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혹한기가 도래한지 어언 3년째에 접어드는 올해, 설상가상으로 암울한 경기침체 전망까지 더해지며 스타트업계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
후속 투자 유치의 어려움으로 사업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는 시리즈B 이상의 스타트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심심지 않게 들려올 정도. 더구나 이러한 상황은 기술이나 서비스 개발 단계를 거치며 데쓰밸리를 넘기고 있는 초기 스타트업에게 더욱 가혹하게 마련이다.
문제는 어떻게든 자력으로 사업을 이어가려는 스타트업을 비롯해 M&A 조차 고려하기 힘든 초기 스타트업들에게 들어오는 투자 제안 중 간혹 순수한 의도를 넘어 악의적인 계약 조건으로 이득을 취하려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창업자를 비롯해 소수 인원으로 운영되는 스타트업의 경우 인적·물적 한계로 인해 계약 사항에 불합리한 조항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로 인해 경우에 따라서 어떤 스타트업은 투자 받은 금액을 넘어서는 손해에 직면하거나 어렵게 일군 사업을 송두리째 빼앗기는 극단적인 상황을 겪기도 한다.
이에 스타트업 전문 로펌을 표방하는 법무법인 별은 지난 25일 ‘2024 스타트업 투자 세미나’를 통해 강혜미 대표 변호사가 나서 ‘투자계약의 기본과 투자 전·후 주의사항’에 대해 설명하는 자리를 가졌다. 1000건 이상의 스타트업 자문 경력을 보유한 스타트업 전문 변호사가 이야기하는 투자계약서 검토의 핵심 포인트는 무엇일까?
투자계약 시 꼭 챙겨야 할 첫 번째 법률 이슈, ‘신주인수권’과 관련된 법적 절차 준수
법무법인 별은 스타트업 창업부터 투자, 엑시트(EXIT)와 관련된 전문 자문을 진행하는 스타트업 전문 법무법인이다. 지난해 M&A 리드테이블 8위를 달성하고 한국벤처캐피탈협회 ‘M&A 자문기관’으로 등록된 바 있다. 강혜미 대표 변호사는 1000건 이상의 스타트업 자문, 500건 이상의 투자, 100건 이상의 M&A 자문 경력을 담당한 스타트업 전문 변호사로 이름을 알려왔다.
이날 강 변호사는 “투자 계약서 검토에 앞서 계약 전후로 중요한 사항, 투자를 받기 전 꼭 챙겨야 할 법률 이슈를 중심으로 주제를 잡았다”며 운을 뗐다.
강 변호사가 처음 꺼낸 이야기는 ‘정관’과 관련된 내용이다. 투자자에게 주식을 발행한다는 것은 기존 주주가 아닌 제 3자에게 신주를 발행해준다는 개념이고, 이는 정관에 반드시 근거 조항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막상 투자를 받고 난 후 등기를 하는 과정에서 이런 근거 조항을 정관에서 찾아보기 힘든 스타트업이 적지 않다는 것이 강 변호사의 설명이다. 개중에는 이 때문에 투자가 번복된 사례도 있다고 하다. ‘신주인수권’으로 불리는 이 조항에 따르는 법적절차로는 이사회결의, 주주통지/공고/신주인수권자에게 최고(납기일 2주전), 청약 배정 및 납입, 등기(납일일로부터 2주 내) 등이 있다.
이어 강 변호사는 신주인수권과 연관이 있는 종류주식에 대해 언급했다. 종류주식은 소정의 권리에 관해 특수한 내용을 부여하는 주식으로 보통주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익배당, 의결권 행사, 잔여재산 분배, 상환 및 전환에 대해 보통주와 다른 권리가 부여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강 변호사는 “보통 스타트업의 경우 시드 단계에서는 투자자에게 대개 보통주를 주지만, 시리즈 단계로 가면서 부터는 RCPS(상환전환우선주식)과 같은 종류주식을 발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말을 이어갔다.
“투자자에게 종류주식을 발행할 때도 정관에 근거조항이 있어야 합니다. 역시 등기까지 완료하고 나서 이 조항이 정관에 없어 문제가 되는 경우를 굉장히 많이 봤습니다.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은 첫째, 회사 정관에 RCPS 발행과 같은 근거 조항이 있는지, 다음으로는 있다면 그것이 투자를 받는 투자자가 요구하는 발행 조건이랑 일치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굉장히 중요한 사항이라 강조 드립니다. 투자를 받는 것은 회사 입장에서 신주를 발행해 투자자에게 주는 개념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신주 발행 정차를 거쳐야 합니다. 이것이 문제가 되면 투자 계약이 무효가 되거나 계약 위반이 될 수도 있어요.”
특히 강 변호사는 신주 발행 결의를 할 때 “스타트업의 경우 이사회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는 주주총회를 통해 결의를 하면 된다”며 “이사가 1~2명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사회 결의로 신주를 발행한다고 등기서를 제출하면 문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신주인수권에 따르는 법적 절차 준수와 이어지는 내용이다.
