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등 중동 석유부국들의 전기차 시대 대비책은

오랫동안 풍부한 석유와 가스 매장량을 자랑해 온 중동국가들도 더 이상 내연기관차에만 의존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우리에게 중동 석유부국들은 세계적 전기차 도입 및 전환 흐름속에 어떤 행보를 하고 있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들도 여타 국가들처럼 잠재적으로 전기 자동차가 지배하는 새롭고 더 지속 가능한 미래에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중동국가들도 전세계 전기차 판매에서 앞서가는 미국과 중국 전기차 제조사는 물론 유럽 다크호스업체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동시에 이들의 시장 경쟁 무대가 되고 있다. 중동 석유부국 가운데 단연 두각을 보이는 나라는 사우디 아라비아다. 이 나라는 자체 전기차 개발과 함께 세계적 유력 전기차 회사에 지분을 투자하고 있으며, 내년과 후년에 최고급 전기차 조립 생산에 나선다. 2년후인 2025년부터 자체 전기차를 생산하고 전국 5만곳에 충전소를 세운다. 사우디를 위시한 석유자원의 보고 중동 국가들의 글로벌 전기차 트렌드와 관련된 일련의 움직임을 소개한다. 지난주 보도된 걸프뉴스, 사우디포스트, 일렉트렉, CNBC, 그리고 저스트오토닷컴 등을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레이트(UAE), 바레인, 그리고 이스라엘 등이 글로벌 전기차 트렌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주목했다.

사우디, 중동 석유부국 전기차 제조 선두주자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는 사우디 아라비아의 지속가능한 성장의 일부로 전기차 생산 및 합작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 위는 씨어 모터스 로고. (사진=위키피디아)

중동 석유 부국 가운데 세계적 전기차 트렌드와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움직임을 보이는 국가는 단연 사우디 아라비아다.

현재 사우디 경제는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의 미래 전략에는 첨단 전기차 제조 및 수출과 동시에 비석유 GDP에 대한 비석유 부문 수출 기여도를 기존의 약 16%에서 50%로 높이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전기차 수입시장으로서는 물론 전기차 설계 생산 및 부품조달기지로서의 핵심 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주 걸프뉴스는 사우디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매년 50만대의 전기차 생산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같은 기간 중 이 나라 전기차 사용 비율을 25%까지 끌어올리는 교통물류서비스 전략 계획을 병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사우디 산업 및 광물 자원부는 지난달 21일 사우디 최초의 전기차 브랜드인 ‘씨어’에 산업면허를 부여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킹 압둘라 경제 도시 산업 밸리에 100만㎡(약 3만2500평)가 넘는 면적에 제조 시설을 건설하기 위한 핵심 단계다. 새 전기차 회사의 출범은 비전 2030 프로그램에 따라 화석 연료에서 벗어나 경제를 다각화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전략과 맞아떨어진다.

사우디가 만드는 자체 전기차 제조사는 씨어 모터스(Ceer Motors)이고 사우디가 개발중인 자체 전기차 브랜드는 ‘씨어’(Ceer)다. 차량들은 사우디 내에서 설계되고 제조된다. 씨어는 사우디 국부펀드(PIF)와 타이완 혼하이정밀(폭스콘)과의 제휴로 만들어진 합작회사다. 폭스콘은 최근 몇 년간 파워트레인이 완비된 전기차 플랫폼을 개발해 전 세계적으로 여러 대의 전기차 합작사나 제조 계약을 체결했다.

타이완 혼하이정밀(폭스콘)은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와 손잡고 합작회사 ‘씨어 모터스’를 설립해 지난달 인가를 받았다. 오는 2025년부터 사우디 아라비아의 합작 공장에서 ‘씨어’ 브랜드의 전기차를 생산한다. (사진=혼하이 정밀)

폭스콘은 씨어가 “사우디 아라비아, 중동, 북아프리카의 소비자들을 위해 다양한 차량을 설계, 제조, 판매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씨어는 전기차 세단과 SUV를 포함한 다양한 차량을 생산할 계획이다. 첫 출시는 2025년으로 예정돼 있다.

저스트오토닷컴은 폭스콘이 인포테인먼트, 커넥티비티, 자율주행 기술 분야를 선도할 제품 포트폴리오를 개발하며, 한편으로는 합작회사인 씨어가 BMW로부터 부품 기술을 라이선스한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지난해 11월 폭스콘이 사우디 정부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같은 전자 장비와 전기차 부품을 생산하기 위해 90억 달러 규모의 첨단 기술 제조 허브를 사우디에 설립하기 위해 협의 중이라고도 전했다.

