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가뭄 몇 년 더?···'반도체 수급난' 4가지 해결과제

올 초만 해도 전세계는 반도체 부족이 내년 쯤이면 완화될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연말로 가는 지금 그 전망이 너무 낙관적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GM이나 포드 같은 세계적 자동차 회사가 반도체 부족으로 인해 심각한 매출 손실을 봤다고 털어놨는가 하면 애플 역시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 아스테크니카, 니케이 등은 현재 세계 반도체 수급난이 꽤 오래 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을 전했다.

컨설팅업체 딜로이트의 반도체 산업 관행 책임자인 브랜든 큘릭은 반도체 수급난, 공급망 문제가 적체되는 이유(해결 과제)를 크게 4가지로 봤다.

▲반도체 사용제품과 서비스 시장 수요 및 소비의 지속적 증가 ▲불투명한 수요 증가 지속세에 따른 투자증설 기피 ▲증설에 따른 인력 확보의 어려움 ▲잇따른 반도체 관련 공장 화재로 인한 불균형 부채질 등의 요인이 꼽혔다. 이에 따라 반도체 가뭄도 당초 예상했던 수 분기를 넘어서 수년 간 이어질 것으로 진단했다.

큘릭은 최근 이어지고 있는 반도체 공급난에 대해 “그것은 10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지만, 확실히 우리는 몇 분기가 정도 지연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몇 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포드는 반도체 부족으로 베스트셀러 픽업트럭인 F-150을 감산해야 했다. 이는 이익 감소로 이어졌다. (사진=포드)

실제로 지난달 28일 분기 실적을 발표한 GM과 포드 모두 칩이 없어 3분기 이익이 줄었다고 밝혔다. 애플이 캐시카우인 아이폰 라인업의 올해 생산 목표를 축소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다. 니케이아시아는 3일 애플이 아이패드 생산량을 줄여 여기에 사용될 반도체를 아이폰13 생산에 사용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웰스파고의 한 사업부는 반도체 공급 부족에 따른 압박이 미국 GDP 성장을 0.7% 감소시킬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이에 대한 만연한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문제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다.

많은 골치 아픈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적 반도체 부족의 원인은 무수히 많고, 그들 중 어떤 것도 빠른 해결책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래도 원인이라도 알면 덜 답답하지 않을까. 왜 반도체 수급난은 해결될 때가 된 듯 싶은데도 이처럼 심각한 상태로 몇 년이나 더 간다고 할까.

▲반도체 팹의 상당 부분이 빛에 민감한 웨이퍼 코팅을 보호하기 위해 노란색 광선을 사용한다. 웨이퍼의 칩은 사진 촬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사진속 팹 통로 양쪽에 있는 기계인 카메라 한 대 가격은 약 7000만 달러다. (사진=마이크론)

첫째, 요인은 반도체를 사용하는 제품과 서비스 시장의 수요와 소비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휴대폰, 태블릿 및 노트북을 구입한다. 게다가 이들은 비디오 스트리밍, 화상 회의 등과 같은 네트워크 집약적인 서비스를 계속 사용하므로 데이터 센터 사용을 증가시킨다. 큘릭은 “거의 모든 시장에서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욕구가 다양한 공급 부족과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공급난이 가속화됐다.

수요증가 속에 최근 인쇄회로기판(PCB)을 구성하는 기판(substrate·맨 밑바닥 판)이 희소해졌다. 첨단 반도체에 비해 PCB는 상대적으로 마진이 박하지만 제조하기가 용이하다. 대부분의 칩 회사들은 자신들만의 칩을 만들지 않지만 PCB가 없다면 반도체는 컴퓨터의 다른 칩과 대화(연결)할 수 없다. PCB 기판을 만드는 상당수 회사들은 생산 확대에 투자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이익을 내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7월 주요 기판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가 엄청난 물량을 생산하는 공장을 멈춰 세웠다. 그 결과 PCB 공장 생산 용량은 향후 ‘수년 간’ 수요에 뒤처지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회사 실적 발표회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을 정도로 위기상황이 극심해졌다.

