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수치로 확인되는 국내 시각장애인의 숫자는 저시력 장애인을 포함해 약 25만명에 달한다. 이에 사회적으로 장애인을 배려하는 시설과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마련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높은 벽이 존재하는 분야도 적지 않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온라인 쇼핑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모바일 앱을 활용해 텍스트로 돼 있는 상세페이지 등의 제품 정보는 음성 서비스로 확인할 수 있다고 하지만, 긴 상품 정보를 모두 들어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또 이미지화 돼 있는 텍스트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문제는 SNS, 메신저 등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선 소셜 스타트업이 바로 ‘시공간’이다.
소셜 스타트업 ‘시공간’은 시각장애인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친절한 기술을 통해 이들의 디지털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며, 보다 동등하고 포용력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가치 아래 모인 서울대 재학생들이 주축이 됐다.
2022년 10월 사회적 가치 창출을 지향하는 소셜벤처 국제 동아리 ‘인액터스(ENACTUS)’의 프로젝트로 시작된 시공간은 소셜 미션에 공감하는 초기 두명의 파운더가 주축이 됐다. 이후 지난해 5월 정식으로 사업자를 내며 뒤이어 합류한 오주상 대표 포함 7명이 공동체 방식으로 사업화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시공간이 개발·출시한 서비스는 총 세 가지다. 우선 대표 서비스인 ‘픽포미’를 들 수 있다. 이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쇼핑 서비스로 다양한 상품 정보를 LLM(거대언어모델) 기반 AI로 요약해 시각장애인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브로디’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사진 해설 서비스로, ‘글공방’은 자체적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체텍스트 제작이 어려운 기업들을 위한 ‘대체텍스트 제작’ B2B 서비스로 고도화를 진행 중이다.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는 대학 시절, 누구보다 유의미한 활동을 통해 일찌감치 사회적 가치 창출과 창업이라는 경험을 접하고 있는 시공간 팀의 오주상 대표와 이수정 PM을 만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AI를 활용, 이미지와 상세페이지 요약, 검색 기능 갖춘 ‘픽포미 2.0’ 선보여
오주상 대표는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19학번으로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이수정 PM은 아동가족학과, 나머지 멤버들도 고고미술사학과, 영어영문학과, 국어국문학과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있다. 각자 다른 전공, 저마다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장애인과 인권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오 대표의 경우 새내기 시절 총학생회 경험을 하면서 학내 인권과 장애학생 인권을 담당하며 처음 장애인들이 직면한 현실을 깨닫게 됐다고. 이 PM은 “사회적 소수자를 돕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선뜻 행동에 옮기지 못하던 차에 시공간에 합류하게 됐다”며 참여 동기를 털어놨다.
오 대표는 전공을 십분 발휘해 픽포미에 적용되는 알고리즘과 브로디에 적용되는 대화형 챗봇 로직 개발 등 서비스 고도화를 전담했다. 초기에는 사람이 개입해 이미지 해설과 질의응답에 대응했지만, 점차 AI를 통한 자동화 영역을 넓혀가며 고도화를 진행 중이다. 그 결과가 지난 3월 새롭게 선보인 ‘픽포미 2.0’이다. 이 PM은 ‘픽포미 2.0’의 특징을 “시각장애인들의 능동적인 검색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초기 픽포미는 시각장애인을 수동적인 쇼퍼로 판단해 이들의 쇼핑 보조 역할을 한다는 개념이었어요. 그런데 이용자 인터뷰를 진행해 보니 의외로 많은 분들이 능동적인 쇼퍼로서 활동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픽포미 2.0’은 시각장애인 분들이 능동적인 쇼퍼로서 검색할 수 있는 기능을 강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졌어요. 일반적인 검색이 아니라 AI 기능을 갖춰 이미지와 상세 페이지 리뷰를 요약하는 검색 기능이 이전 버전과 달라진 점이라고 할 수 있죠.”
