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동안 국내 유통업계는 격변을 거듭했다. 기존 전통적인 유통 강자들이 과거의 영광에 취해 안주하는 사이, 혁신을 전면에 내세우며 등장한 신생 이커머스 기업들이 급성장하며 판도를 흔들어버린 것이다.
그 중에서도 쿠팡의 도전은 실험에 가까웠다. 2014년 도입한 ‘로켓배송’은 엄청난 적자로 돌아왔다. 업계에서는 상식을 뒤엎는 시도, 지속 가능하지 않은 사업 모델이라는 평가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쿠팡은 로켓배송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며 물류 인프라에 엄청난 투자를 지속했다. 급기야 로켓배송 도입 7년째인 지난 2021년 기준 누적 적자는 1조 8040억까지 불어났다.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이었지만, 쿠팡의 김범석 의장은 매번 ‘계획된 적자’임을 강조하며 위태로워 보이는 물류실험을 이어갔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지난 2022년 3·4분기 첫 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하면서 부터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포스트 코로나 시대로 전환되며 당시 급격한 정체기에 들어선 이커머스 업계 분위기와 상반되는 성과였다. 오랜 기간 적자를 불사하고 진행된 물류 인프라와 시스템 투자의 성과는 이때부터 본격적인 빛을 내기 시작했다.
쿠팡은 수년간 구축한 방대한 데이터에 AI를 적용, 정교한 수요예측을 가능하게 하며 재고 손실을 큰 폭으로 줄였고, 직매입, 보관, 분류, 최종 배송에 이르는 물류 전과정을 통합시켰다. 이러한 물류 자동화 등 기술 투자에만 쏟아 부은 돈이 1조원을 훌쩍 뛰어 넘는다. 이 기술이 적용된 쿠팡의 물류 인프라는 이미 이때부터 축구장 500개 크기를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쿠팡의 물류 센터는 전국 30개 지역, 100개 이상으로 여기에 투자된 금액만 누적 6조2000억원(2022년 말 기준)에 달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실험이 이제 국내를 넘어 대만에서도 시작됐다는 점이다. 2022년 10월 대만에 로켓배송을 론칭한 쿠팡은 최근까지 3600억원을 투자, 3호 물류센터 완공 등 한국에서 성공한 물류 혁신을 적용하는 중이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러한 쿠팡의 혁신이 일자리 증대, 협력 중소기업 수출 증대라는 파급 효과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급격하게 성장하는 와중에 갑질이나 배송 기사 등 노동자 처우 문제 등이 불거졌지만, 시행착오를 빠르게 개선해 나가는 노력은 인정할 만하다.
실제 최근 자료를 보면 성장 둔화를 맞이한 이커머스 업계가 직원 수를 줄이며 긴축에 나서는 반면, 투자를 확대한 쿠팡의 경우는 2년 연속 두 자릿 수 직원 증가 폭을 이어가고 있다. 쿠팡과 그 계열사, 물류센터 직원 수를 합하면 총 7만4220명(국민연금 가입자 기준)에 달한다.
그러한 쿠팡이 다시금 오는 2027년까지 3년간 3조원 이상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놀랍게도 현재도 업계 1위 규모인 물류 인프라에 새로운 추가 투자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전국적으로 구축된 ‘쿠세권(로켓배송이 가능한 지역)’을 넘어 그간 배송이 어려웠던 일부 지역을 커버하고, 현재 도서산간 지역 주문에 적용되는 추가 배송비 및 반품비도 없앤다는 계획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쿠팡은 현재 전체 인구의 70%가 속해 있는 쿠세권을 88% 이상으로 늘려 사실상 완전한 전국구 물류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국내 대형 유통 기업들을 따돌리고 업계 1위로 부상한 쿠팡의 이러한 행보는 한편으로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선 알리, 테무 등 이른바 ‘C-커머스’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쿠팡의 투자는 아직 ‘쿠세권’ 혜택을 받지 못하는 고객을 위한 것
최근 진행된 넥스트커머스 행사에서는 이러한 쿠팡의 새로운 물류 인프라 구축 전략의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 대담이 진행됐다. 김철민 비욘드엑스 CEO가 모더레이터로 나서고 박지원 쿠팡 물류서비스디자인 총괄 시니어 디렉터(물류서비스 디자인 총괄)가 ‘쿠팡이 생각하는 한국 이커머스 향후 10년의 물류’를 주제로 함께한 대담이다.
