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계에 부는 지형 변화… ‘플랫폼 시대는 가고 딥테크 시대가 왔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오픈서베이,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23’ 발표
창업자가 본 올해 스타트업 생태계는 '46점'···대비책은 '매출 다각화'
이기대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장,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 등 참여, 패널 토론 진행
2일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오픈서베이는 서울 강남구 KTS빌딩에서 진행된 간담회를 통해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23’을 공개했다. (사진=테크42)

대내외적인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스타트업 투자 혹한기가 기약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위축된 분위기는 스타트업얼라이언스·오픈서베이가 2일 발표한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23’에서도 고스란히 엿보였다. 창업자들이 본 올해 스타트업 생태계의 점수는 46.5점으로, 이는 지난해 대비 7.2점이 감소한 것이다.

이날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오픈서베이는 서울 강남구 KTS빌딩에서 진행된 간담회를 통해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23’을 공개했다.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는 2014년부터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오픈서베이가 공동 시행해 온 설문조사로, 창업자와 재직자 등 스타트업 업계 트렌드를 파악하는 중요 지표로 주목받아 왔다.

이번 설문조사는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참여자의 인식과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 9월 5일부터 13일까지 총 9일간 오픈서베이와 리멤버(창업자)를 통해 진행됐다. 창업자 200명, 대기업 재직자 250명, 스타트업 재직자 250명, 취업준비생 200명이 해당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스타트업계, 경기 침체 및 금리 인상 체감도 높아져

리포트에 따르면 창업자 76.5%는 지난해(2022년) 대비 스타트업 생태계 분위기가 ‘부정적으로 변화했다’고 느꼈다. 이들은 ‘벤처캐피탈의 미온적 투자 및 지원(58.8%)'을 부정적 변화의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1년 전에 비해 스타트업 생태계가 긍정적으로 변화했다고 응답한 창업가는 9%로, ‘스타트업에 대한 긍정적인 사회적 인식 확산(55.6%)’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경기 침체 및 금리 인상 체감도가 높아진 탓에 창업자 45.0%는 내년인 2024년에도 스타트업 생태계 분위기의 ‘변화가 거의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창업자들은 투자 유치 시 ‘회사 가치(밸류에이션) 산정(38.0%)’에 가장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 창업 연차 및 투자 유치 단계와 관계없이 전 창업자가 모두 밸류에이션 산정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3년차 이하 초기 창업자의 경우 ‘엄격한 자격요건과 심사 절차(15.8%)’를 선택한 비율이 창업 4년차 이상 대비 높게 나타났다.

또한 창업자 10명 중 8명은 지난해 대비 올해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위축되었다고 체감했다. 창업자 중 63.0%는 실제로 지난해 대비 투자 유치가 어려워졌다고 답했다. 

해법은 매출 다각화와 내실화

창업자들은 벤처투자 시장 혹한기를 대비하기 위해 ‘매출 다각화 전략 마련(54.0%)’에 집중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흑자 사업 집중(51.0%)’, ‘기업 비용 절감(46.5%)’, ‘정부지원사업 추진(43.0%)’ 순이었다. 특히 창업자들은 지난해 같은 질문에서 ‘기업 비용 절감’을 투자 혹한기 대비책으로 가장 많이 꼽았었는데, 올해는 회사 내실을 다지기 위한 사업 전략을 세우는 데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스타트업 지원에 가장 적극적인 기업을 묻는 질문에 창업자들은 네이버를 25.5%로 가장 많이 선택했다.(1순위 응답 기준) 이어 카카오가 20.5%, 삼성이 10.5%를 차지했다. 지난해 대비 포스코, GS의 선호도가 소폭 올랐으며, NC소프트가 새롭게 진입했다.

가장 입주/활용하고 싶은 창업지원센터로는 1순위 응답 기준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21.5%)이 가장 많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다음으로 서울창업허브(9.5%), 아산나눔재단 마루180(7.5%)이 3순위 안에 들었다.

가장 선호하는 액셀러레이터로는 많은 액셀러레이터들이 고르게 응답되었다.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인 액셀러레이터는 지난해에 이어 프라이머(9.5%)였다. (1순위 응답 기준) 이어 퓨처플레이(8.5%)와 스파크랩(8.5%)이 두번째로 많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이어 더벤처스(5.5%), 소풍벤처스·매쉬업엔젤스(5.0%) 순이었다.

가장 선호하는 벤처캐피탈(VC)을 묻는 질문에는 알토스벤처스가 16.0%로 큰 격차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KB인베스트먼트(8.0%),소프트뱅크벤처스(7.5%),미래에셋벤처투자(4.5%),한국투자파트너스·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4.0%)가 뒤를 이었다(1순위 응답 기준).

창업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CVC)은 1순위 응답 기준  카카오벤처스(15.5%)가 1위로 뽑혔다. 2위는 네이버D2SF(10.0%)였다.

