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오디티, ‘블립’이 고래싸움에서 살아남는 법

‘덕업일치’이뤄낸 ‘성덕’ 김홍기 대표의 스페이스오디티 설립 비하인드 스토리
케이팝 스케줄 알리미로 거듭난 ‘블립’, 글로벌 팬들의 관심을 끄는 ‘케이팝 레이더’
거대 팬덤 플랫폼과의 대결, 힘들지만 진정성을 알아주는 팬들을 위해서 싸울 것

스페이스오디티는 ‘가수 없는 기획사’라는 콘셉트로 설립된 스타트업이다. 음악을 베이스로 한 회사지만 브랜딩에 남다르다. 많은 업무들이 음악을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기획하는데 할애된다.

독특한 회사지만 그래도 뭔가 좀 이해가 잘 안된다. 스페이스오디티에 대한 이해도를 좀 더 넓히려면 그 대표인 김홍기라는 사람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광고홍보학을 전공한 그는 이후 좋은콘서트, 로엔(구 서울음반), 네이버, 카카오, 메이크어스 등을 거치며 음악 산업계에서 줄곧 탄탄한 내공을 다졌다. 그 사이 자신의 시그니처라 할 만한 성과도 여럿 만들어 냈다. 대표적으로는 마지막 직장인 메이크어스에서 디지털스튜디오 ‘딩고’를 통해 모바일에 최적화된 콘텐츠로 선보인 ‘세로라이브’와 ‘이슬라이브’가 있다.

하지만 그 조차도 5년여가 훌쩍 넘은 일이다. 이후 스페이스오디티 창업과 함께 그의 모든 공력은 ‘좋은 음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에 집중됐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설립 이후 스페이스오디티는 여러 번의 변화를 거쳤다. 초기 ‘모두를 위한 기획사’ ‘공유형 드림팀’을 콘셉트로 음악 사업을 시작했다. 가수만 없고 음악과 관련된 모든 분석, 기획, 플래닝, 제작까지 할 수 있는 역량을 바탕으로 한 사업은 나름 신선한 시도로 관심을 모았다. 혹자는 이를 ‘엔터테인먼트의 풀필먼트(제품 생산을 제외한 제품 선택, 포장, 배송까지 담당하는 일괄 서비스)’라고도 했다.

지금은 스페이스오디티의 핵심 사업이 된 ‘블립’과 ‘케이팝 레이더’는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이전까지 감성과 직관의 영역이 었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데이터에 기반한 분석과 브랜딩, 기획을 접목하기 위한 시도였다. 이후 엄청난 자본과 물량으로 등장한 대형 팬덤 플랫폼이 등장하며 스페이스오디티는 또 한 번의 피보팅(Pivoting, 사업 방향 전환)을 감행했다. 이른바 ‘고래싸움에서 생존하기 위한’ 고민이자 승부수인 셈이다.

엔터테인먼트계의 스페이스오디티, 덕업일치 이뤄낸 ‘김홍기’라는 사람은?

“초등학교 3학년인가… 그때부터 라디오를 끼고 살면서 다이어리, 일기장 등에 저만의 ‘가요 톱10’을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제 인생에 음악은 숙명이었던 셈이죠. 지금도 저를 키운 8할은 음악이라고 이야기해요. 그때부터 꿈꾼 게 ‘이렇게 좋은 음악을 나만 듣지 말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했으면 좋겠다’였어요. 모호하지만 ‘음악을 잘 들어주고 잘 얘기해 주고, 잘 전달해주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막연히 생각했죠.”

그의 유년기는 ‘김현철’ ‘봄여름가을겨울’ ‘토이’와 같이 당대를 풍미했던 가수, 그룹들의 음악으로 채워졌다. 음악을 접하면 접할수록 자신 세대 이전의 음악과 언더그라운드 음악 등으로 경험의 폭은 넓어졌다. 그렇게 음악에 빠져 사는 그의 모습은 요즘 말로 ‘덕후(특정 분야에 몰두해 열정과 흥미를 가진 사람)’와 다름이 없었다.

그런 그가 전공을 광고홍보학으로 정한 것은 좀 의외로 생각됐지만, 따지고 보면 요즘과 같이 음악 관련 전공이 그리 많지 않던 시절이라 이해가 갔다. 김 대표 역시 “막연하게 음악과 광고가 어느 정도 연결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했다며 당시 기억을 털어 놨다.

“요즘에는 문화콘텐츠학과 같은 전공이 다양하게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선택지가 많지 않았어요. 뭘 할지에 대한 고민이 컸죠. 그래서 가고 싶지 않은 학과를 다 지우고 나니 남은 것 중 광고홍보학과가 눈에 띄더군요. 애매한 상태로 그저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지원했고 덜컥 합격해 오리엔테이션을 갔는데, 자기 소개 자리에서 ‘음악을 하고 싶어서 왔다’고 했더니 다들 이구동성으로 ‘잘못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지금 보면 선·후배, 동기 중에 음악 관련 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30명 가까이 돼요(웃음). 직배사, 음반사, 공연 기획, 엔터테인먼트 기업에서 다양하게 일하고 있죠. 어떻게 보면 그 사람들 역시 저와 같았던 셈이에요.”