둘째, 최근의 반도체 수요 증가(에 따른 공급난)가 코로나19 이후에도 지속될지 알 수 없어 반도체 업체들의 팹 증설 투자를 꺼리게 만들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13에 필요한 반도체를 확보하기 위해 아이패드 생산을 줄여 이를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이전 폭스콘 아이패드 생산라인의 모습. (사진=유튜브)

세계적 반도체 부족 상황은 심지어 세계에서 가장 풍부하게 반도체를 생산하는 업체들조차 곤란하게 만들었다. 이들조차 수요를 충족시키려면 한참 멀었다. 새로운 반도체 생산공장(팹)을 지어 최적화하려면 수 년이 걸리지만 반도체업체들은 수요 급증이 일시적일 수도 있다며 투자를 주저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요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까지 지속될지는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반도체 회사들은 새로운 반도체 공장(팹)이 70%를 가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면 투자하기를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로버트 메이어 세미컨덕터 어드바이저스 사장은 “60~70%의 활용률로 팹을 운영한다면 아마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팹 하나를 건설하는 데 수십억 달러가 들 정도로 비싸졌기 때문이다. 최첨단 팹 건설비는 약 50억~100억 달러(약 5조9000억~11조8000억원)로 10~20년 전의 몇 배에 달한다. 제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건물 자체도 건설 비용이 더 많이 들고, 칩을 만드는 기계도 더 비싸졌다.

반도체 회로 선폭이 7나노미터(nm) 이하인 고성능 반도체 생산에는 최신 극자외선 석판 인쇄술(EUV) 장비가 들어가는데 대당 1억 2000만 달러(약 1412억 원) 이상이다. 이를 공급하는 세계적 선두주자는 네덜란드의 ASML이다.

큘릭은 “많은 반도체 제조사들이 눈물 나오는 비용에도 불구하고 기존 설비에 새로운 건물을 지어 점차 용량을 늘리고 있다”고 말한다. 더 큰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인텔, 삼성, TSMC 모두 최근 몇 달간 새로운 팹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시설들은 발전소에서 물 공급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지원 인프라가 필요하기 때문에 몇 년 동안 가동되지 않을 것이다.

▲세계 반도체 주문 생산량의 63%를 차지하고 있는 대만 TSMC는 상반기 중 가뭄으로 인한 용수 부족으로 비상 가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TSMC의 클린룸. (사진=TSMC)

셋째, 생산 능력을 추가하려 해도 팹 가동 인력이 필요한데 이것도 쉽지 않다.

큘릭은 “반도체 (공급난과 함께) 인재 부족도 현재 진행형”이라면서 “생산 라인을 늘리는 것은 물론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대학, 전문대학, 그리고 회사들은 훈련된 노동자들의 수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노력들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라고 말했다.

넷째, 설상가상으로 반도체 관련 공장의 화재와 사고 여파가 칩 공급에 부담을 주며 가뜩이나 빡빡한 수급 불균형을 부채질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여러 반도체 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해 공급난을 악화를 가속화했다.

예를 들면 지난 3월에는 일본 르네사스 전자 소유의 팹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업체는 자동차 산업용 반도체 핵심 공급사였다. 당시 화재는 도금 장비 한 대가 전기 이상을 일으켜 다른 지역을 오염시키면서 클린룸의 5%를 파괴했다. 르네사스의 손상된 300mm 라인 재가동까지 최소 한달간 생산이 지연된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로 인한 반도체 생산중단 여파는 고스란히 자동차 업계로 갔다. 피해 팹 생산량의 3분의 2가 자동차용이었다.

▲지난 3월 화재를 겪은 일본 르네사스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라인 클린룸. (사진=르네사스)

르네사스 화재 이전 일본 반도체 산업 생산량은 이미 두 차례나 발생한 화재로 움츠러든 상황이었다. 그 하나는 지난해 7월 PCB 제작에 사용되는 기판(substrates) 생산 공장에서 발생했다. 가뜩이나 부족했던 상황에서 발생한 화재였다. 다른 하나는 지난해 10월 자동차 업계에 충돌 회피 시스템에 사용되는 칩을 판매하는 회사인 아사히 카세이 마이크로디바이스가 운영하는 공장 등에서 발생했다. 올해 3월 화재가 발생한 르네사스 전자 소유 팹은 아사히 카세히의 자동차용 반도체 생산량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초과근무까지 하던 중이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코로나19 팬데믹 발 반도체 공급 난조는 세계 주요 기업의 성장은 물론 각국의 경제성장까지 짓누르며 상당 기간 지속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거야 말로 알 수 없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선 지켜볼 뿐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이재구 기자

jklee@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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