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포크 큐커는 작년 여름 삼성전자가 선보인 새로운 주방가전제품입니다. 전자레인지, 그릴, 에어프라이어, 토스터 4가지 기능을 모두 갖췄다는 이 제품은, 지난달까지 3만 7천여 대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흥행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삼성전자가 MZ세대를 겨냥하여 야심 차게 준비한 마이 큐커 플랜이 있었습니다.
사실 삼성전자가 이커머스 진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꽤 오래 전의 일입니다. 코로나 이후 글로벌 온라인 가전 판매가 급증하며, 자연스레 D2C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인데요. 경쟁사 애플의 경우, 전체 매출의 30%가량을 자체 채널을 통해 유통시키는 만큼 뒤늦긴 했지만 당연히 가야 할 길을 걷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MZ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이커머스 전문 인력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기도 했는데요. 마이 큐커 플랜이라는 신개념 판매방식도 이들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정해봅니다. 그렇다면 대체 마이 큐커 플랜이 뭐냐고요? 사실 비스포크 큐커는 상당히 비싼 제품입니다. 출고가가 59만 원에 달하니 말입니다. 그런데 마이 비스포크 큐커는 이를 단돈 5만 원에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할인이 가능한 건 약정 덕분입니다. 매달 제휴 식품사 직영몰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삼성카드로 구매하는 조건으로 할인을 해주는 겁니다. 최근에는 큐커를 구입한 고객 대상으로 큐커 식품관에서 구매할 때 사용 가능한 할인 혜택을 매월 제공하는 멤버십도 추가로 출시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삼성전자의 판매 방식은 단지 직접 판매하는 걸 넘어서 외부 제휴 파트너들과의 협업을 통해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해준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미 삼성전자는 작년 3월 비스포크를 중심으로 가전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팀 비스포크를 출범시킨 바 있는데요. 마이 비스포크 큐커도 팀 비스포크가 만들어낸 시너지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팀 비스포크에는 비스포크를 중심으로 일종의 생태계를 만들고자 하는 삼성전자의 야심이 담겨 있습니다 (출처: 삼성전자)
큐커의 고객들은 팀 비스포크에 속한 식품회사의 직영몰이나 큐커 식품관에서 쇼핑을 하게 되는데요. 이들은 아예 큐커 전용 상품이나 레시피를 개발하여 함께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에 익숙해지면 큐커의 고객들은 삼성전자의 가전제품에 락인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 무서운 건 이러한 로열티 고객들이 증가할수록, 식품회사와 같은 파트너사의 삼성전자 의존도도 늘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마블이 만든 유니버스에서 관객들이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처럼 삼성전자도 일종의 비스포크 유니버스를 만드는 전략을 택한 셈입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볼까요? 하필 큐커가 첫 타자라는 점도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큐커라는 제품은 여러 기기의 기능을 한데 모은 올인원 제품이지만, 동시에 포지셔닝이 애매한 점도 있습니다. 전자레인지, 그릴 등 각각의 기능은 개별 전문 제품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인데요.
다만 이러한 애매함은 오히려 요리 경험이 많이 없는 고객들에게, 더욱 강점으로 작용합니다. 실제로 팀 비스포크가 제안하는 상품들도 밀키트 등 이들을 겨냥한 것이 대부분이고요. 이처럼 요리 경험도 없고 나이도 어린 MZ세대가 큐커에 빠지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이들은 앞으로도 쭉 비스포크 가전에 의존할 확률이 높습니다. 처음 접한 조리기기가 비스포크 큐커인 데다가, 큐커 레시피에도 익숙해졌을 테니 말입니다. 역시 세계 1등을 해본 기업답게, 삼성전자의 D2C 전략도 참으로 치밀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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