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해외 정세, 고물가, 고금리 등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이 지속되며 스타트업 투자 환경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혹한기’를 넘어 ‘빙하기’에 접어들었다는 표현까지 나올 정도. 이에 최근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전문 CVC(Corporate Venture Captial, 기업 벤처 투자사)인 씨엔티테크가 주축이 돼 열린 ‘C 포럼’에서 투자업계를 대표하는 투자사 리더들이 모여 스타트업 투자의 현 상황과 미래를 진단해 보는 자리를 가졌다.
씨엔티테크 창립 20주년을 맞이해 지난 7일 개최된 C포럼의 오프닝 세션으로 진행된 이번 토론의 주제는 ‘스타트업 투자, 과거와 현재’로 전화성 씨엔티테크 대표를 비롯해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 포럼 대표,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 구중회 LB인베스트먼트 전무, 배준성 롯데벤처스 상무가 한 자리에 모이는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이날 환영사를 겸한 키노트 스피치에 나선 전화성 씨엔티테크 대표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이어지고 있는 고물가 인플레이션 시대의 도래를 언급하며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가 인상됐고 그로 인해 상장 시장의 성장주의 주가가 급락했으며, 그 여파는 사실상 스타트업 투자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전 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열심히 하는 금융 집단이 바로 CVC”라며 “능력주의 관점에서 협업할 수 있는 상대적 약자에 대한 투자는 ESG를 기반으로 하는 활동”으로 정의했다.
스타트업 투자, 현재 상황은?
이날 토론의 첫 소주제는 스타트업 투자 환경의 현 주소를 진단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투자사들의 입장에서는 신중한 투자로 전략을 바꾼 셈이지만, 투자가 절실한 스타트업이 느끼는 어려움은 그 이상이다. 스타트업들이 주축이 된 단체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이러한 상황을 가장 최전선에서 느끼는 중이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투자 혹한기에 대한 스타트업의 체감도는 굉장히 높다”며 현 상황을 진단했다.
“정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스타트업 투자는 2021년을 정점으로 지난해 약 10%정도 감소한 것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VC를 비롯해 프라이빗 에쿼티, 신기술 금융회사, 해외 투자 감소 등을 합치면 거의 반토막이 났다고 봅니다. 다만 2021년이 굉장히 급상승한 시기여서 이를 빼고 2010년부터 2022년까지를 보면 여전히 스타트업 투자는 우상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죠. 문제는 현장 체감도예요. 가장 어려운 영역은 전혀 투자를 받지 못한 스타트업보다는 시리즈 A, B 등으로 어느 정도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들입니다. 그 사이 투자사들의 스탠스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죠. 2021년만해도 투자사들이 스타트업에게 요구한 것은 ‘돈을 아낌없이 태워서 빠르게 성장을 달성하라’였다면 지난해부터는 손익분기점과 매출을 따기지 시작했거든요. 일단은 살아남아야 한다고 주문을 하게 된거죠.”
이어 최 대표는 “이러한 상황은 극복될 것”이라면서도 “시리즈 A, B 정도의 역량있는 스타트업들이 어려운 시기를 버티지 못하고 붕괴될 수도 있다는 점, 대학가의 창업 열기가 꺾였다는 점이 우려된다”는 심중을 털어 놨다.
그렇다면 VC가 바라보는 상황은 어떨까. 송은강 캡스톤파트너스 대표는 “내년 쯤이면 좋아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며 그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했다. 우선 정부에서 벤처 투자 의 위기 상황을 감지하고 내년 무렵 지원 예산을 마련 중이라는 것, 투자사들의 ‘드라이 파우더(dry powder, 투자금 중 집행하지 않은 돈)’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무역전쟁, 미국 금리 인상 등의 불확실성에 새로운 펀드 조성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 송 대표의 분석이다. 특히 송 대표는 “모든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고 인공지능, 콘텐츠 IP 등 투자가 더 이뤄지고 있는 산업도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혁신적인 아이템을 가졌다면 CVC 투자 유치에 집중, 팁스 제도 활용도 중요
현재 스타트업 투자 환경에 대해 배준성 롯데벤처스 상무는 “CVC투자가 본격화된 것은 최근 이삼년 정도로, 지금이 시작이라 할 수 있다”며 “다만 펀드를 활용함에 있어 모회사와 관계 등 투자의사 결정 과정이 오래 걸릴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배 상무가 보는 CVC 투자가 활성화되는 시점은 내년이다. 다만 배 상무는 “대기업 계열 CVC는 혁신적인 분야의 스타트업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모든 스타트업에 해당되진 않는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는 반대로 혁신적인 아이템으로 승부하는 스타트업들에게 힌트가 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기존 대기업들은 올드한 산업군을 많이 가지고 있고, 거기서 새로운 혁신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 분야(혁신적인) 스타트업들은 일반적인 VC보다는 CVC에 좀 더 집중해서 투자 유치 노력을 기울인다면 좋은 성과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편 고영하 한국엔젤투자협회장은 “팁스(TIPS, 민간투자 주도형 기술창업지원) 제도로 인해 한국 창업 생태계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며 그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기도 했다.