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 대표는 어린시절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스페이스오디티)

덕후로서 김홍기 대표의 삶은 그 이후에도 지속됐다. PC통신 시절 ‘봄여름가을겨울’ 팬클럽 카페 방장을 맡기도 했고, 치기어린 시절이었지만 이런 저럼 음악에 대한 자기 생각을 글로 남기기도 했다. 그렇게 대학 졸업을 앞둔 무렵 공연기획사 ‘좋은코서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 평생의 업이 됐다. 더할 나위 없는 ‘덕업일치(좋아하는 분야를 직업으로 삼음)’였다. 이후 음악 관련 작업을 이어오며 그는 덕후를 넘어 ‘성덕(성공한 덕후, 좋아하는 분야에서 성공하고, 덕질 대상을 직접 만남)’에 등극하게 됐다.

“제가 어렸을 때는 좋아하는 것을 직업을 삼으면 안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전 그러지 않았고, 지금은 좋아했던 뮤지션인 김현철, 봄여름가을겨울 등과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가 됐죠. 집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혼술을 하다가 좋으면 문자도 주고 받고, ‘뭐하다 이제 전화해’라면서 웃기도 하고… 전 그렇게 생각해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같이 즐겁게 일하면서 그 에너지로 기존에 없었던 뭔가를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게 제가 원했던 일이었고, 그걸 하고 있는 중이라고… 그리고 지금은 ‘성덕’으로서 제가 경험한 것을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똑같이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이런 이유로 스페이스오디티는 직원 채용 시 일반적인 서류 외에 자신의 덕질 스토리를 담은 ‘덕질 이력서’를 추가로 받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지원자들이 여기에 더 정성을 기울인다는 사실이다. 아쉽게 채용까지 연결되지 못한 사람들 조차도 김 대표에게 메일을 보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물어본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이었고, 이런 식으로 정리해 본 것도 처음이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본 계기가 됐다”며 고마움을 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등 떠밀려 창업했다고? 괴짜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

그가 엔터테인먼트, 그 중 음악에 천착해 살아오는 동안 우리나라 음악은 아이돌 중심의 케이팝으로 진화를 거듭했고, 이는 다시 한류의 기폭제가 돼 세계인들이 즐기는 음악 장르로 발전하고 있다. 글로벌 관점에서 보자면, 비주류 로컬 문화가 주류화되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의 시작은 모바일 인터넷 시대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기존 빅테크 계열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몸담았던 김 대표가 새로운 시도를 한 것도 케이팝이 글로벌 시장으로 영역을 넓혀갈 즈음이었다.

“마흔이 넘으면서 문득 ‘좋은콘서트를 다니던 20대 시절과 같이 설레면서 일하는 경험은 이제 더 할 수 없겠다’ 싶었어요. 그러면서 ‘네이버도 그렇고 카카오도 그렇고 나는 왜 늘 남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얻고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죠. 그러다 ‘나도 밥상을 차려보자’는 생각으로 메이크어스에 가게됐어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가 메이크어스 딩고 뮤직을 통해 선보인 ‘세로 라이브’ ‘이슬 라이브’는 모바일에 최적화된 신선한 음악 콘텐츠 시도로 부각되며 크게 성공했다. 이후 여러 제안이 왔고 그 과정에서 김 대표는 또 한 번의 전환기를 맞이하는 만남을 경험하게 됐다. 바로 제페토를 만든 김창욱 네이버제트 대표와의 만남이다.

블립은 초기 '내 손안의 덕메이트'라는 콘셉트로 본격적인 팬덤 플랫폼 시대를 열었다. (이미지=스페이스오디티)

“김 대표님과는 네이버 시절부터 같은 직원으로 근무하며 미팅을 몇 차례 한 것이 고작이었죠. 그런데 ‘세로 라이브’를 보고 저를 찾아오신 거예요. 처음에는 영입 제안이었는데, 나중에는 투자 제안으로 바뀌었죠. 그때까지 전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웃음). 나중에 알고 보니 김창욱 대표가 원래 동기를 부여해주는 초기 투자자로 유명하더군요.”

김창욱 대표의 제안 이후 김 대표는 한동안 김창욱 대표를 매일 만나 “하루 3~4시간 동안 ‘교육’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때론 사무실, 때론 맥주집에서 앉아 수많은 이야기를 듣던 김 대표는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단다. 그 길로 김창욱 대표에게는 ‘열심히 공부해서 다시 찾아오겠다’고 한 뒤 김 대표는 근 한달 반 동안 미디어, 음악 관련 역사부터 산업 전반에 대해 다시 공부했다.

