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엔비디아는 결국 소프트뱅크 산하 영국 반도체 디자인 회사 ‘암(ARM)’ 인수 포기를 선언했다. 소프트뱅크도 이를 인정하면서 2023년 3월에 끝나는 회계연도 안에 암의 기업공개(IPO)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당초 소프트뱅크-엔비디아의 암 인수 거래는 2022년 3월 회계연도 안에 마치도록 돼 있었다.) 암의 IPO를 위한 준비 구상은 기존 모바일 칩 디자인 위주에서 데이터 센터용 서버와 자동차 칩 디자인으로 전환해 간다는 것이다.
이로써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칩 디자인 회사 암을 둘러싼 베팅은 3라운드에 들어선 셈이다. 1라운드는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올 것을 자신하고 그 칩 수요에 대비하겠다며 암을 인수한 것이었고, 2라운드는 이의 실패를 만회하고자 인수가(310억달러)의 2배가 넘는 거금(660억달러)에 이를 엔비디아에 매각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손 회장의 두 차례 베팅 모두 실패로 끝났다. 이제 IPO로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세 번째 베팅 작업이 시작된 셈이다.
손정의 회장의 암으로 시도하는 세 번째 베팅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향후 계획을 짚어 봤다. 암 인수와 매각에 이르기까지의 사정과 매각 실패, 그리고 이를 만회하기 위한 소프트뱅크(산하 암)의 IPO 준비는 과연 어떻게 준비되고 있을까.
완전한 실패로 끝난 장밋빛 IoT시장 전망과 암 인수
지난 2016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반도체 설계 기업 중 하나인 암을 인수하면서 투자자와 전세계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손 회장이 310억 달러(약 37조 1225억원) 규모의 암 인수에 앞장섰을 때 모두들 이를 당시 IoT 개념을 중심으로 구체화되고 있던 IT 산업 전체의 미래에 대한 베팅으로 봤다. 그는 “사물인터넷(IoT) 시대를 맞아 챔피언은 암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졌고 이것이 먹혀 들었다. 전세계가 손 회장의 과감한 결단에 주목하면서 향후 전개를 지켜봤다.
그는 경영진들에게도 암 인수가 이러한 기계간 연결의 미래를 위한 과정이라며 확고하게 밀어붙였다.
하지만 이후 현실은 그의 예상과는 달랐다. 5년 반이 지나면서 IoT에 베팅한 것이 값비싼 실수였다는 게 점점 더 분명해졌다.
손 회장이 예상한 수십억 개의 일상 및 산업용 기기를 인터넷에 연결하는 IoT 개념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느리게 이뤄졌다. 그의 비전이 현실과 충돌하자 소프트뱅크는 조용히 시장 계산을 수정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2018년 발표에서는 2026년까지 IoT 컨트롤러 시장 규모가 240억 달러(약 28조 7400억원), 서버 시장 규모가 220억 달러(약 26조 345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지난 2020년의 이와 유사한 발표에서는 2029년까지 IoT 칩 시장이 160억 달러(약 19조 1600억원)에 그칠 것이며, 암이 지금껏 5%의 점유율을 차지했던 서버 시장은 320억 달러(약 38조3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소프트뱅크는 IoT 시장 가치 추정치도 지난 2017년 70억 달러(약 8조3800억원)에서 2019년 40억 달러(약 4조8000억원)로 하향 조정했다.
1990년 암을 공동 창업해 22년간 임원으로 근무한 튜더 브라운 전 CEO는 “‘그 시장에 돈이 전혀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IoT에 대한 막대한 투자가 ‘이상하다’”고 표현했다. 그는 “소프트뱅크가 IoT에 집중하면서, 서버라는 커다란 큰 목표에 집중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이는 암이 훨씬 더 큰 데이터 센터 시장을 지배중인 인텔에 대한 공격을 방해했다.
반도체업계 사상 최대 규모 딜 좌초
암 인수는 그 자체로도 큰 성과가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 암은 스마트폰용 칩 설계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 오고 있으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컴퓨팅 칩 설계 시장에서도 주요 참여 주자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최근 수년간 훨씬 더 느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손정의 회장은 암이 직접 반도체를 제조하지 않더라도 치러야 할 반도체 혁신 실현 비용이 얼마나 비싼지에 대해 과소평가했다.
소프트뱅크 자료에 따르면 암의 비용은 2015년 7억 1600만 달러(약 8600억 원)에서 2019년 16억 달러(약 1조 9000억 원)로 증가했다. 매출은 20% 증가한 19억 달러(약 2조 3000억 원)를 기록한 반면 이익은 70% 가까이 급감해 2019년까지 2억7600만 달러(약 3300억 원)를 기록했다.
이에 손 회장은 암을 그래픽칩(GPU)의 선두 주자 엔비디아에 매각하는 660억달러(약 79조 원) 짜리 거래를 시도했다.
이것이 전세계 IT 및 반도체 업계의 반발과 반독점 규제당국의 반대 움직임 속에 지난주 결국 결렬로 끝났다.
소프트뱅크는 계약 파기 수수료로 엔비디아로부터 12억5000만 달러(1조 5000억 원)를 지급받을 예정이다.