액셀러레이터, VC, 동남아 진출 스타트업 등 패널토론 “딥테크 시대가 왔다”

올해 트렌드리포트2023에서 주목할 부분은 ‘글로벌 시장 진출'에 대한 답이다. 설문에 참여한 창업자 22.5%는 현재 해외에서 사업을 진행 중이며, 48.5%는 해외 진출을 고려했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동남아시아(56.5%), 북미권(51.9%), 일본(39.0%), 유럽(31.8%) 순으로 이 지역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고려했다고 답했다.

한편 이직하고 싶은 스타트업 업종으로는 ‘소프트웨어/솔루션'이나 ‘딥테크', ‘핀테크' 업종들이 주목을 받았다. 스타트업 재직자 중 같은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고려하는 응답자 44.3%는 ‘소프트웨어/솔루션’으로 이직하겠다고 응답했다.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고려하는 대기업 재직자는 핀테크(27.7%), 딥테크(23.4%), 소프트웨어/솔루션(21.3%) 순서대로 선호했다.

(왼쪽부터) 이기대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 이경훈 글로벌브레인 파트너, 이정민 시그니처레이블 대표. (사진=테크42)

이날 간담회에서는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 그리고 부상하는 딥테크 분야와 관련한 스타트업 관계자들의 패널 토론도 주목을 받았다.

이기대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이 모더레이터로 나선 토론 패널로는 10년차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로 딥테크 분야 스타트업 투자에서 생존율 91.6%라는 성과를 기록하고 있는 퓨처플레이의 류중희 대표를 비롯해 일본 VC(벤처 캐피탈)인 글로벌브레인의 이경훈 파트너,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스타트업 시그니처레이블의 이정민 대표 등이 함께했다.

이날 패널 토론에서는 대기업 출신들의 스타트업 적은 방법, 딥테크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는 스타트업계의 동향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다. 아래는 패널 토론의 일부 내용.

이기대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 센터장(이하 이 센터장) : 이번 조사를 처음 시작하던 2014년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한 만족도가 55점이었다. 이후 지속적으로 떨어져 결국 50점 이하가 됐다. 지금이 제일 어렵다고 봐야 하나?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이하 류 대표) : 언론을 포함에 많은 분들이 위기고 스타트업이 어렵다고 이야기하면서 불안감이 커진 게 아닌가 싶다. 제가 보기엔 본질 가치는 훨씬 올라가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딥테크 분야의 기술특례상장 범위가 굉장히 넓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바이오 신약 쪽에 포커싱 돼 있던 것이 로봇, 반도체 등 굉장히 넓은 분야로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 스타트업 역사에 인상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본질적인 변화가 초·중기 스타트업까지 전달되진 않았다. 다만 달라진 것은 이들이 빨아들이는 정보량은 늘어났다는 것이다. 초등학생이 청소년이 된 셈이다. 그러면서 현타가 세게 온 상황인 거고… 체감적인 공포 지수는 올라갔지만, 냉정하게 프로페셔널로서 보기에 본질 가치는 오히려 커졌다고 본다.

이 센터장 : 투자자 관점에서 우리나라가 B2C 플랫폼 투자 위주로 가다가 상대적으로 소외된 느낌이 있던 빅테크 기술 쪽 투자사인 퓨처플레이가 보기에 최근 2년 정도를 제대로 가고 있다고 보는 느낌인 듯하다. 그럼 일본 벤처 캐피탈의 한국 대표 입장에서 이경훈 파트너의 느낌은 어떤가?

이경훈 글로벌브레인 파트너(이하 이 파트너) : 시장에 대한 평가는 류 대표님의 말씀에 동의한다. 저희 역시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분야 투자를 많이 했다. 한국에서는 얼마 전까지 SaaS가 커머스나 플랫폼에 비해 소외 받던 분야였던 것 같다. 최근에 와서 SaaS가 주목받고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시장 자체가 어려울 수는 있지만 어쨌든 주목받는 섹터는 분명히 있기 때문에 저는 이 SaaS의 성장 가능성을 굉장히 높게 보고 있다.

이 센터장 : 현장에서 뛰고 있는 창업자 입장에서 이정민 대표의 느낌은 어떤가?

이정민 시그니처레이블 대표(이하 이 대표) : 굉장히 어렵다는 느낌은 있다. 시그니처레이블은 B2B 사업 모델로, 기술적으로 연결해서 어떻게 안정화 시킬 것인지를 더 많이 고민하고 있다. (투자) 시장이 좋았을 때는 ‘잘 되고 있고 좀 더 빠르게 진행할 겁니다’라고 했을 때 투자를 쉽게 받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어렵긴 해도 (VC로부터) 좋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서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

이 센터장 : 앞서 리포트 발표 내용 중에 58.5%의 창업자들이 VC의 미온적인 투자를 어려움으로 꼽았다. 스타트업 투자를 위한 펀드가 매년 17조원 규모에 달하는데, 실제 투자가 많이 지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VC들이 드라이파우더(펀드가 투자자로부터 모은 투자금 중 집행하지 않은 돈) 쥐고 있어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다. 시장의 변화가 있다면 투자 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보나?

