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요약] 미·중 간의 무역전쟁, 코로나 팬데믹 이후 휘청이는 글로벌 공급망으로 인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비트코인의 시세는 지난 11일 기준 6만 8950달러(약 8110만원)를 기록한 뒤 등락을 반복하는 중이다. 비트코인으로 시작된 가상자산 전체의 시가총액은 최근 3조달러(약 2540조원)을 돌파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유력 언론이나 관련 업계 사람들로부터 사토시 나타모토로 지목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칭 사토시 나카모토임을 주장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세상이 끊임없이 그의 존재를 찾는 이유는 그가 보유한 것으로 추측되는 엄청난 량의 비트코인 때문이다.
미·중 간의 무역전쟁, 코로나 팬데믹 이후 휘청이는 글로벌 공급망으로 인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지난 10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된 직후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받으며 사상 최고 시세를 기록한 것이다.
가상자산 정보 제공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의 시세는 지난 11일 기준 6만 8950달러(약 8110만원)를 기록한 뒤 등락을 반복하는 중이다.
창시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가 처음 비트코인을 만든 목적은 법정화폐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대의 경제 시스템이 몇몇 대형 금융기업과 일부 국가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초기 목적과 달리 비트코인, 그로 인해 파생된 다양한 암호화폐 플랫폼은 국내외 기업들에게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신사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미국에서는 스스로 비트코인 창시자라고 밝히고 있는 크레이그 라이트를 상대로 공동 창시자라고 주장하고 있는 고(故) 데이비드 클라이먼의 유족이 약 100만 개의 비트코인 소유권을 두고 소송을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비트코인 탄생 12년 후, 가치는 지속 상승중
비트코인 창시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의 등장에 얽힌 스토리는 유명하다. 그가 자신을 드러낸 것은 2008년 10월 31일이었다. A4용자 9장 분량의 백서가 ‘사토시 나카모토(Satoshi Nakamoto)’라는 이름으로 암호학 전문가 등에게 이메일로 전달된 것이다. 백서의 제목은 ‘비트코인: 개인 대 개인 전자화폐시스템(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었다. 그에 앞서 2개월 전에는 ‘bitcoin.org’라는 인터넷 도메인이 등록됐다고 알려진다.
백서의 요지는 “온전한 개인 대 개인 전자화폐는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도 온라인 결제로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에게로 곧바로 전달된다”였다. 법정화폐 중심의 경제 시스템 자체를 부정한 셈이다.
게임이론과 분산 원장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진 비트코인은 실생활에서 화폐처럼 지불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특화된 ‘지불형 코인’으로 분류된다. 향후 100년간 발행될 화폐량은 2100만개로 정해져 있다.
중앙은행에서 찍어내는 일반 법정화폐와 달리 비트코인은 관리 주체가 정해져 있지 않으면서도 작동한다는 특징이 있다. 발행주체가 없이 컴퓨터를 이용해 블록의 이름을 16진수로 표시한 64자리의 해시함수를 찾아내는 사람에게 지급되는데, 이를 ‘채굴’이라고 한다. 2100만개에 한정된 비트코인은 이론적으로 2040년 채굴이 중지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폐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이를 소수점 아래 8자리까지 거의 무한대로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가장 작은 단위인 1사토시(Satoshi)는 0.00000001비트코인이 된다.
이러한 특징이 주목받으며 비트코인의 가치는 삽시간에 폭등했다. 비트코인을 채굴하고자 하는 붐이 일어났다. 이어 가산자산 거래소가 등장해 주식과 같이 거래를 할 수 있게 되며 기존 금융시스템과 연계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도 했다.
지난 2013년에는 독일이 지급결제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인정했으며 일본 역시 2017년 5월 자금결제법 개정으로 비트코인을 지급결제 수단으로 인정했다. 올해 10월 미국에서는 주식 시장에 상품과 결합된 비트코인 선물 상장지수펀드(ETF)가 등장했으며 앞서 6월에는 엘살바도르가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 하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처음 등장 이후 약 12년 만에 1 비트코인의 가치는 우리 돈 8000만원이 넘고 있다. 1억원을 돌파하는 날도 머지 않아 보인다. 비트코인으로 시작된 가상자산 전체의 시가총액은 최근 3조달러(약 2540조원)을 돌파하고 있다.
비트코인의 최초 지불 사례이자 가치 산출 기록은 2010년 미국의 프로그래머 라스즐로 핸예츠가 1만 비트코인으로 파파존스 피자 두 판을 구입한 것이었다. 당시 피자 두 판의 가격이 41 달러(약 4만 8000원)이었다. 그때와 지금의 비트코인 가치를 비교하면 격세지감의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이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법정공방의 문제, 판결이 난다고 해도 과연 그들이 ‘사토시 나카모토’일까?
