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아이폰의 성능을 고의로 저하시켰다는 의혹이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신제품 판매를 늘리기 위해 이전에 출시된 제품의 컴퓨팅 속도를 고의로 늦췄다는 주장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제기되고 있고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선 애플에 벌금과 과징금을 결정했고 우리나라에서도 검찰이 재조사에 착수했다.
로이터통신은 29일(현지시간) 정보공개청구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애리조나주(州) 법무장관 주도로 애플이 '기만적 거래행위 금지법'(deceptive trade practices law)을 위반했는지에 대한 여러 주가 참여하는 공동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지난주 IT업계 감시단체가 입수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번 공동조사에 참여한 텍사스주가 애플을 기만적 거래행위 금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애플이 고의로 구형 아이폰 속도를 늦췄다는 의혹은 이미 2017년 12월부터 논란이 제기되었다. 당시 스마트폰 속도가 느려지면 자연스레 새 스마트폰 구매로 이어질 수 있어 애플이 신형 아이폰을 팔아 매출을 늘리고자 구형 아이폰의 속도를 저하시켰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애플은 "구형 아이폰의 경우 배터리 성능이 나빠 프로세서가 원하는 만큼 전력을 공급하지 못해 스마트폰이 갑작스럽게 꺼질 수 있어 프로세싱 속도를 줄이는 방식으로 전력수요를 감소시켰다"며 사실상 '속도저하'를 인정했다.
올해 3월 애플은 속도저하와 관련해 집단소송을 제기한 미국 소비자들에게 1인당 25달러(약 2만9800원)씩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합의에 따라 애플이 물어야 할 돈은 최대 5억달러(5960억원)로 추산됐다. 지난 2월 프랑스에서도 애플은 의도적으로 구형 아이폰의 속도를 떨어뜨렸다는 혐의로 2500만 유로(326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프랑스 기업 경쟁 감시 기관 (DGCCRF)는 애플은 소비자에게 구형 모델의 성능이 떨어질 것이라는 경고를 하지 않은 것을 벌금의 이유로 꼽았다.
국내서도 애플 성능저하 재조사 착수
국내에서도 속도저하와 관련해 2018년 1월 시민단체가 팀 쿡 최고경영자(CEO) 등 애플 경영진을 사기와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검찰은 2018년 12월 '혐의를 인정할 충분한 근거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를 내렸다가 시민단체가 불복하자 이달 20일 '수사가 미진했다'며 재수사를 결정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검찰청은 지난 15일 시민단체가 애플 경영진을 고발한 사건에 대해 재기수사 명령을 내렸다.
앞서 시민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소비자주권)는 이듬해 1월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다니엘 디시코 애플코리아 대표 등을 재물손괴죄,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업데이트를 둘러싼 애플의 고의성 여부 및 어떤 프로그램으로 성능저하가 이뤄졌는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는 지난 1월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후 소비자주권은 부당하고 불공정한 수사결과라며 항고장을 접수했다. 소비자주권은 항고장을 제출하면서 이탈리아 공정거래위원회(AGCM)와 프랑스 경쟁소비부정행위방지국(DGCCRF) 등 동일 사건에 대한 해외국가의 감독기구나 법원의 결정 자료들을 추가로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비자주권은 "서울고검의 수사재기 항고 인용을 환영한다"며 "서울중앙지검은 철저한 조사와 수사를 통해 애플 아이폰 소비자들의 권리를 찾아주길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여러 나라에서 혐의가 인정돼 과징금이나 행정처분, 손해배상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수사기관 만이 애플에 면죄부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다음은 소비자주권회의에서 발표한 재수사 촉구 입장 전문이다.
[전문] 소비자주권회의, 재수사 촉구 입장문
서울중앙지검은 1차 수사와 같은 부실수사 하지 말고 아이폰 피해자 중심의 철저한 재수사를 촉구한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약칭 소비자주권>는 iOS 업그레이드를 통한 아이폰(6·SE·7시리즈 iOS 10.2.1~11.2 버전) 성능조작과 관련하여 애플컴퓨터사 대표이사인 팀쿡과 애플코리아의 대표이사인 다니엘 디시코를 재물손괴죄, 업무방해죄로 2018년 1월 18일 서울중앙지검에 형사 고발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2020년 1월 3일 불기소 처분하였고, 이에 2020년 1월 31일 소비자주권은 불복하고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장을 제출하였다.
소비자주권은 항고장과 함께 추가증거자료와 항고이유서를 제출하였다. 이후 다시 이탈리아 공정거래위원회(AGCM), 프랑스 경쟁소비부정행위방지국(DGCCRF),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지방법원의 집단 소송 등 동일 사건에 대한 다른 나라 감독기구나 법원의 결정 관련 자료들을 추가증거자료로 제출하며 항고 이유를 보충하였다.
이에 지난 7월 15일 서울고등검찰청은 소비자주권의 이번 애플 아이폰관련 항고사건을 인용하여 서울중앙지검에 재기 수사(재수사) 결정을 내렸다. 서울고등검찰청은 아이폰 6·SE·7시리즈의 iOS 10.2.1~11.2의 기능저하 사건에 대하여 사건기록과 항고장, 항고이유서, 항고이유 보충서, 추가 증거자료 및 관련자료 등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재수사 결정을 한 것이다. 이는 부실하게 1차수사를 하였던 서울중앙지검과 강남경찰서에 다시 수사하라는 명령으로 1차 수사를 담당한 이들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에 소비자주권은 서울고검의 수사재기 항고 인용을 환영하며, 이제라도 서울중앙지검은 철저한 조사와 수사를 통하여 애플 아이폰 소비자들의 권리를 찾아주길 촉구한다. 다른 여러 나라에서 혐의가 인정되어 과징금, 행정처분, 손해배상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유독 우리나라 수사기관 만이 ‘혐의 없음’ 이라며 애플에 면죄부를 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서울중앙지검은 그동안 배척하거나 채택하지 않은 증거들에 대하여 누락하거나 소홀히 다루는 일이 없도록 하고 아이폰 6~7시리즈를 사용하던 피해자들 중 소수의 인원을 선별하여 피해자 진술 조사를 받는 등 피해자 중심의 철저한 수사를 통하여 애플에 대한 세계 각국과 비교하여 처벌의 형평에서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국가가 동일한 처벌을 한다는 인식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며 국가가 자국의 피해자들을 보호하지 않고 강건너 불구경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 사건 수사는 1차 수사의 부실함으로 인하여 재수사를 하는 만큼 경찰에 수사지휘를 내려보내지 말고 검찰의 직접 수사를 통하여 국민들과 수많은 아이폰 사용자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아이폰 6~7시리즈의 성능저하 문제에 대하여 한 점 의혹 없도록 철저한 재수사에 나설 것을 서울중앙지검에 재차 촉구한다.