까르푸와 홈플러스 등 전통적인 유통 기업 출신의 박지원 총괄은 “이전 회사에 근무할 때부터 어떻게 하면 물류를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지만, 비용을 줄이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며 “쿠팡의 경우는 오히려 돈을 쓰게 했고 더 빨리, 더 많이 (물류센터를) 지으라고 독려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쿠팡의 투자는 아직도 쿠세권이 아닌 지역에 살고 계신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전국 방방곡곡, 모든 지역에 최대한 쿠세권을 만드는 중이죠. 예전에는 아마존 등에서나 직구로 살 수 있었던 물건도 이제는 쿠팡을 비롯한 여러 이커머스를 통해 살 수 있어요. 그렇게 더 많은 종류의 상품과 빠른 배송을 위해 계속 투자하는 것이죠. 좀 더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이러한 물류 투자는 고객의 삶의 질을 조금 더 높여주기 위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류는 인구감소, 인건비 상승 등으로 지속적 고도화 필요
물류라고 하면 단순히 물류센터와 배송 시스템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최근의 물류는 자동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람 대신 로봇이 힘을 써야 하는 일들을 대신하고, 상품을 자동으로 분류하며 고객의 집 문 앞까지 문제없이 도착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데이터 기반의 제품 수요와 최적의 물류 경로를 분석해 재고를 줄이고 수익성을 강화하는 전략이 적용되고 있다. 이른바 ‘풀필먼트 서비스’의 고도화라고도 할 수 있다. 쿠팡은 오는 2027년까지 경북 김천·충북 제천·부산·경기 이천·충남 천안·대전·광주·울산 등 8곳 이상 지역에 이러한 신규 풀필먼트센터 운영을 위한 신규 착공과 설비투자를 추진할 계획이다. 박 총괄은 “물류는 고도화가 되면서 힘을 쓰는 업무가 아니라 머리와 기술을 쓰는 업무로 변화하고 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물류라고 하면 이른바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하다고 인식되는 산업) 업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거기다 인구 감소와 인건비 상승이라는 문제도 물류 분야가 해결할 문제로 꼽히고 있죠. 물론 쿠팡에서도 물류센터에 지게차를 몰고 물건을 옮기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 외에도 상당한 숫자의 기계 공학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로봇을 손보고 움직일 수 있게 시스템을 짜는 일을 하죠. 그런 점에서 향후 물류는 고도화될수록 점점 힘을 쓰는 업무가 아니라 머리와 기술을 쓰는 업무로 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류 파트가 편하고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쿠팡도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죠. 물론 아직까지 모든 업체가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쿠팡이 그런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쿠팡의 물류센터에는 과거 종이 서류를 기반으로 일일이 사람이 했던 일들의 상당 부분이 자동화되고 로봇이 도입되며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여러 개의 축구장을 합친 규모의 물류센터에서 사람과 로봇이 정해진 시스템 상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실제 고객이 쿠팡에서 물건을 주문하면 해당 주문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물류센터 작업자의 PDA로 전달된다. 그와 동시에 로봇이 작업자가 위치한 장소로 물건이 진열된 선반을 들고 와 포장 작업대까지 옮겨준다. 작업자가 물건을 인식 시키면 포장백이 자동으로 나오며 작업자는 물건을 포장백에 넣기만 하면 된다. 이렇게 포장된 상품은 배송 지역에 따라 분류되는데 역시 작업자가 할 일은 분류 로봇에 상품을 올려놓는 것 뿐이다.
