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협력 모델인 오픈 이노베이션 과정에서 스타트업의 기술·아이디어 유출, 도용 문제의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무역협회는 코엑스 스타트업 브랜치에서 ‘오픈 이노베이션 분쟁 예방 세미나 및 1:1 상담회’를 개최했다.
26일 진행된 이번 세미나는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오픈 이노베이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술과 아이디어 유출 사례를 짚어보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방안을 전문가들을 통해 알아보는 자리였다.
이날 기조 발제를 맡은 김영덕 디캠프 대표는 “최근 이어지는 기술 유출 사례는 기술 유출이라기 보다 일종의 치팅(cheating, 부정행위)에 가깝다”며 “한 때 대기업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써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로 현 상황을 지적했다.
카피가 위법이 되지 않은 세상
“예를 들어 학교를 다닐 때를 떠올려 보면 숙제가 있을 때 공부 잘하는 친구가 카피의 대상이 되죠. 그래도 카피를 하는 친구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공부 잘하는 친구의 숙제를 일부 인용해요. 문제는 간혹 카피를 한 친구의 학점이 더 잘 나오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거예요. 그럴 때는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들잖아요. 양심이 작동하는 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피를 한 친구가 처벌받지는 않아요. 그런 상황이 우리 기업 생태계에도 지금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김 대표는 스타트업과 대기업 간 오픈 이노베이션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학교에서 발생하는 치팅, 즉 카피의 문제와 같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학교의 상황은 결과적으로 카피를 당한 학생의 졸업 학점이 더 높게 나오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기업 생태계의 상황은 그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카피할 경우 막대한 자산과 직원을 활용해 법적인 대응을 하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김 대표는 “누가 봐도 뻔히 아는 사실도 법정에 가면 위법이 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있다”며 “기술을 탈취 당했다고 주장하는 스타트업들은 실제적인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 사업 의욕을 잃고 회사가 굉장히 안좋은 상황까지 가능 경우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대표는 대기업의 공공연한 카피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상황을 방치할 경우 더 큰 문제는 혁신가들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한국의 생계가 위태로워지는 상황까지 치닫을 수도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판단이다.
이어 김 대표는 최근 불거진 대기업들의 알고케어의 영양제 디스펜서 아이디어 도용, 프링커코리아의 타투 프린터 제품 콘셉트 모방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스타트업들이 처한 상황을 대변하기도 했다.
문제는 비용이나 시간 등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피해 스타트업이 법적소송을 진행할 경우 75%가 패소하거나 이긴다고 해도 이렇다할 피해 복구 효과를 보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와 관련 김 대표는 “법적 소송을 해 봤자 소용없기 때문에 아예 문제 제기를 하지 않고 포기하는 회사가 전체의 3분의 1가량 된다”며 “이렇듯 불합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기술 유출이나 아이디어 도용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은 ‘갑’과 ‘을’ 관계에 있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관계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스타트업의 기술 유출 혹은 아이디어 도용이 발생하는 각 상황을 언급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인 투자 제안을 했다가 주요 기술 자료만 받고 투자를 철회하는 상황이다. M&A(인수합병) 제안 역시도 마찬가지다. 투자 유치가 필요하거나 자금 문제로 인해 매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기업, 스타트업의 경우 기술 유출을 우려하면서도 투자사나 매수기업이 요구를 할 경우 거절하기 힘든 것이 일반적이다.
김 대표는 “이러한 문제는 기업간 PoC(기술검증)을 하는 과정에서도 종종 발생한다”며 “때로는 계약 시 익스클루시브(exclusive, 독점권)을 요구하거나 자동연장 조항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스타트업에게는 굉장히 위험한 조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대표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상호 윈윈 하기 위해서는 혁신 기업이 마음껏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고, 대기업은 혁신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정당한 가격에 거래하여 이를 세계적인 제품으로 만드는 선순환의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서로에 대해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로 기조 발제를 마무리했다.
스타트업을 위한 분쟁 예방법은?
이날 두 번째 순서는 ‘기술 유출 법적 이슈 및 대응’을 주제로 스타트업이 처한 계약, 법적 문제를 지원하는 전문 로펌, 법무법인 미션의 김성훈 대표 변호사의 발표가 이어졌다. 발표 서두에서 김 변호사는 대기업의 스타트업 아이디어, 기술 탈취 분쟁 사례를 제시하며 분쟁의 쟁점이 되는 ‘영업비밀’의 정의와 범위를 설명했다.
