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시대, 실감기술(XR)을 활용한 패션 비즈니스 흐름과 전망②

유진희 플래티어 전략기획실 마케팅팀장

가상 의류 판매도 활발하다. 미국의 ‘드레스-X(Dress-X)’와 네덜란드의 ‘파브리칸트(Fabricant)’ 같은 패션테크 기업들은 ‘100% 디지털 패션’을 표방하는 기업 답게 ‘디지털 전용 의상 판매’를 비즈니스 모델로 삼고 있다.

‘드레스-X’의 비즈니스 모델은 젊은 층을 겨냥한 가상 의류 판매다. 고객은 공식 웹사이트에서 원하는 디자인을 구매한 후 자신의 사진을 올리면, 1~2일 내로 해당 디자인을 입은 자신의 가상 착용샷을 이메일로 받게 된다. 실제 사진같은 정교함과 고화질을 자랑하는 가상 착용 이미지는 인스타그램, 틱톡, 스냅챗 등 주요 SNS에 최적화된 다양한 버전으로 제공되는 데다, 비용도 평균 10~50달러 수준이라 MZ 세대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이 회사의 설립자는 “10년 내 10억 개의 디지털 의류 판매가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다 (B.Robert-Islam, Forbes.2020.8.21).

네덜란드의 스타트업 ‘파브리칸트’는 아예 제품 기획자가 증강현실(AR) 아티스트이며, 공식 웹사이트에도 VR, AR 전문가 채용을 공고할 정도로 가상 디자인에 집중한다. 이 회사 수석 디자이너가 “물리적 공간에 얽매이지 않은 미래형 옷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을 정도다. 드레스-X가 저렴한 비용으로 가상의 ‘기성복’ 디자인을 판매한다면, 파브리칸트는 가상의 ‘맞춤 의류’를 옥션 방식으로 판매한다. 그 중 2020년 6월에 판매된 드레스 ‘Iridescence’는 판매가가 9,500달러(원화 약 1천1백만원)에 알려져 전세계 패션시장을 놀라게 한 바 있다.

고가의 맞춤 의복을 판매하는 만큼 파브리칸트는 드레스-X보다 좀 더 고도화된 기술을 사용한다. 경매로 판매한 3D 가상 드레스를28일 내에 고객 맞춤형의 2D 형태로 재디자인한 다음, 각종 SNS 사이즈별로 최적화된 ‘맞춤형 필터’를 제공하는 것이다. 파브리칸트는 고객의 움직임 또는 이미지에 다양한 영상과 배경을 합성하여 가상 착용 이미지를 제작하는데, 회사는 이 과정을 디자인 또는 피팅 대신 ‘포스트 프로덕션’이라고 설명한다 (The Fabricant Official Website).

Dress-X(위)와 Fabricant(아래)의 가상 의류 서비스. 출처: Dress-X, Fabricant 각 사 홈페이지

국내 패션 시장에도 2020년 중순부터 메타버스 기술 활용이 늘고 있다. 패션 커머스 스타트업인 ‘에프엔에스홀딩스’의 패션 메타버스 플랫폼 ‘패스커’는 ‘VR 스토어’와 ‘3D 쇼룸’을 통해 고객에게 가상 의류를 판매한다. 에프엔에스홀딩스는 이 서비스로 2021년 7월, 41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받으며 관심을 모았다 (박호현, 서울경제, 2021.7.2).

코오롱 FNC의 여성 브랜드 ‘럭키슈에뜨’도 메타버스 플랫폼인 ‘럭키타운’을 운영 중이다. VR 체험 공간인 ‘럭키타운’은 당사 모델의 브랜드 착용 샷과 스타일링을 360도로 보여주는 서비스인데, 제품에 대한 몰입과 실재감을 선사하여 제품 이해를 높이고 있다.

