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학의 창시자인 하타무라 요타로(도쿄대 명예교수)는 말합니다.
실패는 감출수록 커지고 악화되지만
일단 드러내기 시작하면
성공과 창조를 가져온다.
즉, 어떤 일이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이를 되도록 빨리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는 건데요. 하지만 말이 쉽지, 상사에게 인정 받고 싶은 부하직원들한테는 이게 참 어렵습니다. ‘일이 잘 안될 것 같다, 어려울 것 같다’는 보고를 했다가는 자신이 능력 없어 보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끝까지 문제를 감추고 어떻게든 성공시켜보려 발버둥치게 되는 건데요.
미국 포드(Ford)사의 전 CEO인 앨런 멀러리(Alan Mulally)는 이런 직원들의 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독특한 제도를 만들었는데요. 일명 ‘신호등 보고서’. 직원들이 프로젝트 보고서를 올릴 때, 주요 사안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녹색’, 실패할 조짐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노란색’, 100% 실패가 확실하면 ‘빨간색’으로 표시하게 한 건데요. 직원들이 실패가능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게끔 하기 위한 장치였죠.
이를 지시한 후, 첫 번째 회의가 열렸습니다. 직원들은 어떤 보고서를 들고 왔을까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전원이 녹색으로 표시된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위기상황을 솔직하게 보고했다가 괜히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 찍힐까봐 두려웠던 거죠. 이걸 보고 크게 실망한 멀러리는 직원들에게 “작년부터 수십억 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느냐”며 다그쳤습니다.
그리고 몇 주 후 열린 두 번째 회의. 드디어 노란색으로 표시된 보고서가 하나 올라 왔는데요. 이걸 들고 온 직원은 신제품 개발 과정에서 안전상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이 발견됐다며, 이 제품의 출시를 늦춰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순간, 회의장 분위기가 싸해졌고, 직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숨죽이고 있었는데요. 바로 그때, 멀러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솔직하게 문제 상황을 얘기해 준 그 직원을 칭찬해 주었죠.
이 일이 있은 후로, 경영회의에는 점점 더 다양한 색깔의 보고서들이 올라왔는데요. 이들은 노란색, 빨간색 프로젝트의 실패가능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해결책을 찾기 위해 머리를 모았습니다. 덕분에 포드는 이것들이 더 큰 실패로 이어지는 걸 막을 수 있었죠.
멀러리가 영입된 이후, 포드는 파산 위협을 털고 적자기업에서 흑자기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는데요. 포드의 회장 빌 포드는 “멀러리는 CEO 명예의 전당에 오를 인물”이라고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글로벌 제약회사 머크(Merck)도 직원들이 실패가능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게 하는데요. 바로 ‘Kill Fee’라는 제도를 통해서 말이죠. 이는 성과가 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에 대해 사실대로 보고하는 직원에게 스톡옵션을 주는 제도입니다. 일종의 인센티브죠.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요? 더 큰 비용이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죠. 보통 제약회사는 새로운 제품 개발을 위해 엄청난 돈을 연구비로 투자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중간에 실패 가능성이 발견돼도 이미 들어간 비용이 아까워서, 바로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하지만 이렇게 프로젝트를 질질 끌다 보면 비용만 더 낭비하게 되죠. 그래서 머크는 ‘Kill Fee’ 제도로 직원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실패를 드러내는 문화를 만들어준 겁니다.
혹시 실패가능성을 말하기 두려워하는 구성원들 때문에 고민이신가요? 이럴 땐 포드와 머크처럼 자연스럽게 실패가능성을 드러내 줄 장치를 만들어주세요. 예상치 못한 실패를 예방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