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육해공으로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을 지시했고 이로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지상전이 발발했다. 미국 중심의 서방국가들이 국제 상품결제 수단인 국제금융결제망(SWIFT)를 차단하면서 제재를 극대화했다. 하지만 서방국가들의 대 러시아 제재 및 교역중단은 스마트폰에서 자동차와 비행기 제조사에 이르기까지 서방국가들의 산업 전반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받게 만들었다. IT업계 입장에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기존의 세계적 반도체 부족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IT·전자 기술이 필요한 산업 분야의 공급망 문제를 악화시키는 데 일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방국가의 러시아 제재와 전쟁중인 우크라이나가 주도적으로 공급하는 반도체 및 전자기기용 가스와 소재 공급망 단절 피해를 떠안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여파가 느껴지려면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대비책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발발한 전쟁이 가져올 세계 IT 및 첨단 산업분야에 대한 후폭풍이 어떤 이유로 어디까지 미치고 있는지 살펴본다. 물론 전쟁이 단기에 끝나면 좋겠지만 장기화될 경우 문제가 된다.
물론 에너지 문제도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주요 석유 및 천연가스 생산국이다. 이 전쟁은 가뜩이나 빠듯한 공급 상황에서 일부 지역의 에너지 가격을 급상승시키고 있다.
희소금속 공급망 단절···가전에서 의료장비까지 여파
알고 보면 많은 서방 국가들의 제재 대상인 러시아는 몇몇 산업에 중요한 주요 희소금속의 세계 최대 수출국이다. 침략 당한 우크라이나는 주요 희귀가스(네온)수출국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공급망 단절은 반도체를 비롯해 가전 제품에서 의료 장비에 이르기까지 전자 제품 생산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팔라듐은 메모리 카드와 센서 같은 전자제품에 활용되는 금속이다. 예를 들어 일반 아이폰은 약 0.015g의 팔라듐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극이나 부품 및 커넥터 도금용으로 자주 사용된다. 희귀금속은 희토류 17종을 포함한 47개 원소가 섞인 31종의 광물을 가리킨다. 팔라듐이나 리튬은 희토류는 아니지만 매장량이 적고, 전자부품이나 전지를 만드는데 빼놓을 수 없는 희소 광물이다.
CNBC에 따르면 전세계 최대 팔라늄 채굴업체인 러시아 노르니켈은 미국 팔라듐 공급량의 약 35%를 점하고 있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미국에 반도체급 네온가스의 90% 이상을 공급한다. 이 가스는 우크라이나에서 정제되긴 하지만 그 자체는 러시아 철강 생산의 부산물이다.
애플, 러시아 알루미늄 제련소 협력사 의존...재료비 상승 가능성
부작용은 단순한 공급망 단절에 그치지 않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은 두나라에서 그다지 많이 조달되지 않는 원자재 가격까지 상승시킬 수 있다.
러시아는 특정 스마트폰 모델의 섀시에서 항공기 제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사용되는 티타늄의 주요 생산국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이 모두가 주요 티타늄 수출국이기도 하기에 전세계가 전적으로 러시아에만 의존할 필요는 없다.
러시아가 전 세계 알루미늄 공급량의 6%를 생산하는데 그치지만 경제 제재로 인해 애플처럼 거의 모든 노트북과 스마트폰에 알루미늄을 사용하는 전자기기 제조 회사들의 금속재료비를 상승시키고 있다.
애플은 지난 2020년 12월 현재 러시아에 본사를 둔 금속 제련소 10곳을 자사 공급망에 등재해 놓고 있기도 하다. 이 제련소에서는 애플 제품에 사용되는 탄탈륨, 텅스텐, 금을 생산한다.
반도체 제조용 희귀가스·전자기기용 희소 금속 비축 충분한가?
애플인사이더는 비록 동유럽이 전자제품 생산을 위한 일부 희소금속과 희귀가스의 대부분을 공급하고 있지만,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들은 아직까지는 어떤 커다란 공급 단절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 업체들은 자재 비축과 다각화된 원자재 조달 덕분에 최근수년간에 비해 준비가 잘 돼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인텔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따른 직접적 영향은 예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글로벌파운드리와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인 UMC도 모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외 지역에서 공급망을 찾아 조달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CNBC에 따르면 애플 기기용 반도체를 생산중인 대만 TSMC는 관련 상황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지만 대만 경제부는 “대만 반도체 공급망을 점검한 결과 소재나 생산 활동에 직접적 영향은 없다”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TSMC를 포함한 대만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팔라듐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또다른 가스인 네온과 헥사플루오로부타딘은 이미 대만에 비축돼 있다. 대만은 또한 어떤 특정지역 공급 부족에 견딜 수 있을 만큼 다양한 공급망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애플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는 말레이시아 반도체업체 유니셈은 러시아산 소재를 많이 사용하지 않으며 기계류 대부분이 미국, 일본 등에서 오기 때문에 영향이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다만 두 국가를 대체할 공급처를 찾기 위한 경쟁은 아직 상대적으로 공급이 부족한 반도체와 칩셋 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이 오래 지속될수록 세계 반도체 공급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스마트폰, 태블릿, 노트북 신제품 구매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현대를 사는 데 있어 반도체는 이를 꼭 필요로 하는 광범위한 산업분야에서 매우 중요하다.
생산과정에서 네온가스를 사용하는 반도체는 자기공명영상(MRI)장치, 심박조율기, 혈압 모니터, 침대 옆 환자 모니터 같은 의료 장비에도 사용된다.
