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 대응 차원에서 차세대 소형원전(SMR) 건설을 주장하는 억만장자 빌 게이츠가 이끄는 테라파워가 지난 16일 미국내 첫 SMR 건설지로 미북서부 와이오밍주 켐머러라는 작은 탄광촌을 선택했다.
테라파워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 40억달러(약 4조800억원) 짜리 SMR은 도대체 어떤 장점을 갖고 있길래 화제의 중심에 있는지, 또 미국 정부는 어떤 이유로 막대한 건설비의 절반이나 기꺼이 지원하는지, 그 과정에서 해결 과제는 무엇인지 등을 아스테크니카, CNBC, USA투데이의 현지 보도를 바탕으로 종합 정리해 봤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SMR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친환경 원전과 화력발전소를 대체할 경우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이 SMR의 안전성, 경제성, 친환경 에너지와의 연계성, 그리고 더 적은 핵폐기물을 배출한다는 부분일 것이다. 물론 해결 과제도 있다.
우선 테라파워가 왜 미국 북서부 와이오밍주 켐머러는 작은 탄광도시에 이 소형 원전을 구축하게 됐는지 궁금해진다.
흔히 그렇듯이 원전 건설 입지로는 대규모 냉각수가 확보된 곳을 찾게 된다. 중국이 우리나라 황해를 보고 대규모 원전들을 두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그런데 원전 구축 예정지인 와이오밍 크렘러 지역은 미 북서부 유타주 주도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130마일(약 210km) 떨어진 고산지 석탄광산촌이다. 인구가 고작 3000여명 남짓한 19세기 말 개척시대 탄광이다.
그런데 이곳엔 현지에서 채굴된 석탄을 사용하는 거대 화력발전소가 있다. 와이오밍주는 오리건주, 캘리포니아주, 콜로라도주, 워싱턴주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전기를 공급하는 화력발전소용 석탄을 선도적으로 생산하는 주요 주다. 이를 대체하는 원전을 건설해 막대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이곳에 원전을 건설한다면 기존 화력발전소(현재 2기가 운영중)에서 사용하는 냉각수와 고용량 송전선로 등과 같은 기존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이 석탄 화력발전소는 워런 버핏이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 소유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친분 관계는 익히 잘 알려진 그대로다. 뜻이 맞는 사람끼리 친환경 대의명 분에도 맞아 떨어지고 사업상 이익도 거둘 수 있는 벤처 비즈니스가 성립된 것이다.
물론 단지 그것뿐만은 아니다.
크리스 레베스크 테라파워 CEO는 “테라파워의 경우 이번 입지 선정은 지진 및 토양 상태와 같은 지질학적, 기술적 요인 및 지역사회 지원의 문제였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테라파워는 발표 자료를 통해 “실증사업단이 2025년 퇴역할 2기의 노턴화력발전소 부지를 선정할 때 다양한 요소를 평가했다. 여기에는 지역사회 지원, 현장의 물리적 특성,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현장의 능력, 기존 기반시설에 대한 접근성 및 그리드의 필요성이 포함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더라도 고지대 산촌 탄광마을에 원전이라니 과연 어찌된 영문일까.
빌 게이츠의 테라파워는 GE-히타치와 제휴해 오는 2028년까지 가동될 이 원전을 짓고 있다. 테라파워 관계자는 SMR이 완공되면 60년 간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사가 구축하려는 SMR은 기존 원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원자로를 기반으로 하는 ‘나트륨(Natrium)’으로 불리는 원전이다. 이 원자로는 일부 미 해군 잠수함에 사용되는 것과 유사하며, 기존 대형 원자로보다 건조 속도가 빠르고 저렴하며 가동도 안전하도록 설계됐다.
이 원전 설계 방식의 특징은 용해된 원자로와 소금 열 저장고와 발전 공정이 분리돼 있다는 점이다. 최소한의 연료 주입, 나트륨 용액에 의한 냉각 방식에 이 발전소가 재생발전 에너지와 더 잘 통합되도록 유연성을 제공하는 소금용액 열 저장 시스템이 포함된다.
테라파워의 SMR 프로젝트는 켐머러 현지 노턴화력발전소를 345 메가와트(MW) 원자로로 대체하는 프로젝트다. 향후 7년에 걸쳐 25만 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전력이 공급되는 것이다. 웬만한 기존 원전은 1000MW급이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상업적으로 배치된 적이 없는 많은 기술들을 처음 사용하게 된다.
