회 기반 시설의 초국적 연결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첫번째 발제를 맡은 김병철 앨라배마주립대(University of Alabama) 경제학과 교수는 2010년 응용미시경제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술지 중 하나인 RAND 저널에 게재한 논문 ‘망중립성과 투자유인(Network Neutrality and Investment Incentives)’을 소개했다.
이 연구는 기본망 품질이 좋은 경우 고급망에 대한 수요는 감소할 것이라며 인터넷 서비스제공자(ISP, 주로 통신사)가 흔히 주장하는 ‘망중립성의 완화가 투자유인을 증대한다’는 논리의 모순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예로 공항에서 이코노미석 승객의 수속이 많이 지연될 때 비즈니스석의 상대적 가치가 올라가는 상황을 들었다. 망중립성이 사라지면 망 전체에 대한 투자는 떨어지고 오히려 고급망에 대한 투자만 올라갈 것이므로 중소, 영세 컨텐츠 제공업체(CP)및 스타트업이 불리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교수는 상품의 차별화/다각화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는 기본 옵션의 품질이 저해되는 것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번째 발제자인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디지털 강국 도약을 위한 네트워크 정책’이라는 주제로, 트래픽이 늘어나고 이용료는 저렴해져야 디지털 강국이 될 수 있으며, 국가의 네트워크 정책도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공익에 부합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최근 페이스북-방통위 소송, 넷플릭스방지법 등 글로벌CP와 망사용료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국내 ISP의 국제망 부족을 지적했다. 규모가 유사한 ISP끼리는 무정산(피어링)을 하나, 규모가 다른 경우 작은 ISP가 더 큰 ISP에게 대가를 지불(트랜짓)하고 인터넷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이 국제 규약인데, 한국의 ISP는 국제망 1계위 사업자가 아니다 보니 해외 컨텐츠를 들여오기 위해서는 비싼 국제망 접속료를 지불해야 하며 이 비용이 결국 국내 사용자와 CP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ISP 중심, 내수 중심의 근시안적 네트워크 정책을 벗어나 글로벌 1계위망을 갖추도록 네트워크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토론 세션에서 정광재 KISDI 통신전파연구본부 통신인터넷정책연구실장은 코로나 19로 인해 급증한 인터넷 트래픽과 관련한 주요국의 통신분야 대응 동향을 소개했다. 예를 들면 독일은 트래픽을 관리해야 하는 경우 사업자들이 해상도를 낮춰서 서비스해야 하는 등 트래픽 과부하 문제가 생길 것에 대비해 세계 각국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이대호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는 인터넷 생태계 관점에서 볼 때 ISP와 CP는 경쟁이 아니라 보완의 관계에 있다며, 사용자의 만족을 올리기 위한 정책을 만들기 위한 논의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태훈 왓챠 대표는 왓챠의 경우 국내 OTT 중에 한국 서비스를 기반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첫 사례인데, 글로벌에서 인기있는 서비스가 되어도 여전히 현지 ISP에 비해 열위의 지위를 갖게 되어 망비용 측면에서 글로벌 전략에 많은 제약이 생길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국내 ISP가 글로벌 상위 사업자가 되도록 하는 네트워크 정책이 필요하고, 이는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에도 도움이 된다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김현경 교수는 2019년 통신3사의 마케팅 비용은 8조 540억원으로 설비투자비용과 맞먹고 R&D 투자액의 10배에 이른다며, 늘어나는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한 투자가 필요한 지금, 국내에서 점유율 확장을 위해 출혈 경쟁을 벌이기 보다는 인터넷 접속 서비스를 위한 설비 구축이라는 본연의 의무를 선행하기 바란다며 토론을 마무리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