‘패스커’(좌, 중)와 ‘럭키타운’(우)의 메타버스 기술 활용 사례. 출처: 에프엔에스홀딩스, 코오롱 FNS각 사 홈페이지

· 잡화:  증강현실(AR)을 활용한 ‘가상 피팅’ 서비스 활발

잡화 부문은 의류 시장에 비해 AR 가상 피팅 서비스가 보다 대중화되었다. 개인별 체형이 모두 다른 의류에 비해, 잡화  부문은 비교적 치수가 규격화된 덕분이다. 고객 입장에서도 가상 피팅을 할 경우 단순 스타일링을 넘어 ‘맞춤형’ 제품을 찾기가 훨씬 쉬워지기 때문에, 잡화 부문의 가상 피팅 서비스 시장은 갈수록 가파른 성장 추이가 나타나는 중이다.

‘구찌(Gucci)’는 2019년 AR 기술 응용 스타트업 ‘워너(Wanna)’와의 기술 제휴를 통해 스니커즈를 AR로 신어볼 수 있는 가상 피팅 서비스 ‘AR 트라이온’ 기능을 도입했다. 고객이 구찌 앱에서 원하는 운동화를 고른 후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발을 비추면 그 즉시 해당 신발을 착용한 가상 화면을 볼 수 있는 기능인데, 이때 보이는 가상 착용 모습은 발의 움직임에 따라 어떤 각도에서도 자연스럽게 보여지기 때문에 실제 착용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Wanna Official Website).

미국 운동화 전문몰 ‘고트(Goat)’사의 AR 피팅 서비스도 주목할 만하다. 구찌와 비슷한 시기에 선보인 고트의 피팅 서비스는 아직 미출시된 신제품이나 고가의 리미티드 한정품 등을 미리 신어볼 수 있다는 점에 주력한다 (R.Williams, Marketing Dive, 2019.10.4).

‘나이키(Nike)’의 ‘나이키핏’은 AR 스캐닝 기술을 통해 맞춤형 신발을 제안한다. 나이키는 자체 조사를 통해 60%의 사람들이 자신의 발과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2018년 신체 스캐닝 기술을 보유한 ‘인버텍스(Invertex)’를 인수하여 2019년 ‘나이키핏’을 선보였다. 나이키핏은 스마트폰으로 발의 사이즈, 형태, 부피 등을 스캔하여 최적의 운동화를 제안하는데, 실제 발사이즈와 신발의 오차가 2mm에 불과할 정도로 높은 정확도가 강점이다 (Nike Official Website, 2019.5.9).

구찌 AR 트라이온, GOAT AR 트라이온 셀렉션 공지, ‘나이키핏’ 스캐닝 솔루션. 출처: 구찌앱, Goat트위터 계정, 나이키핏 앱 캡쳐

· 유통, 오프라인을 그대로 재현한 가상 매장으로 ‘미러월드’ 유형 구현

유통 기업들은 오프라인 매장과 동일한 형태의 ‘미러월드’ 가상 플랫폼 구축에 한창이다. 국내에서는 ‘롯데홈쇼핑’과 ‘현대백화점’이 대표적이다. 롯데홈쇼핑은 2019년 실감기술 모바일 앱인 VR·AR 전문관 ‘핑거쇼핑’을 런칭하여 오프라인 매장과 동일한 동선으로 진열된 제품들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VR 판교랜드’ 또한 오프라인 매장과 동일한 구성을 갖춘 가상백화점으로 지하1층부터 지상 10층까지 오프라인 판교점을 사실적으로 구현했다.

미러월드형 가상 공간을 구현한 현대백화점 ‘VR판교랜드’와 롯데홈쇼핑 ‘핑거쇼핑’ VR샵.  출처: 현대백화점, 롯데홈쇼핑 각 사

‘핑거쇼핑’과 ‘VR판교랜드’는 제품을 360도로 자세히 줘서 고객의 제품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매장에 온 것 같은 현실감을 제공한다. 특히 상담부터 상품 감상, 구매 등 오프라인에서 진행하는 모든 쇼핑 행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두 플랫폼은 ‘가상과 현실이 연결된 공간’ 이라는 메타버스의 기본 개념을 충실히 반영한 사례로 볼 수 있다. 