손 소프트뱅크 회장은 엔비디아와의 암 매각 결렬 성명을 통해 “암은 모바일 혁명뿐 아니라 클라우드 컴퓨팅, 자동차, IoT, 메타버스 등에서도 혁신의 중심이 되고 있으며 제2의 성장 국면에 접어 들었다...우리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 암을 상장시킬 준비를 시작할 것이며, 더 많은 발전을 이룰 것이다. 엔비디아의 재능있는 팀이 이 두 훌륭한 회사를 하나로 모으고 모든 성공을 기원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밝혔다.
암의 IPO 준비는···“데이터센터·자동차 중심 디자인 전략 변경”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암을 가지고 시도하는 세 번째 베팅인 암의 IPO는 연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반도체 업계 안팎 관전자들의 시선은 암이 IPO 성공을 위해 어떤 방식을 취할지, 과연 그 준비는 충분히 됐는지에 쏠리고 있다.
암의 IPO 시점에서 새로운 투자자들에게 투자 의욕을 제시할 비밀 병기는 뭘까.
암은 이 대목에서 지금까지 발굴되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에서 시장 입지 굳히기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갓 취임한 르네 하스 암 최고경영자(CEO·35)는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소프트뱅크가 암을 인수했을 당시보다 데이터센터 칩과 자동차 칩 설계 제품이 훨씬 더 경쟁력 있다”고 말했다. (그는 8일 CEO에 선임됐고 직전까지 암의 지재권 그룹 사장이었고, 이에 앞서 엔비디아 부사장 겸 컴퓨팅제품사업 총괄을 역임한 인물이다.)
하스 CEO는 “어디에 투자할지, 어디에 투자하지 않을지에 대한 절충은 공기업과 심지어 민간기업들도 매일 해야 하는 거래”라면서 “회사가 잘 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소프트뱅크 그룹은 “암과 협력해 2023년 3월 31일에 끝나는 회계연도 내에 암의 상장 준비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소프트뱅크는 암의 기술과 지적재산이 앞으로도 모바일 컴퓨팅과 인공지능(AI) 개발의 중심에 설 것으로 보고 있다.
암, 엔비디아 딜 불발 전까지는 IPO에 반대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암은 지난 12월 규제당국에 제출한 서류에서 IPO 추진에 반대하며 엔비디아에 매각되는 것을 찬성하는 강력한 주장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암은 서류에서 “공공시장 투자자들이 ‘수익성과 성과’를 요구할 것이며 이는 비용 절감과 혁신적인 신사업에 투자할 자금력 부족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 매체는 이에 대해 “주주들의 (수익성과 성과에 대한)압력이 그동안 깨기 어렵고, 제한된 진출만 이뤄졌던 데이터센터와 PC 시장에 대한 이 회사의 투자 능력을 어떻게 억누를 수 있는지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이제 르네 하스 암 CEO는 “엔비디아가 인수하면 투자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항상 생각했다”며 “이제 우리는 IPO에 합류하게 됐고 나는 우리의 전망에 대해 매우 만족한다”고 말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암은 당초 예상보다 더딘 IoT 산업의 성장과 비용증가세 속에서도 지난 4년 동안 성장중인 서버와 PC 시장에 더 많은 투자를 했고 최근 항로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암 경영진, “수년전 이뤄진 전략적 투자 보상받기 시작”
암의 경영진은 이제 겨우 수년 전 이뤄진 전략적 투자로부터 보상받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암의 칩 디자인은 반도체 회사들과 전자 제조업체들이 신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할 때 사용되면서 라이선스비를 받게 된다. )
실제로 최근 9개월 동안 이 회사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로열티 수익이 22% 증가해 하스 CEO의 반전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스 CEO는 “이런 수치들은 소프트뱅크에 인수되기 전 암이 보여준 그 어떤 실적 수치보다 높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외적으로 드러난 몇몇 성과도 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12월 암 설계 기반 3세대 그래비톤 칩을 발표한 아마존웹서비스(AWS), 전체 맥 컴퓨터 칩을 인텔칩 대신 암 설계 기반 자체 M1 칩으로 전환한 애플 같은 동맹군들을 확보한 것을 꼽을 수 있다.
하스 CEO는 서버 및 PC용 칩을 언급하며 “IoT는 여전히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영역이지만, 우리는 컴퓨터 공간에 매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엔비디아 딜을 둘러싼 ‘엄중한 규제 과정’을 이유로 암의 수익 중 어떤 부분이 핵심인 모바일 사업 외 영역에서 나오는지 밝히기를 거부했다.
다만 하스는 “손회장은 분명히 언젠가 암을 공개기업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항상 말해 왔다”며 “엔비디아와의 계약이 무산되면서 암은 ‘오리지널 A 계획’으로 되돌아갔다”고 덧붙였다. 즉, “암의 IPO가 오리지널 A 계획”이었다는 주장이다.
과연 손정의 회장이 암을 가지고 세 번째로 시도하는 베팅은 성공할 것인가. 그것은 결국 암이 투자하고 시도해 왔다는 데이터센터 서버와 자동차 시장의 수요 상승세가 얼마나 지속될지, 암의 동맹군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와 연관돼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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