기업·기관을 대상으로 한 B2B, B2G 서비스로 확산 전략
시공간은 다양한 환경과 상황에 처한 시각장애인 뿐 아니라 저시력 노년층을 대상으로 한 쇼핑 서비스로도 확장을 고려하고 있다. 개인을 대상으로 한 B2C 서비스를 기본으로 하고 이지만, 구매력과 확산력이 있는 기관·기업과의 협업 방식도 추진 중이다. 기업과 기관 입장에서는 시공간 서비스 도입을 통해 법적 준수 사항인 웹 접근성을 쉽게 확보할 수 있고, 강화되는 ESG 정책도 대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하고 있다. 오 대표는 “MVP(최소기능제품)를 통한 PoC(개념검증) 과정을 통해 비즈니스 모델의 방향성을 잡았다”며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저희 서비스들의 초기 MVP는 단순한 채팅 앱으로 시작했어요. 시각장애인 분들이 앱으로 사진을 전송하면 저희가 대기하고 있다가 답변을 달아드리는 식이었죠. 그 과정에서 이용자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유료 사용에 대한 지불 용의는 낮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애초에 시각장애인 분들을 대상으로 유료로 판매되는 B2C 서비스가 없기 때문이었죠.”
이 PM 역시 “시연회를 통해 깨닫게 된 사실은 시각장애인 이용자들이 상품 추천보다 상품 설명에 대한 니즈가 크다는 점이었다”며 “향후 픽포미 2.0을 넘어서는 고도화 과정에서 반영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시공간 팀은 ‘픽포미’ ‘글공방’ ‘브로디’ 서비스의 고도화와 수익 모델 구축에 집중하는 한편 서비스를 통해 쌓이는 데이터르 자산화하는 방식도 고민하고 있다. 오 대표는 “브로디의 경우 텍스트와 이미지로 구성된 데이터를 잘 자산화하면 장기적으로 판매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가능성을 염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소비자 모바일 거래 실태조사(2022,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의 92.2%가 인터넷 쇼핑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응답한 바 있다. AI를 비롯한 신기술이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실생활에 적용되고 있지만, 정작 장애인들에게는 여전히 다른 세상 이야기라는 점은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인터뷰 말미, 오 대표는 이런 문제를 다시금 언급하며 변화를 이야기했다.
“제 개인적으로는 시공간 프로젝트를 통해 실효성 있는 답을 찾고 있어요. AI를 비롯해 정말 좋은 기술과 기회들이 많이 열려 있지만, 장애인들에게는 늘 한 두 발씩 뒤쳐져서 제공되고 있다고 봐요. 누군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바로 해결될 것 같은 문제들도 해결이 안되는 상황이죠. 그래서 저희는 우리가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해 보기 위해 시공간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정부 지원 사업이나 보조금을 바탕으로 한 시각장애인이나 소외계층을 위한 사업들이 많이 있지만, 정작 그 내용을 살펴보면 실효성이 아쉽습니다. 특히 시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는 ‘점자’ 키워드가 많이 들어가는데, 정작 일반 시각장애인 분들 중에 점자를 읽으실 수 있는 비율은 10%도 안 되거든요. 저희는 그런 보여주기식 서비스나 정부 지원 사업 말고 장애인 분들이 정말 사용하며 효용성을 느낄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어요. 다행히 지금까지는 답을 잘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만족스럽습니다.”
이 PM 역시 “시공간 팀의 최우선적인 목표는 사용자를 유인하는 것”이라며 “올해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PMF(시장적합성)을 찾는데 집중할 것”이라며 마음 속에 품은 각오를 밝혔다.
“서비스 검증을 거듭하고 이용자인 시각장애인 분들의 불편함을 알면 알수록 생각보다 더 다양한 니즈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요. 이를 통해 시공간이 만드는 서비스가 향후 시각장애인 분들에게 ‘이 앱이 아니면 안된다’는 인식을 드릴 수 있도록 구체적이고 작은 문제까지 해결하는 필수적인 서비스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