투자 계약 시 계약서 구성 내용은 신주 인수에 관한 사항, 종류주식의 내용 외에도 ▲거래 완결 후 회사 경영에 관한 사항 ▲거래 완결 후 주식 처분 등에 관한 사항 ▲계약 위반 등에 관한 책임 ▲계약의 일반사항 ▲특약 사항 ▲진술과 보장 ▲퇴사제한 및 경업금지 확약서 등이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계약서 내용이 표준화 돼 있지만, 투자사 별 세부 내용에 차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세심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강 대표는 “이 모든 것이 투자금을 받기 전에 미리 준비해 놔야 하는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투자 계약 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법, 독소조항을 피하라
강 변호사는 투자 계약 시 계약서 구성 내용 중 ‘진술과 보장’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갔다. 스타트업과 투자자 간 문제가 발행했을 때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먼저 확인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강 변호사는 “과거에 투자 계약으로 인해 문제가 되는 사례가 빈번했고, 최근에는 스타트업도 협상력이 생기면서 투자 계약서 검토를 많이 하지만 경우에 따라 계약서 수정이 ‘절대 안된다’는 투자자도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든 한 조항의 문구 하나, 숫자 하나라도 협상을 해 불리한 것을 피하면 추후 문제 발생시 스타트업을 지켜줄 수 있는 조항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강 변호사가 특히 주의가 필요한 조항으로 지목한 것은 ‘상환권에 관한 사항’이다. 상환권은 예를 들면 투자금 100억원을 받은 스타트업에 투자자가 상환권을 행사할 시 투자금 100억원에 추가로 이자를 더해 돌려줘야 된다는 조항이다. 강 변호사는 “배당 이익이 없을 경우 스타트업은 응할 의무가 없다”며 말을 이어갔다.
“보통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으면 사업을 위해 돈을 쓰죠. 그런데 갑자기 투자자가 원금과 이자를 돌려 달라면 굉장히 난감한 상황이 되겠죠. 중요한 것은 이 상환권 행사가 아무 때나 할 수 없고 우리 법에서는 배당 받은 이익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돼 있다는 점입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배당 받는 경우가 없어요. 회사가 정말 잘 되는데 구주 매각도 안되고 상장도 못하니 상환권을 행사해 투자금을 회수하겠다고 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굉장히 드문 경우죠. 문제는 간혹 계약서에 ‘배당 받는 이익이 없더라도 상환권 행사에 응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는 경우예요. 하지만 이 역시 무효 입니다. 그래서 또 어떤 투자자는 그것을 알고 ‘이해관계인인 대표 개인이 상환하라’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는 것도 봤습니다. 부당하지만 이 때는 유효할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조항이 있을 때는 꼭 삭제를 요구해야 합니다. 물론 요즘 이렇게까지 하는 투자사는 없지만 예전에 쓴 계약서에는 간혹 있기도 해요. 반드시 ‘개인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조항이 있으면 삭제를 요구하도록 하세요.”
이어 강 변호사는 경영사항에 대해서는 ‘동의’사항 보다는 ‘협의’ 사항으로 해 놓는 것이 좋다는 점, 기업공개나 M&A와 같은 중요 이슈와 관련해 투자자 제안에 대해 ‘반드시 따른다’기 보다는 ‘성실히 협의한다’는 문구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독소조항을 피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또 강 변호사는 스타트업들이 투자금 용도를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는 점과 함께 임원 지명에 관한 조항의 경우 이사 선임권을 남발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투자자에게 부여한 선임권보다 대표가 선임한 이사가 항상 더 많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사회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경영권을 잃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강 변호사가 이야기하는 적당선은 투자 라운드 당 리드 투자사에게 대표로 하나의 선임권을 주는 정도다.
이 외에도 강 변호사는 투자자가 ‘주식매수청구권’ 일명 ‘풋옵션’을 요구할 경우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는 스타트업 대표가 계약을 위반했을 때 투자자가 일반적으로 주식을 팔고 나갈 수 있는 권리로 대부분이 대표 개인에게 행사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앞서 언급된 ‘상환권’이 회사에 청구하는 개념이라면 풋옵션은 계약상 회사 또는 이해관계인(대표)에게 행사할 수 있는 권리다.
“회사 상대로 행사를 하게 되면 앞서 상환권과 마찬가지로 배당 이익이 없으면 불가능해요. 그래서 사실상 회사를 상대로 풋옵션을 요구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그래서 대표자 개인에게 행사를 하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 문제가 터지면 투자자의 주식을 대표가 사야 하는 거예요. 투자 원금 뿐 아니라 이자까지 연복리로 적용이 되죠. 투자자 입장에서는 이 조항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문제나 위반이 발생해 손해배항 소송을 하게 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손해액을 입증하기도 어려우니, 투자자 입장에서는 ‘풋옵션’이 가장 확실한 권리거든요. 이 경우는 열심히 협상을 해서 사유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과실, 중요한 의무에 한해서만 발동하게 해 놓는다면 사실상 풋옵션이 행사 될 일은 없습니다.”
발표 말미 강 변호사는 “스타트업의 입장에서 투자를 받는 다는 것은 그 순간 시어머니가 생긴 거라고 보는 게 좋다”며 앞서 강조한 내용을 다시금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환기시켰다. 이어 “합의된 텀싯(Term sheet, 본 계약 체결에 앞서 조건 등을 상호 협상하는 단계의 거래 조견표)을 바꾸기는 쉽지 않으니 받는 순간부터 변호사를 찾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세미나는 강 대표 변호사에 이어 법무법인 별의 원우진 변호사가 바톤을 이어받아 2023-2023 법 개정에 따른 최신 투자계약서 내용을 설명하기도 했다. 주요 내용은 ‘벤처투자회사 등록 및 관리 규정’에 따른 이해관계인의 책임 변화와 CN(조건부지분전환계약) 등 새로운 투자 방식의 도입에 관한 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