이후에는 수백개의 분류 로봇이 운송장의 주소를 스캔한 후 단 몇 초만에 배송 지역을 분류한다. 이와 같은 과정이 고객이 물건을 주문한지 단 몇 분만에 완료되는 것이다. 이렇게 분류된 상품들은 고객과 가까운 지역의 배송센터로 옮겨지고 배송담당자들은 역시 업무용 PDA를 통해 업무량과 배송지역, 프레시백 회수 건을 한눈에 파악해 가장 효율적인 배송동선을 짠다. 이러한 시스템은 쿠팡의 전용 택배 차량인 ‘쿠팡카’에도 적용돼 있다. 슬라이딩 도어와 선반이 설치된 쿠팡카에는 AI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최적의 위치에 물건을 실을 수 있고 배송 시에는 빠르게 찾을 수도 있다. 박 총괄은 “업무 각 분야의 불편함을 파악하기 위해 1년에 두 세 번씩 직접 쿠팡친구(물류센터 직원) 체험을 하고 있다”라며 그간의 노력을 설명했다.
“자동화가 도입 되기 전에는 그야말로 사람들이 모든 것을 하는 시스템이었어요. 그 때문에 엄청난 인원이 투입돼야 했죠. 물량이 점점 늘어나며 투입되는 인원도 점점 많아지고 업무 역시 점점 어려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결국 자동화는 직원들이 좀 더 편하게 업무를 하면서도 고객들에게 더 빠르게 상품을 전달하기 위한 고민 끝에 도입된 거예요. 다만 쿠팡의 경우는 하드웨어 자동화에 앞서 시스템 자동화를 우선적으로 진행했습니다. 물류 시스템 데이터를 통해 현재 방식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파악했어요. 그리고 분류에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분류 로봇을 투입했고, 패킹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패킹 장비를 투입하는 식으로 전략을 짜서 진행했죠. 그런 전략들이 모여지고 레퍼런스가 쌓이면서 더 좋은 자동화를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래의 물류는 어떻게 진화할까?
쿠팡이 이제껏 만들어온 물류의 혁신은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최근 한국 진출을 본격화한 알리, 테무 등 이른바 ‘C-커머스(중국계 커머스)’의 도전 등으로 이커머스 업계의 격변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이커머스, 물류의 진화 방향성에 대한 질문에 박 총괄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봐야 한다”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제가 1999년도에 처음 카르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물류를 경험했어요. 당시만해도 많은 주부들이 시장에서 물건을 사던 방식이 일반적이었죠. 당시 카르푸는 2030세대 젊은 주부들이 방문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말하는 가장 큰 변화가 물건 가격이 일일이 적혀 있고, 주차와 카드 사용이 편하다는 거였어요. 이후 2007년 무렵이 되니 사무실 여직원들이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더군요. 그리고 곧 2012년 무렵이 되니 스마트폰으로 지하철을 타고가며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어요. 그런 변화를 보며 고객들이 소비 패턴이 급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죠. 이커머스도 고객들에게 새로운 쇼핑 경험을 제공하고 편의를 주는 것에 초점을 맞추며 발전돼 왔어요. 앞으로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 없이 전 세계의 물건을 누구나 언제든 살 수 있게 될 겁니다. 배송도 일주일, 3일, 하루로 점점 줄 거고요.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를 것인가는 알리나 테무 등이 국내에 진출하며 사람들이 느끼고 있죠. 이는 반대로 한국 기업이 만든 제품도 더 많이 해외에 팔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저희 역할은 그런 루트를 열어주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향후 물류 뿐만이 아니라 이커머스 시스템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사라지는 변화에 대처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 총괄이 강조한 것처럼 쿠팡을 비롯한 각 이커머스 기업들은 그 대처법을 데이터에서 찾고 있다. 이제 데이터는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이커머스 업계 입장에서는 하나의 프로덕트가 되고 있는 셈이다. 대담 말미, 박 총괄은 “데이터는 물류 분야의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사업화에 나서고 있는 스타트업계 역시 간과하면 안될 요소”라고 강조했다.
“한국에는 정말 많은 물류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저희를 비롯한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그런 스타트업을 찾아 협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류를 하려면 우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동을 기록하고 데이터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러면 우리 회사에서 가장 못하는 부분, 잘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지표로 나오게 돼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못하는 부분에 투자를 통해 평균 이상을 할 수 있게 하고 잘하는 부분은 더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자동화 하나면 하면 모든 게 해결 될 거라고 착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선 데이터화하고 측정하고 수많은 테스트를 하는 거죠. 확신이 들기 전에 자동화는 금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