참고로 빌 게이츠는 그의 최근 책 ‘기후 재앙을 피하는 방법’에서 1GW(1000MW)의 에너지는 중간 도시에, 1MW는 작은 마을에 필요한 전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쓰고 있다. 그는 미국은 1,000GW를 사용하고 있고 전세계는 5,000GW의 전력을 필요로 한다고도 썼다.
테라파워는 미국 에너지부에 의해 최소한 1억 8000만 달러(약 1,242억 원)의 건설비를 보장받는 와이오밍 시범 원자로 건설프로젝트 업체로 선정됐으며, 향후 몇 년 동안 총 공사비 40억달러의 절반인 20억달러(약 2조 4,000억원)를 지원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테라파워는 기후온난화 위기에 대한 부분적 해결책으로 원전 건설을 강조해온 빌 게이츠 현 이사회 의장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에는 테라파워뿐 아니라 다른 많은 원자력 관련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SMR은 테라파워만의 기술이 아니다.
원자로 설계는 GE 히타치 원자력 에너지(GE Hitachi Nuclear Energy)와 공동으로 개발되고 있다. 벡텔(Bechtel)이 원전 건설을 돕게 되며 여기에는 켐머러 인구의 약 80%에 해당하는 2000여명의 작업 인력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이 SMR 운영은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 에너지가 소유한 퍼시피코프(PacifiCorp) 산하 계열사인 ‘로키 마운틴 파워’가 맡는다.
그런데 테라파워의 SMR 설계에는 지금까지 거의 시도되지 않았거나 전혀 시도되지 않은 많은 기술들이 포함된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는 간단하지 않다. 테라 파워와 GE히타치는 이 설계를 ‘나트륨(Natrium)’으로 부르면서 이를 설명하는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나트륨’과 기존 원전과의 차별화 요소를 안전성, 경제성, 친환경발전 에너지와의 통합, 폐기물 등의 순으로 좀더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제안된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우라늄을 사용해 액체 나트륨 금속을 약 화씨 900도(482℃)까지 가열되며, 이때 나트륨은 터빈을 작동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증기를 만든다. 기존의 고압 냉각제 대신 액체 나트륨을 사용하면 이 원자로가 더 낮은 압력에서 작동할 수 있으며, 이론적으로 1979년의 스리마일 섬이나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멜트다운(노심용융)을 겪을 가능성을 낮춘다.
우선 와이오밍주 켐머러에 건설될 나트륨 원전은 노심에서 발생하는 열을 원자로 밖으로 내보내기 위한 냉각수로 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테라파워가 GE-히타치와 함께 개발한 첨단 원자력 설계에 따라 액체 나트륨을 원자로 냉각제로 처음 사용하게 된다.
이는 원자로에서 노출될 어떤 온도에서도 나트륨이 끓지 않는다는 큰 장점을 갖게 해 준다. 나트륨은 끓는 점이 높고 물보다 더 많은 열을 흡수할 수 있어 원자로 내부에 고압이 쌓이지 않아 폭발 위험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또한 나트륨 발전소는 냉각 시스템을 작동하기 위한 외부 에너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다. 이는 냉각수를 담고 있는 하드웨어 중 어느 것도 고압에 노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평상시나 유사시 문제를 상당히 단순화시킨다. (반면 나트륨은 공기와 쉽게 반응하고 물과 폭발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분명한 우려를 낳는다고 지적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원자로는 수동적 안전을 보장해 줄 많은 특징들을 가지게 될 것이며, 이는 냉각 순환이 실패하더라도 내부 열이 제한적으로 유지되도록 하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나트륨 냉각수를 사용해 건설된 주요 원자로는 약 25개에 불과하다. 이런 방식의 많은 원전들이 연구 목적으로만 지어졌고, 소수만이 운영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28개 주에 걸쳐 55개의 상업용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 가장 최근의 원자로는 2016년에 가동하기 시작했고, 조지아주에 2개의 원자로가 건설되고 있다.
나트륨 냉각 방식 원전설계는 수냉식과는 달리 핵분열 반응에 의해 생성되는 중성자를 늦추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흔히 ‘빠른 원자로’로 불린다. 고속 중성자들은 유용한 연료를 만들지 않는 동위원소를 변형시키는 능력이 있어 작동 중 더 많은 연료를 생산하게 해 준다.
테라파워가 만드는 원전 설계는 많은 ‘덜 유용한’ 동위원소가 농축 연료의 핵심을 둘러싸고 있는 방식이다. 원자로는 추가 물질을 유용한 연료로 변환하면서 농축된 노심에 의해 동력을 공급받게 될 것이며, 첫 번째 노심이 소진되면 이 변환된 연료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된다. 이 프로세스는 여러 변환 계층을 통해 반복되면서 연료 재보충에 필요한 가동 정지 시간을 줄여준다.