압둘라 알 스와하 사우디 통신 및 IT부 장관은 이미 지난해 10월 “2026년에 사우디는 15만대 이상의 전기 자동차를 제조하고 수출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사우디 정부는 전기차 생산은 물론 국민들이 전기차 도입을 늘리도록 하기 위해 전기차 충전인프라 개발구상(SEVCIDI)을 마련했다. 목표는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자국내 충전소 5만개를 설치하는 것이다.

사우디와 폭스콘은 씨어가 1억 5000만 달러(약 1918억 원)의 외국인 직접 투자(FDI)를 유치해 최대 3만 개의 직간접 일자리를 창출하고 2034년까지 사우디 GDP에 80억 달러를 직접 기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우디, 미국 고급 전기차 ‘루시드’ 지분 60%

지난 18일 개장한 사우디 아라비다 리야드의 중동 첫 루시드 렌털 매장. (사진=사우디포스트 트윗)

CNBC에 따르면 사우드 국부 펀드는 지난달 루시드에 18억 달러(약 2조 3000억 원)를 추가 투자해 총 투자액을 90억 달러(약 11조 5000억 원)로 늘렸다. 이에따라 사우디의 루시드 지분 보유율을 48%대에서 과반인 60.5%로 껑충 뛰어 올랐다.

압둘라 알 스와하 사우디 통신 및 IT부 장관은 사우디의 루시드 지분 과반 소유가 “사우디 왕국을 전기차 선진국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18일 사우디포스트는 미국 루시드가 중동국가 최초로 사우디에서 자사의 고급 전기차 대여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내년에는 루시드 모터스의 전기차 반제품이 사우디에서 조립생산된다.

스와하 장관은 지난 5월 이 지역에 있는 루시드의 첫 제조 공장 공사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공장은 사우디 아라비아 킹 압둘라 경제도시에 세워지며 내년에 본격 생산을 시작한다. 일단 가동되면 연간 15만 5000대의 생산능력을 갖추게 된다. 다만 루시드 에어 모델은 먼저 미국 애리조나주 카사 그란데 공장에서 사전 제조된 후 사우디에서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시작한다.

지난해 루시드는 사우디 정부가 향후 10년간 최소 5만대의 전기차를 구매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 협정은 배출량을 줄이고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위해 국가를 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사우디 비전 2030’ 구상의 일부이다.

최근 부진을 겪고 있는 루시드로선 사우디 아라비아와의 계약이 자사의 부진을 버티게 해 주는 강력한 원군이 되고 있다.

루시드는 올해 2분기 2173대의 전기차를 생산해 1404대를 납품했다. 이는 가강 강력한 실적을 보인 지난해 4분기 이후 생산량 37% 감소, 납품 27% 감소라는 실망스런 수치다. 한편 루시드는 최근 애스턴 마틴에 자사의 고급 전기차 파워트레인 기술을 제공하기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피터 롤린슨 루시드 최고경영자(CEO)는 약 4억5000만 달러(약 5753억 원) 규모의 이 거래가 루시드의 기술 비즈니스의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중 전기차 교두보 다지기 경쟁속 中업체 대형 딜 터뜨렸다

중국 휴먼 호라이즌스의 고급 전기차. 하이파이 X 모델. (사진=위키피디아)

미국과 중국의 주요 자동차 업체들도 중동 전기차 시장에서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미국 전기차 제조사의 경우 앞서의 루시드 외에 GM, 포드가 사우디 아라비아 등 중동 전기차 시장에 다가서고 있다. GM은 올해 중동에서 캐딜락 ‘리릭’(Lyriq), ‘GMC 허머’ 전기차, 전기유틸리티 차량 ‘쉐보레 볼트’를 출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포드는 내년에 이 지역에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하지만 최근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사우디 아라비아 전기차 시장에 눈독들이는 중국업체들이다. 그중에서도 최근 사우디 투자부와 56억달러(약 7조 1600억 원) 규모 전기차 계약을 체결한 중국 전기차 업체 휴먼 호라이즌스가 단연 주목받는다.

지난달 11일 사우디 국영 통신은 사우디아라비아 투자부가 같은 날 중국 전기차 제조업체 휴먼 호라이즌스와 56억 달러 규모의 전기차 개발, 제조, 판매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합의는 이날 리야드에서 열린 아랍-중국 비즈니스 회의 첫날 기술, 재생에너지, 농업, 부동산, 금속, 관광, 의료 등 분야에서 체결된 100억 달러 이상의 투자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사우디 정부 계획의 일부는 자국내 전기차 제조업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휴먼 호라이즌스는 중국에서 하이파이(HiPhi) 브랜드로 고급 전기차를 생산하며 시장확장에 나서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만큼 프리미엄 하이파이 브랜드로 올해 일부 유럽 시장에 전기차를 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 다크호스 ‘아인라이드’ UAE서 돌풍 예고

자율 트럭 업체로 주목받는 스웨덴 아인라이드(Einride)의 전기트럭. (사진=아인라이드)

중동에 전기차의 미래를 가져오기 위한 최신 구상 중 하나는 UAE와 스웨덴에 본사를 둔 물류 시장에 초점을 둔 자율 전기트럭 운송 회사 아인라이드 간의 파트너십이다.

