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은 전시에 푹 빠졌습니다
혹시 성황리에 진행 중인, '사랑의 다리에서 마주하는 시간의 서사시'라는 이름의 전시를 보신 분이 계실까요? 이 전시회는 명품 주얼리 브랜드로 유명한, 반클리프 아펠에서 주최한 것으로 무려 DDP에서 열릴 정도로 상당한 규모였는데요. 직접 방문하여 관람하면서 평소 접하던 일반적인 전시들과는 상당한 차이를 가진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먼저 완전 무료로 입장 가능했지만, 사전 예약을 해야 볼 수 있을 정도로 관람 인원은 철저히 통제를 하고 있었고요. 동시에 전시 기간은 1월 8일부터 20일까지로, 통상 수개월 진행되는 다른 전시와 달리 약 3주 정도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러한 특징들은 그간 명품 브랜드들이 반복해 왔던 일종의 공식에 가까웠습니다. 브랜딩 차원에서 전시를 기획하였기에 당연히 무료로 오픈했지만요. 관람 인원은 제한하여 희소성이라는 가치를 더한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사진 촬영 등은 모두 자유롭게 오픈하여 바이럴을 통한 홍보 효과를 노렸고요.
그렇다면 왜 굳이 명품 브랜드는 플래그십 스토어 같은 매장이 아니라, 전시라는 형태를 택한 걸까요? 사실 최근 체험형 매장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리테일이 예술 전시의 아이디어를 빌려오는 건 매우 일상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아예 매장을 전시 공간처럼 꾸미는 사례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고요.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전시를 개최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제대로 된 전시를 하나 만드는 데는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클리프 아펠 이전부터 샤넬, 에르메스, 루이뷔통 등이 연이어 전시를 개최한 건, 그만한 이유가 다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턱은 낮추고, 의미는 더하고
물론 뭔가 특별한 감성과 경험을 더하는 건 특화 매장들도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근래 들어, 구찌 가옥, 디올 성수 등이 등장한 것이기도 하고요. 더욱이 어차피 관람 인원을 제한한다면 확장성 측면에선 차이가 없을지 모릅니다. 매장이나 전시나 일종의 오픈런을 해야 입장 가능한 건 매한가지거든요. 하지만 왜 해당 장소를 방문하느냐라는 목적성 측면에선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전시는 조금 더 편하게 고객이 방문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더욱이 최근 명품 매장의 문턱은 매우 높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정말 구매 의향이 있는 고객이 아니라면 방문할 엄두를 내기 힘들어졌습니다. 즉 명품 브랜드가 잠재 고객을 만나기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거죠. 그래서 역으로 고객을 찾아 나선 노력의 결과물 중 하나가 전시회 개최였던 겁니다. 꼭 해당 브랜드 상품을 구매할 의사가 없더라도, 전시를 즐기기 위해 고객들은 방문합니다. 이렇게 명품 브랜드들은 새로운 고객을 만들 최고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한때 유행처럼 번져 나갔던 명품 브랜드의 메타버스 플랫폼 진출 역시 잠재 고객 확보를 위한 노력 중 하나였는데요. 전시는 메타버스 진출과 비교하여 비용은 더 들 수 있지만, 보다 더 깊은 유대감을 만드는 데 유리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전시 경험을 통해 브랜드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장점입니다. 이번 반클리프 아펠 전시가 다른 일반적인 것들과 달랐던 점은 정말 배치된 직원 수가 많았다는 것과 이들이 전문 도슨트처럼 상세한 가이드를 해주었다는 부분이었는데요. 이들에게 개별 작품들이 가지는 의미와, 이를 만든 과정들을 상세히 듣다 보면, 자연스레 브랜드의 팬이 될 것만 같았습니다.
사실 명품 브랜드들이 지금의 위상을 가지게 된 건, 모두 그들이 가진 스토리 덕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의 정체성은 옅어지고 오직 가격표 만이 그들의 가치를 대변하고 있는데요. 특히나 패션에 대해 관심이 적은 일반적인 대중들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이야기에 대해 접할 기회가 적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전시를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건, 브랜드에게 정말 소중한 기회가 아닐까요?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겁니다
그런데 이러한 전시를 활용하는 방법론은 단지 명품 브랜드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닙니다. 형태는 조금씩 다를지 몰라도, 일반적인 매장의 틀을 벗어난 접점에서 고객에게 무언가 가치를 전달하는 건 앞으로 모두에게 중요해질 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명품처럼 고가이면서 구매 주기가 긴 일종의 사치재들을 다루는 브랜드들이 이를 가장 먼저 실감하고 있을 거고요.
그리고 이를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시몬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몬스는 침대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침대 없는 매장과 광고를 통해 유명해졌는데요. 이러한 마케팅 캠페인들은 결국 브랜딩을 통해 차별화된 인식을 만들어 내고 잠재 고객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선 명품 브랜드가 전시를 여는 것과 똑같은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는 이러한 흐름이, 사치재를 넘어 필수재까지, 보다 대중을 타깃으로 하는 일상적인 브랜드들까지 확대되어 나갈 겁니다. 기술의 발달로 점차 기능적인 차별화는 어려워지고 있고요. 그렇다고 가격으로 승부하면, 극소수의 대기업들 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 앞으론 마치 명품 브랜드가 전시라는 수단을 택했듯이, 어떻게 하면 더욱 브랜드 만의 가치를 전달하고 감성적인 유대감을 강화시킬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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