비트코인이 일으킨 대변혁 이후로 창시자인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를 찾는 움직임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유력 언론이나 관련 업계 사람들로부터 사토시 나타모토로 지목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칭 사토시 나카모토임을 주장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이중 호주 출신의 프로그래머로 현재 영국 런던에 거주하고 있는 크레이그 라이트는 자칭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하며 비트코인을 단독 창시했다고 떠벌리고 있는 인물이다.
문제는 그가 동업자인 데이비드 클라이먼과 공동 채굴한 100만 개(약 75조 5000억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두고 클라이먼 사망 후 그 유족이 절반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걸어왔다는 점이다.
유족 측은 두 사람이 초창기부터 함께 비트코인을 개발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유족 측에 따르면 2008년 초 사토시 나카모토가 이메일로 공개한 비트코인 백서와 관련해 라이트가 클라이먼에게 백서 작성과 관련한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에 대한 법정 공방이 그의 승리 혹은 패배로 끝난다고 해서 그를 과연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자칭 사토시 나카모토라 칭하는 라이트의 주장을 부정하는 견해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사망한 클라이먼에 대해서는 그의 경력과 컴퓨터 지식을 고려할 때 비트코인 창시자로서 가능성이 있지만, 라이트의 경우 사기꾼에 불과한 해커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창시자의 오른팔이자 2010년부터 비트코인 개발자로서 적잖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안데르슨이 라이트의 주장을 정면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실제 라이트도 2016년 5월 처음 비트코인 창시자라고 주장한 것이 거센 비판에 직면했을 때 사과문까지 게시하며 자신의 주장을 철회한 바 있다. 하지만 그 이후 그는 또 말을 바꿔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주장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 외 사토시 나카모토로 지목 받은 대표적인 인물이 두 명인데, 도리안 나카모토(Dorian Nakamoto), 닉 자보(Nick Szabo)가 그들이다.
도리안 나카모토의 경우 2014년 3월 뉴스위크를 통해 비트코인 창시자로 지목됐다. 비트코인 창시자 이름으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와 성이 동일한데다 엔지니어링 분야에서 오랜 커리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그 스스로 “나는 더 이상 비트코인에 관여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에게 인계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도리안이 “질문을 오해했다”며 자신의 발언을 부인하고, 비트코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공개 성명을 발표하며 뉴스위크의 보도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다만 도리안이 공개 성명을 발표한 다음날 온라인에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름으로 “나는 도리안 나카모토가 아니다”라는 성명이 게시되며 그 묘한 시기로 인해 도리안이 창시자라는 의혹은 일부에서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다음으로 닉 자보의 경우는 비트코인 개발에 크게 기여한 비밀암호 전문가로서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지목을 받았다. 언어 연구학자들은 자보의 글과 사토시 나타모토의 글을 비교하며 유사점이 있다는 주장까지 펼쳤고, 뉴욕타임즈 역시 이를 바탕으로 자보를 ‘그림자 나카모토’라며 지목했지만 이 역시도 자보의 강력한 부인에 의해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즉 위와 같은 이유로 사토시 나카모토는 여러 대상자들이 물망에 올랐음에도 여전히 정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끊임없이 그의 존재를 찾는 이유는 그가 보유한 것으로 추측되는 엄청난 량의 비트코인 때문이다.
새로운 탐욕에 의해 변질되는 비트코인
만약 사토시 나카모토로 이미 지목된 인물 중 한 명이 진짜 그라고 하더라도 강력히 부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실체가 드러난 후부터 그가 보유한 비트코인에 대해 정부나 여러 금융기관들의 견제와 유혹이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비트코인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가 혼란으로 규정될 경우 정부로부터 진행될 수 있는 법적 조치도 그가 은둔을 선택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이쯤에서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창시한 이유를 다시 환기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는 2007년 5월 미국에서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되던 2008년 이었다. 복잡한 파생 금융상품으로 인해 몰락한 탐욕적인 금융기업으로 인해 수많은 금융 약자들이 피해를 입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국 정부는 막대한 구제금융을 쏟아부었고, 이들을 회생시키기도 했다. 그로 인한 문제는 양적 완화라는 이름으로 덮어졌다. 당시 정부의 구제금융을 받은 미국 금융사들은 이 돈으로 막대한 성과급을 지급하며 다시 한번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비트코인은 그렇듯 법정 통화시스템이 탐욕으로 물든 기업들을 지원하며 법정화폐의 가치를 스스로 망가뜨리는 상황 속에서 ‘탈 중앙화’를 목적으로 탄생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정부의 검열과 통제를 벗어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토시 나카모토가 은둔한 지금, 그가 처음 비트코인을 만들었을 때 목적은 훼손되고 있다. 새로운 탐욕에 의해 관리되고 조정되는 비트코인의 가치는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오를 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앞서의 의문이 똑같이 떠오른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이 이렇게 될 줄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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