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다 보면 스마트폰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댄 채 제 갈 곳을 가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지하철 등의 공공장소에서도 역시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울고 웃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이 풍경은 모두의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2015년, 영국의 경제 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는 스마트폰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신인류를 '포노사피엔스'라 처음 불렀다. '포노사피엔스'는 스마트폰의 '폰'과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를 합쳐 스마트폰을 슬기롭게 사용하는 인류라는 뜻을 가진다. 더불어 포노사피엔스의 창조자이자 리더로 2007년에 세계의 첫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내놓았던 스티브 잡스를 묘사했다.
현재 지구상의 스마트폰 사용자는 약 50억여 명으로 추정된다. 인류의 약 70% 이상이 포노사피엔스인 셈이다. 이들은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여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스마트폰 사용에 몰입되어 있다. 잠을 잘 때나 길을 걸을 때도 곁에서 떼어놓지 않는다. 이미 미국 콜택시의 표준은 모바일 서비스가 주축인 우버 서비스이며, 이를 이용한 소비자들은 숙박 공유 플랫폼인 에어비앤비를 이용한다. 은행 업무는 스마트폰 뱅킹을 통해 해결하고 아마존으로 물건을 구매하며 배달의민족을 통해 간편하게 음식을 주문한다. 또한 유튜브 등을 이용해 원하는 정보를 얻거나 학습을 진행하는 미디어 혁명도 일어났다. 이제는 텔레비전보다 유튜브를 시청하는 인구가 훨씬 많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문명 양식의 약 30%가 바뀌었다고 하니, 시장의 모습 또한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TOP5 기업의 모습도 바뀌었다. 잡스가 처음 스마트폰을 발명했던 2007년에는 페트로차이나, 엑손모빌, GE, 공상은행 등 석유•가스, 은행 등이 탑을 구성했다면, 현재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삼성 등으로 스마트폰 사용자들을 위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든 기업들이 올라와 있다. 시장의 표준이 달라진 것이다.
포노사피엔스가 이끄는 디지털 문명은 콘텐츠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자발적인 팬덤을 만들어가는 등 소비자에게 주된 선택권이 있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들은 기업을 자신과 동등한 거래 대상으로 인지한다. 자신의 의견이 기업에 직접 관철되는 경험에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소비자는 원하는 바를 바로바로 전달할 수 있고 소통이 편리한 플랫폼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같은 포노사피엔스의 생태에 꼭 맞는 쇼핑 방법으로 라이브 커머스가 떠오르고 있다. 라이브 스트리밍과 커머스의 합성어로, 실시간으로 쇼호스트가 제품을 설명하고 판매한다는 면에서 홈쇼핑과 비슷하지만, 동시에 채팅창에 올라오는 소비자들과 지속적인 소통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유기적이고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 덕분에 라이브 커머스 시장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2018년 그립에 이어 2019년부터는 롯데백화점, 네이버, 카카오 등 대기업도 진출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 교보증권 리서치 센터는 2023년 국내 라이브 커머스 산업의 규모가 10조 원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기업이 포노사피엔스의 눈높이에 도달하기 위해 이안 우드워드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기존 관습을 폐기하고 소비자 중심으로 전략을 바꿔야 한다. 마치 회사에 불이 난 것처럼 빠르게 행동하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좋은 성적을 낸 기업이 바로 틱톡이다. 틱톡은 이용자가 직접 스마트폰 카메라를 활용해 세로 화면에 맞는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빠르게 콘텐츠를 생산해 소통하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틱톡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지난해 1분기보다 130% 증가한 400억 위안(약 6조8천억원)에 달했다.
책 <포노사피엔스>를 출판한 최재붕 성균관대 서비스융합디자인학과 교수는 포노사피엔스에게 스마트폰이란 뇌에 연결하는 일종의 보조 저장장치라 여긴다. 양질의 정보를 빠르게 획득하고 스마트폰에 저장하기 때문이다. 이때 포노사피엔스는 정보의 선택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원하는 내용을 위주로 섭취한다. 최교수는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생각과 주장은 날이 갈수록 다양해질 것"으로 예측한다. 소비형태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많은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 본 것이다.
하지만 삶을 크게 변화시킨 만큼, 부작용도 존재한다. 대면보다 비대면, 전화 통화보다 메신저 소통에 익숙해져 버린 포노사피엔스들에게 전화 통화에 두려움을 느끼는 '콜 포비아' 증상은 적지 않게 나타난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늘어난 전화 통화로 자신에게 콜 포비아가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닫는 사람들도 많다. 단순히 두려움을 느끼는 데서 끝나지 않고, 전화 한 통으로도 해결될 일도 두려움에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떨어지고 이에 따라 우울감을 느끼는 등 악순환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또한 스마트폰이 없을 때 초조해하거나 불안감을 느끼는 노모포비아(Nomophobia)도 등장했다. 'No mobile-phone phobia'의 줄임말로, 스마트폰을 수시로 만지거나 손에서 떨어진 상태로 5분을 버티지 못한다면 노모포비아일 수 있다. 강제로 스마트폰 사용을 제지당했을 때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 노모포비아 증후군의 가장 심각한 단계이다. 단순히 스마트폰이 없었을 때의 불안함으로 그치지 않고, 언어발달 및 사회성, 애착, 비만 등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공감 능력과 의지 형성력을 저해한다. 아이의 경우 스마트폰만을 의지하게 되면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 공감 능력이 떨어져 사회적 연대를 도모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생활 속에서 스마트폰을 떼어내기 어려운 '포노사피엔스'의 시대를 살고 있더라도, '호모사피엔스'로서 스마트폰 사용이 자신 행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먼저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스마트폰의 역할은 인간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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