“공부를 다시 하다 보니 대략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잡히더군요. 어느 날 보니 제가 새벽에 일어나 사업계획서를 쓰고 있는 거예요(웃음). 그걸 들고 다시 김창욱 대표를 찾아갔죠. 그걸 본 김창욱 대표가 바로 시작하자고 하더군요. 그렇게 스페이스오디티가 탄생하고 5년이 지난거죠. 그런데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웃음). 그렇게 등 떠밀려 고민하다가 엉겁결에 창업을 한 거죠.”

고래들의 싸움에서 ‘블립’은 어떻게 살아 남을까?

스페이스오디티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가 1969년 발표한 동명의 노래 ‘스페이스오디티(Space Oddity)’에서 따왔다. (영상=유튜브)

스페이스오디티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가 1969년 발표한 동명의 노래 ‘스페이스오디티(Space Oddity)’에서 따왔다. 해석하면 ‘우주를 떠도는 괴짜’ 정도라 할 수 있다. 김 대표가 처음 음악을 접했던 시절에 비해 오늘날 글로벌화 된 거대 음악 시장에서 개별 뮤지션, 그리고 그들의 음악은 우주를 유영하는 괴짜와 같은 셈이다. 스페이스오디티가 2019년에 선보인 ‘케이팝 레이더’ 2020년에 선보인 케이팜 팬덤 플랫폼 ‘블립’은 그러한 뮤지션과 팬들을 이어주는 정거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은 김 대표의 말에 따르면 ‘번아웃이 올 정도’로 힘겨웠다고 한다.

“블립은 스페이스오디티 창업과 함께 기획했어요. 팀을 빌딩하고 구체화되면서 팬들을 위함 팬덤 플랫폼으로 ‘내 손안의 덕메이트’를 콘셉트로 내세웠죠. 오랜 기간을 공들여 선보였는데 지난해 갑자기 메타버스 키워드와 함께 팬 플랫폼이 떠오르며 엔씨소프트가 ‘유니버스’, 하이브가 ‘위버스’를 내 놓더군요. 스페이스오디티의 ‘블립’이 아무리 차별성을 내세워도 비교할 수 없는 물량 공세와 가수들의 IP를 활용한 서비스를 하는 후발 주자들이 등장한 거예요.”

블립이 초기 시도한 케이팝 팬덤 플래폼의 콘셉트는 여전히 고유한 차별성이 있었다. 팬들의 호응도 적지 않았다. 이용자의 40%는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국, 말레이사아 등 세계 각국의 케이팝 팬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 플랫폼과 경쟁을 위해서는 좀 더 디테일한 정체성 확립이 필요했다. 김 대표는 ‘힘겨운 싸움이었다’며 말을 이어갔다.

“아티스트를 중심에 둔 다른 플랫폼과 달리 우리가 진짜 팬 플랫폼이라고 자부했지만, 한계가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진정성을 알고 좋아해 주는 블립의 팬도 많았어요. 블립은 고객으로서 팬들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상처받는 팬들을 위한 서비스, 브랜드를 만들어야 겠다는 취지로 시작했고 그에 반응하는 분들 덕분에 지속할 수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팬들이 케이팝 스케줄에 특히 집중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어요. 신곡 티저 영상 공개 일정, 가수들의 기념일, 1등한지 몇 주년 등 팬들이 챙기는 기념일, 행사 등 케이팝 스타들의 일정은 정말 다양하거든요. 알고 보니 이 서비스는 우리만 하고 있었어요. 우리는 모든 걸 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팬들 중에는 블립을 ‘스케줄 앱’으로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알게 됐죠. 솔직히 좀 싫었지만(웃음), 팬들의 니즈를 받아들이고 최근에 ‘케이팝 스케줄 알림이’로 새롭게 블립을 정의해서 커뮤니케이션 하고 있어요.”

최근 김 대표는 블립을 새롭게 피보팅해 '케이팝 팬을 위한 스케줄 알리미'로 설정하고 거대 플랫폼과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미지=스페이스오디티)

김 대표와 스페이스오디티의 새로운 시도는 끝이 아닌 시작이다. 매월 10만명 이상 방문을 하는 ‘케이팝 레이더’ 역시 차트를 다양화하고 영어 등 다국어 서비스를 적용해 글로벌 이용자의 니즈를 반영하고 있다. 향후에는 데이터 수집과 분석 시스템을 고도화해 팬들을 넘어 산업계 플레이어들이 참고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키울 계획도 가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본격화되며 스페이스오디티의 또 다른 역량인 오프라인 프로젝트와 온라인을 연결하는 시도도 이어질 예정이다.

‘블립’ ‘케이팝 레이터’를 무기로 고래들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김홍기 스페이스오디티 대표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오는 6일 서울 역삼역 마루180(Maru 180)에서 온·오프라인으로 개최되는 ‘콘텐츠 마케팅 인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콘텐츠 마케팅 인사이트 정보 바로가기)

황정호 기자

jhh@tech42.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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