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문제인가? 라이더의 입장
라이더들은 배달의민족(이하 배민)의 번쩍 배달 방침에 단체 행동을 감행했다.
라이더는 번쩍배달 콜을 받으면, 해당 음식만 배달할 수 있다.
그동안 라이더는 배달 동선을 고려해 최대 5개까지 한 번에 배달했다.
라이더 측은 번쩍배달로 인해 80%까지 수입이 줄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근무시간 연장으로 이어진다.
현재 라이더는 오토바이를 가진 반 자영업자에 가깝다.
라이더의 법적 지위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근로자이면서도, 아니다.
여기에 배민은 추가로 종합보험 및 책임보험에 가입해야만 전속 라이더가 될 수 있다.
유상운송용 즉 배달용 오토바이 경우, 그 위험 수준 때문에 평균 500~900만원에 이른다.
운전 경력이 짧거나 사고 발생 시에는 대폭 상승하게 된다.
그들은 근로자 인정을 받길 원한다.
배민 근로자로 인정받게 되면 산재가입 의무대상이 되며, 보험료도 배민이 전액 부담하게 된다.
무엇이 문제인가? 배민의 입장
코로나 이후 비대면 생활 확산으로 배달 수요가 급증했다.
배민은 2020년 약 7억 2900만 건 배달을 중계했다.
매출 역시 19년 대비 100% 성장한 1조 2300억원을 달성했다.
하지만 시장은 더 컸고 주문은 계속 늘었다.
배민이 잡지 못했던 추가 수요를 잡아낸 요기요, 쿠팡이츠 등도 성장했다.
배민이 시장을 놓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배달할 라이더가 없어서다.
단기 아르바이트 개념인 배민 커넥트로 등록된 이들 중 실제 배달은 20% 수준이다.
배민은 라이더가 필요하지만, 그들이 배민의 직원은 아니었다.
3000명이 넘는 라이더를 정직원으로 고용할 수 없다.
플랫폼 기업으로서 성장의 핵심은 라이더를 독립사업자 유지하면서도 확대해야 한다.
미국은 어떻게 하고 있나?
2010년 초 미국에서도 배민과 라이더 사이 갈등과 유사한 갈등이 있었다.
당시 우버 등 플랫폼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이나 초과 근로, 차량 등 이용 기기의 감가상각 손실 비용 등을 요구했다.
또 계약에 따라 플랫폼에 전속된 이들은 실업급여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플랫폼 기업은 그들이 독립사업자(independent contractor)라는 이유로 혜택과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는 집단 소송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임금노동자와 독립노동자를 나누는 ABC 기준이 적용된 AB5법(Assembly Bill 5)이 나온다.
<독립사업자와 임금노동자 차이, ABC 기준>
- 독립사업자는 업무성과에 따라 보수를 지급받는다. 자립이 가능해, 노동법 보호를 받지 않는다.
- 임금노동자는 자신의 업무에 대한 통제권한이 없고 관리자로부터 지시를 받는다. 따라서 법적 보호가 필요하다.
- 만약 기업이 아래 ABC 기준 세 가지 요소를 모두 입증하지 않는 한 임금노동자로 추정한다.
* ABC 기준
(A) 노동자는 업무 수행과 관련하여, 계약상으로나 실제로 기업의 통제와 지시를 받지 않는다
(B) 노동자는 기업의 통상적인 사업범위 외의 업무를 수행한다
(C) 노동자는 관례적으로 기업과 독립적으로 설립된 직종, 직업 또는 사업에 종사한다
(출처: 한국노동연구원,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법적 보호)
우버의 경우, 앱을 통해 플랫폼의 기업의 통제와 지시를 받는다.
운송 사업범위에서도 포함되며, 전속 기사는 별개의 직업이 없으니, 우버 운전자는 임금노동자에 인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버 등 플랫폼 기업은 반발했고, 주민발의안 제22호(Proposition 22)를 추진했다.
그 내용은 앱 기반 배달·운전기사를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로 간주해 이들에게 AB5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
대신 최저임금 120% 보장, 하루 12시간 초과 근무 제한, 산재 및 사고 보상 제공 등도 포함됐다.
우버 운전자들을 정직원을 전환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판단이다.
결국 발의안 22호는 통과됐고, 캘리포니아에서 우버 운전자는 임금노동자가 아니라 독립노동자, 즉 자영업자가 됐다.
대안은 없나?
우리나라에서도 배민 라이더는 캘리포니아의 우버 기사와 같이 경계선에 놓여 있다.
그 경계에서 라이더 교통 위험 초래, 주문 고객에 대한 성폭력 발생 등 플랫폼 내 책임 불명의 사건들이 지속적으로 발생 중이다.
건강한 플랫폼 노동시장은 만들어질 수 없을까?
뉴요커는 영국의 정책 기업가 윙험 로완(Wingham Rowan)은 온라인 공공 노동 시장을 소개한다.
이 시장에서는 라이더와 같은 긱이코노미 노동자와 배민과 같이 그들의 일시적 노동을 원하는 플랫폼 기업이 매칭된다.
비유하자면, 배민 플랫폼에서는 배민 라이더만 콜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공공 커뮤니티에서 배민, 요기요, 쿠팡이츠의 콜을 배민, 요기요, 쿠팡이츠의 라이더들이 모두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수직의 알고리즘이 수평의 알고리즘으로 변하게 되는 것.
더불어 전속 라이더만이 아닌, 일반인을 포함해 참여층 확장이 가능하다.
또 배달이 아닌 보육, 식당 등 고질적인 저임금 아르바이트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다는 게 로완의 '빅비전'이다.
민간 기업 역시 현금을 들이지 않고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상품과 서비스를 끌어들이게 가능하다.
저질 일자리에 노동자를 가두는 플랫폼이 아니라, 근로자로 하여금 시장을 보고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키우자는 주장이다.
사례가 있는가?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는 로완의 아이디어를 보육 시장에 적용했다.
로완이 개발한 SW가 적용된 공공 사이트는 롱비치 내 보육 서비스를 원하는 기관이나 가정과 보육 노동자를 연결하는 공간이 됐다.
이 과정에서 공공기관은 근무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근무 시간은 제한했다.
공공기관만이 노동의 최저 기준을 정할 수 있는 영향력과 권한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거래 수수료 등 수익과도 상관없이 운영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배달을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고자 경기도가 '배달특급'과 같은 공공배달앱을 내놓기는 했다.
그러나 그 역시도 다른 플랫폼일 뿐, 로완의 아이디어와는 다르다.
민간기업에 함께 경쟁한다는 점에서 라이더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시장을 흐릴 가능성이 높다.
서비스 질에서 민간에 밀려 사용자층을 확보할 수 없고, 라이더 역시 일거리 없는 플랫폼에서 일하지 않는다.
지난 5년 정부는 카풀, 승차공유 등 IT플랫폼 기반 서비스 이슈에서 갈팡질팡했다.
결국 한쪽 손을 들어줬지만, 사업자와 플랫폼 노동자 누구도 이득이 보지 못했다.
카카오의 승차공유 무산 이후, 택시 기사는 급격한 IT 변화 속도에 밀려 카카오T에 락인됐다.
카카오는 그 기간만큼 비즈니스를 하지 못했고, 사용자인 국민 역시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했다.
지금 배민 라이더들은 가장 주문 많은 시간에 배달콜을 받지 않는 항의를 이어가고 있다.
또다시 정부는 갈림길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