“2013년 무렵에 팁스 프로그램을 만들 때 우리나라 창업 생태계는 대단히 열악했죠. 미국의 경우 엔젤투자자가 30만명이나 되기 때문에 초기 투자는 물론 시리즈 A정도까지 해주는 슈퍼 엔젤들이 있어 창업 생태계가 활성화됐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했거든요. 그 마중물 역할을 정부가 나서 팁스 시스템을 도입해 지금까지 왔죠. 그렇게 해서 지난해 팁스를 통해 발굴한 스타트업이 500개 올해는 현재 기준 720개로 늘어났습니다. 220개가 증가했으니 약 40%로 급증한 것이라 할 수 있죠. 팁스는 연구개발비 5억원에 창업지원자금 2억을 더해 7억원을 지원해주는 시스템으로 지속해 왔고, 이번에는 3억을 투자받으면 17억을 지원해주는 딥테크 팁스 트랙이 하나 더 만들어졌습니다. 정부로서는 파격적인 지원을 하는 셈이죠.”
이어 고 협회장은 “정부를 대상으로 팁스 확대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정부도 일정부분 방향성을 잡고 있기 때문에 기대하고 있다”며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를 강조하기도 했다.
“내후년 정도에는 1000개, 2030년에는 일년에 2000개씩 기술 벤처를 키워내는 시스템이 된다면 어떨까요. 그렇게 10년만 지속되면 2만개 정도의 기술벤처를 키워낼 수 있고, 그 중 5%, 약 1000개의 유니콘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GDP가 1000조가량 늘어납니다. 올해 팁스 예산이 약 4000억원 가량인데, 이걸 2조원 정도로만 늘리면 가능한 얘기죠. 정부 예산에(2022년 기준 602조원) 그 정도면 미미한 수준이고 엄청나게 효율성이 높은 투자라 할 수 있습니다.”
위기 이후 기회가 오고 있다, 문제는 수익화 모델 제시
딥테크와 해외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는 구중회 LB인베스트먼트 전무 역시 최근까지의 상황과 관련해 “지난해 드라이 파우더가 상당히 많이 확보됐다”며 “상반기까진 실적 위주로 투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심화됐고, 전반적인 투자는 한국 뿐아니라 미국, 이스라엘, 중국 등 다 줄어든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즉 “돈은 있지만, 모니터링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국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최근 1~2년사이 스펙 상장했던회사들의 시총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서 대형 VC조차 투자를 관망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또 통계적으로 분석을 해봐도 이러한 위기 이후에는 펀드 수익이 좋다는 것이 숫자로 증명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경험있는 VC들은 올해부터 내년까지가 굉장히 좋은 시즌이라 보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펀드 운영기간이 8년으로 다른 나라보다 짧습니다. 그러니 8년의 절반인 4년안에 투자를 해야 한다고 쳤을 때 지난해 만들어진 드라이 파우더가 있고 올해 관망한 상황이라면, 하반기 혹은 늦어도 내년 1분기부터는 투자를 해야 되는 거죠. 즉 시점상으로 보면 올해 하반기 내지 내년 정보는 VC들도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 투자가 몰리는 상황은 변함이 없을 듯하다. 구 전문 역시 “특히 요즘에는 거의 모든 VC가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을 우선적으로 보고 있다”며 “최근에는 매출이 나는 회사는 흑자가 아니더라도 상장이 통과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예전에는 지표만 보고 투자했다면 지금은 지표는 기본이고 언제 수익모델로 전환될 것인지, 손익분기점에 대한 것도 보고 있어요. 종국적으로 어느 정도의 수익이 나올 것이냐를 설명하지 않으면 투심의 통과가 안됩니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고심이 되는 부분이죠. 그럼에도 투자 유치 상담을 하거나 IR자료를 발표할 때는 장기적으로, 상장 후 상장 전까지 최소한의 로드맵을 제시해야 합니다.”
한편 이날 행사는 총 4개의 본 세션으로 이어지며 열기를 더했다. 트래블, 아트, 스포츠, 푸드,애그리, 펫, 금융, 블록체인, 해양과 관련된 각 테크 스타트업이 나서 저마다의 경쟁력을 제시했다. 특히 이중에는 푸드테크 스타트업 ‘호랑이의 공동창업자인 배우 이장우가 직접 참석해 ‘K-푸드’의 경쟁력을 언급하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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