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계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미술품 창작-유통-향유의 선순환 체계 구축과 미술품 경매업 등 다양한 미술 관련 서비스업 등록이 가능한 미술진흥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동안 문학, 공연, 출판, 음반, 영화 등의 개별법은 있었으나 미술은 개별법이 없어 체계적 지원책 마련이 어려웠다. 이에 따라 작가 권리가 강화되고 해외 진출이 활발해질 여지가 생겼다.
이번 미술진흥법의 핵심은 △체계적인 미술진흥정책 추진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 △미술계 지원을 위한 제도적 초석 마련 △작가의 권리보장을 위한 재판매보상청구권 도입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미술계 이해관계자 의견을 반영해 법이 시행되도록 준비기간을 두기로 했다. 이에 정책 기반 구축은 공포 뒤 1년, 미술 서비스업 등록은 공포 후 3년, 재판매보상청구권 도입은 공포 후 4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른바 ‘추급권’으로도 불리는 재판매보상청구권이다. 이는 작가가 다른 사람에게 판 작품이 재판매될 때마다 작가나 저작권을 가진 유족이 재판매 금액 일부를 받을 수 있는 권리다. 작가들에게는 10년 넘은 숙원으로 한국미술협회 등 21개 단체가 모인 한국시각예술저작권연합은 법 제정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왔었다.
이는 음악, 도서, 영상과 다른 미술품의 특수성을 고려한 창작자 권리보장 제도다. 미술 작가들은 작품을 첫 판매한 뒤 추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술품은 창작 노력과 활동에 따른 명성에 영향을 받아 가격이 매겨지지만, 작가는 작품 유통 과정에서 추가 수익을 기대할 수 없었다. 미술진흥법은 추급권을 작가 사후 30년까지 인정하며 요율은 작가 및 업계 의견을 수렴해 대통령령으로 정하기로 했다.
이 권리는 프랑스에서 1920년 처음 도입됐다. 반 고흐와 폴 세잔 작품이 비싼 가격으로 거래돼도 작가와 가족은 빈곤하게 삶을 마감하는 불합리한 현실을 고치고자 마련됐다. EU는 추급권 인정 기간이 저작권이 유지되는 기간과 같은 작가 사후 70년까지다. 다만 미국은 추급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미술진흥법 통과 뒤 화랑을 중심으로 한 일각에서는 시기상조라며 거래 위축 등의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1차 판매도 어려운 신진 작가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고 극소수 유명작가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이와 함께 미술진흥법을 통해 미술품 경매업, 화랑업, 미술품 자문업, 미술품 대여·판매업, 미술품 감정업, 미술 전시업 등 미술 유통 및 감정과 관련한 다양한 업종이 제도권 내로 편입된다. 그동안 미술 서비스업은 별도 제도가 없어 자유업으로 등록할 수 있었다. 이 같은 미술 서비스업 신고제가 마련돼 앞으로는 미술업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문체부는 이해관계자들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세부 신고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 공정한 거래와 유통질서 조성 및 소비자 보호를 위해 미술 서비스업자가 준수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도 도입된다.
박보균 문체부 장관은 “K-아트는 문화수출 시장의 신흥 강자이자 블루칩”이라며 “특히 작년 국내 미술시장 규모 추정치가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 우리 K-아트의 성장 기세를 보여준 만큼, 미술계에 짜임새 있는 지원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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