“영업비밀의 요건은 세 가지입니다. 우선 공연성, 즉 공공연하게 알려져 있지 않아야 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 독립적인 가치, 경제적인 가치를 지녀야 하죠. 가령 엄청난 비밀이지만, 아무런 경제적인 가치가 없으면 영업 비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가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요건인데요. 바로 비밀로 관리된 것, 즉 영업 비밀로 지정돼 관리돼 온 것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이 ‘관리’죠.”
김 변호사에 따르면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기술유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이 중 첫 번째와 세 번째가 주로 쟁점화 된다. 기술 등과 관련된 특허 침해의 경우 법적 이슈가 크게 없지만, 영업 비밀의 경우는 공연성 여부를 선 긋듯이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영업 비밀이나 아이디어 모두별도의 등록 절차나 허가 절차, 공시 등이 없기 때문에 특정하기가 어렵고 그런 이유로 과하게 보호하지 않는 것이 지금의 사법적 태도”라고 설명하며 ‘관리’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영업 비밀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기술적 가치가 높고 대단한 것인데, 그에 맞게 관리가 돼 왔어야 한다는 것을 본다는 점입니다. 모든 법에서는 경계선과 공시를 중요하게 보거든요. 영업 비밀이라고 하지만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면, 즉 ‘스스로 관리하지 않은 것’을 법이 나서서 보호하거나 강제하는 것은 ‘과용’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즉 영업 비밀이 법적 쟁점으로 떠오를 경우 스타트업 입장에서 통제할 수 있는 것,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노력은 사실 세 번째, ‘관리’ 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 김 대표가 강조하는 것은 ‘기록’이다. 명확한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기록이 돼 있지 않다면 그 차이는 크다는 것이다. 즉 스타트업이 대기업과 투자, 계약 등으로 영업 비밀을 공개할 경우 회의록, 영상, 녹취, 이메일 등의 기록을 꼼꼼하게 정리하고 확보해 놓아야 영업 비밀이 유출되는 상황에서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여기에 IR 등을 할 때 NDA(비밀유지계약) 체결을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말을 이어갔다.
“NDA 체결과 관련해서는 스타트업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정부 차원의 노력(법제화)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과 같이 투자금이 마르고 여러가지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스타트업이 IR를 할 때 대기업이 NDA 체결을 거부하면 도리가 없어요. 따라서 정책, 법령을 통해 당연한 의무로 정해야 한다는 거죠. 물론 아이디어 탈취를 처벌할 수 있는 부정경쟁방지법 조항이 있지만, 문제가 발생한 다음 입증해서 처벌하는 것보다 미리 예방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NDA를 체결해도 어기면 소용이 없지 않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그 자체로 (대기업에게) 심리적인 장벽을 주는 효력이 있죠.”
김 변호사는 재차 영업 비밀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영업 비밀 관리 대장 등을 만들 것을 강조했다. 또 적지 않은 사례로 내부 인원에 의해 유출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내부적으로도 임직원들의 영업 비밀 유지와 관련된 약정, 규정 등을 만들고 서약서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를 통해 역시 법적 증거이자 심리적인 장벽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먼저 싸움의 여지를 없애는 것이 이기는 겁니다. 그러려면 더욱 기록하고 관리하고 또 관리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렇게 준비된 스타트업이라면 소위 말하는 영업 비밀 침탈을 하고자 할 때도, 또 그것을 가지고 사업을 하고자 할 때도 (침탈한 기업은)굉장히 큰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어 이날 세미나에서는 윤건주 한국지식재산보호원 변호사가 ‘영업 비밀 보호 제도 및 지원 사업’을 주제로 발표를 통해 투자 유치, 공동사업 등 다양한 협력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기술 유출 사례를 제시하고, 스타트업의 기술 유출 예방-구제 지원제도에 대한 설명을 진행했다.
또한 이어진 세션에서는 이종훈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 대표, 송종화 퓨처플레이 팀장, 윤낙범 넥스트유니콘 이사 등이 패널로 나와 대기업‧투자자‧스타트업이 바라본 기술 유출의 유의점에 대한 토론이 진행됐으며 이와 동시에 지식재산보호원의 지식 재산 보호 관련 1:1 현장 컨설팅이 병행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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