게다가 온난화 방지같은 인류의 미래도 반도체를 기반으로 구축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와 싸우는 데 있어서도 반도체에 기반한 기술적 해결책에 크게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이는 스마트도시나 전기차, 그리고 전세계에 걸쳐 끊김없는 커뮤니티에 접속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상업용 제트기를 생산하는 서구의 항공우주업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 팔라듐은 전자기기 회로는 물론 내연 자동차 촉매변환기의 생산에도 사용되기에 이의 공급망 단절은 자동차 공급을 방해할 수 있다.
러의 우크라 침공으로 공급망 파괴된 팔라듐가격 치솟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이후 팔라듐 가격은 급등해 지난해 12월 15일 온스(28.35g)당 1617달러(약 195만 원)에서 3월 1일 현재 2639달러(약 319만원)로 63% 가까이 상승했다. 온스당 1900달러대인 금값보다 비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구조적 피해 전쟁으로 확대되면서 네온과 팔라듐의 공급 감소와 가격 상승은 전 세계 반도체 부족과 함께 이에따른 주가를 급등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 엄청난 가격 상승은 계속될 수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 260만 온스(약65.2톤)의 팔라듐을 생산해 전 세계 생산량의 40%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 나라의 노르니켈은 세계에서 가장 큰 팔라듐 채굴업체다.
골드만삭스는 “팔라듐이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 금속은 이미 지난해 5월 온스당 2967달러(약 358만 원)에 육박한 적이 있다.
네온 가스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이 불활성 가스는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에 전자회로를 새길 때 사용하는 ‘엑시머 레이저’용 가스로 사용된다. 이는 반도체 공정에 있어 필수 원료로 꼽힌다.
테크셋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 네온 제조업체로 미국 반도체급 네온의 90%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SPI 자산운용의 스티븐 인네스는 지난 2014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 침공 때 네온 가격이 치솟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해운 채널이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는 현실적인 우려가 있다며 재연 가능성을 우려했다.
ig닷컴에 따르면 세계최대 반도체 노광장비업체인 네덜란드 ASML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구입하는 자사 네온가스 수요량의 20%를 대체 공급할 거래처를 찾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까지 네온가스를 전량 수입에 의존했고 올초 중소기업 TEMC와 포스코가 함께 국산화했다. 하반기부터 공급이 가능해질 전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반도체 업체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수입하는 네온 가스 비중은 30%에 육박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우크라이나로부터 국내 네온 수입량의 23%인 132만8000달러어치, 러시아에선 전체 수입량의 5.2%인 30만4000달러어치를 각각 들여왔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반도체 가스별 수입액 중 우크라이나·러시아산 비중은 네온 28%(우크라이나23%+러시아5%), 크립톤가스 48%(우크라이나31%+러시아17%), 제논가스(크세논) 49%(우크라이나18%+러시아31%)였다. 특히 네온은 반도체 제조공정 중 노광공정 엑시머레이저에 주로 사용되는 가스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문승욱 장관은 28일 TEMC를 방문한 자리에서 “러-우크라 사태가 네온 등 희귀가스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제한적인 상황”이라며 “기업들이 해당 가스의 재고 비축량을 3~4배 확대하는 동시에 대체공급선의 활용 등 추후 사태 진전에 대한 대비책을 검토하며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공급망 위기와 가격 상승, 그리고 산업계 손실
러시아의 침략 이전에도 이미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여파로 공급망 위기가 확대되면서 반도체 부족 현상이 발생했다.
쉽게 말해 세계 경제 셧다운으로 반도체 수요가 감소했다. 그 후 세계 경제가 다시 열리면서 공급망의 납품 능력보다 수요가 더 빠르게 폭발했고 심각한 반도체 부족사태가 왔다.
딜로이트는 현재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스마트폰, PC, 게임 콘솔, 데이터 센터에 이르기까지 올해에서 내년까지도 반도체 부족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회사는 공급 침체로 인한 전세계 산업계 매출 손실이 2020~2022년에 5000억 달러(약 604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분쟁으로 반도체 업계 주가 상승 예고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역으로부터 상당한 수준으로 공급되던 팔라듐과 네온 가스 교역 중단은 아프리카와 같은 안정적인 지역에서 팔라듐을 채굴중인 앵글로 아메리칸 플래티넘, 시바니예 스틸워터, 임팔라 플래티넘, 노르탬 플래티넘과 같은 채굴업체의 주가를 오르게 할 것으로 보인다.
ig닷컴은 1일(현지시각) 반도체 관련 업체들이 이번 사태로 소재 수급난을 겪긴 하겠지만 주가 상승 차원에서는 지켜 봐야 할 수혜주로 꼽았다.
이에 따르면 파운드리 업체들도 수혜주가 될 수 있다. 시장가치 6000억달러인 대만 TSMC와 시총 280억달러인 UMC 같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들이 수혜주로 예상된다. 최대 칩 기본 설계 공급사인 영국의 암홀딩스도 주가 상승세를 보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AMD와 엔비디아도 마찬가지다. 모두 코로나19 주가 최고치에서 떨지긴 했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훨씬 웃돌고 있다.
문제는 팔라듐과 네온 가격이 오르면 반도체 가격이 폭등해 수요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반도체가 덜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들 둘 다 그들의 제품에 프리미엄을 부과할 수 있다.
러시아 RBC는 AMD와 인텔이 모두 러시아업계에 대한 미재무부 기술 수출 금지 규정을 준수하고 있으며 이를 러시아 제조사에 구두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TSMC도 러시아 공급을 중단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여기에서 개인용 PC와 휴대폰 등 소비자 통신기기는 면제되지만 러시아가 대응 수위를 높이면 팔라듐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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