또한 이 SMR은 말 그대로 기존 원전보다 작아서 더 빠르고 저렴하게 지을 수 있다. 테라파워는 이 SMR 건설비용을 최초로 산정했던 원전 건설 예산의 4분의 1에 불과한 10억 달러(약 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레베스크 CEO는 “한 가지 깨달아야 할 중요한 점은 첫 번째 원전은 항상 비용이 더 든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테라파워는 원자로에서 추출된 열을 직접 전력으로 변환하지 않는다. 이 원전은 용해된 소금물 탱크에 열을 저장해 나중에 배터리와 같이 사용할 수 있게 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그 결과 이 원자로의 정격은 345MW이지만, 이 발전소는 수요가 많은 기간 동안에는 최대 5시간 동안 500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고, 수요가 감소하면 생산을 줄이기 위해 규모를 줄일 수 있게 된다.
이는 원전이 일일 수요 주기에 더 잘 따라갈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게다가 크렘머러 원전 열 저장소는 증가하는 재생 가능한 전력 사용과 더 잘 통합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와이오밍은 주요 풍력 발전 생산지다.)
마지막으로 거론되는 장점으로 이 나트륨 발전소는 핵분열에 따른 문제가 되고 위험한 부산물인 핵 폐기물을 덜 생산한다고 한다.
이 발전소 건설비 약 40억 달러 가운데 절반은 테라파워가 부담하고 나머지 절반은 미국 에너지부의 고급 원자로 실증 프로그램(Advanced Reactor Demonstration Program)가 지원한다.
레베스크 테라파워 CEO는 “이것은 매우 강력한 정부 보조금이다. 미국 정부와 원자력 산업이 뒤처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언급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 러시아는 우리와 같은 첨단 기술로 새로운 공장을 계속 건설하고 있으며, 그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 이러한 공장을 수출하려고 한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미국이 이런 방식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대체적인 긍정적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와이오밍 켐머러 공장은 연방정부의 허가를 포함해 여전히 몇 가지 난관을 해결해야 한다.
기존 방식과 여러 면에서 다른 설계방식을 사용하는 ‘나트륨’은 이전까지 상업적으로 사용된 적이 없다. 이는 계획된 7년 일정 안에 건설하기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레베스크 테라파워 CEO는 “원자력규제위원회가 감독하는 포괄적인 인허가 절차가 있는데 솔직히 비용이 많이 든다. 정말 많은 검토를 거치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나트륨 공장에서 사용하는 연료는 고평가저농축 우라늄(HALEU)로 불리는데 이것이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다. 미 에너지부는 “기존 원자로들은 5%까지 농축된 우라늄-235 연료를 사용하고 있으며, HALEU는 5~20%까지 농축된다”고 밝혔다.
레베스크는 “안타깝게도 우리는 현재 이러한 농축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그리고 이것은 미국 정부와 특히 에너지부의 큰 관심사”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는 나트륨 발전소 시연 사이트가 만들어지는 방식과 유사한 또다른 민관협력을 통해 그러한 역량을 확립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미국의 석탄과 원자력 발전소는 국가 수요 전력의 약 20%씩을 생산하며, 재생에너지가 20%, 천연가스가 40%를 각각 차지한다.
미 연방 관리들은 이 발전소가 연간 약 300만 MWh의 무탄소 전력을 생산하고 기존 발전소에서 배출되었을 탄소 200만입방톤의 이산화탄소배출을 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은 일단 이 SMR이 성공적인 것으로 증명되면 이것이 다른 곳으로 빠르게 확장되거나 복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빌 게이츠의 와이오밍 SMR 구축 결정은 새삼 우리에게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에 대해 일깨운다.
최근 들어 전세계는 탄소중립과 글로벌 에너지 대란 문제가 맞물리며 원전에 다시 주목하고 있다. 유럽 일부 국가는 물론 일본도 원전으로 유턴하는 분위기다. 중국과 미국 등도 원전 확대에 동참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국내에서 탈원전 기조를 유지하되 해외에서의 원전사업만 참여한다는 방침이다.
우리나라는 SMR의 핵심 기술을 이미 20여년에 확보했다. 100%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중소형 원자로 ‘스마트(AMART)’는 개념 설계 착수 15년 만인 지난 2012년 표준설계 인가를 받았지만 정부의 탈원전 기조로 상용화에 이르지 못했다. 스마트는 증증기발생기, 가압기 등 원자로 1차 계통의 주요 기기들이 한 개의 원자로 압력용기 안에 설치된 일체형 원자로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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