류 대표 : 체질 개선을 위한 에너지 절약 모드라고 생각한다. 투자의 방식이 좀 많이 바뀌었다. 아까 VC 평판에서도 퓨처플레이가 2등을 한 것이 얼떨떨하긴 하지만 저희는 투자 환경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시대 정신이 반영됐다고 생각한다. 그간 스타트업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회사들이 소위 말하는 플랫폼 기업들, A와 B를 연결해서 거래 수수료를 가져가는 기업들이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전부 다 그랬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런 회사들은 실질 가치 창출하는 기업들이라기 보다 유통업자라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이미 우리나라에는 유통 분야에 엄청난 매출을 기록하는 대기업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대기업의 시가총액을 합쳐도 삼성이나 LG, 현대차와 같은 기업의 시총과 비교되지 않는다. 원래 우리 민족은 공돌이, 창조의 민족이었다는 말이다. 얼마 전 싱가폴에 출장을 갔었는데, 해외에서 봤을 때 한국은 딱 2가지가 두드러진 나라로 보고 있다. 바로 ‘테크’와 ‘컬처’다.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은 바로 ‘제로투원’이라는 점이다.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창출해 온 것이 ‘K-컬처’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이 ‘K-테크’였다. 이것이 본질적인 가치였던 나라지만, 최근 10년간 스마트폰 등장 이후 라이프 스타일이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온라인화 되면서 그것을 해결해주기 위한 동네 챔피언(플랫폼 스타트업)이 등장했고, 몇십조 기업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플랫폼 스타트업의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는 한국 시장만을 타깃으로 해서 수수료로 수익을 내는 기업 중에 유니콘이 되는 기업은 없을 거라고 본다. 향후 대한민국 스타트업 에코 시스템의 성장을 견인하는 섹터는 ‘테크’와 ‘컬처’, 진짜 창조자들의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이 센터장 : 이 어려운 시기를 겪는 창업자들이 대응법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매출 다각화 그리고 흑자 사업 집중, 인원 감축 등 세 가지였다. 이 중 인원감축은 좀 의문 인데, 향후 상황이 바뀌면 또 인력 부족 문제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런 식의 대응이 맞다고 보는가?

이 파트너 : 저도 요즘 스타트업을 만나면 하는 말들이 ‘VC를 만날 때 흑자 전환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물어본다’는 거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이런 얘기는 2021~2022년에는 별로 듣지 못했던 것들이다. 제 생각에 스타트업은 성장이 굉장히 중요한데, 서장보다 안정이 우선시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긴 한다. 흑자 전환을 목표로 하는 것은 좋긴 하지만 스타트업이 성장을 하려면 어쨌든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 최소한 1년에서 2년 정도 이어지는 사업계획을 세우고 가장 중요한 우선 순위는 성장에 두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류 대표 : 인원 감축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 것 같다. 당장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팔다리를 잘라내는 식의 인원 감축을 하는 회사는 어려워진 상황과 별개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반면 고수들, 산전수전을 다 겪은 스타트업들은 다른 차원의 인원 감축을 시도하는 것 같다. 앞서 말한 본질 가치로 돌아가는 선택이다. 플랫폼 기업들이 빨리 시장을 확장해야 하는 시대에는 능력이나 전문성이 떨어지더라도 빨리 인원을 늘려 시장을 확장하는 속도가 중요했다. 하지만 (딥테크) 스타트업들은 핵심 인재만 남겨 놓고 그 외 사람들이 없어도 회사가 돌아갈 수 있는지를 실험하고 있고, 그런 방식으로 굉장히 건강한 다이어트에 성공한 기업들이 굉장히 많다. 과거에는 투자금도 많았고, 인재도 많았지만 지금 리포트 결과를 보면 사람도 없고 돈도 없다는 답이 나오지 않나? 지금의 스타트업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를 실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센터장 : 동남아 시장에 대한 스타트업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리포트의 글로벌 테마에서도 창업자의 53.5%가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현지 법인 및 지사를 설립해야 한다고 답을 했다. 반드시 필요한 일인가?

이 대표 : 베트남에 지사를 설립을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지사 설립이 필수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국가마다 분위기는 다 다르겠지만 동남아는 특히 그렇다. 오래전부터 외세에 침입을 많이 받아서 해외 기업이 자국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보수적으로 방어하는 경향이 강하다. 제 경험을 통해서 말하자면 결국 그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알아야 우리나라의 회사들도 성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령 현지에 있는 좋은 유통상과 마케팅하는 업체를 찾아서 테스트를 한 이후에 본인들이 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가는 것도 방법이다. 또 한국에서 해당 국가의 로컬 직원을 채용해 그 문화를 간접 체험하면서 가능성을 확인하고 그에 맞춰 전략을 짜는 것이 더 실효성이 있다고 본다.

이 파트너 : 일본의 경우 B2C 비즈니스는 이 대표님 말씀과 비슷한 것 같다. 다만 B2B 비즈니스의 경우는 지사 설립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일본 대기업들은 계약을 할 때 이 회사가 일본 내에서 연속성 있게 서비스를 할지에 대해서 많은 검토를 한다. 언어도 중요하다. 계약서를 비롯해 소통도 모두 일본어로 해야 한다. 그래서 일본어로 소통이 되는 현지 책임자가 있는지 여부가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다. 일본 기업과 계약을 하는 B2B 회사라면 법인이나 지사는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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