불과 한 달여 전 전기차 업계의 주목받는 다크호스 아인라이드가 UAE 에너지인프라부와 파트너십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현 시점에서 이 파트너십은 양해각서(MOU)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인라이드에게 이는 완성까지 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이 지역 최대 규모의 자율주행 전기차 개발 계획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로버트 팔크 아인라이드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는 발표문을 통해 “이번 협업은 아인라이드가 제공하는 것, 즉 완전히 전기로 작동하는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배송으로의 전환의 핵심에 이른다”고 말했다.

아인라이드는 이 ‘팔콘 라이즈(Falcon Rise)’ 프로젝트를 통해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에 걸쳐 2000대의 전기 트럭, 200대의 자율주행 트럭, 8곳의 전기차 충전소로 구성된 300마일(약 480km) 이상의 화물트럭 운송 그리드를 배치할 계획이다.

팔크 CEO는 “우리는 이번 거래에 협력함으로써 어떻게 프로젝트 전지역이 지능적이고 비용 효율적인 방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태미 클라인 미국 전기차 협의회 회장은 이 전략적 아이디어에 대해 “나는 그들이 제공하는 것이 특히 UAE 같은 나라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이 나라는 매우 제한적인 면적으로 갖고 있(어 전국을 전기화하는 데 유리하다)다”며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사우디 정부와 마찬가지로 UAE도 전기차 채택이 늘어날 수 있도록 인프라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한편 UAE는 지난달 상하이에 본사를 둔 전기차 업체 니오(Nio)에 7억3850만 달러를 투자한 뒤 지분 7%를 확보해 놓고 있다.

이스라엘, 바레인도 전기차 활성화

CNBC에 따르면 이스라엘에서는 중국 지리자동차 자회사인 지커(Zeekr)가, 요르단에서는 미국 투자가 워렌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가 오랫동안 후원해 온 비야디(BYD)가 시장 확산을 서두르고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올 상반기 전기차 인도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0% 이상 증가하는 등 전기차 부문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바레인에서는 지난 2월 미국 제조법인 가우스 오토(Gauss Auto)가 바레인 기업인 마슨 그룹(Marson Group)과 파트너십을 맺고 전기차 제조공장을 구축해 가고 있다. 건설과 운영은 10개월의 일정으로 이뤄질 예정인데 새로운 공장은 살만 산업 도시의 미국무역지역에 위치한다. 이 제조사는 가우스 오토 바레인(Gauss Auto Bahrain)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된다.

이 공장에서는 이륜차, 전기 삼륜차, 그리고 승용차를 포함한 다양한 전기 자동차를 생산하게 된다. 이 전기차들은 주로 바레인, 미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에 판매된다. 마슨 그룹 이사회의 알 마타르는 “마슨 그룹은 가우스 오토 바레인 공장을 통해 바레인을 전기차의 선도적인 제조 및 수출국 중 하나로 만들고 이 선진 산업을 현지화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동 석유부국과 석유회사들의 자신감···석유사용 급감까진 아직

전세계 에너지 수급에서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동 산유국들의 석유 사용량이 하루아침에 급감하지는 않는다. 이 지역 국가들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차근차근 대비하고 있다. (사진=구글)

중동 산유국의 석유 수출은 하루아침에 어디 가지 않는다.

지난달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세계 석유 수요가 약 20년 만에 하루 1억 1000만 배럴로 증가해 세계 에너지 수요가 23%를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이탐 알 가이스 석유수출국기구(OPEC) 사무총장은 지난달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1차 에너지 아시아 회의에서 “석유는 가까운 미래에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마이크 워스 셰브론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열린 아스펜 아이디어 페스티벌에서 “유럽연합(EU)과 미국이 부과한 규제는 에너지의 흐름을 극적으로 변화시켰지만 제한하거나 제약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오늘 유가가 배럴당 70달러다. 시장은 여전히 잘 공급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로의 전환 시기가 다가오고 있지만 필요한 시기와 투자는 엄청나다.

워스 사무총장은 “GM이 2035년까지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중단한다는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배터리와 광물 및 금속 유통과 관련해 만들어져야 할 새로운 공급망은 큰 과제”라고 언급했다.

태미 클라인 미국 전기차 협의회 회장은 “각국이 기후에 대해 무언가를 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중동 국가들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재구 기자

jklee@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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