2) 고객이 평가한 ‘가치’로 거래가 진행되는 경매형 완전경쟁시장 구현

현재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하는 다수의 비즈니스들은 ‘가치 소비’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경매형’의 오픈 프라이스 정책을 취하는 사례가 많다. 가령, 메타버스 세상에서는 BMW같은 최고급 자동차보다도 SPA브랜드 의류가 더 비싼 금액으로 거래될 수 있다. 현재 메타버스 내에서 가장 고가에 거래되는 품목들 중 다수는 패션 카테고리에 속한다.

1. ‘완전경쟁시장’의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진입장벽이 없어 기업(공급자)의 시장 진입과 퇴출이 자유롭고 수많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존재함, 2) 가격은 오직 수요와 공급으로 결정되며, 외부 요인이 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함, 3) 시장 참여자는 가격에 대한 완벽한 정보를 가짐, 4) 거래되는 상품의 가치는 동질함.

미국의 IMVU는 20만 명 이상의 크리에이터가 만든 5천만 개의 아이템이 거래되고 있는 패션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IMVU에서는 모든 거래 조건이 어떠한 외부의 개입도 없이 판매자와 구매자의 공급-수요에 따라 결정된다. 심지어 동일 디자인인데도 구매자에 따라 가격이 다르게 형성되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런 IMVU의 인기는 갈수록 뜨거워져서2020년에만 성장률 44%, 월 활성 이용자(MAU)는 700만 명을 기록했다. 그에 따라, IMVU는 2021년 4월말 기준으로 매달 거래 발생 건수가 2700만 건 이상, 월평균 거래액이 140억 달러(원화 약 16조 1200만원)에 달하며 대표적인 패션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입지를 굳힌 상태다 (N. Phelps, Vogue, 2021.5.27).

메타버스 플랫폼 IMVU에서 거래되는 패션 브랜드의 가상 디자인들. Mowalola (좌), Bruce Glen (중), My Mum Made It (우) 출처: N. Phelps, Vogue, 2021.5.27

앞서 언급했던 ‘파브리칸트’의 드레스 ‘Iridescence’도 구매자가 평가한 가치로 금액이 결정된 사례다. 무명 회사의 제품이 9,500달러(원화 약 1천1백만원)라는 높은 가격에 팔릴 수 있었던 것은 메타버스 환경이었기에 가능했다. 제품 구매자는 이 드레스를 아내 선물용으로 구매했는데, ‘장기적 가치’를 고려했을 때 충분히 지불할 만한 ‘투자’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C.Hackl, Forbes, 2020.6.8).

심지어는 디지털 상품이 현실 세계의 실물 제품보다 고가로 판매되는 경우도 있다. 2021년 2월 중국 기업 ‘RTFKT’가 선보인 가상 운동화는 단 7분만에 600켤레가 완판되는 기록을 세웠는데, 당시 RTFKT가 가상 운동화 판매로 올린 매출은 310만달러(원화 35억 7천만 원)였다. 물리적 제품은 아니지만, ‘구찌’의 경우 2021년 6월 신제품 컬렉션을 홍보한 영상을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경매로 2만 5천달러(원화  2,880만 원)에 판매한 사례도 있다 (이지현, 한국경제, 2021.6.17).

물리적 실체가 없는 가상 상품에 소비자들이 거액의 비용을 지불하는 과정은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던 기존 이커머스 생태계와는 결을 달리한다. 메타버스 기반의 커머스는 고객들이 해당 제품 또는 서비스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가격이 형성될 수 있다. 확고한 브랜드 명성이 없어도, 또는 패션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어도, ‘투자할 만한’ 제품이라는 것이 납득되면 고객은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이 메타버스 패션 시장의 특징이다. 이는 동일 브랜드라도 복수 포지셔닝 전략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 입장에서도 매력적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패션 메타버스 커머스 시장은 갈수록 가치 기반의 경매형 비즈니스 모델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경매형 비즈니스에서는 선도기업이 구축한 인프라나 브랜드 이미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대신 개개인의 평가로 브랜드 가치가 측정되고 가격 범위가 다양해지기 때문에, 기존 플레이어나 후발주자 할 것 없이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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